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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고정민 高定敏
서울예대 극작과 2학년. 1989년생.
sofreyja@naver.com
씨놉시스
큰형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떨어져 있던 가족들은 오랜만에 장례식장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그들은 몸도 불편하고 말도 어눌한 사람들이다. 공장에서 일하던 큰형은 분명 사고로 죽은 듯 보이지만, 어쩐지 사망 원인보다는 큰형의 죽음을 둘러싸고 생긴 돈 문제, 즉 지급될 보상금과 그가 남긴 부채가 가족과 사측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남겨진 가족들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사측은 ‘상속포기’라는 제도를 권유한다. 사측은 보상금을 줄일 수 있고 가족은 큰형의 부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이득이 되리라는 것이다. 세상의 시간이 멈춘 사흘 동안, 가족들은 큰형의 생애를 돌아보고 추억하며 어딘지 자꾸만 무료해지는 시간을 견디고 있다. 상속포기로 모든 걸 깨끗이 다시 시작하자고 의견이 모아지지만, 둘째는 형의 이름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소란을 피운다. 그리고 분명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등장인물
둘째, 셋째, 엄마, 아들, 공장, 노인, 세연, 소녀
빛과 소리를 잘 사용했으면 좋겠다.
빛은 드라마다. 소리는 배우의 화술이다.
무대는 장례식장이다. 어울리는 소품들. 조문객을 맞이하는 분향소. 조문객이 음식을 먹는 교자상이 몇개 펼쳐져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 모자(母子)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중략)
서성이는 두 형제
둘째 여기 앉아봐 (바닥을 치며) 봐봐! 태오야.
셋째 한마디도 안 져! 또 무슨 역정 내실려구요.
둘째 안 그래. 앉아봐.
셋째 형님 또 그런 소리 하면, 낮처럼 시원찮은 고함이면. 나 정말 일어납니다.
형제 마주 보며 담배 피운다.
둘째, 엄마 조심스레 살피며
둘째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다.
셋째 나도 생각, 정말 많이 하고 있어요.
둘째 (불현듯) 우리 들고 가자.
셋째 뭘요?
둘째 관 들고 가자고!
셋째 (기막히다는 듯) 미쳤어요?
둘째 들고 가서. 흰 천으로 둘둘 말아가지고. 얼마나 크냐 저게 또.
셋째 그런다고 받아낼 수 있을 거 같아요? 무시만 당해, 무시만!
둘째 그런 놈들한테는 저런 게 먹힌다니깐! 넌 억울하지도 않냐?
셋째 나 화나는 건 둘째 치고 (조문 받는 아들 가리키며) 저놈 어떻게 할 건데. 가만있어 좀!
둘째 그러니깐 내가 그러는 거야. 한푼이라도 더 받아주려고.
셋째 그거 챙기려다가 다 날아가는 수가 있어요.
둘째 받을 건 받고. 주머니 쑤셔넣을 건, 우리도 계산 두드리면 된다니깐.
셋째 형님, 모든 거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면 안돼요.
둘째 뭐어? 막무가내?
셋째 일에는 순서가 있어.
둘째 형 객사다, 객사. 개죽음이라고!
셋째 그놈의 객사 소리 좀 그만해! 일하다 죽은 사람한테 무슨 객사야!
둘째 집 밖에서 죽으면 다 객사지! 싸질러놓은 게 많아서 머리가 아픈 거야.
셋째 아니 그러니깐.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거고. 그놈들이 나 줄 돈 없다 하면 어쩔 건데, 우리 할 말 없어. 우리가 할 말 있어?
둘째 왜 없어!
셋째 돈 줄 놈이 미쳤다고, 네? 돈 받을 놈 그냥 죽어버렸는데! 보따리 싸들고 돈 짊어서. 여기로 찾아온답니까?
둘째 내가 알고.
셋째 (자르며) 형님만 아니깐 문제라고!
둘째 아 시발 진짜. 나 천불나서 못 있겠다.
