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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기획 | 표절 문제와 문학권력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하여

 

 

정은경 鄭恩鏡

문학평론가. 저서로 『디아스포라 문학』 『지도의 암실』 등이 있음. lenestrase@hanmail.net

 

* 이 글은 지난 6월 23일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공동 주최했던 긴급 토론회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일부 수정·보완한 글이다. 당시 취지와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구두로 발표했던 내용을 대체로 가감없이 재구성하였고, 이후의 소회에 대해서는 말미에 약간의 보론으로 대신한다. 이 토론회에서는 이명원, 오창은의 발표가 있었고, 심보선, 정원옥 등의 토론이 있었다.

 

 

최근 신경숙(申京淑) 표절 사태를 둘러싼 대중과 매스컴의 폭발적인 관심과 비난에는 미국까지 진출한 ‘한국 대표작가, 혹은 국민작가’와 ‘표절’ 사이의 간극에 대한 경악과 실망이 작용한 듯합니다. 국민작가라는 기대치 배반, 그리고 이에 대한 불성실한 답변이 사태를 키웠다고 볼 수 있는데, 눈덩이처럼 커진 이 사태에 대한 수많은 논의에서 우리는 다음 두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신경숙 신화화에 대한 비판과 표절 의혹에 대한 검증입니다. ‘한국문학을 대표할 작가가 못되는데’ 이를 부풀렸다는 신화화에 대한 비판이 신경숙=표절작가라는 등식으로 이어지거나, 한국문학이 표절작품 투성이인 ‘썩은 문학’으로 폄하되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문제제기된 부분은 표절입니다.

둘째, 두 발제자께서 지적하신 문제들에 대해 동의하는 바가 큽니다. 표절 의혹에 대한 출판사와 작가의 불성실, 출판상업주의, 폐쇄적 매체권력, 스타시스템, 문학권력의 폐쇄성, 비평의 위기와 무능, 한국문학의 구조적 문제 등등. ‘신경숙 표절 의혹’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문학출판사들의 폐쇄적 문학권력, 급급한 출판상업주의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신경숙 문학’은 80년대 문학적 이념형에 기반을 둔 진영논리를 해체하고, 대중성과 문학적 자율성이 합쳐진 지금의 생산 시스템을 만든 중요한 고리이자 상징이라고 봅니다.

 

1) 판매부수는 다음을 참고했습니다. 한기호 『희망의 출판』, 창해 1999, 331~32면; 강준만·권성우 『문학권력』, 개마고원 2001, 143~44면. 2) 한기호, 같은 글.

1) 판매부수는 다음을 참고했습니다. 한기호 『희망의 출판』, 창해 1999, 331~32면; 강준만·권성우 『문학권력』, 개마고원 2001, 143~44면. 2) 한기호, 같은 글. 3) 문화일보 2015.03.02. 4) 같은 글.

 

위의 표는 2010년까지의 신경숙 작품 출간현황입니다. 발제자들께서 지적해주셨듯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에서 고르게 출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 소설집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고 많이 팔리지도 않았으나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의 ‘예기치 않은’ 성공 이후, 여기에 힘입어 『깊은 슬픔』 『외딴방』이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제가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여기인데, 이전까지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 시인에게 주던 ‘만해문학상’을 창비는 문학동네, 문지의 작가 신경숙에게 수여(199611회)합니다. 창비의 만해문학상은 신생 출판사이자 신세대 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적 대중지향성에 기반한 문학동네와 신예 신경숙을 문학적으로 인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화답처럼 『외딴방』의 2판 개정판부터는(1999) 남진우(南眞祐)의 해설(「우물의 어둠에서 백로의 숲까지」) 대신 백낙청(白樂晴)의 해설(「『외딴방』이 묻는 것과 이룬 것」)5)이 실립니다. 신경숙의 문학은 이제 만해문학상과 백낙청의 “리얼리즘” 독법에 의해 대중성에 이어 ‘창비’가 상징하는 진보적 가치와 문학적 상징자본을 일거에 획득하여 한국문학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될 뿐 아니라, 문학동네가 지닌 대중성 내지는 상업성과 연계해주는 중요한 가교가 됩니다. 1989년이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기념비적 해였다면, 1996년은 이렇듯 한국문학에서 신경숙을 통해 문학적 이념 진영과 당파성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해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외딴방』이 지닌 ‘리얼리즘’적 성격과 문학적 가치를 전면 부인할 수는 없지만, 산업체학교 작가지망생의 성장소설이 리얼리즘적으로 그토록 상찬받아야 되는지는 좀더 면밀히 검토되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기인 96~97년 창비 진영에서는 문학담론적으로 진정석(陳正石), 최원식(崔元植), 황종연(黃鍾淵) 등으로 대표되는 논자들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회통론’과 화합론이 본격 제기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경숙 문학’은 명분도 갖춘 화해와 통일의 상징이 됩니다. ‘신경숙 문학’을 통해 놓인 다리로 이후 많은 작가들이 왕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07년 김영하가 『빛의 제국』으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그 일부이겠지요.)

