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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평

 

국어교육이 되지 못한 ‘국어수업’을 반성하며

 

 

유미 劉美

인천 작전고 교사 ym1203@hanmail.net

 

 

창비교육총서_표1_fmt2014.10.29(수). 3교시, 3반 수업. 31명 중 26명이 자고 있다. “얘들아, 일어나라! 눈떠라!” 수업시간에 수업내용보다 더 많이 한 말인 것 같다. 수업을 잠시 멈추고 ‘배목걸쇠 크나큰 장도리로’ 똥닥 박아 ‘가슴에 창을 내듯이’ 창문과 교실 앞뒤 문을 모두 열었다. 엎드려 자던 재용이가 일어나더니 말한다. “선생님, 요즘 피부가 부쩍 좋아진 것 같아요. 역시 피부엔 잠이에요.” 선생 때려치우고 싶다.

거절 못하는 치명적인 병에 걸려 원고청탁을 수락하고 무엇을 쓸지 고민하면서 일기장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대목이다. 입시를 코앞에 둔 고3 수업을 하면서도 정작 교과내용보다는 애들 깨우느라 기진맥진했던 처절한 날들의 기록이 연속되고 있었다.

얼마 전 EBS 교재의 수능연계에 대해 설문 대상 학생의 95%가 수능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는 뉴스를 봤다. 학습동기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과, 자기주도 학습능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답 역시 83%에 달한다고 했다(EBS뉴스 2015.2.4). 이런 답변을 하는 학생들은 도대체 어떤 애들일까? 진짜 수능연계 교재를 풀면서 학습동기가 향상되었을까? 그럼 우리 학교 3학년들은 왜 그렇지 않은 거지? 이런 생각이 뉴스를 보는 내내 떠올랐다.

2학년을 가르쳤던 2013년에는 토론수업, ‘월드카페’(어떤 문제에 대해 여러 사람이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해결방법을 찾는 집단토의 방식), 시 암송대회, 서평 쓰기 등 학생활동 중심의 수업을 즐겁게 했다. 강의 내내 졸던 학생들도 활동수업을 할 때만큼은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활기차게 참여했다. 수업 만족도도 꽤 높았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고3이 되자 모든 수업을 수능과 연계된 EBS 교재로만 하게 되었다. 연계비율이 거의 70%나 되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 없다. 가르쳐야 할 과목은 ‘독서와 문법’ ‘문학’이었으나 수업교재는 EBS 교재였다. 수능을 치러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학생들도 교과서보다는 EBS 교재로 수업해주기를 바랐다. 고3 학생들에게 이 교재는 문제 푸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가는 비문학적인 글과 고전작품으로 채워졌어도, 문제를 풀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어도 수능에 나온다니까 반드시 봐야 하는 것이다.

나도 지문(地文)을 분석하고 문제를 풀어주면서 ‘어설픈 EBS 문제풀이 강사’ 노릇을 했다. 학생들이 지루해할까봐 간간이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면서 수업을 했다. 그러나 3, 4월이 지나자 고3 생활에 어느정도 적응을 하게 되고 긴장이 풀리면서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이 점점 늘어났다. 2학기에 접어들면 수업을 듣는 학생보다는 자는 학생이 더 많아지고 급기야는 앞서 소개한 일기처럼 소수의 학생들만 살아남게 되는 것이었다. 가르치는 나조차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문제풀이 수업을 하다보면 교사로서의 자긍심이나 자존감은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지 이미 오래고, 나중에는 학생들에게 죄책감마저 들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수업시간에 잔다고 화를 자주 냈다.

()만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하다는 한 학생은 나에게 시를 분석하는 방법을 수학공식처럼 정리해주면 좋겠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싫고 끔찍한 것이 시라고 했다. 기껏 ‘밤’을 ‘암울한 시대현실’로 외웠더니 다른 시에서는 ‘자아성찰의 시간’으로 풀이해놓았더라면서 시 때문에 짜증만 늘었다고 투덜댔다. 당시엔 픽 웃어넘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참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입시에 시간적으로 약간 여유가 있는 1, 2학년을 가르칠 때에는 교원연수에서 새롭게 알게 된 학습활동을 수업에 응용하기도 하고, 단편소설을 같이 읽으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고3을 가르치는 해에는 습관처럼 문제집을 찾아들고 어설픈 문제풀이 강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EBS 교재가 수능과 연계되기 전에는 고3 수업을 어떻게 했지? 사실 그때도 높은 적중률을 자랑하는 문제집을 골라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문제 푸는 것을 목표 삼긴 했다. 그러나 EBS 교재가 수능과 연계된 후에는 가급적 연계된 모든 문제집을 풀기 위해 대부분의 수업시간을 할애했다. 가르치는 나도 배우는 아이들도 한 문제를 더 풀면 수능 등급이 더 오를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다른 방식의 수업은 생각도 못했다. 간혹 문제로 표현된 문학작품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냥 그런 줄 알고 해답에 맞춰가면서 문제를 풀어댔다. 그 작품이 주는 아름다움이나 감동, 삶의 의미는 정답으로 인정될 때만 가치있는 것이었다.

고등학교가 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기관이고, 수업은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한 준비로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와 수능 위주의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마도 꼭 EBS 교재를 수능과 연계하지 않더라도 국어 과목을 비롯한 고등학교 대부분의 수업은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학생 대부분은 12년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교육을 받았어도 자신을 소개하는 글 한편 제대로 쓰지 못하고,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하고, 책을 읽으라고 하면 진저리를 친다. 시를 들려준 후에 감상을 물으면 무뚝뚝한 말투로 별 느낌 없다고 한다. 이것은 내 교직생활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하지만, 나와 비슷한 국어교사들의 아픔이기도 할 것이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 『국어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고용우 외, 창비 2014)에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국어선생님들의 문제의식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정과 노력, 실천이 녹아 있어서 많은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국어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있다.

올해 어쩌면 나는 또 고3 수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작년처럼 어설픈 문제풀이 강사 역할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올해 내 수업목표는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과 ‘욕하지 않고 상대편 설득하는 말하기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자신의 상한 기분을 욕 대신 차분한 말로 표현하고, 울적하거나 가슴이 답답해서 터질 것만 같을 때 글 한편 써서 그 기분을 풀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덜 부끄럽고 덜 미안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