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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해진 趙海珍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가 있음. glala95@hanmail.net
산책자의 행복
흐렸고 오후 한때 진눈깨비가 날린 날, 오늘도 저는 긴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한달 전부터 같은 페이지가 접혀 있는 전공서적과 뜨거운 커피를 담은 보온병, 그리고 대충 자른 훈제 햄을 끼워넣은 식빵 두조각을 챙겨서요. 산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늘 그렇죠. 그저 걷는 것입니다.
이 도시는 산책자를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제가 쓴 적이 있던가요. 서너시간만 걸어도 시청사와 박물관, 대성당이 모여 있는 도심뿐 아니라 공원과 공동묘지가 자리한 외곽까지 둘러볼 수 있죠.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이곳에 없는 거라곤 국제공항과 출입국사무소 정도일 거예요. 수시로 국경을 넘어야 하는 직업만 피해 간다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이 도시엔 마련되어 있습니다. 간혹 그런 사람을 상상해봅니다. 이 도시의 시립병원에서 태어난 뒤 도시 안에 있는 학교와 직장을 다니다가, 생애가 소진될 즈음 다시 그 시립병원으로 돌아가 임종을 맞은 사람, 그러니까 이 도시에 있는 건물들을 옮겨 다닌 물리적인 이동이 삶의 전부인 사람…… 어쩌면 그런 삶이 이 세계의 표준인지도 모르겠어요.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어 지금은 이곳에 있지만 제 삶에도 새로운 것은 없으며 그저 몇개의 동일한 일상과 감정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니까요.
라오슈라면 분명 이런 조언을 해주겠지요. 전진하려 했으나 장벽에 부딪혀 돌아온 허무와 애초부터 전진을 시도하지 않은 고정된 허무는 다르다고, 일상과 감정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 실존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요. 라오슈가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죠. 하지만 라오슈, 하루하루가 특별한 감각 없이 머릿속 망각의 창고 안에 쌓여가고 있는데, 나라는 존재 하나 해석할 수 없어 생산성과는 완전하게 무관한 산책이나 하며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을 낭비하고 있는데, 이런 제가 어떻게 제 세계의 둘레를 벗어나 전진할 수 있을까요. 해변에 버려진 종이상자처럼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조금씩 무너지고 있을 뿐입니다.
라오슈, 오늘도 저는 긴 산책을 했고 책을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라오슈에게선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
높은 곳에서 새벽의 M시를 내려다본다면, 형광등의 창백한 빛으로 둘러싸인 편의점은 네모난 모양의 부표처럼 보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하곤 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안전하면서도 풍요로운 영역이 있다는 걸 알리는 부표인 셈이다. 실제로 새벽의 편의점 안에서 바라보는 문밖의 어둠은 물결처럼 일렁이곤 했고, 어둠을 가로질러 담배나 생수를 사러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항로를 갖고 있는 외로운 항해사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그녀는 2년 전에 M시로 이사 왔다. 이사가 결정되기 전부터 살짝 언 강물 위를 맨발로 걷고 있는 듯 매 순간이 춥고 위태로웠음을 그녀는 기억한다. 어디로든 발을 뻗어야 하지만 내딛는 곳이 곧 나락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분명하게 의식해야 하는 불안한 피곤…… 그 시절 불행은 각종 청구서와 독촉장에 찍혀 배송되었고, 그녀는 숫자로 구체화된 그것의 위력 앞에서 무력했다. 서른살 때부터 이십년 가까이 해오던 대학 강의를 그만두면서 수입은 제로가 되었는데 어머니의 병원비와 은행빚은 꾸준히 불어났다. 살던 집을 처분하고 타고 다니던 구형 자동차를 팔아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했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임대아파트 입주권자가 발표되던 날, 그녀는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병원 비상구 계단에 앉아 새벽을 맞았다. 하나의 세계는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를테면 불행이란 진실을 사유하는 데 필요한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혹은 진정한 행복을 완성하는 부속품이라고 여기던 세계는 단단하게 셔터를 내린 것이다. 입과 거주지를 국가에 의탁해야 하는 세계, 수치심은 사치가 되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최후의 보루조차 될 수 없는 세계, 그녀 앞에 새로 펼쳐진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
정부가 지정해준 임대아파트가 M시에 있었다. 지금은 번듯한 신도시의 외관을 갖추게 됐지만 그녀가 이사 올 때만 해도 M시는 유령의 은신처처럼 황폐하기만 했다. 여기저기 땅이 파헤쳐져 있었고 입주가 안된 빈 아파트들은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 같았으며 인도엔 부서진 벽돌이나 각목 조각이 나뒹굴었다. 그때는 지하철 역사도 아직 정비되지 않아서 M시역은 이름만 존재할 뿐, 지하철은 정차하지 않았다. 시내에 나갔다 올 때면 그녀는 늘 M시역의 전 역에서 내린 뒤 M시까지는 걸어서 이동했다. M시는 오랫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으므로 개발구역을 제외한 곳은 논밭이 많았고 M시로 이어지는 6차선 차도엔 횡단보도나 신호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상해. 차들이 속도를 내며 달리는 6차선 옆 좁은 인도를 묵묵히 걸으며 그녀는 중얼거리곤 했다. 이상한 풍경이긴 했다. M시역의 전 역까지는 대도시의 윤곽이 뚜렷하고 밤에는 인공적인 불빛에 휘감기는데 M시로 이어지는 길은 풀벌레 우는 소리와 곡물 익어가는 냄새로 가득한 것이다. 마치…… 메이린에게 답장을 보낸다면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을 쓰고 싶다고, 언젠가 희미한 낮달이 배에서 떨어져 나온 닻처럼 떠 있던 M시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녀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마치, 메이린, 그 길은 얼어붙은 강물 밑 같았어. 늘, 너무 추웠어.