또 하나 한국문단에서 ‘신경숙 문학’의 의미는, 부르디외(P. Bourdieu)의 문학장 이론에 따르면, ‘상징자본’과 ‘경제자본’의 행복한 조우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6) 쉽게 말하면 작가적 명성과 돈의 만남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둘을 모두 갖는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작가 이상(李箱)이 문학장 내에서만 인정받는 굶주린 예술가를 상징한다면, 김진명(金辰明) 같은 작가는 문학장과 상관없이 돈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문학사적으로 박완서(朴婉緖), 박경리(朴景利), 이문열(李烈), 황석영(黃晳暎) 같은 작가는 이 둘을 획득한 경우이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 둘을 동시에 획득하기는 어려운데, 대중성에 비해 인색한 문학적 평가를 받은 공지영(孔枝泳) 같은 작가도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고 봅니다. 어쨌든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신경숙은 문학장 내에서의 공고한 위치와 경제자본까지 갖춘 보기 드문 작가로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신경숙의 상징자본과 대중성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한기호에 따르면, 신경숙의 독자의 80%는 24세 이하라고 합니다.7) 문학적 가치는 신경숙 문학에 대한 “존재의 괴리, 그 슬픈 아름다움”(김병익),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증언록”이자 “감동적인 노동소설”(남진우), “개인 차원의 진정한 변화가 수반되는 시대의 증언이나 사회현실의 고발”(백낙청) 같은 비평적 수사 등에서 짐작할 수 있는데, 제가 보기엔 20대 여성 독자들에게 위안과 슬픔의 감염력을 지닌 신경숙의 대중성과 부합하지 않는 문학장의 자기합리화 같습니다.

앞서 발제하신 두분 중 이명원(李明元) 평론가는 신경숙 문학의 탁월함 부분보다는 “환금성의 탁월함이 더 컸음, 유력한 문화상품”으로 보고, 독자들이 오늘날의 문학출판산업 쇠퇴가 가령 신경숙 문학 같은 작품을 양산하는 문학출판에 대한 기대지평과 신뢰의 상실에서 온다고 지적하고 있고, 오창은(吳昶銀) 평론가는 신경숙 사태를 작금의 ‘시민사회와 소통하지 않는 문학상품의 생산, 폐쇄적 문학제도, 전문직업주의’로 보고 있는 듯한데, 일견 상반되는 의견처럼 보입니다. 각각 ‘되지도 않는 작품으로 대중추수주의에 영합하고 있다’와 ‘대중과 괴리된 권위적 문학권력의 강요’로 들리는데, 신경숙 문학은 어느 편에 있을까요? 만일 대중이 더이상 고매한 ‘각성의 문학’이 아니라 감미로운 ‘위안의 문학’을 찾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리고 다양한 영상매체로 인해 문학이 ‘이야기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현실이라면, ‘한국문학의 활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즉 문학권력 논쟁이 무색할 만큼 달라진 매체환경으로 인해 문학의 역할이 과거와 달리 축소된 지금, 문학이 폐쇄성과 대중추수주의를 벗어나 ‘바람직한 문학작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더 치열한 비평을 통해 검증된 어려운 ‘각성의 문학’도 아니고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마취의 문학’도 아닌 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미 2000년 즈음에 제기되었던 문학권력 논쟁은 이러한 문학환경의 변화, 문학성과 대중성의 재고, 개별 작품에 대한 비평과 함께 논의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신화화와 관련해 살펴본 위의 과정의 본질은, 문학의 ‘가치지향성의 폐기’ 혹은 ‘가치지향의 급전회’입니다. 민주화와 정의, 분단극복 등 공동체 건설을 위해 공헌했던 창비 주도의 한국문학은 90년대 이후 공동체에 기반한 새로운 가치를 정향하거나 아젠다를 발굴해내지 못했습니다. 신경숙 등의 ‘착한 개인’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는 ‘개인주의’화된 대중추수가 아닐까라는 의혹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창비나 한국문단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윤리, 정의를 말하면 고루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현실, 진정한 가치논쟁은 없고 종북·좌빨 등의 사이비 가치논쟁만이 난무하는 현실,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이 거리로 쫓겨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꼬제브(A. Kojève)의 말대로 ‘웰빙’이 삶의 주요한 목표가 된 ‘동물화한 포스트모던’의 시대라 할 수 있는데, 이 삶의 트렌드에서 우리는 과연 비켜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셋째, 표절 의혹에 대해 덧붙이겠습니다. 먼저 저 개인적으로 신경숙 문학에 대한 비평적 견해를 짧게 밝히겠습니다. 신경숙 초기 작품을 좋아합니다. 특히 첫 창작집 『겨울 우화』의 단편들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실린 작품의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문체와 진솔함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오래전 집을 떠날 때』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풍금이 있던 자리」와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울긴 했지만, 탁월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93년 성공 이후 다작과 신화화를 통해 신경숙 문학에 쓸데없는 감상성과 포즈가 첨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깊은 슬픔』에 크게 실망했고 『리진』에 절망했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궁금해졌습니다. 『교수신문』에 쓴 글에서 저는 이러저러한 세계관의 한계, 센티멘털리즘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신경숙을 찾아 읽는 것은, 신경숙 글쓰기가 갖고 있는, 냉소와 유머를 모르는 진정성에 있다고 썼습니다.8) (이것이 문제일 수도 있겠지요)

신경숙의 작품들을 꺼내들어 훑어보았습니다. 여전히 좋은 건 좋고, 별로인 건 별로더군요. 문제된 「전설」(『문학과사회』 1994년 겨울호 발표)은 미시마 유끼오(平岡公威)의 「우국」와 유사한 모티프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국」은 1936년 일본 청년장교들의 친위쿠데타(실화)를 다룬 작품으로, 군국주의와 탐미주의라는 이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다케야마 신지가 아름다운 아내 레이코와 결혼한 지 반년 만에 친구들은 신혼인 다케야마를 빼고 쿠데타를 일으키는데요, 쿠데타가 실패하자 다케야마는 친구들을 총살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죠. 신의와 충성의 이념 사이에서 갈등하던 다케야마는 레이코와 농밀한 정사를 나누고 할복자살하고 부인도 그를 따라 자결합니다. 실제 1970년 ‘천황제’와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끼오의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 셈입니다.

