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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풍양 조씨 『자기록: 여자, 글로 말하다』, 나의시간 2014
버티는 삶, 슬픔을 껴안은 여자의 글쓰기
최기숙 崔基淑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befriend2@daum.net
사회는 언제나 문화적 표준이나 목표, 도달점, 가치기준 등을 생성해왔다. 그것이 사회를 통합하고 안정되게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면에서 사람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령 수부다남자(壽富多男子, 오래 살고 부유하며 아들이 많음), 부귀공명 같은 가치는 복록(福祿)을 지향하는 전통적 삶의 표준 지표였다. 이에 대한 사유의 전제는 공평무사한 ‘하늘’과 그 바탕이 되는 개인의 인격수양이었다.
그러나 표준을 다 갖춘 삶이란 사실상 부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완성에 대한 하나의 사회적 상상력을 보여줄 뿐, 실제로 이를 다 갖춘 삶은 존재한 바가 없었다. 존경할 만한 인격과 품성을 갖춘 이가 부귀공명을 누리고 장수하며 대대손손 복록과 품격을 물려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문자화된 이상’이다. 조선시대에 씌어진 모든 소설에서 ‘행복한 삶’이 오직 결말의 상상구조로만 형식화된 것과 같은 이치다.
한 개인의 맨얼굴의 삶을 고요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희로애락애오욕에 시달리는 섬약한 내면이 웅크리고 있으며, 사회적 이상으로 설정된 표준점에 미달되거나 뚜렷이 그것을 결락함으로써, 혹은 때로 월등히 초과함으로써 겪는 불행과 고통 때문에 힘겨워하는 모습과 마주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행과 고통을 말해서 삶을 누추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격조 때문에, 타인의 동정을 구하려는 비굴함과 거리를 두어서 다음 행보를 디뎌보려는 마음의 작용 때문에 타인의 부정적인 삶의 이면은 잘 볼 수 없는 편이다. 불필요한 질투나 시샘을 감수하는 고통을 택할지언정, 내면을 뒤집어 피부로 드러내는 것은 또다른 상처를 부르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의 행복만을 수집해서 자신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로 삼는 행태는 해로울 뿐 아니라 어리석으며 이치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선시대 인물의 생애사인 『자기록』(1792)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삶을 구성하는 힘은 사유와 상상의 몫이다. 그 또한 사회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사유가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라고 할지라도 문자라는 문화기호를 활용한 글쓰기로 표현될 때, 그것은 온전히 역사와 사회의 문화·관습에 대한 개인의 습득과 적응의 과정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주체적 생의 바탕은 개인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이며, 내면의 바탕은 주체 이전의 사회이다. 사유의 전제는 상상 이면의 뚜렷한 현실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풍양 조씨(豊壤趙氏)가 쓴 『자기록』은 몇가지 흥미로운 생각을 촉발시켰다. 죽은 남편을 따라 죽지 않은 여자가 쓴 생애 서술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젊은 여인이 스스로를 기록한다〔自記〕고 했을 때, 도대체 여성의 ‘자기(自己)’를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이었나. 무언가를 씀으로써 여인이 도달하려 했던 것과, 정작 쓰려 했으나 쓰지 못한 것, 쓸 수 없었던 것, 어쩌면 써야 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나 결국 써야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시대에 여성은 스스로 말하고 쓰는 것을 훈련받거나 권장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풍양 조씨는 복선화음(福善禍淫)의 이치를 믿었던 평범한 조선 사람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어질고 품성이 훌륭했던 아버지는 평생토록 제대로 된 벼슬자리를 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부모의 살아생전에 아들을 두는 효를 다하지 못했다. 효성이 지극하고 후덕했던 부친은 복록을 받는 대신 완벽에 도달하지 못해 아쉽고 후회스런 일생을 보냈다. 풍양 조씨는 그 아버지의 마음의 밭에서 길러진 딸로서, 회한과 통탄 또한 물려받았다. 그 삶이 애달프고도 선량했다.