메이린은 그녀가 철학과 강사로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때 만난 중국 유학생이었다. 대체로 한국어를 일이년 정도 배운 뒤 입학한 중국 유학생들은 고난도의 어휘와 복잡한 어순의 문장으로 점철된 전공서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좀처럼 강의에 집중하지 못한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잡담을 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그녀는 의욕을 잃곤 했다. 그녀는 중국 유학생들에게 도무지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 적어도 메이린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메이린은 달랐다. 아니, 특별했다. 강의 중 무심결에 언급한 책까지 구하여 밤새도록 읽어오는 열정은 놀라웠고 그녀의 말을 그대로 흡수하는 듯한 총명한 눈빛은 신뢰감을 주었다. 강의가 끝나면 가방을 정리하는 그녀에게 다가와 그날의 강의를 꿰뚫는 질문을 해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누구보다 학자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메이린의 젊은 미래가 부러웠다. 부러웠지만, 동시에 안쓰럽기도 했다. 가능성은 실패하고 좌절할 확률과 비례한다는 의미니까, 어떤 실패와 좌절은 또다른 가능성에 가닿는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직선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철학과가 다른 비인기 학과와 묶여 인문학부로 통합되고 철학과 관련된 교양수업이 폐강되면서 그녀는 대학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게 됐지만, 그 이듬해 졸업을 한 메이린은 독일로 유학을 떠난 뒤에도 잊지 않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사이에 그녀는 퇴원한 어머니와 함께 M시로 이사를 왔고 1년 전부터는 M시 한복판에 위치한 이곳 편의점에서 일주일에 세번씩 자정부터 아침 여섯시까지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 책과 논문 들을 방수비닐에 싸서 재활용쓰레기장에 버린 날도 있었고 캄캄한 방에 누워 가능하고도 합리적인 죽음의 방법을 고민한 날도 있었다. 메이린에게는, 단 한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편의점 카운터에 비스듬히 서서 메이린이 처음으로 그녀를 라오슈(老師)라고 불렀던 어느날을 떠올렸다. 제법 친해져서 교정 뒤쪽의 낮은 야산으로 함께 산책을 간 날이었다. 메이린은 대화 도중 실수로 나온 모국어에 얼굴을 붉혔지만 그녀는 웃었고, 그 호칭이 마음에 드니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라오슈가 관계의 위계라든지 근엄함의 성향이 배제된 중립적인 호칭처럼 들려서 좋았다. 강의실에서 메이린을 만날 무렵, 그녀는 곧 대학을 떠나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예감하고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교수님이라든지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노래하는 소리 ‘라’와 바람소리 ‘슈’가 결합된 그 단어는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마음의 밑바닥에서 붕 떠오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왔다.
마침 후드티를 뒤집어쓴 젊은 남자가 들어오면서 그녀는 자세를 바로 했다. 담배를 사러 온 손님이었다. 그녀는 등 뒤에 배치된 담배 진열장에서 남자가 찾는 담배를 집어 바코드리더기를 갖다 댔다. 내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와 시선이 마주친 건 결제를 마친 신용카드를 주고받을 때였다. 남자는 충혈된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가 싶더니 이내 후드티 모자를 벗어 깍듯하게 인사한 뒤 편의점을 나섰다. 그녀는 남자 쪽을 쳐다보지 않기 위해 뚫어지게 정면만을 응시하다가 편의점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방금 전의 후드티 남자를 강의실에서 만난 적 있을지 모른다는, 확인할 수 없고 확인하고 싶지도 않은 공허한 의심으로 인한 동요였다.
