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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메르스 사태를 돌아보며

 

 

서민 徐民

단국대 의대 교수. 저서로 『서민의 기생충 열전』 『집 나간 책』 『노빈손과 위험한 기생충 연구소』 등이 있음. bbbenji@naver.com

 

 

20156월, 한국사회는 메르스의 덫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외출을 삼갔고, 심지어 환자들도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렸다. 외국 관광객도 발길을 끊었으니 이 기간에 우리 경제가 감당해야 할 손해는 막대했으리라. 아쉬운 점은 우리 스스로 이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 대처에 소홀했던 정부의 무능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메르스 사태는 무엇이며, 우리가 개선해야 할 점은 어떤 게 있는지 한번 따져보자.

 

 

메르스에 속수무책이던 한국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중동호흡기증후군)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다.1)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바이러스의 형태가 태양의 코로나와 비슷하기 때문인데, 아무튼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개, 돼지, 닭 등에게 호흡기 증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일부는 사람의 호흡기를 침범하며, 대표적인 것이 2003년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싸스’(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다. 원래 사람에게 걸리던 바이러스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드물지만, 다른 동물의 것이 사람에게 오는 경우 사람의 면역체계가 낯선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치명적일 수가 있는데, 싸스나 메르스의 사망률이 10%를 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메르스 역시 원래 박쥐의 바이러스였던 것이 갑자기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감염되면서 이 사달이 났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란 이름처럼, 메르스의 유행은 2012년 중동에서 시작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폐렴으로 입원했던 60세 남자가 그 시초로, 이후 메르스는 천여명의 감염자와 40%가 넘는 사망률을 보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메르스는 중동을 여행한 사람들에 의해 각 나라로 퍼졌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2차 감염 없이 유행이 종식됐다. 중동 지역을 제외하고는 감염자가 제일 많은 나라가 영국인데, 환자는 단 4명이다. 그밖에 독일이 3명, 프랑스와 미국이 각 2명씩 환자가 발생하는 데 그쳤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환자수가 186명에 달하고 사망률도 19%나 됐던 한국(2015.7.21. 현재)의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특정 지역에 유행병이 돌고 있다면 그 지역을 여행한 사람이 입국할 때 관련된 증상이 없는지 충분히 살피는 게 맞다. 예컨대 에볼라바이러스가 아프리카를 강타한 2014년, 우리나라에서는 해당 지역 여행을 자제하도록 권했고, 에볼라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현지에 봉사를 다녀온 의료팀은 잠복기인 3주 동안 공항 옆에 마련된 격리실에 머물러야 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에볼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반면 메르스에 대한 대처는 아쉽게도 에볼라의 반의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중동과 멀리 떨어진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다른 중동 국가들을 다 제치고 환자수와 사망자수에서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2위를 달성한다.

 

 

메르스 감염력을 얕봤던 정부 당국과 삼성병원

 

