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씨나리오 | 심사평
어떠한 공모전이든, 주최측이나 심사위원의 입장에서는 ‘당선자 없음’이라는 결과가 가장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번 심사에 불가피하게 이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여긴다.
올해는 35편의 작품이 응모하여 작년에 비해 편수는 줄지 않았으나 작품의 수준은 현저히 떨어졌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 자신도 매우 궁금하다. 어차피 씨나리오란 영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진대, 현재 한국영화계의 침체상황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어 현장영화인으로서 마음이 가볍지 않다. 작년에 대학생다운 패기와 상상력이 전체적으로 부족하다는 평을 썼지만, 이번에는 아예 씨나리오의 기본문법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문학적 표현이 좀 부족하더라도 영화적 상상력이 풍부하거나, 영화적 상상력이 부족하더라도 문학적 기본기가 되어 있으면 장래의 가능성을 믿어보겠지만, 불행히도 이번에는 그 어떤 작품도 이 두 경우에 해당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번에 응모된 작품들은 대체로 소소한 주제를 다룬 휴먼드라마가 많았는데, 스케일이 작은 이야기가 많아진 것은 비상구가 막힌 20대의 심리적인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내가 씨나리오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야기의 개연성과 주제의 명확성이다. 어떠한 이야기라도 개연성이 결여되면 공감과 설득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데, 거의 모든 응모작이 개연성 면에서 취약함을 드러냈고 주제를 응집하고 표현하는 힘이 부족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씨나리오를 잘 쓰기 위해서는 문학적 소양 이외에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을 이해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종이에 적힌 문장들이 시각 이미지와 싸운드의 힘을 빌려 스크린에 입체적으로 표현될 때 관객에게 어떤 효과를 유발하는지를 예측하려면 당연히 영화문법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는데도, 응모자들 대부분이 영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씨나리오를 썼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서 어떻게 하면 씨나리오를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내가 그들에게 했던 대답을 반복하자면…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너무 단순한 충고 같지만 더 나은 방법을 알지 못한다. 수없이 넘쳐나는 책과 영화들 가운데 무엇을 읽고 볼 것인지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떤 분야든 기본기가 제일 중요한 초석이 됨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청춘기에는 조급함을 버리고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오래도록 마르지 않는 샘을 가질 수 있다.
나도 직접 씨나리오를 쓰는 감독으로서,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씨나리오 집필이 가장 괴롭고도 힘든 공정이다. 이는 씨나리오를 집필하는 감독들 대부분의 공통된 증언일 만큼 씨나리오가 쉽지 않은 분야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씨나리오 작가의 꿈을 품은 대학생들의 더 큰 패기와 열정, 성실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내년에는 응모자들이 더욱 분발하기를 기대하며 올해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한다.
|임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