「전설」은 1950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작품입니다. 주인공 ‘여자’는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만주로 떠난 부친으로 인해 ‘남자’의 집에서 같이 자라나 일찍 결혼을 하는데요. 끔찍이 서로를 사랑하는 선남선녀는 장밋빛 미래를 그렸으나 한국전쟁이 터지자 남자는 자원해서 전쟁에 나갑니다. 그리고 여자는 실종소식을 듣고도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남자’가 “내가 신혼이라 친구들은 내게 말도 없이 자원했소”라고 하는 부분과 「우국」에서 다케야마가 “난 몰랐어…… 그 친구들은 날 부르지 않았어. 내가 아직 신혼이라고 나만 안 껴준 걸까”9) 부분은 흡사하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10)는 것은 좀 다른 해석이라고 봅니다. 「우국」에서 레이코는 남편 할복 뒤에 순사(殉死)합니다. 이것이 중요한데, 미시마 유끼오는 ‘순사’로 전체주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전설」에서 남은 여자는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남편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우국」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이 할복과 정사, 순사를 주도하는 주 인물이라면, 「전설」에서는 순정을 지닌 여성이 주 인물입니다.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전쟁과 무관하게 서 있는 사과나무처럼 남자를 기다리는 ‘전설’ 같은 풍경을 담은 소설입니다.

또 정문순 평론가가 지적한 ‘역순적 사건 구성’은 사실과 다릅니다. 「우국」은 두 주인공이 동반자살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 과정을 역순으로 그린 작품이지만, 「전설」은 역순이 아니라 연대기순입니다. 물론 중간에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그것은 이들의 사연을 언급한 부분이고요. 정문순 평론가의 지적대로 두 작품 모두 “서두에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전개방식”은 동일하지만 들여다보면 「우국」은 역사적 배경이라기보다는 남녀 주인공의 죽음에 대한 사실 언술입니다.

 

소화(昭和) 11년(1936년) 228일, 즉 2.26 발발 3일째, 근위보병 제 1연대 소속의 다케야마 신지 중위는, 사건 발생 후 반란군에 가입한 친구들 문제로 번민을 거듭한 끝에, 황군끼리 서로 쏘아 죽여야만 하는 사태로 치닫게 된 정세를 통분, 요츠야구 아오바초에 위치한 자택의 8장짜리 방에서, 군도로 할복자살하였으며, 그의 부인 레이코도 역시 남편의 뒤를 따라 칼로 자결하였다. 중위가 남긴 유서에는 ‘황군 만세를 기원한다’란 단 한 구절이 쓰여 있었을 뿐이며, 부인의 유서에는 ‘군인의 아내로서 올 것이 왔습니다.’라는 말과, 부모보다 앞서 가는 불효에 대한 용서를 빌고 있었다. 열녀 열부의 최후, 참으로 혼백마저 울릴 기개 있도다. 중위 나이 향년 30세, 부인은 23세였다. 화촉을 밝힌 지 아직 반년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11)

왜정 지나 군정 지나 이승만 정권 여러가지 불안 요인을 안은 채 출발하다. 미 군정이 유지시켰던 친일 세력들을 그대로 받아들인 탓에, 식민지에서 해방된 민족국가로서의 명분을 세울 수 없었고, 드높아진 민중운동은 5·10 총선을 앞두고 선거 반대투쟁, 2·7 구국투쟁 등으로 치열해지다. 19481020일에는 전남 여수에 주둔 중이던 국군 제 14연대의 반란으로 지리산 일대가 반란군 세력하에 들어가다. 경제적 불안 또한 극심하여 정부 세출 60프로가 통화량 팽창으로 물가가 2배로 뛰다. 이승만 정권은 취약한 지지기반과 심각한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우해 미국의 원조를 유도하는 한편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호언하다. 한반도를 태평양 지역의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다. 6·25 전쟁, 발발 전부터 남북간의 소규모 무력충돌 계속 발생하다. 그 불안의 땅 속에서도 사과나무에는 꽃이 피고 사과가 열리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논에 거름을 내고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복수를 하고 누군가는 자살을 하고 누군가는 상점을 내고 누군가는 책을 읽다.12)

 

위의 두 글을 보더라도 「우국」은 군국주의에 들린 탐미주의자 미시마의 무시무시한 소설이고, 「전설」은 전쟁의 포화와 상관없이 ‘일상’과 사랑을 지속해가는 두 남녀의 말랑말랑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적하신 ‘1)플롯과 모티프의 유사성 2)유사 문장과 동일문장’에서 확인된 동일 문장13)을 제외하면, 플롯은 유사하지 않고, 모티프의 유사성을 근거로 한 표절 유무는 좀더 논의해봐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14)