셋째 큰형 껍죽대고 다닐 때. 내가 형도 조심하라 그랬지? 같이 어깨 힘이나 주고 말이야.
둘째 뭐 이 새꺄? 이 새끼가 아까부터.
셋째 마당서 가래침 얼마나 뱉었냐고. 거들먹거리면서 퉤, 퉤, 나 아직도 그 표정 다 기억해. 푼돈 깨나 만진다고 사회 먼저 나갔다고 옷주름마다 벽돌들 넣어두었나 뻑뻑하게 담배나 빨면서 뭐라 그랬어, 뭐라 씨부렁댔어. 좌우당간 형들이 앞길 다 개척했다고, 더듬이 세우고 기다리고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고. 소값이 똥값이여, 아갈아갈 쉰 소리. 도대체 젖소 서른마리는 왜 산 거야. 역병 돌고 돌림병 돌 때마다 소가 줄었지. 남은 소가 우유 못 짜서 젖꼭지 푸르르 돌았던 거. 아직도 나 다 기억 난다구. 형 나한테 아무 소리 하면 안돼. 그러지 마요, 되도 않는 충고 혓바닥 아래로 삼켜 그냥!
둘째 너 이 새끼. 형들한테 그리 말하면 안돼!
셋째 고생은 돈 없는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그 많은 땅하고 집, 산 다 날려먹고. 형들이 한 게 뭐야? 우리 그것만 잘 품고 있었으면. 고구마 오천평, 포도밭 천이백평! 이 고생 다들 안하지, 안해! (치밀어서) 말이야 바로 하자고. 관을 들고 그 회사로 찾아가? 대문 앞전에 뭘 들이밀어? 하 쪽팔려서 원. 신문에 나겠다, 신문에!
둘째 너야 말로 입찬소리 하지 마 인마! 돈 달란 놈이 뭐가 무서워. 돈 줄 놈이 아쉬운 거야.
셋째 돈 받을 놈이 아쉬운 거겠지. 내가 틀린 말 한 거 뭐 있어. 경우 어긋난 짓 한 거 뭐 있어! (울컥해서) 형도 한 게 뭐야. 멀리 떨어져 살면서 어머니 잘 모시지도 않고. 여기 식구들 다 형 없다 생각해. 세연이 그것도 오빠 없다 생각한다고! 안산이 여기서 천릿길이라도 되냐? 고작 옆 공장이면서. 그저 주말마다 술이나 푸고 여자나 끼고.
둘째 니네들 학비 없을 때. 내가 먼저 사회 나가서. 큰형도 말이야. 아침마다 소젖 짜서 우유 판 돈 더하구, 더해서. 너희들 월사금 기성회비 때마다 철마다 새 신에 챙모자 꼬까옷 알록달록한 그것들, 많이 사주고 그랬어. 마호병 옆구리 끼고 덜렁덜렁 나들이 봄소풍 가면 뚝방길 따라 니 웃던 거, 나야말로 다 기억해. 그런 걸 기억하라고! 쓸데없는 거 기억 말고. 에잇! 형이 본다 (돌아앉으며) 그만 싸우자! (긴 사이) 세연이 그년은 미국이 그렇게 멀 다냐? 얼굴도 못보고. 형 죽었어도 이런데. 나 초상나면 오지도 않겠구나.
셋째 오고 있다잖수. 거 옛날 얘기 그만합시다. 관 짜는 소리, 그만 좀 하라고. 뚜껑 열리니깐.
형제 함께 담배 피운다.
둘째 아가는 많이 컸다니
셋째 누구, 세연이?
둘째 응.
셋째 나도 뭐 가끔 사진만 보니깐.
둘째 지 엄마 닮았으면 똘망똘망할 건데. 눈 크고 말이야.
셋째 세연이 귀여웠지. 큰형이 많이 데리고 다녔잖아. 수풀냇가 빨래터 무등 태워서. 귀여워, 예뻐, 작아, 뽀뽀해봐. 어르고 달래고. 물고 빨고.
