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임홍배 『괴테가 탐사한 근대』, 창비 2014
괴테의 ‘근대적응’과 ‘근대극복’
한철 韓喆
목포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 cholhan66@gmail.com
여전히 우리는 근대에 주목한다. 그것이 완수되어야 할 ‘프로젝트’이건 아니면 이제 종말을 고하는 하나의 ‘시간의식’이건 간에,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퇴행적 현상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의 근대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되짚어보려 한다. 이때, 참으로 비근대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독일의 근대를 즐거운 놀이터로 삼았던 괴테( J. W. von Goethe)는 우리가 우리의 근대를 바라보며 곁눈질할 수 있는 유용한 참고인이다. 서양 근대철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과 물질의 분리에 그는 일원론적인 ‘자연’ 개념으로 맞섰고, 역사의 진보라는 지극히 근대적인 목적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당시 자연과학계에서 이미 철저하게 무시당했음에도, 그는 근대 자연과학의 정수인 뉴턴의 물리학을 신랄하게 그리고 부분적으로 아주 정당하게 비판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철저히 비근대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괴테가 근대를 자신의 시야에서 놓치고 있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근대에서 벗어난 시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근대에 대한 날카롭고도 재기발랄한 관찰자가 될 수 있었다. 때론 근대의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때론 그것에 신랄한 조롱과 야유를 퍼붓기도 하며, 그는 근대라는 시대를 탐사했다.
최근 발간된 『괴테가 탐사한 근대: 슈투름 운트 드랑에서 세계문학론까지』는 괴테와 근대가 맺는 이러한 복잡한 관계에 대한 매우 충실한 연구서이다. 400면이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이 책에서 저자 임홍배(林洪培)는 괴테의 많은 작품에서 드러나는 근대의 다양한 모습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그는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서 “억압적인 전근대 신분사회”의 구속을 떨치려는 “진취적 시민계급”(48면)의 모습을 관찰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베르터의 열정적인 ‘가슴’에서 “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성적 인식”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는 ‘가슴’”(22면)을 보기도 한다. 저자에게 투영되는 베르터의 이러한 모습은 모순적일 수 있다. 베르터는 평등한 시민의 시대로서의 근대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시민계급의 정신적 무기였던 계몽주의적 합리성이 아니라 감성, 더욱이 철저하게 이성의 타자였던 자연과 교감하는 감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도 저자는 이러한 내적 모순을 발견한다. 미국독립전쟁을 경험한 로타리오는 유럽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품는다. 그가 추구하는 개혁의 골자는 “토지의 자유화”(128면)이다. 이로써 귀족계급에게 부당하게 독점되어 있는 토지소유권을 철폐하여 자유로운 경제에 기반을 둔 근대국가를 건설하자는 “온건한 개혁주의자”(132면) 로타리오의 모습이 드러난다. 하지만 로타리오와 손잡고 일하는 베르너의 모습에서 이러한 개혁주의가 지닌 위험성 역시 고개를 든다. 저자가 보기에 베르너, 즉 “모든 인간관계를 오로지 상품적 투자가치로만 타산하는 철저한 자본자의 전형”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은 “새로 도래할 자본의 시대가 과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줄 것인가 하는 물음”(136면)이다.
이러한 모습들 이외에도 저자가 괴테의 문학에서 관찰하는 근대의 모순은 참으로 다양하고 풍부하다. 그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등장하는 미뇽에게서 “편협한 합리주의 정신의 계몽적 훈육이 야기한 사회적 비극”(163면)을 보고, 『이피게니에』에서는 문명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문화적 관용의 문제를 관찰하며,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호문쿨루스를 통해 기술만능주의의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괴테의 문학에서 그 어떤 장면보다 근대의 모순과 비극을 잘 드러내는 장면은 역시 『파우스트』 2부의 마지막 장면이다. 메피스토의 힘을 빌려 파우스트는 해상진출에 성공함으로써 당시 다분히 식민주의적이었던 “자본의 세계화”(276면)에 성공한다. 또한 그는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279면)는 명분을 내세워 거대한 간척사업을 추진한다. 하지만 그의 개발현장은 “가혹한 노동착취에 기반한 자본축적과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낼 뿐이다. 이 개발사업에 맞서 자신들의 작은 동산을 지키려던 선한 노부부 필레몬과 바우키스는 다음과 같이 이 비극을 설명한다. “사람을 제물로 바친 것이 틀림없어요./밤중에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들렸거든요./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바다 쪽으로 흘러가면/이튿날 아침에 운하 하나가 완성되어 있었지요”(276면). 노쇠해 이제 시력까지 잃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탐욕에 눈이 먼 파우스트는 결국 이 노부부를 희생시키고 그들의 오두막을 차지하고 만다. 저자는 파우스트의 이러한 상태를 내면의 탐욕에 현혹된 “정신적 백야(白夜) 상태”(278면)로 규정한다.
백낙청(白樂晴)을 인용하는 가운데, 저자는 괴테의 문학에서 드러나는 근대의 모순에서 이중적 과제를 발견한다. 그것은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라는 “양면적 성격을 지니는 단일과제”이다. “괴테의 문학은 독일의 봉건적 낙후성을 직시하고 근대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수용하면서도 결코 근대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근대세계의 복합적 모순을 동시에 천착했다”(264면)는 것이다. 괴테가 귀족계급의 구시대적 특권의식에도, 또한 새롭게 등장하는 시민계급의 탐욕에도 비판적인 시선을 던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그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적응과 극복이라는 모순적 과제를 설정했던 것일까? 그가 지녔던 비/반/탈근대성이 그러한 과제설정을 가능케 하였을까? 또한 격동성으로 특징지어지는 근대가 과연 그러한 장기적 과제설정 혹은 자기완성을 용납할까? 작가로서의 괴테는 시대적 모순의 해결을 과제로 설정했다기보다, 다만 그 모순을 모순으로 대하고자 했다. 이때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괴테의 서술방식인 ‘반복투영’(Wiederholte Spiegelungen, 24면)에서 우리는 근대라는 시대에 대한 괴테의 대응방식을 더 상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다분히 유희적으로 그는 근대의 다양한 모순을 자신의 문학적 거울들 사이에 배치했다. 그리고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다채롭게 투영되는 모습과 그 거울들이 서로를 서로에게 투영하는 모습을 기록하였다. 결코 하나의 시점에 사로잡히지 않는 이러한 아이러니가 근대에 대한 그의 즐거운 유희였고, 그 시대에 대한 그의 치열한 공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