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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박일영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 문학과지성사 2016
‘소설가 구보’를 벗어낸 구보 박태원
류수연 柳受延
문학평론가, 인하대 프런티어학부 교수 suyoun_cat@hanmail.net
대학노트와 단장을 든, 자칭 전업작가이지만 타칭 룸펜인 청년 구보의 경성 산책이 첫발을 내디딘 지 어느새 80년을 훌쩍 넘겼다. ‘소설가 구보’라는 필명이 하나의 숙어처럼 묶여서 작가 박태원(朴泰遠)을 부르는 일종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지도 이미 오래다.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필명으로 삼는다는 것. 그것은 결코 작가 자신의 선호로만 결정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작품을 읽은 독자 스스로 허구적 인물과 작가 사이의 경계를 지워낼 때에만 비로소 이러한 호명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한 작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임에 분명하지만 때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일종의 형벌이기도 하다. 자신의 허구적 세계 속에 영원히 갇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구보’, 작가 박태원에게 부여된 이 필명은 바로 그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우리에게 구보(仇甫) 박태원은 오랫동안 ‘박제된 청년’으로 존재했다. 그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에 등장한 경성 청년 ‘소설가 구보’의 잔상은 너무나 강렬해서, 도무지 청년 아닌 구보를 상상하기 어렵다. 수많은 작가들이 호시탐탐 구보의 이름을 노리는 것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월북작가인 구보의 작품과 이름이 해금된 이후,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구보’들이 등장했던가? 소설, 평론, 연극, 신문기사까지, 구보의 이름을 달고 나온 구보 아닌 구보 2세들의 무수한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문학사에서 굳건히 ‘생존’하고 있는 구보를 만나게 해주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북한에서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지속했다는 점 역시 이러한 열광의 간접적인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구보가 사라진 공백 너머에서 여전히 그가 우리 시대와 공존하고 있었다는 동질감이, 그의 죽음을 지워내고 그 빈자리에 영원한 청년이라는 생생한 실감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보’의 범람은 역설적으로 ‘소설가 구보’ 아닌 한명의 개인이자 생활인으로서 구보의 모습을 흐려지게 하는 모순을 야기하기도 했다. 청년 구보가 강렬한 만큼, 장년과 노년의 구보는 너무나 낯설었다. 북에서 쓴 구보의 또다른 대표작 『임진조국전쟁』(1952)이나 『갑오농민전쟁』(1부 1965~66, 2부 1980, 3부 1986)의 세계가 기존 연구사에서 상대적으로 다소간 소외되었던 것 역시 그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분단을 넘어 남북의 문학사 전체를 가로지르는 구보의 세계를 분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점에서 볼 때,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은 구보의 아들이 쓴 구보의 기록물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그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때문에 흥미롭다.
이 책에 담긴 구보는 무엇보다도 소설가라는 단면을 넘어선다. 1930년대 최고의 모더니스트, 남북의 문학사를 아우르는 소설가라는 후광을 벗어던진 자리에 소설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생활인 구보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청년 구보의 능청스러움은 낯설지만 유쾌하게, 우리의 뇌리에 깊이 박힌 우울한 청년 구보를 지워낸다. 구보의 벗들, 이상(李箱), 이원조(李源朝), 정인택(鄭人澤), 안석영(安夕影) 등의 재기발랄함을 엿볼 수 있는 결혼식 방명록의 이모저모는 뜻밖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은 일제말에서 해방기라는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청년 구보의 어깨 위에도 세월의 무게가 얹어짐을 간과하지 않는다. 특히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 구보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조금 더 낯설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스스로 궁항매문(窮巷賣文)이라 자조하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성실한 생활인으로서 구보의 모습은, 오직 예술과 실험을 위해 헌신했을 것만 같은 모더니스트 구보의 새로운 면모일 것이다. 그러나 친일을 요구하는 현실에 표면적으로는 타협하고 내면적으로는 비켜나가면서, 생계를 위해서 펜을 놓을 수 없었던 현실적 고뇌는 일제말에 발표된 그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그러나 역시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구보의 북쪽 생활이다. 거기엔 분단으로 인해 우리가 접할 수 없었던 장년과 노년의 구보가 담겨 있다. 사실 박일영이 기록한 북한에서의 구보의 삶이란, 본질적으로는 여러 사람의 기억과 여과를 거친 조각난 파편들이다. 그러나 아버지 구보의 사후, 1990년이 되어서야 방북할 수 있었던 아들의 회한은 사라진 퍼즐 조각을 대신해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하나하나의 기록을 제시하고 그 행간에 개입된 세월과 공백을 메우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은 분단 이후 60여년이라는 시간의 간극마저 무력하게 만든다. 그 결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텍스트 속에 갇혀 주름 하나 없이 말간 청년으로만 남겨졌던 구보의 얼굴엔, 이제 세월과 그 시간만큼의 고뇌를 더한 주름들이 조금씩 깊어진다. 텍스트 속에 갇혀 있던 구보가 아닌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생활인, 그리하여 우리 근대사의 또다른 역사로서 구보의 민낯이 오롯이 드러난 것이다.
아버지 구보를 회고하며, 아들 박일영은 스스로를 팔보(八甫)라고 지칭한다. 아버지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회한은 그로 하여금 ‘작은 구보’가 아닌 ‘팔보’에 머무르게 했을 것이다. 그러한 팔보의 시선을 통해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은 우리 근대소설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 중 하나인 ‘소설가 구보’와 그 창작자인 작가 구보의 경계를 새롭게 한다. 그것은 구보 박태원의 기존 연구사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그의 가장 사적인, 그래서 어쩌면 가장 솔직했을 일상에 대한 기록들이다. 영원한 청년 구보, 그 박제된 시간을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팔보 박일영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을 쓰고자 했던 진정한 목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