둘째 작은 년이 얼마나 앵앵 대는지 (사이) 그래도 귀여웠어. 떠오른다 그 시절! 빛이 있었는데. 세연이 그 동글한 눈처럼 빛나는 거. 호이호이 돌아가는.
셋째 (어이없는) 호이호이는 뭐예요, 시발.
둘째 원으로 둘러앉아서! 기억 안 나?
셋째 뭔 소리야 또
둘째, 일어나 무대를 가르며 움직인다.
어느새 별은 떠오른다.
둘째 여기서 둥글게 있고. 세연이는 호이호이 소리 내며 우리를 돌았다고! 막 웃으면서. 너랑 나, 우리 엄마 아빠. 웃음소리 함박함박 떨어지고.
셋째 옛날에?
둘째 어제 일 같은데. (사이) 그거 옛날 일이라 말할 수 있나?
셋째 우리도 이젠 오십줄 다 돼요.
둘째 사이다 터지는 소리 나는 거지. 상큼하게! 입에는 김밥도 물고 풀밭 누워서. 아빠는 물었어. (무대 어느 곳 가리키며) 바로 여기서! ‘아들, 넌 크면 뭐가 될래?’ 형은 백일장 나가서 상도 받아 시를 읊고. 난 학교 유리창 깼다고 엄마한테 박살 터지고 있고, 넌 아무 생각 없이, 그래 딱 거기 앉아서 김밥을 처먹어. 세연이는 빙그르 까르르 웃음 지으며 우리를 돌았고. 마치 별처럼 달처럼 호이호이호이호이! (사이) 기억 나? (드러누우며) 기억 나.
셋째 형은 그래도 많이 기억하고 사네.
사이
별은 수그러들다, 사라진다.
셋째 큰형이 기계에서 튕겨져 나오고 바로 일어났다고?
둘째 그러니깐 우습다는 거 아냐.
셋째 기가 막히네. 그 형님도 참.
둘째 벌떡 일어나서 ‘나 괜찮아’ 말하고. 품안의 편지 주섬주섬 챙기다 꺼내서 뭐라나 웅얼거리다 중얼거리다. 그냥 픽, 갔단다.
셋째 보험금은 많이 나올 거 같아요?
둘째 받을 돈보다, 헤집고 다닌 돈이 더 많으니깐. 장례 끝나 그 사람들 다 몰려올 생각하면. 태오야 난, 무섭다 진짜.
셋째 상속포기를 하고. 위로금이나 좀 받읍시다.
둘째 위로금 그 까짓 거 얼마나 된다고. 보상을 받아야지.
셋째 앞뒤가 안 맞잖아. 형 말도 지금.
둘째 답이 그렇게 딱딱 떨어지냐? 인생이 각진 거야?
셋째 회사도 생각해준거야. 그 양아치들도 생각을 한다고. 머리를 굴려! 보상금 주면 그쪽도 천을 줘야 하니깐 유야무야 오백으로 위로금 하고. ‘우리 그냥 합의 봅시다’ 대충 그거야! 보상금은 어차피 형 이름으로 나오니깐 서로 죽어날 수가 있잖아. 아무도 좋은 사람이 없어. 우리한테도 그 돈! 왔다 간다니깐. 형이 말한, 호이호이 나팔불던 그때처럼, 옛날처럼!
둘째 너 자꾸 호박 대가리 터지는 소리 할래? 형 손든다!
셋째 (질려서) 아유 아유! 나도 몰라 그럼! 또 형수 생각이 어떨지 모르니깐. 이지가지 복잡하면. 그저 뜻은, 형수 말 따라요.
둘째 형수는 니미.
셋째 뭐요?
둘째 어머니 안 모시고 이혼한 년이 형수냐? 큰 사람이.
셋째 큰형 사고 치고 다닌 거 생각하면. 갈라서도 열두번 더 갈라섰어. 잘 알면서 그래.
둘째 큰집이 바로 안 서니까, 우리 집 이렇게 개판 나는 거야. 패가망신이다. 식장에 사람 하나 없어서 육개장 내가 다 퍼먹고. 떡쪼가리들은 굳어만 가고. 그래도 서까래 쏟아진다고 대들보 내려앉을까. 기둥뿌리 아직 안 넘어갔어!