박철화(朴喆和)의 표절 의혹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합니다. 이응준(李應準) 작가는 “신경숙의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단편소설 「작별 인사」가 파트릭 모디아노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들 속 문장과 모티프와 분위기들을 표절했다는 고발 등등은 필경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한 것과 비슷하거나 같은 노릇을 여기저기서 상습으로 일삼던 와중에 흩뿌려진 흔적과 증거들이라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15)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다소 과잉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철화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계간 『작가세계』 99년 가을호에 발표된 나의 「여성성의 글쓰기, 대화와 성숙으로」는 신경숙씨 외에도 다른 두 여성 작가의 장편소설을 점검하는 글이다. 신씨와 관련된 부분도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표절 시비 때문이라기보다는 『기차는 7시에 떠나네』라는 작품의 서사구조의 어설픔과 신씨의 작품세계 대부분을 감싸고 있는 소녀 취향의 미성숙한 퇴행의식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 한 단면으로 본문 아래의 각주에서 표절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인데, 신씨가 그 근거를 물으니 예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표절에는 크게 두가지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신씨가 『문학동네』 99년 여름호에 발표한 「딸기밭」처럼 남의 문장을 슬쩍 도용하는 일이다. 이런 짓은 분명한 증거가 있어 쉽게 해결이 된다. 어쨌거나 불가피하게 남의 글을 빌려올 경우에라도 인용과 함께 최소한 그 사실을 밝히는 것이 글쓰는 이의 정직함이다. 그런데 신인을 한참 벗어난 신씨가 그것을 잘 몰랐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더 심각한 표절로서, 신씨 스스로 ‘유사한 모티프’라고 말한 것과 관련이 있다. 남의 글의 구조를 빌려오는 일, 이미지를 차용하는 일 등이 그것인데, 작품의 배경과 등장인물의 이름과 글의 서사적 문맥만 바꾸어 놓는다고 해서 혐의를 벗지는 못한다. 다른 작가들의 정신의 매혹을 충분히 저작하여 소화시키는 대신 무늬만 자신의 것으로 해서 다시 포장을 하는 일이 더 위험한 표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표절이 단순한 아둔함에 가깝다면, 뒤의 것은 고의적인 은폐 기도로 해서 이중으로 독자를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신씨의 「작별 인사」를 두고 『물의 가족』(마루야마 켄지 장편소설편집자)의 표절이라고 말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우선 문장 차원에서 “물기척이 심상치 않다” “물마루 기척이 심상치 않아.” 앞의 것은 『물의 가족』에서 화자의 죽음과 함께 전체 작품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상징적인 첫 문장이고, 뒤의 것은 「작별 인사」에서 별뜻 없이 폼을 잡은 소단락 표제에 해당하는 한 문장이다. 흩어놓기는 했지만 아래의 경우도 혐의가 있다. “헤엄치는 자의 기척이 한층 짙어져 오고 있다” “먼 데서 나를 데리러 오는 자의 기척이 느껴진다.” 앞과 뒤 모두 각기 소단락의 표제를 이루는 문장이다. 뒤의 두 문장은 「작별 인사」에서 그저 작품을 열고 닫는 허사들인데왜냐하면 앞에 각기 “눈을 떴다” “눈을 감았다”는 기능 단위의 문장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마루야마 겐지를 멋지게 가져다 장식으로 쓰려 한 것이다.

게다가 상징적으로 압축된 잠언투의 표제와 그에 뒤이은 짧거나 긴 서술 단락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는 두 작품이 동일하다. 그리고 둘 다 죽은 자의 영혼인 작중 화자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를 굽어보며 설명하고 묘사하고 회고하는 구조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두 작품 모두 사자와 살아 있는 자 사이에서 온통 생과 죽음을 가르는, 혹은 그 둘을 잇는 물의 이미지가 출렁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고의성 없는 우연일까?

그러니 적어도 『풍금이 있는 자리』의 신씨라면,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이 표절을 하지 않고도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도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16)

 

위에서 「딸기밭」의 편지 표절은 본인이 인정했으니 넘어가고, 박철화는 「작별 인사」(『딸기밭』 수록)의 표절을 유사한 모티프, 구조와 이미지 차용 등의 더 심각한 차원의 표절로 보고 있는데, 지적대로 「작별 인사」는 『물의 가족』와 매우 유사한 분위기와 모티프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지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물기척’ ‘물 이미지’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티프, 이미지 차용을 표절로 보자면, 앞의 경우처럼 매우 골치 아픈 문제가 됩니다. 삐까소(P. Picasso)의 「한국에서의 학살」은 고야(F. Goya)의 「53일의 처형」의 구조와 모티프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고, 고흐(V. Gogh)의 그림 중 일부는 일본화풍을 그대로 따른 것도 있고, 김동인(金東仁)의 「광염소나타」는 아꾸따까와 류우노스께(芥川龍之介)의 「지옥변」에서 왔고,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와 너무나 유사하고, 기형도(奇亨度)의 「빈 집」 표절 의혹 등등, 상당수의 작품들을 ‘전수조사’하여 ‘역학관계’를 밝혀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 단락 안에서 ‘여섯개의 단어 동일’이라는 문장 단위의 표절 기준 이외에 모티프 및 이미지 차용 등은 모방과 영향 관계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덧붙여 앞서 발표자분이 말씀하신 징계시스템 마련에 반대합니다. 이는 현택수의 검사고발과 유사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예술창작은 예술가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제기된 표절 부분이 신경숙의 작가적 능력을 부정할 만큼, 혹은 「전설」의 작품을 포함해 모든 작품이 함량미달인데 과장 포장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발제자분께서는 신경숙의 작가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혹은 여론에서 떠도는 대로 ‘지속적으로, 무차별적으로 표절을 해서 독자들을 속였던’ 작가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무리 한국문단이 부패하고 비평이 무능력해졌다고 해도 그런 작가를 작가로 인정해주는 그렇게 형편없는 문단은 아니지 않을까요?

