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씨나리오

 

 

167대산_씨나리오_fmt

이현우 李炫宇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3학년. 1989년생.

upoiupoi@naver.com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

 

 

씨놉시스

1. 기획의도

평범한 인생, 학교에선 전교등수를 다툴 만큼 수재라 불렸던 병현. 그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가출하여 소년의 집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병현에겐 너무 낯선 곳이다. 이 작품은 한순간 이상한 나라에 들어선 엘리트가 어떻게 그 사회에 적응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선하고 배려심 있는 것이 미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악하고 더러운 것이 힘이 되는 무질서한 세계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더불어 만 16세 이상 남성은 여성쉼터에 들어올 수 없는 법체계 앞에 18세의 병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다룸으로써 우리는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여성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인가를 묻는다.

 

2. 주요 등장인물

병현(주인공, 18세) 어수룩한 인물. 학교에선 전교등수를 다투는 엘리트였지만 아버지의 심한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다. 그가 가출하여 처음 오게 된 곳은 소년의 집. 만 16세 이상의 남자는 여성쉼터에 입소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엄마, 여동생과 떨어져 이곳에서 지낸다. 키는 180cm정도의 약간 호리호리한 체형이지만 싸움엔 소질이 없다. 낯선 세계를 두려워하며, 폭력이 권력이 되는 소년의 집 질서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 매 맞지만 이혼을 망설이는 여자. 신혼 초부터 그녀는 남편의 매를 맞고 살아왔다. 맨정신일 땐 늘 미안하다 말하고 죽을죄를 졌다고 말하는 남편을 계속해서 한번 더 믿어보기로 하다 결국 그 피해가 병현에게로 되물림되었다. 내심 이혼을 바라는 큰아들 병현이 야속하기만 하다. 남편의 본심은 자기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창(18세) 소년의 집 실세. 키는 180cm정도, 체격이 좀 크다. 야비한 성격으로 상당히 이기적이다. 소년의 집에 함께 있는 쫑새와 보이지 않는 권력싸움을 한다. 절도죄로 보호관찰 명령을 받았지만 애초에 고아라 위탁기관에 맡겨졌다. 보호관찰 기간이 끝나고도 갈 곳이 없어 계속 이곳에 머물고 있다. 이곳의 질서가 모두 자신 위주라 나갈 이유가 없기도 하다.

쫑새(17세) 성질머리 더러운 폭탄. 덩치가 상당히 큰 편이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병현을 아니꼽게 본다. 성질이 더럽지만 그나마 윤창에겐 덩치에서 밀려 죽어 살았다. 병현보다 한살 어리지만 그를 형 대접을 하진 않는다. 폭력으로 상대 학생에게 전치 8주의 부상을 입혔다. 피해 학생은 평생 한쪽 발을 절며 살아야 하는데 쫑새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훈장이다.

강선생 소년의 집에 막 부임한 사감. 처음엔 마냥 사람 좋아 보이지만 사실 수감생들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 8년여 동안 이 분야에서 수많은 수감생들을 겪어왔다. 수감생 중 반장 한명을 뽑고 반장에게 수감생 관리를 맡긴다. 반장을 제외한 나머지 수감생들에겐 매우 혹독하지만 반장에게만큼은 예외를 두고 권위를 준다. 그러면 수감생들은 사이에 자연스레 질서가 생긴다.

신부 매주 소년의 집이나 청소년 쉼터 등을 두루 방문하며 전도 겸 선도를 한다. 불쌍하고 오갈 데 없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쓴다. 병현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초월적인 절대자와의 대화로 이겨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3. 줄거리: 병현은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가출을 한다. 병현이 집을 나가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엄마도 덩달아 병현의 동생 소현과 함께 집을 나오지만 병현과 함께 거주할 순 없었다. 엄마와 여동생이 갈 여성쉼터에는 만 16세 이상의 남성이 입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모범생 엘리트였던 병현은 갑자기 이상한 나라(소년의 집)에 갇혀버린다.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엘리트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더욱 이상한 시스템에 적응해야만 했다. 폭력이 권력이 돼버리는, 착하면 짓밟히는 이상한 시스템 말이다. 그는 윤창, 쫑새, 깡태 등이 만든 이 시스템 앞에서 나약한 저항을 해보기도 하지만 곧 의미없음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자신은 아직까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며 얼른 여성쉼터 문제가 해결되어 이곳에서 하루 빨리 해방되기를 바란다.