석달 전, 그런 손님이 있었다. 앳된 얼굴의 키가 작은 여자 손님이 맥주 두캔과 감자칩 한봉지를 카운터에 올려놓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홍교수님 아니세요? 그녀는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어수룩하게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다행히 여자 손님은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편의점을 나섰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손님이 편의점으로 들어설 때마다 반사적으로 긴장하는 몸의 습관을 갖게 되었다. 생존은 스스로 해결하되 세상이 인정하고 우대해주는 직업에 연연하지 말라고, 눈 가린 말들처럼 정해진 트랙을 달릴 필요 없다고, 종강 즈음이면 한 학기를 정리하며 그녀는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속된 세계로의 편입을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지키는 한 어떤 형태의 가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늘 확신에 차 있었고 그 말의 무게를 책임질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 남은 선생으로서의 마지막 말은 존재와 신념을 모두 부인하는 배교자의 언어였다. 그 언어는 종종 새벽의 편의점 안에서 손의 형상으로 빚어졌다. 끊임없이 그녀를 돌려세워 광대의 의자에 앉힌 뒤 그녀가 강의실에서 했던 말들을 바닥에 널어놓고는 조롱하듯 손가락질하는 거칠고도 악센 손들…… 아직 새벽의 한가운데였다. 편의점 사장과 교대하려면 앞으로도 네시간 십오분을 기다려야 했고, 그동안에 환각은 물러나지 않은 채 좀더 그녀를 괴롭힐 터였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메이린에게 답장을 쓰고 싶었다.
사는 게 원래 이토록 무서운 거니, 메이린?
그렇게, 묻고 싶었다.
*
올해의 마지막 날, 저는 부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오랜만에 공원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공원의 상징이었던 청동상이 철거된 자리, 그 시꺼먼 공백을 보았기 때문일까요. 석고 받침대에 남은 발 모양의 흔적은 사라진 존재의 비밀스러운 단서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부주의로 미처 치우지 못한 먼지더미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노년의 농부를 형상화한 동상, 기억하세요? 영웅이나 유명 예술가가 아니라 이름과 생몰년도가 기록되지 않은 신원미상의 농부를 동상으로 세운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일전에 저는 썼죠.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그 동상은 오래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모양이에요. 지역신문에는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사설이 주기적으로 실렸고 지난번 유대인들의 속죄일에는 동상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대학생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크고 작은 소란은 농부의 평범함이 한 시절의 역사에선 악이 되었음을 모두가 끈질긴 힘으로 기억해왔기 때문이겠죠. 동상은 2차대전 때 주조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땅을 믿으며 씨앗을 뿌리고 곡식을 추수하던 평범한 농부들이, 단지 유대인이란 이유로 어제까지 안부를 묻던 이웃을 밀고하거나 그들에게서 재산을 빼앗던 시절이었죠. 총에 맞고 쓰러지고 불에 태워지는 이웃의 구체적인 얼굴을 목격했으면서도 그들은 시장에 가고 빵을 굽고 잠들기 전에는 자녀의 뺨에 키스를 해주었을 것입니다. 저의 하숙집 주인 할머니—그녀는 러시아 출신의 이민자입니다—는 언젠가 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러시아 침공 당시, 고작 열여섯살에 간호병으로 입대한 큰언니가 종전과 함께 1년 만에 귀가한다는 통지서를 받고 온 가족이 마중을 나갔는데 아무도, 심지어 어머니조차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고요. 플랫폼에는 열일곱살의 싱그러운 처녀가 아니라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신산한 분위기의 여인이 서 있었으니까요. 훗날 백발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에 이른 할머니의 큰언니는 다행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해요. 늙어서, 잊어가고 있어서, 곧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애가 기다란 원통 모양이라면 그녀에게 다행이라는 말은 시간의 그물망을 통과하여 그 밑바닥에 쌓인, 정제되고 또 정제된 결정체 같은 것이겠지요. 전쟁은 그런 것일 테지요.
그러니 동상이 철거된 것은 도리에 맞는 일일 것입니다. 알면서도 라오슈, 저는 서운했습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었는데, 그 주름진 손에 들린 것이 칼이나 책이 아니라 쟁기인 것을 보고 제가 받은 작은 충격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렇듯 하루아침에 존재가 부재로 바뀌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 도시의 그 누구도 동상이 철거될 예정이란 걸 저 같은 이방인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지만 저는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어쩌면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언제라도 제 감각 밖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상기하는 과정이 괴로웠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구나.
그때 라오슈는 말했고, 저는 들었습니다.
