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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사미 무바예드 『IS의 전쟁』, 산처럼 2016
시리아 역사학자가 밝힌 IS의 모든 것
정의길 鄭義吉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Egil@hani.co.kr
2014년 6월 29일 중동 한가운데에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주축이 된 ‘이슬람국가’(IS)가 선포된 이후 국내에 관련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왔다. 이슬람국가를 집중적으로 다룬 서적만 해도 이딸리아 언론인 로레따 나뽈레오니(Loretta Napoleoni)의 『이슬람 불사조』(노만수·정태영 옮김, 글항아리 2015), 프랑스 언론인 싸뮈엘 로랑(Samuel Laurent)의 『IS 리포트』(은정 펠스너 옮김, 한울 2015), 일본 중동연구가 이께우찌 사또시(池內惠)의 『그들은 왜 오렌지색을 입힐까』(김정환 옮김, 21세기북스 2015), 서방 언론인 마이클 와이스(Michael Weiss)와 중동의 언론인 하산 하산(Hassan Hassan)의 『알라의 사생아 IS』(이예라·김정우·박지만 옮김, 영림카디널 2015) 등이 있다. 이 책들은 이슬람국가의 탄생을 현대 중동분쟁의 산물로 보면서 그 실태를 전한다. 이 책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이슬람국가 탄생 배경은 이렇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면서 이라크가 혼란에 빠지자 알카에다 세력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라크에서 부상한 알카에다 세력은 전통적인 이슬람주의 세력뿐 아니라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 세력과도 힘을 합쳤다. 후세인 정권 시절 이라크를 통치하던 관료와 군부 세력이 권력을 잃자 알카에다 세력과 결합한 것이다. 수니파인 이들은 이라크에 들어선 시아파 정권에 맞서 종파분쟁을 선동하며 수니파 주민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병력을 증강한 이라크 주둔 미군과 온건 수니파 부족의 협력 작전에 밀려 세력이 위축된 이라크 알카에다는 2011년부터 시리아에서 발발한 내전을 틈타 다시 세력을 부활, 확장했다. 이라크 알카에다인 이라크이슬람국가(ISI)의 새로운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자신의 부하인 아부 모함마드 알골라니를 시리아에 파견해 누스라전선을 결성시켰다.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격인 누스라전선은 시리아내전에서 급진적인 이슬람주의 노선을 희석시킨 대중노선을 취하며 급속히 세력을 불렸다. 이라크에서도 시아파의 알말리키 총리 정부의 종파적인 국가운영이 수니파 주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부르면서 이라크이슬람국가 세력이 다시 성장했다.
이라크이슬람국가의 알바그다디가 자신의 도움으로 시리아에서 성장한 누스라전선과의 주종관계를 명확히하고 통합을 기도하자 누스라전선이 반발했다. 알카에다 본부 역시 두 조직의 통합을 추인하지 않았다. 그러자 알바그다디는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를 결성한 뒤 알카에다와의 연계를 끊었다. 2014년 초부터는 시리아에서 누스라전선 세력 흡수에도 나서면서 급속히 세력을 불렸다. 결국 그해 6월부터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벌여 이라크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모술을 함락하고 이슬람국가를 선포했다.
최근 출간된 『IS의 전쟁: 그들은 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Under the Black Flag: At the Frontier of the New Jihad, 전경훈 옮김)는 이와 같은 이슬람국가 탄생 배경을 앞서 언급한 책들과 공유하면서도 몇가지 대목에서 심층적인 분석을 추가했다.
첫째는 현재의 시리아내전과 이슬람국가 탄생의 한 배경인 시리아 내 이슬람주의 세력의 역사이다. 시리아 출신인 저자 싸미 무바예드(Sami Moubayed)는 1960년대 바트당 정권 장악 전후의 시리아 현대사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중동의 중심인 레반트 지역 대부분을 차지한 시리아에서 벌어진, 1차대전 이후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 세력의 경쟁이 1960대 중반 들어서면서 무력투쟁으로 바뀐 것을 지적한다.
1964년 10월 사망한 알시바이의 “죽음은 시리아 이슬람주의 사이에서 진행된 ‘신사’들의 정치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알시바이가 체현한 1세대 이슬람주의자들이 실현하고자 한 것은 무기가 아닌 선거를 통해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 알시바이의 계승자들은 1940년대 이후 시리아 정권들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무기를 집어들기 시작했다.”(63면) 시리아에서는 이미 1963년부터 알레포와 하마에서 이슬람주의 청년들이 새벽에 거리에서 일하던 환경미화원들을 대상으로 사격 연습을 하는 등 과격한 무장훈련을 시작했다. 결국 1964년 하마의 모스크에서 무장투쟁을 선동하던 이슬람주의 세력을 폭격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1982년 2월 하마에서 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렬했던 정부군과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무력 대결로 약 3만5천명에서 5만명이 숨진 학살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무바예드는 중동 어느 나라보다도 뿌리깊은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의 대결의 역사가 있는 시리아 현대사가 이슬람국가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시리아에서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의 대결이 시간이 지나면서 주민의 다수인 수니파 대 집권세력인 소수 알라위파의 종파대결로 치닫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다. 프랑스는 식민통치 시대에 분할통치 전략에 따라 인구의 10% 안팎인 시아파의 분파 알라위파를 군인으로 충원했다. 알라위파의 하페즈 아사드가 1960년대 쿠데타로 시리아 정권을 장악했고, 그의 아들 바샤르 아사드로 정권이 이어졌다. 아사드 정권은 지금도 시리아 내전의 한 당사자이다.