새로온 사감 선생(강선생)의 등장으로 이 세계의 질서는 조금 이상해졌다. 누구보다 이곳의 더러운 생리를 잘 알고 있던 강선생은 시스템을 바꾸기보단 이용하는 데 더 능숙했다. 반장인 윤창에겐 무한한 권리와 예외를 준 반면 그를 제외한 나머지에겐 혹독했다. 윤창은 스스로 그 앞잡이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큰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보이지 않게 알력다툼을 하던 윤창과 쫑새가 노골적인 적대관계로 바뀌게 되었고 급기야 주먹다짐으로까지 이어져 윤창은 쫑새에게 패하고 만다. 윤창이 소년의 집을 나가고 난 이후 실세는 쫑새가 지게 되었고 유난히 병현을 미워했던 쫑새는 더욱 악랄하게 그를 괴롭혔다.

갈수록 집요하고 포악해지는 쫑새의 괴롭힘도 시간이 지나고 피할 수 없는 극복의 대상이 되어간다. 쫑새에게 극에 달한 분노를 표출한 후, 소년의 집 질서는 승자인 병현의 입맛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더이상 소년의 집 빡빡한 환경에 적응하기 싫은 병현은 그뒤로 그곳을 나와 버렸고, 예전 윤창에게 들었던 신림쉼터로 가게 된다.

차량털이와 원조교제는 말로만 들었다. 허나 이젠 주위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고 이미 병현은 이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신림쉼터는 자유로운 만큼 탈선하기 쉬웠다. 말로만 듣던 황홀한 세계가 펼쳐졌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돈까지 버니 더이상 아쉬울 게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병현에게 엄마가 찾아와 아버지의 장례식 소식을 전한다. 평소 알코올중독이 심했던 아버지는 결국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병현의 마음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다. 설득하려는 엄마의 애처로운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는 끝끝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병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다. 허나 이상하다. 그렇게 지독히 미워하는 아버지인데 미워할수록 병현의 마음만 아리다. 병현은 어느날 쉼터를 잠시 나와 신부를 찾아간다. 낌새가 이상하단 느낌을 받은 신부는 담배를 한대 주는 조건으로 병현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요구한다. 병현은 기도하며 그동안의 모든 설움과 비참한 기분을 털어낸다.

 

 

S#1 소년의 집 인근 / 실외 / 밤

한밤중.

BGM은 ‘2NE1’의 「lonely」(어쿠스틱 버전). “지금 내가 하는 얘기 널 아프게 할지 몰라”로 시작한다. 노래 가사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어울린다. 마치 노래가사가 관객에게 말하는 듯.

 

차 안.

소년은 그 음악소리가 싫다.

(point. 소년은 자신 앞에 펼쳐질 앞으로의 미래가 불안한데 소년의 집 원장은 무심하다. 차 안에서 아이돌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 불편하다. 원장은 노랫말을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소년은 괜히 서운하다.)

검은색 구식 승용차가 소년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연식이 10년 넘어 보이는 구형 쏘나타. 운전대를 잡은 원장과 그 뒷좌석엔 소년이 보인다. 한 소년의 얼굴이 눈은 그림자로 가려졌고 하관만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범죄자 같기도 한 모습. BGM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소년의 집 도착. 가만히 앉아 있던 소년의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노래가사가 한참 “baby I’m so lonely lonely lonely” 하고 흘러나올 때, 운전하고 있던 원장이 오디오를 끈다. BGM off. 차 문이 열린다.

소년의 집은 본관이 2층 건물 한채. 그 뒤편엔 허름한 3층짜리 숙소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본관과 숙소 사이엔 농구 골대가 하나 있는 길이 70m 정도의 작은 운동장. 그리고 운동장 옆에는 단층 컨테이너 박스인 기술학교가 있다. 운동장 농구 골대 뒤편엔 허름한 공중전화 부스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옆엔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가로등이 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

차는 소년의 집으로 들어가 운동장에 잠시 주차한다.