셋째 이제 형이 큰형이야. 알아?
둘째 그러네. 대들보는 나다. 공장새끼 오면 내가 대들보 댕댕 후려친다.
셋째 가만히 박혀나 있어! (사이) 그저 잘해. 중심 좀 잡아보세요.
둘째 나가서 바람이나 쐬자. 속이 느글대 뒤집히려 그래.
둘째, 셋째 퇴장
상복 차림의 엄마와 아들, 조문객을 맞이하다 잠시 여유가 난다.
엄마 저 미친놈들 봐라.
아들 엄마 들려요.
엄마 술 취하면 다 개야 개. (사이) 안 들려.
아들 우리도 다 들렸잖아요.
엄마 열두번 갈라서? 미친놈들, 사람 옆에 두고 지랄도 정도가 있지.
온 지 얼마야, 시작한 지 언제냐고. 그저 누워 있어, 그저 담배나 피워.
천번만번도 갈라선다. 너희 꼴, 거지 꼴 상그지 꼴. 누가 보고 누가 견뎌!
아들 엄마는 아버지 영정 앞에서.
엄마 뭐? 니 애비 얼굴 평생 지겹도록 봤어. 오늘도 보고 또 보고 앉았다. 이놈아, 너가 바로 서야 우리 집이 바로 서는 거야. 우리밖에 없어 이젠!
아들 그래도 큰일 치르니깐 작은아버지들도 오고 좋잖아요.
엄마 좋기는, 야. 앉아서 돈 얘기만 하는 거 봐라. 저것 좀 보라고.
이놈아, 다 뜯어 먹고 먹히고 그런 거야. 믿을 건 가족이야 가족!
아들 작은아버지들도 가족이야.
엄마 피의 양이 달라. 더 진한 거 말이야. 세연이 그년은 봐라.
언질 줬으면 당장 와도 모자랄 판에 느물느물 기어오는 거 봐.
아들 고모 (사이) 미국이 멀잖아요.
엄마 미국은 뭐 빨랐다고 미국이야. 거기 가면 뭐 튀어나오냐.
뻥! 하고 뭐가 튀겨져? (사이) 그놈은 또 언제 온다니.
아들 생각해봤어? 어떻게 할 거야.
엄마 돈 달라는 놈, 돈 받을 놈 다 있어.
아들 그러니깐 어쨌든 아버지는 돌아가셨잖아요.
엄마 넌 별로 안 슬프냐?
아들 슬프지 왜. 눈물도 안 나. 하도 울어서.
엄마 말하는 건 다 컸네.
아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 말이 일리가 있어요. 상속포기 말이야.
엄마 그래, 다 털어버리자. 하루만 지나면 모든 건 새롭게 시작할 거다. 엄마는 결심이 섰다. 실은 그랬지. 우리가 언제 무얼 정하고 살았냐. 선택하고 살았느냐고. 도장 찍는다고 인주 바로 안 마른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살자, 살어! 아버지, 냉장고 냉동실 즈음 사진 한장 붙여놓고 지나가다 바라보고. 물 꺼내다 한번씩 돌아보고. 그러다 가끔은, 코로 눈물이 나고 입으로 콧물 나는지도 모르게 한바탕 생각난 듯 울음소리 눈물로 풀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장례 치르고 이거 갈무리 좀 하면 너 서울서 방 하나 얻어줄게. 그 돈은 안되겠니. 아버지 저리 된 건 좀 그렇기로서니, 너한텐 더 좋을 수 있다. 살아 있으면 생전 사고만 치고 다니면서 우리한테 피해만 입힐 건데. 다 끌어안고 갔으니 (사이) 저 인간을 뭐라 해야 돼?
아들 엄마, 회사사람!
공장 등장한다.
엄마 아 오셨네요.
아들 오셨습니까?
공장 네 사모님. 생각을 해보셨는지
둘째와 셋째, 들어온다.