조선시대 양반가 여성에게는 남편이 사망한 뒤에 따라 죽어 열녀(烈女)로 정려(旌閭)되고 열녀전(傳)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가문을 영예롭게 하는 수순이었다. 그런데 풍양 조씨는 죽음을 말리는 가족들의 권고를 지켜 살아남았다. 바로 그 때문에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 글로 적어 생존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얻어야 했다. 조씨는 살아야 한다고 권고한 가족들의 당부와 상중에도 고기와 과일을 권했던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보살핌을 서술하는 한편, 병으로 사망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병치레가 중심이 되는 그의 일생과 일상까지를 기록하는 것으로 살아남은 값을 치르려고 마음먹었다. 역자(김경미)가 해제에서 설명한 바처럼 『자기록』에는 ‘자기’가 없는 대신 가족과 남편이 있었다. 그것이 곧 풍양 조씨의 ‘자기’를 구성하는 전경이자 실체다.
글쓰기가 태동하는 순간, 풍양 조씨의 생존은 정당성을 획득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조씨는 곧 상실감과 슬픔을 확인하는 감정 경험에 빠지게 된다. 『자기록』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일찍 죽은 어머니, 사대부의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아버지, 병고를 치르다 요절한 남편의 애달픈 삶에 대한 사실적이고 치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그를 생생하게 기억해서 회상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풍양 조씨 자신의 내면이다. 기술하는 것은 과거이지만, 과거를 서술하는 바로 그 행위를 통해 풍양 조씨의 현재가 생성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과거를 슬프게 회상하는 바로 그 감정 경험의 기술을 통해 조씨의 현생에 대한 사회적 동의와 역사적 지지가 도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아 버티는 삶에 대한 공감과 위로 또한 전할 수 있었다.
가족을 잃은 아픔을 기억하는 힘, 뚜렷한 상실감의 한가운데서 그것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묘사하는 인내야말로 이 글이 시간을 거슬러 독자에게 마음의 울림을 전하는 진정의 장력이다. 기록자는 이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하여 계산했다면, 이성적 탄성을 자극했을지언정, 마음의 울림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감정의 곡진한 법칙이다.
풍양 조씨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가족으로 자기를 대체하고, 과거로 현재를 재구성하며, 슬픔의 한가운데서 살아남은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절박한 생존자였다. 조씨에게는 삶의 기록이야말로 존재의 위기이자, 마지막 남은 생존의 밧줄이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직 자신의 기억과 감정 경험에 매달렸다. 살아남기 위해 그것을 붙잡았을 때, 조씨의 시간에는 슬픔이 흘러넘쳤다. 그 안에는 도달하려 했으나 오르지 못한 아버지의 생애 지표, 꾸려내려 했으나 얻지 못한 어머니의 행복, 내색하지 않으려 했으나 낱낱이 들키고 만 병든 남편의 고통,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남아 눈물과 피로 글을 쓰는 기억하는 주체, 풍양 조씨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기록 속에서 드높은 삶의 기준점은 흩어지고, 조씨가 끌어안은 슬픔과 한(恨)은 묘한 희망과 위안의 횃불이 되어 텅 빈 시간 속에 생존의 의미를 아로새겼다. 글쓰기는 어쩌면 타인을 향한 생존의 변명이 아니라 살아남으라는 격려에 대한 보답이었을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언문으로 씌어졌다. 한문을 하나도 쓰지 않았지만, 양반층의 교양과 지식이 풍성히 담겨 있다. 이 책이 숙고의 노작으로 주석되고 번역됨으로써 빛을 발한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과정에서 조씨의 여성적 섬세함, 고난을 통과하는 고매한 인품을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문체와 심기를 되살린 번역의 성과다.
여자의 일생을 읽고 나니 마음이 슬퍼졌다. 역시 인생은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갈 때 한 걸음이라도 내디딜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즈음,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길이 아니라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의 법칙이며, 아무리 걸어가도 결코 기준점에는 도달할 수 없는 암연일 뿐이라고, 이 글을 읽는 내내 풍양 조씨가 나에게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