이어서 내리는 원장. 가로등 등불만 보인다.

멀리 숙소 3층 창문에서 담배 피고 있는 아이들. 어두운 실루엣, 담뱃불과 연기만 보인다.

원장을 보자마자 작게 들리는 소리.

 

(소리) 야, 야 좆됐다.

 

꺼지는 담뱃불. 튕겨져 떨어지는 담배들.

 

원장 야 이놈 새끼들아. 허튼짓 말고 빨리 안 자!

 

그리고 차 뒷좌석에 있는 병현에게는 부드럽게.

 

원장 응, 내려.

 

내리는 병현의 뒷모습.

차 문을 닫는 원장.

 

 

S#2 소년의 집 숙소 / 실내 / 밤

한층 한층 올라가는 원장. 뒤따라 걸어가는 병현. 발만 보인다.

 

그렇게 가다 들어서는 숙소. 3층 남자방. 큰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

원장이 숙소 문 밖에서 잠긴 아주 굵은 자전거 묶는 체인을 만진다. 오관절락의 체인. 안에선 문을 열지 못하게끔 바깥에서 잠겨 있다. 굵은 체인이 인상적이다.

(p. 병현의 마음상태는 만일 이런 구조의 건물에 들어갔을 때 불이라도 난다면 어떻게 될까? 고민한다. 그리고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자신의 처지가 더욱 못마땅하다.)

 

원장 이놈 새끼들 내가 오늘은 절대 그냥 못 넘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는 원장.

어두워서 원장이 손전등을 켠다. 바지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더니 하나하나 맞춰본다. 문이 열린다.

들어가는 원장과 뒤따르는 병현. 조심스레 걷는 병현. 원장이 한 방으로 병현을 안내한다. 그곳엔 창문이 열려 있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잠들어 있는 듯.

방안은 매우 어두운데 촛불 하나가 켜져 있다. 그냥 초가 아니라 장례식장에서나 볼 수 있는 장초다.

 

원장 (냄새 맡듯 킁킁 대며) 야 이놈 새끼들아…… 전부 기상.

 

미동도 않는 아이들.

 

원장 얼레? 전체 기상!

 

미동도 않는다.

 

불을 켜는 원장.

모두 잠든 척하고 있다. 한 방에 5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자고 있다.

2층 침대가 하나 놓여 있고 맨 구석엔 커다란 장롱이 있다.

오늘 빨래를 했는지 장롱 옆엔 접이식 빨래 건조대가 있고 그 위엔 옷이 가득하다. 전반적으로 모든 것들이 허름하고 어설프다.

 

원장 어이, 깡태. 닌 안경 끼고 자냐?

 

안경을 끼고 자는 깡태.

본인도 민망한지 아주 살짝 입꼬리 올라간다.

하지만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다.

 

원장 깡태야…… 자냐?!

깡태 (당당하게) 네.

 

슬쩍 피식 하는 아이들.

귀를 잡아당기는 원장.

원장 페브리즈 뿌리면 모를 줄 알았지. 응? 한밤중에 초 하나 켜놓으면 어느 병신이 모를까?

깡태 아, 아……

원장 여기 누구야? 누구랑 같이 폈어?

깡태 혼자 폈어요……

원장 (귀때기를 더욱 세게 흔들며) 스-읍. 니들 진짜 오늘 죽어볼래?

깡태 아! 아!

원장 전체 자수 안해?

 

방안에서 잠든 척하는 일동 전부 일어선다.

이 와중에 꼿꼿이 자는 척하는 윤창.

 

원장 이게 전부야? 허윤창은? 어이 허윤창. 너 안 일어나?

 

미동 없는 윤창.

 

원장 얼씨구? 이놈 이거 불알 터네. 니가 사내 새끼냐? 얼른 안 일어나?

 

윤창에게 다가가는 원장.

하지만 여전히 잠든 척.

얼핏 보아하니 정말 잠든 것 같기도 하다.

 

원장 어이 허윤창. 내 오늘은 피곤해서 그냥 넘어가는데, 담에 또 걸리면 그땐 진짜 퇴소다. 어? 새겨-

 

미동 없는 윤창.