둘째 왔다! 왔어.
셋째 형 목소리 낮춰 다 들려. 냄새 봐. 아니 그사이 구석에서 언제 이렇게 처먹었어!
둘째 넌 나를 믿어라. 형 말 좀 믿어줘!
셋째 가만히 있으라니깐.
둘째 대가리가 있는 새끼면 엄호하라고!
셋째 엄호는 개뿔. 진창으로 가자는데.
둘째 야 이 개새꺄, 형 믿어봐. 나를 좀 믿어봐!
셋째 형 가만있어 가지 마!
둘째, 옷매무새 단정히 한다. 급하게 다가선다.
둘째 (끼어들며) 다시 오셨습니다, 선생님.
공장 네 사장님. 생각해보셨습니까?
둘째 우리 가족은 생각을 해봤는데. 정말 많이 해서, (크게 숨 들이쉬며) 조금 더, 우리 가족은 말이죠. 생각을 해야 될 거 같습니다!
엄마 (무슨 소린가 하며) 서방님!
셋째 형!
아들 작은아버지!
둘째 그게 맞아. 그래야 해!
공장 그러신 거죠.
셋째 아니 잠깐만요. 저랑 조용한 데 가셔서 이야기하시죠. 태석아. 작은아버지 모시고 가 있어.
아들 가세요. 작은아버지.
둘째 이거 놔봐. 그리고 형씨, 어제부터 왜 혼자 와? 부장 사장 회장놈들, 다 어디 박혀서 모습도 안 보여!
공장 그게 아니라, 선생님 말씀을 드리면
셋째 태석아 모셔라!
둘째 형님은 객사라고!
아들 작은 아빠!
엄마 서방님!
둘째 (정색하며) 또, 시발. 놔, 놔봐!
둘째, 아들에 의해 끌려 나간다.
셋째 죄송합니다. 순수해서 그럽니다. 우리 형.
공장 다 이해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긴 사이
엄마 식사는 하셨어요?
공장 괜찮습니다, 바로 가봐야 해서. 또 아까 먹고 왔습니다.
셋째 형수님이랑 얘기해봤는데. 둘째 형님 말은 신경 쓰지 마시구요. 상속포기를 하면, 준비를 하려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그런 거 알지를 못하니까. 절차 같은 거.
공장 서류나 법적인 부분은 회사도 있고 고문 변호사도 있습니다.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셋째 아니, 그렇다고 바로 한다는 건 아니고. 그쪽으로 이야기가 됐다. 될 거 같다.
엄마 내 정신 좀 봐. 음료수라도.
공장 아닙니다, 사모님.
셋째 그나저나 (사이) 공장장님만 오시고, 왜 아무도 안 옵니까? 장례 다 끝나 가는데.
공장 회장님은 화환도 보내시고 이야기 마무리 되면 마지막 가시는 길, 리무진도 준비해드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장님도 지금 거의 매시간 연락 주고받으며 상황보고 전하며 전통 넣고 있구요.
엄마 죽은 사람 리무진 타면 뭐하나. 꽃송이 파묻히면 뭐해.
공장 공장마다 주문량이 쏟아지니깐, 주물공장이 그렇습니다. 잔탕 처리만 해도 한 세월이니 (사이) 요즘 젊은 사람 다 빠져나가고 외국인들 근로교육에 산출량 따라가기도 버거워서 다들 오시지 못하고 계십니다. 더구나 형님 사건으로 사옥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셋째 다들 코빼기도 안 보이고. 이건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지금.
엄마 왜 그러고 서 계세요, 앉아서 얘기라도. 이리 오셔요.
공장 아닙니다, 가봐야 해서.
셋째 (혼잣말로) 싸인만 하라는 거야, 뭐야.
엄마 (음료수 건네며) 이거라도 가지고 가셔요.
셋째 형수, 그만해요!
엄마 ………
공장 내일 다시, 마지막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이거 서류 놓고 가겠습니다. 읽어보시면.
셋째 (자르며) 알겠습니다. 거기 두고 가세요.