죽음을 주제로 한 강의가 끝난 뒤 제가 라오슈에게 이선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털어놓고 말았을 때, 라오슈는 제 손을 잡으며 분명 그렇게 말했죠. 그 흔한 반지 하나 없는 라오슈의 맨손이, 평생 책을 읽고 집필을 하고 학생들의 과제와 시험지를 들여다보던 나이 든 여자의 그 섬세한 손이 제 몸에 그대로 각인되는 듯했습니다. 이선을 잃은 뒤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제 비겁함을 끌어안은 실체는, 그때껏 그 손뿐이었죠. 한 사람은 죽었고 그 사람이 있던 자리는 머리카락 한올 남지 않은 공백뿐인데 왜 나는 아직 살아남았고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가, 이선은 저에게 그런 류의 질문을 남긴 아이였으니까요.
라오슈, 오늘 저는 부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건, 영원이라는 시작도 끝도 없는 선 위에서 점멸하는 작은 점, 부재함으로써 존재하는 이선을 생각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라오슈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어떤 언어가 라오슈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걸까요. 행복한가요, 라오슈? 제가 라오슈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사실 그뿐인데 오늘도 저의 타전은 무력합니다.
*
내내 긴장하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손님은 더이상 없었다. 손님의 발길이 뜸해지는 새벽 세시가 지나자 긴장이 풀리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잠시 선잠에 들었던 그녀는 휴대폰 진동음에 퍼뜩 눈을 떴다. 휴대폰 화면에는 집 전화번호가 뜨고 있었다. 몇차례의 수술과 긴 입원생활 뒤 우울증을 얻은 어머니는 간혹 이런 새벽에 아연히 깨어나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선뜻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그녀에게 고향과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대부분은 어머니가 예닐곱살에 고향에서 경험한 전쟁과 관련된 일화들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고향인 산청에 가본 적이 없었고 외할머니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으며 그녀에게 전쟁은 인위적인 국경이라는 결과물로 남은 객관적으로 비참한 사건일 뿐이었다. 아프기 전까지는 혹시라도 닥칠 불이익을 염려하며 가족사에 대해 철저하게 함구했던 어머니가, 생의 종착역에 다다라서야 외할머니와 살았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반복하는 이유를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내가 마저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어머니는 내내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초조한 목소리였다.
“네가 꼭 들어야 되는 거야. 그때 말이야, 우리 마을에 청년들이랑 경찰들이 떼로 와서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고 했잖아.”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뒤이어 어떤 말을 할지는 다 알고 있었다. 이미 여러번 들은 레퍼토리였다.
“실은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네 외할아버지도 그때 돌아가셨다. 즉결 처분이라나 뭐라나. 아버지를 묻어주지도 못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 외삼촌이 살던 산 너머 마을로 밤도망을 갔어. 한겨울이었는데, 가는 길에 보니 개들은 시체를 먹고 사람들은 그 개를 잡아먹고 있더라. 엄마도 나도 말은 안했지만 아버지도 개들의 먹이가 되었을 거란 걸 알고 있었지. 외삼촌 집에 도착했을 땐 동상으로 손발 아픈 거는 까맣게 잊어먹을 만큼 밥 생각뿐이었어. 사흘은 굶었을 거야. 외숙모가 야속하게도 국밥을 딱 한그릇 말아줬는데 엄마한테 잡숴보라는 말도 않고 내가 다 먹어치웠다. 게눈 감추듯이 말이야. 근데 그만 새벽에 탈이 나서 다 토하고, 그게 아까워서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엄마,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미영아, 너는 아니?”
어머니는 절박하게 물었지만 그녀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제 그만 주무세요, 한참 후에야 그녀가 가까스로 그렇게 말했을 때 어머니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그녀는 어머니가 울 때면 늘 그랬듯 죄인이 된 기분에 사로잡혔다. 속죄도 구원도 바랄 수 없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운명 지어진 죄인……
그녀는 휴대폰을 카운터에 내려놓았고 전화가 끊길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피곤했다.
어머니의 전두엽에서 종양이 발견된 뒤부터 시작된 피곤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 어머니의 죽음을 상상하면 눈발이 날리는 텅 빈 들판에 혼자 서 있는 듯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왔지만 상상 속 외로움은 현실의 피곤을 이기지 못했다. 피곤은 줄지도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와 똑같은 크기와 질량의 피곤이 또다시 시작됐다. 죽음에 가닿은 피곤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한때는 죽음에 매혹된 적도 있었다. 그녀가 흠모했던 철학자들은 죽음을 전제한 존재의 성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의 책을 읽으며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들처럼 미래의 죽음을 떠맡으며 강인한 현재를 살기 위해 애썼다. 그녀에게 죽음은 구체적인 단절이 아니라 존재를 완성하고 성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추상적인 과정이었다.