201554일, 68세 남자가 인천공항에 내렸다. 그는 한국인으로, 지난 16일간 바레인과 사우디, 카타르를 사업차 방문한 뒤 귀국한 터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511일, 그 남자는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등 감기 증상을 호소한다. 병원에 가서 지어준 약을 먹었지만 별반 차도가 없어 두군데 병원(그중 한곳이 평택성모병원)을 더 들렀던 그는 결국 518일 삼성서울병원(이하 삼성병원)에 간다. 삼성병원은 환자의 검체를 국립보건연구원에 보내 메르스 진단을 받아냈다. 그 당시만 해도 메르스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터였으니, 최초 환자를 진단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진단 이후 삼성병원의 대처는 기민하지 못했다. 환자를 진료한 의료진과 간병한 부인이 감염된 것은 어쩔 수 없다 치고 그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추가로 감염된 것까지 이해할 수 있다 해도, 메르스 진단이 나오고 난 뒤 접촉자들을 모두 격리하고 감염 여부를 체크하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메르스가 사람 간 접촉으로 전파되는 게 아니라는 속설을 믿은 탓이었는데, 유명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따르면 “메르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파되는 일이 극히 드물지만, 병원 내처럼 특수한 환경에서는 사람 간의 접촉으로도 전파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6번 환자의 경우 최초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입원 중이었지만 같은 병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격리대상이 되지 않았는데, 이 환자 이후에도 같은 병동에 입원한 환자 중 메르스 확진자가 여럿 나왔으니, 정부 당국이 메르스의 감염력을 얕봤던 게 메르스 사태가 확산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국내 최초로 메르스 환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는데, 이게 삼성병원에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한 조치든 뭐든, 복지부의 이런 행동은 결국 두 기관 모두에 손해를 끼친다. 메르스에 걸린 환자가 그뒤 삼성병원 응급실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525일, 거구의 한 남자가 열이 나서 경기도의 한 병원을 찾았다. 그는 1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그 병원에 있었지만, 같은 병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격리대상자가 되지 않았다. 이 경기도 병원에서는 감기겠거니 하고 그 환자를 입원시켰지만, 사흘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자 “큰 병원에 가보시라”는 소견서를 써주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대신한다. 보건복지부가 메르스에 대해 알리고 “열이 있는 환자는 일단 메르스를 의심하고 격리조치하라”고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지만, 그 남자는 아무런 제약 없이 퇴원한 뒤 시외버스를 탔고, 한시간 반을 달린 끝에 서울 남부터미널에 내린다. 환자는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119에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도착한 구급대는 환자를 삼성병원 응급실로 데려갔고, 이틀간 환자를 본 끝에 삼성병원은 그에게 메르스 진단을 내렸다. 이 환자가 바로 슈퍼전파자로 알려진 14번 환자다. 놀라운 사실은 삼성병원이 의료진에게마저 메르스에 대해 경보조치를 발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메르스가 국가적 문제가 된 611일, 국회 메르스대책특위에 불려나간 삼성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14번 환자는 중동에서 온 환자가 아니었고, 병원에 왔을 때는 다른 병원을 거쳐 온 폐렴 환자에 불과했다. 정부로부터 메르스가 집단 발병하고 있다는 정보가 없으면 해당 환자를 파악하기 힘들다.” 결국 삼성병원은 전체 환자 186명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91명을 배출한 ‘메르스 병원’이 된다.

 

 

제구실 못하는 응급실

 

“응급을 요하는 환자가 가는 곳.” 일반적인 응급실의 정의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 정의가 비교적 잘 통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 유학생 미자(가명)는 어느날 새벽 세시에 잠에서 깼다. 엄청난 통증이 엄습해서였다. 미자의 표현에 의하면 “이것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뾰족한 모든 것들이 내 간이 있는 쪽을 후벼파는 기분”이었단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통증을 그녀는 바닥을 구르며 참아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기에 그녀는 택시를 잡아타고 응급실로 갔다. 진단결과는 ‘결석’, 즉 몸에 돌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다. 첫째, 왜 바로 응급실로 가지 않고 바닥을 구르며 참았는가? 둘째, 왜 911을 부르지 않고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갔는가? 우리나라 같으면 통증이 시작됐을 때 무조건 응급실로 직행하지 않았겠는가? 이건 미자가 특별히 참을성이 많아서는 아니었다. 그녀가 알기로 앰뷸런스를 부르는 가격이 60~100만원이나 되기 때문이었다. 통증을 참은 것도 같은 논리였다. 오랜 유학생활의 경험상 미국의 응급실이 얼마나 비싼지 미자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미자는 응급실에 갔음에도, 응급수술을 하라는 의사의 제안은 거부한다. 그러니까 미자는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쓴 진통제와 결석이라는 진단을 해준 것에 대해서만 값을 치르면 됐다. 일주일 뒤 미자에게 날아온 청구서의 금액은 13000달러, 우리 돈으로 1500만원 정도였다. 보험이 있긴 했지만 청구액 전액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미자는 자기 돈으로 그 상당부분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미자는 응급수술을 하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다른 유학생은 사고가 나서 응급수술을 받고 입원했더니 10억원의 치료비가 나왔다니 말이다.2)