한가지 덧붙이자면 제 생각에 신경숙의 표절 의혹은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창작방법이 실생활과 ‘대지’를 도외시하고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필사(筆寫) 훈련과 같은 기능훈련으로 흘러버린 데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주요한 흐름이기도 한데,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영화, 문학작품, 다양한 콘텐츠 등의 1차 텍스트를 중심으로 창작공부를 하고, 이를 재가공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쓰기 때문에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 쉽게 된 것도 있는 듯합니다. 모니터 앞에서의 세련된 문장 만들기 차원의 글쓰기 경향은 2000년대 이후 우리 문학계의 빈곤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문단에는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세련된 문장과 구성, 이미지, 비유, 발상 등은 우리의 삶과는 무관하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수영(金洙暎)의 ‘온몸의 시학’과 대지에서 빚어내는 신동엽(申東曄)의 소박한 언어가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예기치 않게 길어진 앞의 제 논의는 사실 제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단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나 「딸기밭」의 경우 표절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밖의 것은 모방이나 영향 관계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그밖에 많은 작품이 표절일 거라는 가정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번에 문제제기 하셨던 분이 고민하셨던 오랜 기간과 열정으로 보아 만일 그 이상이 있었을 경우 밝혀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는 정도는 굳이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신경숙 문학을 지지하는 많은 비평가들이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한 느낌입니다만) 제가 이 자리에 나오면서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이 작가, 시인이라면 더군다나 한국작가회의의 회원분이시라면 지금 신경숙 표절 논란이 어떻게 각종 매스컴에서 선정적으로 소비되고 있는지 눈치채셨을 것입니다.17) 여기에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검찰에 고발한 일은, 경악을 넘어 절망스럽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저처럼 곤혹과 환멸, 분노를 느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먼저 신경숙 작가에게 문학에 관심도 없던 뭇대중처럼 돌을 던질 게 아니라, 마녀사냥처럼 번져가는 이 기이한 집단 광기의 횃불이 될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비평가로서 냉정과 이성을 우선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 신경숙 작가에 대한 재판을 위해 모인 것은 아닙니다. 우선적으로 같은 동료로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고민하고 자성하는 태도가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경숙의 표절은 창작하는 우리들 중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유혹일 수도 있고, 실수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경우도 과거 논문 집필 때 각주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리곤 했는데, 이 아이디어가 내 건지 아니면 어디서 읽은 건지 잘 모르겠고, 내 생각이 아닌 것 같아 각주를 달고 싶어도 출처를 기억해낼 수 없어, 공부를 작파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실, 논문이라는 것도 선구적 연구자들과 이론가들이 만들어놓은 편한 논리를 따라 작가들을 검토하는 거푸집 같은 것이니 엄격한 잣대에 따르면 표절이겠죠.

이번 표절 사건은 두 발표자분께서 언급하신 많은 문제점들이 폭발하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필요악’이었고, 더 시끄러울 필요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문학의 현재에 대해 더 치열하게 성찰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마녀사냥식의 선정적인 타매와 광풍에서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한국문학 스캔들’에서 우리가 먼저 빠져나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론

위의 토론문을 발표했던 때로부터 한달의 시간이 지났고, 그간 많은 후속 논의들이 있어왔다. 크게는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이 공동주최한 끝장토론(715일)에서부터 김누리, 장정일(蔣正一), 윤지관(尹志寬), 오길영(吳吉泳), 이용욱 등의 논자들이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빚어진 한국문학의 현재성에 대해서 의미있는 논의들을 펼쳐왔다. 그 중에 ‘문제는 표절이 아니라 미문주의이고 문학의 본령은 성찰의 깊이에 있다’는 주장(김누리)이나 ‘독창성에 대한 요구는 작가를 창조자 내지 신격화하는 낭만주의의 산물로, 표절은 도덕적 고발의 대상이 아니라 비교와 즐김의 대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장정일), 다층적 ‘대중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요구(서영인), 편집이 창의를 추월하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이용욱), 그리고 ‘비평의 무능’에 대한 많은 지적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찰되어야 하는 중요한 문제제기라고 본다. 이러한 논의들에 기대 필자는 토론회 이후 느낀 몇가지 소회와 필자에게 제기된 질문에 답함으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작품의 표절 여부와 문학제도 등 본질적 논의와 상관없는 대중적 비난과 매스컴의 선정성이다. 물론 여기에는 작가와 출판사의 불성실한 답변에 그 일차적 원인이 있겠다. 그러나 토론 이후 수많은 매체보도들을 보면, 토론회에서 있었던 다층적인 논의와 맥락들은 사라지고 비난의 수사학만이 파편적으로 난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위의 토론문을 발표한 필자의 경우 보도에서 제외되거나(다행히도!) 옹호하는 편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는데 그건 그렇다 쳐도, “중요한 것은 종북, 좌빨 등의 사이비 가치논쟁이 아니라 진짜 가치논쟁”이라는 언급이 “이건 삶의 가치의 문제이지 가치 지향성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보도되거나, “메르스 정국 때문에 무척 바쁩니다. 제 이름이 정은경이거든요. 질병대책본부장인 정은경과 동명이인입니다”라는 농담이 “지금 중요한 메르스 정국에 몰두하고 집중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매스컴에서 신경숙 표절 사건이 이슈화되는 것을 보면 절망스럽다”라고 보도된 것을 보면, 경악을 넘어 ‘가가대소’하지 않을 수 없다. 요는 일부 대중은 복잡한 맥락의 ‘진실’과 ‘실체’보다는 놀랄 만한 ‘사건’을 원하고, 그 중계자인 매스컴은 대체로 이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 종편, 인터넷방송, 그리고 수많은 SNS와 소통수단을 가졌지만, 우리는 ‘함께 있으면서 나누는 것’(com+municate)이 아니라, 따로 동시다발적으로 자기 정념으로 떠들고 있고, 그 내용과 상관없이 디지털 회로를 타고 어떤 정념만이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표절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국」과 「전설」을 읽은 사람이(평론가를 포함하여) 많지 않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를 제외한 모두를 ‘적’으로 규정하는 ‘악마의 관점’이 아니라 책임윤리로 ‘우리’를 묻는 ‘비극적 관점’(전상진 『음모론의 시대』)이 필요하다. 이 현상은 표절과 무관하게 정치한 사회학적인 고찰이 필요하다고 보인다.18)

