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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정인경 『뉴턴의 무정한 세계』, 돌베개 2014
과학은 어떻게 우리에게 무정하게 되었나
이두갑 李斗甲
서울대 서양사학과·자연대 과학사 협동과정 교수 doogab@snu.ac.kr
우리의 역사에서 서양의 근대과학은 무엇이었나? 객관적이고 보편적이고 강력한 과학기술의 발달이 서구문명의 정점이라면, 이를 지배와 수탈의 도구로 경험했던 우리에게 근대과학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나? 정인경(丁仁京)의 『뉴턴의 무정한 세계』 는 한국의 역사에서, 특히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 지배의 정점에 있었던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서양과학을 바라보았던 한국 지식인들의 삶을 통해 서양과학의 한국적 의의를 탐색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보편적이고 진보적이라 여겨졌던 서양의 과학이 ‘무정하게’ 조선의 지식인들을 조롱하고 인민을 수탈한 데 대한 자각의 과정이자 오늘날 과학기술을 둘러싼 모순적 태도의 근원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소개하듯이 1917년 발표된 이광수(李光洙)의 장편 『무정』에는 두명의 개화 지식인이 나온다. 한명은 “서양 사람의 문명의 내용은 모르면서 서양 옷을 입고 서양식 집을 짓고 서양식 풍속을 따”르는(18면) 김장로라는 인물이다. 이광수는 서양문명에 대해 무지한 채 단지 과학기술로 대표되는 서양의 우수함을 흉내내며 지내는 이 개화기 지식인을 자조적으로 그리며 몇번이고 그를 참으로 “무식하다”라고 표현했다. 또다른 인물은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과학을 주어야 하겠어요. 지식을 주어야 하겠어요”(21면)라고 외치는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이다. 하지만 생물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비장한 선언을 하는 그조차 정녕 과학이 무엇인지, 생물학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광수는 “생물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새 문명을 건설하겠다고 자담하는 그네의 신세도 불쌍하고 그네를 믿는 시대도 불쌍하다”(22면)라며 한탄한다. 이광수에게 이 둘은 서양문명의 껍데기와 서양 과학기술의 이데올로기와 유용성은 믿지만 진정으로 서양과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무식한’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양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용해야 하나? 이광수는 1922년 『민족개조론』을 발간하며 이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는 베이컨(F. Bacon)과 데까르뜨(R. Descartes)를 논하며 이들이 발전시킨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해 봉건제를 극복하고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사상을 제시한다. 서양의 과학이 서양문명의 발전과 진보를 가져왔기에 우리도 이렇게 보편적인 과학을 받아들여 이해하고 이에 기반해 우리를 새롭게 혁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함께 손잡고 과학조선을 건설하자”던(204면) 과학기술자 김용관(金容瓘) 같은 이는 1930년대 거국적 과학운동을 벌이며 이화학연구기관의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계몽적인 과학대중화를 넘어 조선인에 의한 서양과학의 자주적 수용을 외치며, 조선인을 위한 과학기술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과학은 보편적이며 가치중립적인 ‘무정한’ 것으로, 조선인은 그것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서구와 일제를 능가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배양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대다수 사람의 삶에서 과학의 의미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저자는 이들이 “외부에서 주어진 보편적 가치가 폭력성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식민지 역사에서 똑똑히 경험”(85면)했음을 지적한다. 1926년 시작된 함경남도 부전강 수력발전소와 이를 이용한 흥남의 거대 비료공장은 당시 힘과 발전, 진보의 상징으로, 이를 본 모 신문기자가 “과학의 힘이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한 구린내와 기계소음으로 가득 찬 공장에서 쓰러져가는 노동자들에게 공장은 생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공장의 기계는 우리의 피로 돌고/수리조합 봇돌(도랑)은 내 눈물로 찬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199면)라고. 1926년 일제시대 경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했던 이상(李箱)은 식민지근대화를 찬양하는 건축사업에 참여하거나 “판에 박힌 관공서 건물 나부랭이나 설계”(223면)하면서 근대화에 환멸을 느끼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213면)로서 과학기술에 대한 냉소와 함께 삶을 마감한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의 과학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논하며 우리가 과학에 대해 지니고 있는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데 있어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왜 과학은 우리에게 낯설고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발전이자 진보의 도구로 인식되는지에 대한 대답의 일부를, 식민지근대화라는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보며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분석의 축을 외부로 돌려 서양과학의 역사를 우리의 시각에서 서술하려는 값진 시도에서 이 책은 덜 성공적이다. 저자는, 갈릴레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같은 서양의 과학자들을 특정한 방향이나 목적이 없이 작동하는 자연세계를 무정하게 그려낸 이들로, 에디슨 같은 이들은 이를 산업에 응용해낸 진정한 과학기술자로 묘사한다. 즉 서구 과학자들은 그들 문화의 일부로서 과학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가져온 변화에 대한 모순적 태도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식민지시대 우리 지식인들은 계몽사조나 사회진화론 같은 ‘과학 이데올로기’를 과학으로 ‘오해’한 이들로 나타난다.
하지만 다윈과 아인슈타인 역시 자신이 발전시킨 과학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자신의 지식이 ‘무정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회문화적 요인과 가치들이 투영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다윈은 영국 제국주의가 자신의 진화론을 약육강식의 정당화에 사용할 수 있음을 걱정했고, 위계적인 인종질서에 반대하며 노예해방을 주장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 또한 상대성이론의 발달이 원자탄 개발 등으로 인류 전체를 파괴와 멸망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며 과학기술과 가치의 문제, 그리고 과학기술과 지식의 영역에서 사회적·정치적 선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사실 과학이 무정한 것인가는 서양에서도, 그리고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도 근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질문이었다. 여러 식민지 지식인과 인민은 과학이 무정하다는 주장을 비판하고 나아가 이러한 주장이 서양과 일제가 폭력적으로 강요한 식민지근대화를 정당화하는 것임을 인식할 수 있는 지점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듯이, 당대의 많은 이들은 과학을 무정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강압적이고 약탈적인 식민지근대화 과정을 문명의 발전과 진보라는 모순된 시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정신분열을 앓기도 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한국사회의 낯설고 모순적인 이해의 밑바탕에는 이렇듯 우리의 근대화 경험에서 과학기술을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수용했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한 한층 깊은 성찰을 위해서는 왜 과학기술이 무정하지만은 않은지, 그 발전과정에 사회문화적 요인과 가치들이 중요하게 개입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