미자의 사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비용이 걱정된 나머지 몇시간 동안 아픔을 참아가면서 바닥에서 굴렀으니까.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응급실의 문턱은 낮아도 너무 낮다. 늦은 밤 애가 열이 난다고 해보자. 아이의 열은 대부분 해열제로 잡을 수 있으니 집에 있는 해열제를 쓰면서 기다렸다가 다음날 병원이 문을 연 뒤 외래로 방문하는 게 제대로 된 수순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앞뒤 안 가리고 애와 함께 병원 응급실로 내달린다. 이게 다 우리나라 응급실의 수가(酬價)가 무척 싸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평상시 진료비의 1.5배 수준인데, 우리나라가 원래 의료비가 싼 나라다보니 이 응급실 진료비가 크게 부담되는 것은 아니다. 의아한 점은 그러고 난 뒤 응급실 수가가 비싸다고 불만을 터뜨린다는 것이다. 어떤 분은 아이가 눈을 다쳐서 응급실에 갔는데, 기계로 쳐다보더니 사흘치 항생제만 처방해주고 28천원을 받더란다. 그분은 “왕복 택시비 2만원까지 해서 5만원을 썼다”며 투덜거렸고, “응급실 진료비 비싸요”라고 진정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병원에 다녀오는 택시비가 2만원인데, 다친 아이의 눈을 검사하는 데 드는 비용이 28천원이라면 그게 과하게 비싼 것일까? 또다른 분은 비슷한 사례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일갈한다. “유능한 의료인”은 “환자를 방치하며 대학병원에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 “이런 게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실이다. 앞으로도 환자는 의사의 영원한 봉일 뿐이다.”3)

이 분들이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응급을 요하는 일이 아니면 좀 참았다가 다음날 외래로 방문하는 게 옳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응급실로 달려가고, 심지어 병실에 빨리 입원하는 수단으로 응급실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통계가 나온다. “2013141개 응급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500만여명 중 24%가 비응급환자로 나타났다.”4)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전혀 급하지 않은 이들이 응급실을 차지하는 바람에 각종 사고나 뇌손상, 심장질환 등 정말 급한 환자들의 진료가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밀려드는 사람들로 응급실이 비좁아짐으로써 응급실이 각종 감염이 퍼지는 온상이 될 수 있다.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가 바로 그 경우였다. 그가 삼성병원 응급실을 찾은 527일, 그곳은 언제나처럼 환자들로 북적거렸고, 진단이 되기까지 이틀간 환자는 응급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메르스를 여러 사람에게 감염시켰다. CCTV 확인 결과 14번 환자에게 노출된 사람은 응급실 환자 675명, 의료진 등 직원 218명이었고, 이들 중 47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중에는 35번 환자로 알려진,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이 ‘메르스에 걸린 채로 재건축조합 모임에 다녀왔다’며 강도높게 비판한 삼성병원 의사도 있었다.

 

 

큰 병원 선호가 낳은 의료시장 왜곡

 