둘째, 이슬람국가의 모태가 되는 이라크 알카에다, 즉 이라크이슬람국가의 성격이다. 이슬람국가가 전통적인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세력, 즉 바트당 세력의 결합이라는 것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무바예드는 미군의 이라크 침공 이후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에 따라 권력을 잃은 수니파 바트당원들이 어떻게 이라크 알카에다 세력과 결합해 이들을 막강한 무장단체로 만들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바트당 세력은 자신들이 숨겨놓은 무기로 이슬람국가를 무장시켜줬고, 정규군을 이끌어본 그들의 군사능력은 이슬람국가를 정규군에 준하는 무장집단으로 성장시켰다. 이슬람국가 지도자 알바그다디 휘하의 현장 사령관 25명 중 3분의 1이 바트당 장교 출신인데, 이들이 사실상 이슬람국가의 전쟁을 이끄는 핵심이다. 이슬람국가의 내각 구성원 모두가 후세인 정부의 각료들이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 전까지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 세력은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탄압하는 중동의 최대 세력이었다. 무바예드는 원수지간의 두 세력이 하나로 뭉친 것은 결국 미군의 점령정책이 실패했음을 의미하며, 그 실패가 낳은 이라크 종파분쟁의 산물이 이슬람국가라고 강조한다. 수니파라는 공통점을 가진 알카에다와 바트당은 미국의 점령 이후 소외된 수니파 주민들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는 시리아내전의 종파분쟁과 공통분모를 찾으며 이슬람국가 탄생의 최대 배경이 됐다. 즉, 이라크에서는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한 소수 수니파, 시리아에서는 소수 알라위파로부터 소외되고 탄압받던 다수 수니파가 이슬람국가의 깃발 아래 하나로 모인 것이다. 이는 이슬람국가의 영역이 시리아와 이라크의 수니파 거주지역과 거의 일치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셋째, 이슬람국가 탄생의 직접적 계기가 된 시리아내전 과정에서 결성된 누스라전선과 이라크이슬람국가와의 관계이다. 누스라전선은 알바그다디가 그의 부하였던 알골라니를 시리아에 파견하고 지원하면서 결성됐다. 이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최초로 보도한 것은 아랍 언론인 라니아 아부제이드로 2014년 6월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에 「이웃집 지하드: 최근 이라크 내전의 시리아 관련 뿌리」(The Jihad Next Door: The Syrian roots of Iraq’s newest civil war)라는 글을 기고했다. 지금까지 누스라전선 결성과 이슬람국가 선포 과정에 대한 대부분의 보도는 아부제이드의 탐사보도를 기초로 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무바예드는 더 자세한 전말을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한다. 이는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진 알바그다디에 대한 인물평이기도 하다. 서방 언론들도 이슬람국가에 대해서는 무수히 보도했지만, 정작 그 지도자 알바그다디에 대해서는 몇줄의 소개에 그쳤다. 이브라힘 아와드 이브라힘 알바드리라는 이라크 수니파 중산층 출신의 이슬람주의 지식인이 이슬람국가 지도자 알바그다디로 변신하는 과정은 이슬람국가 탄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알바그다디 자신이 이라크 바트당 통치의 세례를 받고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으로 전향하기 때문이다.
무바예드는 이슬람국가가 시리아와 이라크의 “바트당이 실패한 자리에서 태어났다”고 결론 내리며 이슬람국가가 중동의 새로운 국가로 인정받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역사에는 폭력집단이 만들어낸 국가가 많이 등장했다. 이들은 국제사회에 섞여들어 인정을 받기 위해 마침내는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누그러뜨리곤 했다. 그건 자신들의 영역을 안전하게 확보한 뒤에 가능했다. (…) 이것이 현재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이슬람국가의 잠재적 미래일 것이다.”(361면)
“나는 이슬람주의자들과 권력에 굶주린 군인들에게 조금도 동조하지 않는다.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은 내 조국의 역사에 완전히 새로운 장이다. 흉악한 장이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될 장이다 (…) 정치적 선악의 틀로 이슬람국가를 바라볼 수는 없다.”(18면)
무바예드는 이슬람국가 탄생의 배경과 과정을 국내외에서 지금까지 나온 그 어느 서적보다도 자세하고 치밀하게 서술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경험과 연구의 결과이다. 조국 시리아를 버리지 못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시리아 내전의 현장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의 진정성이 이 책의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