일어난 4명의 아이들은 민망한 듯 서 있다. 그리고 병현이 낯선지 계속 쳐다본다.

이중 한 17살 정도로 보이는 종훈(쫑새)이 아주 대놓고 병현을 꼬나본다.

(p. 종훈은 성격이 못됐다. 초장부터 기를 죽이려고 사나운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다. 이에 병현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애써 시선을 외면한다.)

 

원장 (종훈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으며) 쌈 났냐 새캬- 니들 앞으로 방 같이 쓸 친구고 나이는…… (병현을 쳐다본다)

병현 열여덟살이요……

원장 어, 그래. 여기 허윤창이가 몇살이지?

종훈 (계속 병현을 노려보면서) 십팔살이요. (‘십팔살’ 할 때 과장되게 힘주어 말한다.)

 

키득 대는 아이들.

 

원장 그래. 그니깐 뭐 허벌이랑 갑이면 니들한텐 형이지? 앞으로 같이 지낼 테니깐 친하게 지내고…… 이놈들아 통성명을 이따구로 하면 좋냐? (한대씩 쥐어박는다) 니들은 따라와. 병현인 여기 누워서 이불 깔고 자구…… 짐은 내일 풀자. (서 있는 아이들 보며) 따라와.

 

원장을 따라가는 아이들.

원장은 마지막으로 나가며 불을 끄고 간다. 낯설어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병현을 한번 보더니.

 

원장 (부드럽게) 잘 자고.

 

고개 한번 끄덕이는 병현.

어둠 속에 혼자 짐을 구석에 두고 한숨. 열려 있는 창문 너머 달빛이 보인다. 어째 그런 자신이 너무 처량하다는 듯 우울한 병현.

그렇게 혼자 우울해 하는데 갑자기 윤창이 일어난다.

 

윤창 꼰대 갔냐?

병현 (화들짝) 네?

윤창 네는 씨발 열여덟살이라메.

병현 네? 아 응……

 

윤창 바깥 복도로 나가 한번 확인해본다.

그리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온다.

 

윤창 이름이 뭐냐?

병현 조병현

윤창 내 이름 들었지? 허윤창

병현 응……

 

그러곤 아무렇지 않게 창가로 가 구석에 숨겨진 담배와 라이터를 꺼낸다.

창밖으로 주변을 살핀다. 원장은 앞서 나가고 있고 뒤에 3명의 무리(깡태 쫑새 용한)들이 뒤따른다. 쫑새는 윤창이 창밖을 한번 볼 줄 알았던지 뒷짐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있다. 전혀 눈치 못 채게 뻐큐를 날린다. 그 모습을 보고 실실 웃는 윤창.

원장이 다 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담배에 불을 피운다.

 

윤창 담배 피우지?

병현 응? ……응.

 

원래 담배를 못 피우지만 왠지 분위기에 압도되어 피우는 척하는 병현.

윤창 자연스레 담배를 건네며 병현을 한번 훑어본다. 예사롭지 않은 눈빛. 윤창의 탐색전이 시작된다. 그것도 모르는 병현은 조심스레 두 손으로 받아든다.

라이터로 불을 켜주는 윤창. 황송하게 불을 받는 병현.

한모금 빨고 기침 사레. 갑작스런 기침소리에 윤창이 화들짝 놀란다. 반사적으로 병현의 입을 막는다.

 

윤창 쉿! 미쳤냐.

병현 (목에 담배연기가 걸려) 콜록콜록…… 흐-읍 미안……

(p. 연기가 눈에 들어가 눈물 한방울이 흐른다. 병현이 앞으로 낯선 세계에 적응하기가 녹록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윤창 조용히 펴. 꼰대한테 걸림 나 이번에 퇴소야 씨발.

병현 (숨 고르고) 하-아… 퇴소?

윤창 뭐 하다 왔냐?

병현 응?

윤창 뭐 하다 왔냐고. 가출 첨이냐?

 

아무 말 못하며 계속 침이 고이는지 창가에 침을 뱉는 병현.

그리고 자신의 담배를 본다. 아직 한참 남은 담배.

 

윤창 어디 살다 왔냐?

병현 일산… 탄현동.