둘째, 표절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이 일상화되면서 다른 사람의 글을 ‘퍼나르기’의 사례가 늘고 ‘표절 불감증’이 확산되는 것은 분명 우리가 타개해야 할 현실이다.19) 하지만 그와 반대로 오늘날 표절 문제에 집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화조차 상품등록을 해야 하는 시장주의 만연의 결과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20) 예술에 있어서도 표절(밝히지 않은 베끼기)은 분명 정당한 행위가 아니다. 이러한 부정(不正)의 베끼기의 차원을 넘어, 자료참고, 모방, 차용, 영향 등 창조적 모방에 관해서는 표절과는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포스너나 루스벤에 의하면 과거 많은 문인들이 모방을 전통적 창작수단으로 활용했던 때가 있었고, 독창성(originality)의 중시는 근대적인 것21)으로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셰익스피어나 엘리엇도 표절작가라는 것이다.22)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생각하면 표절의 기원은 훨씬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포스너가 제안하는 방식은 독창성(originality)과 창의성(creativity)을 구별하여, 창의성은 규범적인 것으로 보되 독창성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포스너는 표절(plagiarism)과 저작권침해(copyright infringement)를 구별하여, 표절은 ‘심각한 법률적 위반행위이라기보다는 대중으로부터 치욕이나 불명예의 응징을 받는 윤리적 위반’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작가가 표절을 통해 ‘독창적인 작가’로 칭송받았다면, 훗날 그가 박탈당하는 것은 금전적 손실이라기보다 명예일 것이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했듯 모방과 영향, ‘창조적 모방’과 ‘표절’의 관계는 복잡하고 미묘하며 확정된 기준도 없다. 이번 기회에 표절, 모방, 영향, 문장도용, 저작권, 차용 등에 대해 디지털 기술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는 한국문학에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는 후속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셋째, 신경숙의 『외딴방』과 관련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신경숙의 『외딴방』이 ‘감동적인 노동소설이나 총체적인 시대 증언록’이 ‘왜 아니냐’는 질문에는 간략히 답변한다. 『외딴방』을 읽고 나서 독자에게 남는 것은, 산업체학교에 다니는 여공들의 신산한 삶이나 그들의 노동투쟁이 아니다(물론 필자의 이러한 독법에 대한 이견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왼손잡이 양현숙이 캔디 이만개를 싸는 매일의 노동에 오른손이 굳었다거나, 주인공이 산업계장에게 희롱당하는 장면, 헤겔을 읽는 급장 미서 등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힘겨운 노동투쟁이나 환경과의 대결과정은 ‘서사화’되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흩어지며, 미서가 읽었다는 헤겔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게 왜 중요한지, 필사하는 『난쏘공』은 왜 얘기하는지는 거의 없다. 작품 전편에서 이 파편화된 에피소드들과 단선적인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면서 독자에게 각인되는 것은 주인공의 오롯한 글쓰기 숭배와 욕망이다. 서사화되지 못한 인물들과 80년대 기록들은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도 무방한 것이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에 깊이 성찰하지 않는, ‘변모하지 않는’ 주인공의 『난쏘공』 필사는 ‘감동적인 노동소설’에 값하지 못한다. 80년대 경직화된 민족문학과 리얼리즘론이 발굴한 ‘새로운 노동소설’이라기보다는 산뜻하게 만들어진 90년대판 팬시 노동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필자가 신경숙의 초기 소설을 고평한 것은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초기 소설에 주목한 백낙청의 지적대로 “고향 사람들의 삶그것도 현재의 삶을 「풍금이 있던 자리」보다 훨씬 풍부하게 재현”23)했기 때문이다.

넷째, 출판상업주의에 대한 것이다. 한 질문자의 지적대로, 출판사는 영리단체이지 공익단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상업주의 운운한 것은, 자본주의 시대에 ‘황금을 돌같이 보라’는 시대착오적인 얘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유가치’인 ‘문학’을 우선시하지 않고 ‘교환가치’인 ‘돈’을 우선시하는 출판문화를 지적하고자 함이다. 자신이 생산해야 하는 ‘상품’의 기능과 본연의 역할을 망각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우리는 ‘세월호’에서 충격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위에서 언급한 출판사들이 전적으로 상업주의로 진격했다면, 한국문학은 이미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난 20년간 한국문학은 빈곤 속에 ‘기이한 풍요와 활기’를 보였고, 그것은 문학장이 ‘상대적 자율성’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상업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비평’의 ‘카피화(copy)’, 출판 생산의 사유화와 관련이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넘치도록 지적된 비평의 무능에 대해 크게 공감하는 바이다. 상업주의는 가치있는 문학작품을 선별하여 독자에게 권하는 비평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 비평가들은 좋은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을 선별하여 논하기보다는, 자사에서 출판된 작품 중에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작품들을 ‘사후적으로 승인, 광고’하는 것이 업무가 되어버렸다. 언젠가부터 비평가들이 소속사처럼 출판사에 구속되고, 젊은 평론가들도 ‘드래프트’처럼 일찍이 영입되어 길러지는 풍토도 이러한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다. ‘문학적 공론장’이 사라진 이러한 사유지에서는 비주류 평론가들이 후미진 잡지에 어떤 작품을 상찬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마치 다른 가게 물건에 눈길을 주는 것처럼, 옹색하고 남우세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혹자들은 묻는다. 왜 대안적 매체를 만들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않느냐고. 삼포세대는 ‘청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청년’에게도 있다. 대학과 국가는 청년 실업자들에게 묻는다. 왜 창업하지 않느냐고. 청년은 답한다. 지금은 새로운 건설이 가능한 6·25 직후도 아니고, 패기와 도전이 성공할 수 있는 70~80년대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 모든 자본(돈을 비롯한 시스템)은 기득권이 다 갖고 있지 않느냐고. 공고화될 대로 공고화된 이 시스템에서 어디 비집고 ‘점포’ 하나 마련할 자리나 있느냐고. 게다가 ‘문학청년’들도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무척 바쁘다. 취업과 지원금을 위해 논문을 쓰고, 연구계획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설계와 민주화’까지 마친 이 시스템에서 ‘큰 꿈 없는 세대’(장강명 『표백』)는 ‘비평가의 꿈’을 접고 가치지향성을 잃고, 비판정신을 잃고, 길을 잃고, 피로하다.

