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종엽 외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 그린비 2016
세월호, 그리고 멈추어버린 시간에 대한 사회과학적 기록
박진우 朴晋佑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jinwoo421@gmail.com
“‘세월’은 한국말로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름을 가진 배가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 가족들 시간은 흐르지 못하고 멈추었습니다.”
2014년 8월 16일, 방한 중이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울 광화문 행사를 앞두고 세월호 유가족의 한명인 김영오씨(유민 아빠)가 교황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날 이후 멈춰버린 시간은 아직도 흐르지 않는다. 세월호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신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날의 사건에 여전히 붙잡힌 수많은 사람의 삶의 궤적만이 표상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멈춘 시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날로 무디어지고 있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청문회는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한국 언론은 이를 완벽하게 외면했다). ‘이것이 국가인가’를 외쳤던 분노의 목소리가 저변이 되어 만들어낸 4·13총선 승리의 기쁨도 잠시, ‘당 차원의 조문은 불필요하다’는 야당 대표의 서슴없는 발언이 전해졌다. 총선 이후 ‘소통을 위해’ 언론사 편집국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세월호특조위 활동 연장은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계속했다(2015년 1월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는 특조위 활동을 ‘세금도둑’이라고 칭한 바 있다). KBS는 하필이면 사건 2주기를 앞두고 바다를 지키는 해경의 활약상을 다룬 취재물을 편성하였다.1) 세월호와 국정원의 관계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다루었던 SBS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2) 제작진의 용기가 그나마 시민들에게 위안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KBS 제작진의 무모한 행동이 쉽사리 용납되지는 않는다.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은 바로 이러한 시대에—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언급한 것처럼—‘세월호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들의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다짐했던 목소리를 되짚어볼 필요성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모든 저자들이 침몰해버린 ‘과거의 시간’을 대신하여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뚜렷이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멈추어버린 시간이 마치 정지되고 단절된 종말론적 시간과도 같다는 성찰에 이어, 그 시간 속의 우리 모두가 겪은 고통과 상처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진지하게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제목처럼 스스로 ‘사회과학’을 표방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김명희는 「서문」에서 “이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근원적인 아포리아에 빠지게 했던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사회란 무엇인가’ ‘과연 사회다운 사회가 이 땅에 한번이라도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사회는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시킬 필요성”(6면)이 있다고 말한다. 정녕 국민을 구조하지 못하는(않는) ‘국가의 침몰’이 너무나 충격적인 체험이었고, 그것이 작가 박민규(朴玟奎)의 말처럼 세월호‘사고’가 아닌 세월호‘사건’인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2014년 여름부터 여태껏 이어지는 한국사회와 정치의 야만적인 풍경에 대하여 “사회의 침몰”(6면)을 묻는 것은 너무도 정당해 보인다. 왜 국가는 구조의 무능함을 넘어서, 뒤이은 자신의 책임마저 인정하지 않는가? 왜 유가족들이 오히려 공공연한 감시와 배제의 대상으로 변모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직면하여 이제는 사회과학자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질문들, 구조실패와 무능력 그‘다음’에 벌어진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묻는다. 집필에 참여한 많은 필자들이 애도를 너무 일찍 끝낸, 혹은 애도 자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다양한 세력이 존재하는 한국사회의 스산한 자화상을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예컨대 김종엽(金鍾曄)은 어떠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 국가권력의 부인주의(denialism)가 작동하는 정치적인 방식, 그리고 이것이 ‘희생자-가해자-방관자’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분리시키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다른 관점에서 이는—최원과 김도민의 지적대로—신자유주의적 폭력과 ‘전쟁 정치’가 냉혹하게 관철되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통치성 원리가 낳은 필연적인 사회적 배제의 결과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광주항쟁 이후 시작된 ‘오월의 사회과학’에 비견되는 새로운 ‘사월의 사회과학’의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김왕배(金王培)는 한 사회와 공동체 전체에 끼친 충격이라는 면에서 세월호사건의 파장은 거의 ‘5월 광주’에 비교할 만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체계적인 노력과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이 충돌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명희는 단순한 기술관료적 ‘사고—보상 프레임’은 그 자체로 오류이며, ‘사건—진실—관계 회복’이라는 사회적 치유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가족과 시민 모두의 사회적 트라우마가 진정으로 해소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광주항쟁을 포함하여) 그동안 한국사회가 무수히 겪었던 역사청산 작업에서 제기되었고 여전히 완수되지 못한 일련의 절차들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평자는 물론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 ‘세월호의 사회과학’이 진면목을 드러냈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한다 해도, 책에 참여한 저자들의 사유 강도와 진폭은 아직은 들쑥날쑥하다. 새로운 사회적 신뢰와 유대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은 현실 속의 상수로 자리잡은 포함과 배제의 통치장치들에 의해 쉽게 힘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주장들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이 사건은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한국사회에 기억될 것인가? 또 그 과정에서 ‘세월호의 사회과학’ 혹은 ‘사월의 사회과학’이 성립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국가는 오랫동안 그 자체로 한국인의 트라우마의 대상이었지만, 국가 스스로 그것의 극복을 위한 명시적인 노력을 보여주지는 않았다(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 각자에게 남겨진 상흔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가? 그러한 통치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시대에 저항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어떤 인식과 실천이 요구되는가? 새로운 사회적 신뢰와 유대의 형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이 가진 미덕이라면 아마도 결코 가볍지 않은 과제들을 이제 전면적으로 우리의 과제로 제기하고 나섰다는 점이리라. 저자들이 펼쳐 보인 지혜가 바로 그러한 새로운 사회과학의 출발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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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다를 지켜라! 대한민국 해양경찰’, 「VJ특공대」, KBS 2TV 2016.4.15.
2) ‘세타의 경고! 경고!: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문서’, 2016.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