윤창 일산? 일산에서 여까지 와? 미친놈……

 

병현은 기가 죽었다. 왠지 모르게 이미 윤창에게 압도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이 적응 안되는지 계속 어정쩡하게 있다.

그러다가 다시 담배 한모금. 콜록 한번. 그리고 다시 연기를 뱉는 병현.

 

윤창 니도 보호관찰이냐?

병현 응?

윤창 법원에서 보호관찰 받고 왔냐고?

병현 나? 아니.

윤창 근데 씨발 여기 왜 와.

병현 난 그냥……

윤창 니는 진짜 조까리다 조까리. 존나 나가리. 그냥 가출을 할 거면 씨발 쉼터를 가야지. 뭔 씨발 소년의 집을 와.

병현 ……왜?

윤창 씨발… 완전 호구네. 암것두 모르냐?

 

병현이 의아하게 윤창을 쳐다본다. 복잡한 표정으로 입담배를 피우는 병현.

 

윤창 여기는… 그러니깐… 씨발 하… 여긴 까놓고 말해서 법원에서 보호관찰 받고 부모 없음 여기 델따 놓는 데고. 니는 씨발 그냥 가출 한 거고…… 여기 왜 왔냐. 나 같음 신림쉼터 가겠다. 거기 애들 물 괜찮은데.

 

그 말을 듣고 아주 의연하게 담배를 피워보려는 병현.

하지만 속담배로 피우다가 한모금 머금고 매스꺼운지 다시 입담배를 피운다.

(p. 윤창은 이제 병현이 만만하다는 계산을 끝냈다. 이제부터는 약간의 무게를 잡는다.)

 

윤창 하기사… 거기 가지 마라… 나도 거서 애들 잘못 만나가지고… 씨발… 거기 가면 막 애들 퍽치기하고 차 털러 다니고 그래.

 

병현. 긴장한 표정을 감추려는 게 티가 난다.

담배를 다 피웠는지 재를 터는 윤창.

슬쩍 병현을 한번 보더니 피식. 이 새끼는 순 호구라 긴장할 것도 없겠다 하는 생각에서 나오는 웃음.

 

윤창 너 담배 못 피우지? 새끼 존나 겉들이로 빠네. 피지 마라 담배 아깝다.

병현 (절대 질 수 없다는 듯 아주 진지하고 쎈 척) 아니야… 피워. 나도 막 좆같음 피워.

윤창 후까시는, 씨발.

 

그리고 자신의 침대로 가 눕는 윤창. 탐색전이 다 끝났는데 영 싱거웠다. 덩치도 있고 생긴 것도 좀 세 보여 긴장했지만 별거 아니었다.

윤창은 자신의 MP3를 보고 있다. 방안 전체가 어둡고 MP3 불빛만 윤창을 비추고 있다. 병현은 슬쩍 눈치를 보다가 2층침대로 간다. 계단을 타고 2층으로 가려는데.

 

윤창 거서 잘라고?

병현 응?

윤창 거기 쫑새 자린데? 아까 니 존나게 야리던 새끼.

 

하지만 병현. 한번 마음을 먹었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그 침대에서 자기로 마음먹은 듯 계속 올라간다. 그리고 다 올라가 자리에 눕는다.

 

윤창 그 새끼 조심해라. 애새끼 조져서 전치 8주 띄운 놈이야. 야마 돌면 나도 커버 못 친다.

 

연신 병현에게 센 척하는 윤창. 제법 근엄하게 말한다. 그 말 듣고 침대에 누워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병현. 쫄아서 다시 내려온다. 슬쩍 눈치 좀 보다가 그냥 바닥에서 자기로 마음먹는다. 윤창 그런 병현이 귀여운지 낄낄댄다.

 

윤창 다구 단단히 챙겨라. 여기선 밉보이면 좆된다 아주.

 

그저 누워서 복잡한 표정의 병현.

 

나레이션 여긴 좀 나랑 안 맞는 듯싶어요… 학교에선 전교 30등 안에 들고, 한때 외고를 준비했을 정도로 엘리트였는데… 참… 애비를 잘못 만나.