창비의 1996년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지난날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론을 견지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절이 바뀌었으니, 사람도 문학도 가치지향성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96년 이후 창비는 이전의 빛나는 실천에 값할 만한 새로운 미학적 지도력이나 방향성을 창출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창비는 다른 잡지와 달리 이러한 물음을 견디어야 하는, 유의미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창비가 문예지를 사회과학과 연동하여 꾸려온 것은 문학현상을 사회구조 안에서 사유하고 그 성찰을 통해 사회개혁에 이바지하고자 한 것이고, 또 실제로 과거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창비는 90년대 이후 이러한 중요한 기반을 놓치고 타 출판사와 별 차별성 없는 지점에서 문학작품을 생산함으로써 적지 않은 지면의 사회과학적 분석은 문학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물론 87년체제론도 있었고, 6·15시대도 있었고, 이중과제론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작품을 해석하는 데에 중요한 사회적 성찰로 이어지지 않았다. 분단체제론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베, 통합진보당 사건, ‘종북좌빨’에 대한 단죄 등이 분단체제에서 비롯되었음은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시각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에서 비롯되는 구체적인 현실 반영을 작가와 작품 발굴을 통해 의제화하는 일에 성공했느냐는 면에서 의구심이 든다. 체제론과 사회담론에 치중한 나머지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아젠다를 바꾸고 다시 사회와 문학의 현재를 묻는 일에 치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여 문학적으로 가치정향에 대한 새로운 실험적 모색 없이, 적극적인 신인 발굴 없이, 문학적 다양성을 기치로 한 타 출판사의 작가들을 사후 승인하는, ‘권위적’ 출판사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시대와 연동한 새로운 아젠다가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최인석(崔仁碩)이나 정미경(鄭美景) 작가가 제기하고 있는 ‘부르주아들의 통속적 연애’와 중산층의 욕망과 불안, 한국 교육시스템의 붕괴(김사과 『미나』), 이시백(李施)의 농촌 풍경에 대한 동시대적 성찰, 그리고 장강명(張康明)이 『표백』(한겨레출판 2011)에서 제기한 ‘큰 꿈 없는 세대’의 절망과 무력, 최일남(崔一男) 김원일(金源一)이 묻고 있는 ‘고령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현실과 접속한 작가들의 문제제기를 비평적으로 주목하여 읽어주고 거듭 문제화하는 것, 이것이 독자들이 원했던 공론장으로서의 문학잡지이고 비평가 아니었을까. (과거 창비의 사회과학적 분야의 흥미로운 기획과 열정은 최근 『황해문화』가 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공적 역할을 잃어버린 문학잡지, 비평가가 출판사의 주주가 되어 영리를 잊어버릴 수 없는 문학잡지의 풍요는 사적 소통과 소란에 불과한 ‘사보(社報)’들의 향연이다. 그리고 이 향연의 중심에는 ‘개인의 내면’과 ‘다원주의’, 문학의 ‘상대적 자율성’을 통해 90년대 이후 패러다임에 성공적으로 접속한 출판사 문학동네의 ‘미문’과 현란한 카피들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사보화와 사유화는 일종의 시대 패러다임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비평의 무능과 상업주의는 90년대 이후 가속화된 다원주의와 관련이 있다. 과거 문학이 누린 영예는 일종의 위계질서 안에서 인문학과 지식이 누린 일종의 상대적 가치 우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도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가 있었지만 ‘문학’의 위엄은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지성인에 대한 대중의 존경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다원주의 시대가 열림으로써 모든 가치와 권위는 ‘민주화’ 바람 속에서 하향 평준화되고, 대중문화와 동등한 지위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민주화’는 기존의 권위주의와 권력을 해체하는 순기능을 해왔지만, 한편 평준화는 가치허무주의를 낳게 되었다. ‘중심’이 사라진 시대에 유일하게 기능하게 된 것은 ‘환금’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공통의 필연성이 사라진 시대, 이 다원주의 시대에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거리로 쫓겨나고, 존재 가치를 새롭게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실질적인 ‘환금’ 이외에 가치에 대한 냉소는 광장과 공론장의 붕괴를 결과했다. 그렇다면 밀실이 아닌 광장, 공론장의 회복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지점에 대한 논의들이 신경숙 사태 이후의 생산적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 대해서는 ‘끝장토론’에서 천정환(千政煥), 임태훈(林泰勳), 김대성(金大成) 등이 언급한 바 있는데, 그들이 제기하고 있는 ‘협동적-사회경제’ ‘사회적 디자인과 경제’ 등은 솔깃한 대안이지만, 그 현실성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밝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불가능할지라도 가능성을 위한 노력과 모색이 작가와 비평가 개인의 차원에서, 공적인 차원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거기에 ‘문학하는 자’의 위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긴 말을 늘어놓고 나니 김수영 말대로 ‘내 발밑이 불안하다.’ 그러나 ‘나도’ 다른 이들과 함께 오염과 세속, 과오와 혼란의 땅을 딛고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 바깥에 대해 ‘함께’ 꿈꾸고 성찰할 수 있는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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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백낙청의 글은 해설로 씌어진 것이 아니고 『창작과비평』 1997년 가을호에 수록된 것을 해설로 묶은 것입니다.