엄마 멀리 못나가겠습니다. 이거 가지고 가셔요.
공장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공장 퇴장하는데, 우당탕 소리, 모든 사람의 귀를 때린다.
둘째, 관을 끌고 등장한다.
둘째 야 이 개새꺄! 너 이 새끼, 가긴 어디를 가. 너 나랑 같이 가자!
셋째 형!
엄마 저게 뭐야!
공장 사장님!
셋째 그건 또 어디서 가지고 왔어!
아들, 뒤를 쫒아 들어온다.
아들 작은 아버지! (관을 어루만지며, 눈물이 난다) 아빠!
엄마 (바라보다, 눈물 터지는) 아이고, 여보! 태석 아버지!
둘째 (더 없이 크게) 이거랑 같이 가자고! (공장 얼굴에 머리 들이밀며) 어때 싫어?
공장 선생님. 일단 진정을.
둘째 가보자, 가. 파도 한번 타자. 내 스텝 타보자구!
셋째 형 진짜 왜 이래!
아들 작은 아버지!
둘째 태석아 이놈아! 이제부터 큰아버지라고 불러라!
엄마 서방님!
둘째 (울먹이며, 관 뚜껑 발로 찬다) 형, 나와봐. 왜 그러고 있어! 형은 가공식품이 아니잖아. 밝은 곳은 아니지만, 거기 바닥 친 어둠 뿐인데 왜 그러고 누웠어! 거기 따뜻해?
셋째 저 미친 새끼가 진짜.
둘째 형, 그 귀에 막힌 솜뭉치 때문에 안 들리는 거야? 내가 빼줄까.
엄마 서방님! (불현듯, 여전한 눈물) 야!
둘째 형, 바라봐, 나 쳐다봐! 우리 눈 좀 맞춰보자. 우리 그럴 수 있어!
셋째 죄송합니다 정말.
둘째 태오, 넌 가만있어!
공장 오늘은 일단 가보겠습니다.
둘째 형은 시도 쓰고 그랬잖아? 그 뭐, 뭐, 영원하다며. 아름다운 건, 그럴 수 있다며!
공장 네에. 시는 좋은 거죠.
셋째 가세요, 가! 선생님. 얼른 가세요!
엄마 멀리 못 나가겠습니다.
둘째, 퇴장하는 공장의 머리채를 잡는다.
아들 큰아버지!
셋째 형!
공장 아악!
엄마 (소리치며 울먹인다) 대체 왜들 그래!
둘째 이 새끼 이거, 왔던 구둣발 그대로 가잖아. 신발로만 저 서서 통보하고 있잖아. 구경 왔어? 내일이 출상인데 언놈 하나 낯짝도 안 비치고. 그건 아니지. 이건 아닌 거지. 시간을 내서라도,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망치자루 내려놓고 다들 와야지. 아무도 안 오고! 절 한번, 고개 한번, 허리 한번, 안 숙이고. (서류 집어던지며) 서류만 오가냐고 지금, 와서 좆 깨는 소리만 하고! 형 이름을 포기하라구? 우린 가족이었는데.
공장 그래야 다 좋습니다. 사장님! 고인에 대한 예의로.
둘째 예의는 야 이 개새꺄, 상대방이 느끼는 거고!
공장 사장님, 서로에게 좋은 방법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형님 보는 앞에서,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셔야!
둘째 형 죽인 일상으로 왜 돌아가, 어떻게 돌아가!
셋째 이거 놔!
공장 사장님!
둘째 여기 봐! 눈으로 한번 봐. 형 존나 멋있지? 우리 사는 거! 지금 여기 개판이야!
둘째, 관에서 시체를 꺼내려 한다. 모두 놀란다. 인물들 어지럽게 뒤엉킨다.
어느새 다가온 노인, 아이처럼 신기하단 듯이 관을 끌어안는다.
달래어 포개며 관을 닫는다. 그 모습, 정물화처럼 모든 인물을 멈추게 만든다.
노인 거 참 단단하기도 하다
음악 흐른다. 무대 어두워진다.