 

화면 f.o되면서 타이틀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

 

 

S#3 병현의 집 / 실내 / 밤

평범한 아파트. 술에 취해 있는 병현의 아버지가 주정을 부린다. 집에 짐이 널부러져 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듯하다. 거실 싱크대에 컵 하나가 깨져 있고 아버지의 손은 피범벅. 아버지는 몽둥이를 들고 있고 취했는지 비틀거린다. 병현의 어머니는 안방에서 병현과 소현을 데리고 구석에서 떨고 있다.

아버진 무언가 화가 잔뜩 났는지 집안의 모든 가사 기구를 다 뒤엎는다. 빨래 바구니에 있는 빨래들을 걷어차니 빨래가 여기저기 나뒹군다. 그리고 빨래 주변에 깨져 있는 액자. 단란하게 찍은 가족사진인데 깨져 있다. 안방문은 굳게 닫혀 있고 아버진 너무 화가 나는지 몽둥이로 방문을 세게 때린다.

(몽둥이로 문을 쳐대는 소리) 땅! 땅!

 

아버지 (매우 화가 난 듯) 조병현! ……안 나와 이 새꺄.

 

땅! 땅!

 

안방.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엄마와 병현 그리고 소현. 문 뒤로 위협적인 땅땅 소리만 들린다.

아버지는 문 앞에서 열리지 않는 문을 씩씩대며 주먹으로도 쳐보고 몽둥이로도 때려본다.

이때 방문에서 조심스레 나오는 엄마.

행여 아버지가 방에 들어갈까 얼른 문을 닫아버린다. (p. 밖에서 손잡이의 잠금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린다.)

 

엄마 (아버지를 제지하며) 당신 왜 그래 대체… 이러지마요.

아버지 놔… 너 놔… 가서 조병현 나오라 그래.

엄마 당신 취했어 제발… 그만해.

 

안방.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벌벌 떨고 있는 병현과 소현. 문 밖에선 엄마와 아버지의 실랑이가 날카롭게 들려온다. 엄마가 없는 빈 자리. 소현을 껴안고 있는 병현의 모습 c.u. 병현은 분명 두려워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신 책임이라는 죄책감을 느낀다.

 

아버지 (소리) 안 놔? 씨발 놔.

엄마 (소리, 절규) 이러지마 제발… 애 좀 냅둬.

아버지 그래. 새끼 대신 니가 맞아라.

 

아버지 엄마를 때리기 시작한다.

안방에서 그 소리를 그대로 듣고 있는 소현과 병현. 엄마가 맞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소현은 그런 상황이 너무 무서운지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런 소현을 더욱 꼭 안는 병현. 어느새 병현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다.

다시 문밖. 엄마가 무릎 꿇고 아버지한테 주먹으로 매 맞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면서 병현이 조심스레 나온다. 아버지 그런 병현을 보자 엄마를 옆으로 내팽개쳐버린다. 그리고 병현의 뺨을 세차게 한대 때린다. 나뒹구는 병현. 그런 병현의 머리를 끄집어 사납게 끌고 가는 아버지. 다른 방으로 병현을 끌고 들어간다.

 

 

S#4 병현의 방 / 실내 / 밤

병현을 엎어뜨리고 구타하는 아버지. 이미 병현의 방 또한 심하게 난장판. 신음하며 이리저리 피하지만 일방적으로 맞는 병현. 결국 구석에 몰려 심하게 맞는다. 맞으면서도 절대 아무 말도 않는 병현. 병현의 눈엔 이미 독기가 가득하다.

 

아버지 (때리면서) 야 이 빌어먹을 놈아. 이 따위를 성적이라고 받아와? 어?! 이놈 새끼야. 뭐 잘 했다고 애비한테 눈깔을 야려.

 

이미 독기는 가득. 아무 말도 않는 병현. 그의 표정엔 절대 질 수 없다는 다짐이 서려 있다. 처량하도록 얻어맞지만 눈에 있는 독기는 감출 줄 모른다.

 

아버지 야이 개놈 새끼야. 얼른 잘못했다고 안해? 어!