6) 부르디외에 따르면 문학장이라는 상대적 자율적인 영역 안에서 작가들은 구별짓기와 경쟁을 통해 작품을 인정받아 ‘상징자본’을 얻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문학장 바깥의 ‘돈’과는 무관한 것으로 굶주린 예술가들이 갖는 ‘명예로운 자존심’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이 문학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대중작가들은 팔리는 작품을 통해 상징자본 대신에 ‘외부자본’이라는 이윤을 획득합니다.

7) “1996년 9월에 신경숙의 세번째 창작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를 펴낸 창작과비평사가 책을 간행하기 전에 그간의 책 판매경향을 통해 독자성향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대의 중고생 독자가 50%, 20대의 직장여성과 대학생이 30%, 기타 20%로 이 중 24세 이하의 여성이 약 80%였다. 창작과비평사에서 그후 『오래전 집을 떠날 때』의 독자엽서를 분석해본 결과 같은 연령층은 68.4%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이를 한살 올려 25세까지 계산해보니 정확히 80%가 나왔다. 그만큼 신경숙의 마니아는 1년 사이에 한살 이상 ‘고령화’되었던 셈이다.” 한기호, 같은 글.

8) “그렇다면, 도대체 왜 신경숙은 사랑받는 것일까? 140만부가 팔렸다는 『엄마를 부탁해』에 이어 1년 반만에 내놓은 ‘어나벨’은 왜 읽히는 것일까? 물론 이미 브랜드화된 ‘신경숙’의 유명세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그러나 『엄마를 부탁해』 또한 높이 평가할 수 없었던 것을 떠올리면, 신경숙의 이 중단 없는 인기는 필자에게 미스테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주제와 사상 면에서 빈약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물론 본격적인 비평은 논외로 하고) 신경숙의 소설이 대중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소설은 흔히 말하는 대중소설의 코드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긴박감과 드라마틱한 서사적 재미도 없고 선정적이지도 않으며, 전혀 웃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감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파와 통속성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센티멘탈리즘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교수신문』 2010.10.11.

9) 인용은 미시마 유끼오 「우국」,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죽음의 미학』(살림 2003)에 실린 황요찬의 번역본입니다.

10) 정문순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 『문예중앙』 2000년 가을호.

11) 미시마 유끼오, 같은 글 16~17면. 본문의 한자 이름과 역주는 편의상 생략.

12) 신경숙 「전설」,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창작과비평사 1996, 232면.

13) 논문에서는 일반적으로 6개의 단어가 연쇄적으로 동일하면 표절로 보는데, 정상조에 의하면 “미국 사례의 경우, 한개의 창작적 문장이나 두세 페이지 분량의 창작적 표현만을 모방해서 저작권 침해가 인정된 다수의 사례가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상조 「창작과 표절의 구별 기준」, 『서울대학교 법학』 제44권 제1호, 서울대 법학연구소 2003.

14) 참고로 장은수 전 민음사 대표에 의하면, “문학작품에서 표절이란 작품의 아이디어나 발상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을 주로 다툰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페이스북 참고)

15) 이응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5.6.16.

16) 박철화 「신경숙씨 주장에 대한 반론」, 한겨레 1999.10.5.

17) 두건의 기사 일부분입니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양심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들의 베끼기는 격렬하였다. 출판사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원고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채근하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 표절을 하고 두달 뒤 남짓, 여자는 벌써 표절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순한 머릿속으로 문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베껴들었다. 그 붙여넣음은 글을 쓰는 여자의 원고지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표절을 하는 게 아니라 표절이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기뻐한 건 물론 출판사였다.” (…) ‘seo4****’이 올린 댓글은 가장 많은 호감을 받았고 이 댓글에 대한 댓글도 200개 가까이 달렸다. 신경숙 표절 의혹 풍자 댓글은 캡처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상황을 어쩜 저렇게 절묘하게 묘사하냐”고 극찬했다. “댓글 천재” “맛깔나게 베꼈다” “필력이 엄청나다” “명문이다” 등 반응도 나왔다.(국민일보 2015.6.19.)

한 독자는 “믿었던 출판사가 출판권력으로 팔리는 작가라 옹호하는 모습이라. 내 코 묻은 돈 내놓으라고, 그걸로 이리 버티고 커온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을 지경이네요”라며 신경숙 작가를 옹호한 창비를 비판했다.(아시아투데이 2015.6.19.)

18) 오해를 살 수 있으니 한가지 덧붙이자면, 통치권력의 탄압수단이자 고통받는 자의 세계해석 방편이기도 하다는 전상진의 음모론을 언급한 것은, 이 불통의 현상이 그가 지적한 대로 그만큼 현대인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 어떤 이는 인터넷과 방대한 ‘디지털 아카이브’의 존재로 인해 표절이 감별되기 쉬워지고 그럼으로써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좁은 의미의) ‘독창성’이 고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진정 ‘새로움’과 ‘독창성’이 문제라면, 과거 유산을 기록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깡그리 없애야 하지 않을까?

20) 이에 대해서는 리처드 앨런 포스너 『표절의 문화와 글쓰기의 윤리』, 정해룡 옮김, 산지니 2009, 137면 참조.

21)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개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전통 세밀화의 기법이 서구의 ‘원근법’과 개인의 고유성을 중시하는 근대회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독창성의 숭배는 근대 개인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22)K. K. 루스벤 『문학비평의 전제』, 윤교찬 옮김, 현대미학사 1998.

23) 백낙청 「지구시대의 민족문학」,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창비 2006, 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