—아니요, 죽음은 채워지지 않는 식탁의 빈자리 같은 거예요. 손을 뻗어도 만질 수 없고 머리를 맞댄 채 웃으며 이야기할 수도 없는 거요. 그냥 끝이라고요, 끝, 아무것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것, 아시겠어요?
강의가 끝난 텅 빈 강의실에서 그렇게 항의하며 울먹이던 메이린은 작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날은 처음으로 개별자로서의 메이린을 인식하게 된 날이기도 했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유일한 경험이었는지도 모른다. 희미하게 몸을 떨며 한바탕 울고 난 메이린은 최근에 자신이 겪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선, 고작 스물세살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메이린의 한국인 친구…… 타인의 고유한 고통을 알게 되면 애틋함이 생기고 그 애틋함은 결국 스스로를 보듬는 도구가 된다. 철학과가 사라질 조짐을 보이고 그녀가 흠모했던 철학자들의 책이 도서관 구석으로 옮겨지는 걸 지켜봐야 했던 그때, 친구를 잃은 메이린의 슬픈 얼굴이 그녀에게는 세상 끝에 버려진 거울 같기만 했다. 동질감을 느꼈다. 아니, 느끼고 싶었다. 악의적인 운명에 단 하나였던 우주를 빼앗긴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믿음이, 그것이 공동의 현상이라는 증거가, 그때는 위로가 됐다.
그녀는 메이린이 필요했다.
버스 첫차 시간의 기준이 되는 새벽 네시가 지나면서 편의점의 문이 열리는 빈도가 잦아졌다. 손님 대부분은 동이 트기 전에 M시의 공사현장이나 빌딩 화장실, 혹은 식당 주방으로 출근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늙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출근길에서 구입하는 건 컵라면이거나 봉지에 든 빵,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개중 누군가는 편의점 안쪽 간이선반에 서서 허술한 아침식사를 해결하기도 했다. 편의점엔 이내 값싼 음식들이 피워내는 인위적인 냄새로 가득해졌다. 허기를 일깨우는 냄새였다. 한바탕 손님이 들었다가 나간 뒤 그녀는 냉장칸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판매할 수 없는 삼각김밥 하나를 꺼냈다. 밥알 하나하나에 찬 기운이 어린 삼각김밥을 여러번에 걸쳐 베어 먹는 동안, 오래전 친척집에서 씹지도 않고 국밥을 삼켰을 어머니의 씰루엣이 그녀의 몸에 고요하게 겹쳐지는 게 느껴졌다. 팔랑이는 두장의 종이처럼 어머니의 과거와 그녀의 현재가 맞닿아졌다. 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새해 들어 첫눈이 내린 날, 오늘 저는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다리 위에서 난간에 기대앉은 채 플라톤의 『향연』을 읽는 청년을 보았습니다. 청년 곁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흰색의 개는 병들어 보였고 청년의 남루한 옷차림과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이니 머리칼은 오랜 노숙생활을 증명하는 듯했지만, 청년 앞에 놓인 바구니를 보지 않았다면 그저 제멋대로 살아가는 히피 성향의 대학생일 거라고 여기고 말았을 거예요. 바구니에는 동전 몇개가 담겨 있긴 했지만 얼핏 봐도 온전한 한끼 식사를 책임질 만한 돈은 안될 성싶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제야 청년의 조악한 살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담요가 비어져 나온 배낭과 배낭에 달린 컵과 스푼, 몇권의 책들과 휴대용 베개, 그러니까 청년이 앉은 곳은 그가 거주하는 집이었던 셈입니다. 그 어떤 건물에도 소속되지 않는, 지붕도 창문도 없이 거리 위에 펼쳐진 생애의 일부분……
저는 청년의 주변을 계속해서 서성였습니다. 청년은 간간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거칠게 기침을 했고 그때마다 등허리를 수구려 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죠. 제 시선이 느껴졌는지 청년이 고개를 들어 저를 보았습니다. 청년은 저를 향해 손짓을 해 보였지만 저는 주춤했습니다. 청년의 집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 무시와 냉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행위와 같다는 걸 저도 모르지 않았으니까요. 다리를 건너가는 행인들은 청년을 못 본 척하거나 적대적으로 바라봤습니다. 빈 유모차를 보행기 삼아 느릿하게 걷던 노파는 청년을 향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은 뒤 크게 성호를 그으며 지나가기도 했고요.
사실, 최근 들어 자주 목격되는 장면이죠.