 

(후략)

 

*지면사정으로 작품의 일부만 싣습니다. 씨나리오 전문은 대산문화재단 홈페이지(www.daesan.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씨나리오 | 심사평

 

작년 대산대학문학상 씨나리오부문 심사를 처음 하면서 많이 놀랐다. 일반 사람들이 씨나리오를 접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직 씨나리오가 문학작품으로 유통되기보다는 영화제작을 위한 작업용 문서(?)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대학생들이 장편 씨나리오를 이토록 척척 써내는 것을 보고 어찌 아니 놀랄 수 있겠는가. 여기에는 씨나리오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정진이 있는 것이다.

작년에 처음 심사를 했을 때는 앞서 말한 이유로 ‘감탄’했고, 올해 두번째로 심사를 했을 때는 씨나리오 자체로 ‘감동’했다. 수상작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의 신부의 기도 부분을 읽을 때는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 씨나리오는 세련되게 씌어진 작품은 아니다. 투박하고 단선적인 전개, 어설픈 내레이션 등이 단점으로 드러나지만 이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헬리 버넷과 휘트 버넷은 작가의 자질을 언급하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작가는 고통받고 있는 영혼에 기꺼이 동감하여 그의 내부로 들어가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려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를 쓴 사람은 주인공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의 분노와 고독을 알고 있다. 고통받고 있는 영혼에 기꺼이 동감하고 그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너에게 가는 길」은 영화 「네버 렛 미고」처럼 복제인간을 다루면서도 한국의 군대문제와 결합시킨 독특하고 매혹적인 SF영화 씨나리오다. 더욱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보다 상업영화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마지막까지 수상작을 결정하는 데 고민을 안겨주었다. 이 씨나리오의 아쉬운 점은 인물들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다소 낭만적이고 피상적으로 그려진 점이다. 군대에 쉽게 순응하지 못하는 개인성을 유약함이나 자유분방함으로 한정짓는 것은 너무 협소한 시각이다.

「베드로의 계절」도 인상 깊은 씨나리오였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무리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신실한 한 개인을 배신하고 죄의식을 겪는 이야기를 여성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씨나리오다. 사건의 스케일이 장편에 담기에는 약소한데 인위적으로 현재 부분을 추가하여 장편 씨나리오로 확장한 것 같아 수상작으로 선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은 일상대화에서도 씨나리오란 말을 쓴다. 예컨대 ‘그 일은 씨나리오대로 잘 마무리되었어’라고. 현실에서는 씨나리오가 제대로 성취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영화는 씨나리오대로 온전히 만들어지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씨나리오의 백미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배우의 연기 및 장면화가 미흡하면 편집단계에서 가차없이 버려지기도 한다. 현실은 씨나리오대로 되기도 하는데 영화는 씨나리오대로 되기가 어렵다. 여기서 영화 씨나리오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우문이 든다. 씨나리오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비전(vision)이다. 씨나리오는 그 자체로는 실체가 아니다.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그 속에 무형으로 실재하는 것이 씨나리오다. 그 자체로는 뽐낼 것이 없는데 맹아처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것이 씨나리오다.

전반적으로 올해 응모한 씨나리오들이 작년에 비해 더 참신하고 무게감이 있고 다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이토록 비전이 높고 맹아가 튼튼하니 앞으로 한국영화가 좀더 재미있어질 모양이다.

박찬옥

 

 

 

씨나리오 | 당선소감

 

2015 대한민국 예찬 헌사

 

어버이 죄라면 날 낳았단 원죄로 키웠다지만

그대는 내 무엇이 미더워 길렀던가.

10년 전, 오늘만큼이나 추웠던 겨울.

찢긴 마음과 주린 배를 위로하던 그대여

이 나라 소년으로 태어난 그 이유 하나로

갈 곳 없는 몸뚱이 눕게 해주던 그대여.

세월 흘러 소년이 청년 되어갈 무렵

대학은 입에 담지도 못할 만큼 먼 시절 얘기

나라의 고마움을 뼈에 아로새길 수 있게 도와준 그대여.

값비싼 약값을 헐값에 처방해준 그대여.

군복무 땐 남은 가족에게 쌀과 집을 준 그대여.

이름도 고운 꿈나무카드로 곯은 배를 채워준 그대여.

이젠 키우던 꿈나무가 큰 나무가 되어가며

어미 정을 잊지 않고, 커다란 감격을 재주껏 노래하네.

이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