비단 응급실 이용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무조건 큰 병원을 선호한다. 일단 동네병원을 가긴 하지만, 그건 큰 병원에 가기 위해 거쳐가는 정거장일 뿐, 동네병원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높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국민의 85%, 영국은 97%가 1차 의료 제공자인 개업의를 주치의로 두고 있어서 이들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반면,5) 우리나라는 1차 병원에서 해결이 가능한 환자들 중 많은 수가 3차 병원, 특히 서울에 위치한 병원에 간다. 언젠가 KTX를 타고 부산에 가다가 옆에 앉은 남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눈이 좋지 않아 매주 한번씩 삼성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KTX 왕복 요금도 그렇지만, 서울역에 내린 뒤 택시로 삼성병원까지 가는 것도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들 것이다. 병명을 들어보니 낫는 데 좀 시간이 걸리는 건 맞지만, 그가 사는 곳에 위치한 부산대병원에 다닌다고 해서 치료효과가 크게 달라지진 않아 보였다. 어차피 치료방법은 다 비슷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큰 병원은 갈 필요가 없을까? 꼭 그런 건 아니다. 간이식이나 심장이식처럼 많은 장비와 인력이 필요한 경우라면 큰 병원에서 하는 게 낫다. 어차피 지방 병원에서는 그런 수술을 해본 경험도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밖에 아주 희귀한 병이라 서울의 큰 병원에서만 다룰 수 있다면, 당연히 그 병원을 가는 게 좋다. 하지만 신장이식처럼 보편적인 수술을 하면서 집 근처 대학병원을 놔두고 ‘삼성병원에 갈까, 서울대병원에 갈까’를 고민하는 건 괜한 짓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큰 병원에 가려고 하고, 심지어 감기에 걸린 아이를 데리고 서울대병원을 찾는 부모들도 한둘이 아니다. 낫든 낫지 않든 서울의 큰 병원에 가야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삼성병원, 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을 ‘빅 파이브’라고 하는데, 2011년 이들 병원 환자의 55.1%가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로 채워졌고, 이 비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다 나름대로 절박한 사정은 있겠지만, 그 환자들 중 자신의 지역 병원에서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이런 의료시장의 왜곡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첫째, 응급실 문제에서 지적한 것처럼 꼭 큰 병원을 가야 할 환자가 의사를 만나기까지 몇달, 혹은 몇년을 기다리다가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 둘째, 지방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중한 병을 치료할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해당 병에 대한 경험을 가질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서울의 웬만한 병원은 다 갖추고 있는 암센터로 인해 생겨난 현상이다. 과거에는 암환자를 해당 과에 입원시키고 진료를 했지만, 암센터가 생기니 왠지 환자들이 “암은 암센터에 가야 치료가 된다”는 편견을 가지게 되면서 암에 걸리면 웬만하면 빅5에 가서 치료를 받으려 한다. 그럼 지방 병원도 암센터를 지으면 될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지방 환자들이 암 치료를 위해 지방 병원을 찾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몸담은, 천안에 위치한 단국대병원에서 해마다 암센터를 짓는 문제로 토론을 벌이지만, 결론은 늘 똑같았다. “시기상조다.”

5에 가는 것이 환자 개인으로 봐서도 꼭 좋은 일은 아니다. 환자가 많다는 것은 다른 병원균에 노출될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 되니 말이다. 이번에 메르스가 비정상적으로 확산된 것도 의료시장의 왜곡이 가져온 또다른 참극이었다. 1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만 있었다고 해서 결과가 달랐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총 세곳의 병원을 거쳐 삼성병원에 입원한다. 14번 환자 역시 경기도 모 병원에서 차도가 없자 큰 병원에 가야 하니 소견서를 써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번 메르스 사태 이후 빅5의 위상이 흔들리고 정상적인 의료이용이 가능해질까? 삼성병원의 지위가 크게 추락하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 사람들의 오래된 편견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삼성병원은 다시 환자들로 들끓을 것이고, 입원하기 힘들어 응급실에서 죽치고 기다리는 병원이 되리라는 게 내 추측이다.

 

 

부적절한 언론 보도와 의료 세태

 

정부와 병원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입원하면 지인들이 문병을 가고, 가족이 간병을 하는 우리 문화도 메르스 확산에 일조했다. 유언비어도 문제였다. 삼성병원 의사, 즉 35번 환자가 메르스로 사망했다는 YTN의 오보(2015.6.11)는 사람들의 공포감을 수십배 증폭시킨 주범이었다. 메르스 사망자 대부분이 고령이거나 다른 질환을 앓고 있어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반면, 35번 환자는 30대의 젊고 건강한 의사였기 때문이다. 비록 SNS상에서 그 의사가 죽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긴 했지만, 언론사가 공식적으로 그 사실을 발표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YTN 측은 “(사망자에 대해) 크로스체크를 하지 않은 것은 메르스 국면에서 확인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정보가) 부정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6)라고 해명했는데, 그런 중대한 사실을 확인도 거치지 않고 제보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발표한 건 분명 성급했다. 다른 언론사보다 더 빨리 알리고 싶은 게 언론사의 속성이긴 하지만, 메르스 같은 중대사태에서는 정확성을 더 우선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탓이었다.