얼마 전 독일을 충격에 빠뜨린 난민의 집단 성범죄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지난주 토요일엔 이 작은 도시에도 그들의 유입과 정착을 반대하는 거리행진이 있었습니다. 행진은 평화로웠지만 행진 뒤에 남은 극우단체 소속의 회원들은 자동차의 유리를 깨거나 거리의 소화전을 부수었습니다. 밤늦도록 창밖은 경찰차의 싸이렌과 사람들의 고함소리로 소란했고, 다음날 아침까지 거리엔 빈 술병들과 찢어진 깃발이 나뒹굴었어요. 그날 루카스—플라톤을 읽던 청년의 이름입니다—와 비슷한 외모의 사람들은 그 누구의 눈에 띄지 않도록 문을 잠그고 커튼을 내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을 거예요.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 공포와 잠재된 폭력을 분출할 수 있는 도화선이 간절한 사람들이 거리를 지배하던 날이었으니까요.
망설임 끝에 다가간 저에게 청년은 작은 초콜릿을 건네며 흐뭇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마치 아이를 다루듯이 말이에요. 그의 『향연』을 가리키며 나도 읽어보았다고 말하자 그는 진심으로 놀라는 듯했습니다. 내가 이미 스물여섯살이고 이 도시의 대학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밝혔을 때는 몇번이나 정말이냐고 묻기도 했죠. 그는 제가 기껏해야 사춘기 무렵의 여자아이라고 여겼던 모양이에요. 어느새 저는 그의 곁에 쭈그리고 앉았고 우리는 그의 한스—큰 개의 이름입니다—를 번갈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루카스는 쿠르드족의 후예이긴 하지만 독일에서 태어났고 지금껏 한번도 독일 국경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독일 정부가 발급한 합법적인 신분증을 갖고 있었고 모국어는 독일어이며 한때는 독일 회사에 고용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일시적이었어,라고 루카스는 말했습니다.
“빌딩의 비상구 계단에서 작은 창을 통해 올려다본 구름처럼……”
그런 일시성, 잠시 침묵한 뒤 루카스는 강조하듯 덧붙였죠. 돈 좀 있니? 그가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저는 가까운 상점에서 생수를 사와 그에게 건넸습니다. 그는 배낭에 달려 있던 컵에 생수를 따라 한스에게 먼저 주었고, 한스가 충분히 목을 축인 뒤에야 컵에 남은 물을 천천히 마시더군요.
그의 집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해가 지면서 다시 눈발이 날려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무시와 냉대의 영역에서 도망치고 싶은 제 연약한 마음 때문이었을 거예요. 짧은 인사를 나누고 몇걸음 걷다가 슬며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루카스는 다시 『향연』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미 수십번이나 읽어서 책장이 모두 해져 있던, 그가 거주하는 또 하나의 집…… 태초의 인간은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가 한몸이었다죠. 『향연』의 어느 페이지에서 읽은 기억이 났습니다. 새삼 그들이 부러워졌습니다. 태초의 인간들에게는 인종도 국가도 종교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들에게는 그저 끝없는 사랑만 있었겠지요. 손만 뻗으면 제 몸에 붙은 연인을 만질 수 있는 사랑의 그 짧은 거리, 단순하고도 감각적인 것, 어쩌면 행복이란 단지 그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리 끝에 멈추어선 채 인간의 재주와 힘으로 올린 대성당의 십자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습니다. 한겨울의 허공에서 이곳을 굽어보는 신의 눈동자는 무정한 슬픔이 읽히는 흐린 잿빛일 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학교를 떠났다는 소식, 전해 들었습니다. 실은 이미 오래전에요. 강의실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라오슈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으므로 섣불리 염려하지도 못합니다. 답장을 기다리는 것 외엔 도무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대성당을 지나쳐가며 그때껏 손에 들려 있던 작은 초콜릿을 입안에 넣고는 오랫동안 단맛을 음미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구나. 그 순간, 라오슈의 그 말이 알을 깨고 나오는 작고 연약한 생명체처럼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눈을 뜨고 깃털을 돋우는 듯했습니다. 떠올릴 때마다 경이로운 그 말을, 라오슈, 저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
편의점 사장은 오늘도 여섯시 오분 전에 나타났다. 몸 안에 시계라도 내장되어 있는 듯 그의 출근 시간엔 오차가 없었다. 그 정확함은 1년을 주기로 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여섯시부터 오후 두시까지 편의점의 카운터를 맡아왔다. 기념일이 없는 사람, 그녀는 그에 대해 그렇게 정의하곤 했다. 몇년 전에 그를 알았다면 그녀는 그에게 일말의 관심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기념할 것 하나 없이 파트타임 직원에게 줄 급여를 아끼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생각만으로도 따분했다. 관성과 습관에 복종하며 사는 건 심연을 모른 채 표면만을 훑는 가짜의 방식이라고 오랫동안 그녀는 믿어왔다.