(후략)
희곡 | 심사평
응모작 수는 69편으로 작년의 67편과 비슷했다. 심사위원 둘은 약 2주에 걸쳐 응모작을 나누어 읽으며 예심을 진행했다. 「우리 집 맥스」 「초상, 화(畵)」 「18」 「계단 두개짜리」 「숲이 등을 떠밀어 나는 걸었네」 「조부모 지침서」 「귀도의 대학살」 일곱 작품을 후보작으로 선정해 최종심에 임했다.
「숲이 등을 떠밀어 나는 걸었네」는 서정성 강한 대사가 돋보였다. 지금의 현실과 과거의 연극이 유기적으로 잘 묶여진 구성도 강점이었다. 그러나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남편의 심리가 설득력을 갖기에는 부족했다. 부부의 사랑, 그 이상의 이야기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아쉬웠다.
「18」은 재밌게 잘 읽혔다. 생생한 캐릭터와 짧고 리듬감 넘치는 대사가 매력적이지만 열여덟 고등학생들이 느끼는 분노, 좌절감이 심화되지 못하고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약해졌다. 중요한 오브제로 등장하는 지혜의 ‘칼’이 연극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사소한 소품이 되어 사라진다. 이 희곡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시 질문을 던져보기 바란다.
「우리 집 맥스」는 잘 쓴 우의극이다. 집을 지키는 노인을 ‘늙은 개’로 등장시켜 우리 사회의 가족과 교육에 대해 꼬집고 있다. ‘목줄’을 상징적 도구로 배치시킨 점도 흥미로웠다. 문제는 너무 도식적이라는 점이었다. 상투적인 전개와 결말을 넘어 자신의 개성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더 거침없이 썼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크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계단 두개짜리」는 사회적인 문제를 비판적으로 담아낸 유일한 작품이었다. 고시원 지하에서 익사한 명훈과 그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이웃들의 냉대와 무관심은 지금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건의 편집자 역할을 해줘야 할 명호의 극적 배치가 너무 허술했다. 11호 남자와의 대화로만 정보가 나열되는 단선적인 구성으로는 명훈의 죽음을 치밀한 연극으로 끌어올리기에 역부족이었다. 빈약한 문장력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초상, 화(畵)」는 가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모인 가족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자본에 찌들고 멍든 사회가 인간의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잃어버린 인간성을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가에 대한 따뜻한 고민도 함께 담겨 있는 수작으로,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이견은 없었다.
고인의 마지막 편지가 자살 직전에 남긴 ‘유서’가 아니라 작업장에서 틈틈이 써내려가던 ‘시’였음이 밝혀지는 극 후반부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대사에 담긴 연극성과 문학성이 응모작 중 단연 탁월했다. 작가가 진지하게 문학과 만나고 있으며 연극도 열심히 보는 학생일 거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다만 주제가 드러나는 3장이 1, 2장에서 펼쳐진 서사적 흐름과 단절된 상태로 급하게 마무리되다보니 비약적인 후일담으로 맺어지고 있다는 점, 문장에 대한 과시욕이 드러나는 불필요한 대목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부디 지금보다 더 좋은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기를 바란다.
김은성 이성열
희곡 | 당선소감
나는 여전히 비문(非文)을 쓰고
어떤 냄새만 풍기다 사라지는 건 아닐까
늘 두렵습니다.
별자리만큼이나 아득한 객석에 앉아
은하수 달나라를 꿈꾸어도
모두가 걸어가는 세상
우리가 사는 푸른 별 지구
극장을 오지 못하거나
극장 회전문 앞을 서성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건
내가 아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막연한 희망을 말하기엔
너무 많은 거짓이 필요한
작업들을 생각합니다.
서걱거리는 도구 쥐고
그럴듯한 삶을 살고 싶어하던 나를 돌아봅니다.
살아 있는 것보단
살아온 시간, 더 대단히 느껴지는 밤
행복한 연극은 좋은 연극이 될 수 있다 말해준
친구들 모두 고맙습니다.
고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