그는 편의점 로고가 찍힌 초록색 조끼를 입으며 언제나처럼 간밤에 손님이 많았냐는 질문으로 안부의 인사를 대신했다. 그녀는 평소와 비슷했다고 대답한 뒤 외투와 가방을 챙겼다. 새벽의 매상이 기록된 영수증을 훑어보던 그가 언뜻 고개를 들어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얼결에 웃어 보였다. 아내와는 사별하고 장성한 아들은 미국에서 결혼하여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는 그의 처지를 알게 된 뒤부터 그의 그늘 아래를, 아늑한 침대와 자족적인 식탁을 남몰래 탐하곤 했다. 입과 거주지를 국가가 아니라 구체적인 한사람에게 의탁하고 싶다는 욕망은 낯설긴 해도 상상했던 것만큼 추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가짜의 방식을 의식하며 괴로워할 필요 없는 고요만이 오늘을 견디게 하는 행복인지 몰랐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네모난 조각 안에서, 그녀는 쉬고 싶었다.
“가서 좀 쉬어요. 참……”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그녀가 기대했던 체온은 없었다.
“참, 저번에 식사 한번 하자는 약속을 못 지키고 있네요. 요즘 내가 정신이 없어서. 다음 달에나 다시 약속 잡아봅시다.”
그녀는 괜찮다고, 식사는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영수증으로 시선을 옮긴 뒤였다. 아주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걸었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이미 편의점 밖 거리로 나와 있었다. 쓰라림도 회한도 없는 초라한 사랑이 지나가고 대신 기초생활수급자의 하루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외투의 앞섶을 여미며 횡단보도를 건넜고 병원과 아파트와 학교, 그리고 관공서와 사무실로 가득 찬 건물들과 교회를 지나갔다. 누군가의 삶을 펼쳐놓은 것 같은 거리는 M시에도 있는 것이다. 의도와 상관없이 수많은 삶을 통과하고 있다는 생각은 또다른 차원의 피곤을 불러왔다. 그녀는 쫓기듯 골목 안쪽으로 꺾어 들어갔고 골목은 끝없이 이어졌다.
중심지에서 먼 골목일수록 철거를 앞둔 허름한 다가구주택과 구멍가게나 이발소, 정육점 같은 소규모의 상점들이 풍경을 구성했다. 허물어진 담벼락에 기대어진 녹슨 자전거, 귀퉁이가 터진 쓰레기봉투, 아무렇게나 버려진 옷가지처럼 사람의 배려로부터 멀어진 사물들도 그 풍경의 일부였다. 또다시 2년이 흐르면 이런 골목에도 아파트단지와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들어설 터였다. 날마다 키가 자라는 소년처럼 하룻밤 사이에도 층을 올린 건물이 흔한 M시 안쪽에 소멸의 절차를 밟아가는 노인의 얼굴이 숨겨져 있다는 건 언제나 새삼스러웠다.
바람이 찼다.
등 뒤에서 쇠가 바닥에 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온 건 문 닫힌 분식집 앞을 지나갈 때였다. 그녀는 가방의 어깨끈을 부여잡은 채 불길한 눈길로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품종을 알 수 없는 검은색의 큰 개가 체인 모양의 은빛 쇠목줄을 끌며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아침 일찍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가 목줄을 놓친 모양이었다. 개는 시체를 먹고 사람들은 그 개를 잡아먹고…… 마치 이 순간에 떠올리도록 눈금이 맞춰진 타이머가 작동을 시작한 듯 어머니의 그 말이 귓가에서 되살아났다. 개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지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탐색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녀는 개에게 고정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몸매가 날렵하고 근육이 발달되어 있었지만 목덜미와 뒷다리에 피 흘린 자국이 남아 있는 개였다. 그녀가 경직된 자세로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는지 개가 귀를 쫑긋 세우며 그녀 쪽을 쳐다봤다. 견고한 적막 속에서 시선이 얽히자 개는 으르렁거렸고, 침을 흘리며 이빨을 드러내면서도 꼬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정신없이 걷다가 어느 순간부터 온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등 뒤의 쇠 마찰음은 점점 더 간격을 좁혀오며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는데도, 흘러내리는 가방과 밑창이 헤진 운동화 때문에 마음처럼 빨리 달리지 못한다는 것이 그녀는 답답했다. 골목이 끝나고 아파트단지 입구가 보였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면 경비실이 있을 것이고 경비실엔 개를 쫓아줄 누군가가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먼 곳에서 조명을 밝히고 있는 경비실을 목격했으면서도 그녀는 앞만 보며 달렸고 이내 아파트단지 입구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가 아니었다. 독거노인과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가 거주하는 임대아파트도 아니었다. 그녀는 거절당하고 싶지 않았다. 세계가 눈앞에서 셔터를 내리는 걸 또다시 지켜볼 수는 없었다. 풀린 운동화 끈이 밟힐 때마다 비틀거리면서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오르막길에 이르렀을 때 맞은편에서 승용차 한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제야 그녀는 스르르 주저앉았고 바닥의 돌멩이 하나를 손이 으스러지도록 꽉 쥐었다. 승용차는 급정거를 하며 클랙슨을 울렸고 뒤에서는 개가 짖었다. 잠시 숨을 고르다가 안간힘으로 일어나자마자 돌아선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힘껏 내던졌다.
개는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허공에서 뚝 떨어진 돌멩이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갔다. 승용차가 또다시 클랙슨을 울리며 그녀 곁을 지나갔다. 졸음이 밀려왔다. 그녀는 다시 걸었고, 길이 갈라질 때마다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살고 싶어.”
목적 없이 뻗어 있는 길 한가운데서 그녀는 속삭였다. 미치도록……
미치도록 살고 싶어.
메이린, 부르며 그녀는 흐느꼈다.
*
오늘은 춘절이어서 밀가루로 만두피를 만들고 잘게 썬 돼지고기와 양배추, 부추를 넣어 교자를 빚었습니다. 표고버섯이나 청주 같은 것도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곳에선 구하기 힘들더군요. 하숙집 주인 할머니에게 한 접시 갖다드리자 할머니는 마침 빵과 커피가 충분하니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식탁에 마주앉아 음식을 나눠먹은 건 처음이었어요. 제 커피잔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에야 간호병이었던 큰언니의 안부를 물으니 할머니는 교자를 씹다 말고 의아하게 저를 보았습니다. 살아 있다면 구십이 다 된 나인데 몸도 약했던 사람이 지금껏 살아 있겠느냐고, 죽은 지 벌써 이십년도 넘었다고 말하면서요. 저는 어쩔 줄 몰라 유감이라고, 할머니의 큰언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제 잔에 커피를 새로 따라주며 덤덤히 말했습니다.
“너는 아직 아이니 모르겠지. 살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죽음은 유감이 아니야. 슬픔은 더더욱 아니고. 내 장례식은 이제 내게 남은 마지막 파티야. 그 마지막 파티에서 사람들이 나를 흉보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게 지금 내가 바라는 전부지.”
더 어떤 말을 보태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가만히 할머니를 건너다보자, 너도 내 장례식에 와주겠니?라고 할머니는 물으셨습니다. 저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할머니는 호탕하게 웃으며 남은 교자를 마저 드셨습니다.
라오슈, 죽음은 과정이라는 그 말, 자신이 죽은 뒤에야 시작되는 마지막 파티를 겸허히 기다리는 할머니도 그 말을 부화 직전의 알처럼 품고 있는 걸까요. 저도 나이가 들면 유감도 슬픔도 없이 죽음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그러나 빈 접시를 들고 어둡고 좁은 계단을 내려오면서 저는 또다시 제 감각에 닿지 않는 것들을 떠올렸고 무력한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알고 있나요, 라오슈? 제가 머릿속에서 소환하는 이선 곁엔 라오슈가 서 있곤 한다는 것을요. 두 사람은 늘 몇걸음 떨어진 채 나란히 서서 먼 곳에서부터 간헐적으로 반짝이는 저의 타전을 바라보고만 있죠.
3년 전의 이선도 라오슈처럼 행동했습니다. 제 문자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았고 전화를 받지 않았으며 제가 집 근처에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았죠. 마주할 땐 다감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서 돌아설 때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추운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도 같습니다. 저는 사실 이선을 미워했습니다. 한때는 서로에게 거의 유일한 친구였는데 한순간에 버려지고 외면 당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이선이 죽은 뒤, 그 미움은 그대로 죄책감이 되었습니다. 단순한 미안함이 아니라 살과 뼈를 녹이는 절망의 미안함, 환부 없는 통증이었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답장이 오지 않는데도 수년에 걸쳐 라오슈에게 꾸준히 이메일을 보낸 건, 돌이켜보니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부재를 감당할까봐, 온몸을 내던져 부딪칠 장벽도 없이 그 어쩔 수 없는 부재에 잠식될까봐 저는 무서웠습니다. 그러니 저는 라오슈가 아니라 제게 닥칠지 모를 가상의 고통을 걱정한 것입니다.
저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고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다예요, 라오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