여기에 한가지가 더 있으니, 바로 환자들의 거짓말이었다. 단국대병원에 입원하게 된 한 환자는 6인실을 원했다. 원무과 직원이 그에게 물었다. “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적이 있습니까?” 환자와 그 아들은 한사코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입원을 하기 전 병원 기획실장이 다시 그를 찾아와 물었지만, 그들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6인실에 입원했다. 하지만 뭔가 찜찜했던 기획실장이 컴퓨터로 조회해본 결과 그는 메르스 환자와 접촉해 격리대상자로 분류된 이였다. 기획실장은 그 환자에게 달려가 따졌지만,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그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왜 반말이야?” 말싸움이 벌어졌고, 30대로 추정되는 아들은 더 말하기 싫어 병실을 나가는 50대 기획실장에게 소리쳤다. “우리 아버지, 메르스 음성 나오면 너 죽여버릴 거야.”

1번 환자인 남편을 간병하다 메르스에 걸린 여성(2번 환자)은 “온 국민한테 굉장히 미안하죠”라는 말과 더불어 우리나라 방역체계가 60년대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우리는 (…) 체계적인 면에서는 너무 후진국에서도 후진국 같아서 너무너무 실망스러웠어요.” 결과적으로 남편 때문에 수많은 사망자가 생겼다는 걸 감안하면,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모르겠다. 게다가 1번 환자가 사우디에 다녀왔느냐고 의료진이 물었을 때 그녀는 그 사실을 부인했고, 그로 인해 메르스 진단이 늦어진 게 아닌가? 의사는 환자의 말을 듣고 진료를 할 수밖에 없으니, 환자의 솔직한 진술은 진료에 필수적이다. 여기에 대해 그녀는 고의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열이 39~40도 막 이렇게 됐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요. 따닥따닥 얘기를 할 수가 없었어요. (…) 남편은 그냥 바레인에 있는 회사에 갔다는 것만 생각하니까.”7)

3번 환자의 아들이자 4번 환자의 남동생(10번 환자)도 마찬가지다. 네시간 동안 아버지의 병문안을 갔던 그 아들은 중국으로 출국한다. 비록 격리대상자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메르스라는 걸 진단한 의사가 중국 출장을 가지 말라고 만류했음에도 그는 듣지 않았다.8) 결국 그는 중국에서 메르스 양성 판정을 받고 격리된 채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이런 식의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할 사람들에게 격리된 채 있으라는 건 잔인한 일이지만, 접촉 사실을 숨긴 채 6인실에 입원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공항에 간다는 건 좀 너무한 게 아닐까.

 

 

결론은 ‘책’

 

사람들은 정부의 대처를 욕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번 사태에 있어서 정부가 한 일은 비난받아야 마땅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한다. 정부의 수준은 곧 그 국민의 수준이라는 것을. 국민의 의식수준이 아주 높은데 정부가 아주 한심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일은 없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정부와 국민이 합심해서 일을 크게 만든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국민수준을 올리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 각자가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이다. 그래야 정부의 말에 현혹되지 않고 냉철하게 세상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 자기 생각을 갖는 방법은 뭘까? 신문, 잡지를 보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2015년 현재 신문을 보는 가정은 다섯집에 한집 꼴에 불과하며, 성인들의 평균 독서량은 달랑 월 0.7권이다. 요즘 들어 정부의 수준이 점점 떨어진다고 느낀다면, 그건 스마트폰이 출시된 게 2010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거의 모든 이가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나라, 이런 식이라면 사회복지 대신 의료를 전공한 분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거나 보건부가 따로 독립을 한다 해도 메르스 사태 같은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스마트폰을 놓고 책을 들자. 이게 메르스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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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acob Lee, “Better Understanding on MERS Corona Virus Outbreak in Korea,” J Korean Medical Science 30 (7), 2015, 835~36면.

2) “미국에서 응급실을 다녀온 후기” http://krysaetal.blog.me/220299652725.

3) “대학병원 응급실의 미스터리” http://blog.daum.net/ohyagobo/605.

4) 「응급실에는 응급 환자만 가게 하자」, 중앙일보 사설 2015.7.1.

5) 「한국 의료보험은 ‘1등’ 전달체계는 ‘꼴등’」, 데일리메디 2010.7.15.

6) 「메르스 35번 환자 ‘사망’ 오보 YTN, 중징계 받나」, 미디어스 2015.7.1.

7) 「1차 감염자 부인 “한국 방역 60년대 수준”」, 채널A 뉴스 2015.6.5.

8) 「치료비는 중국서 부담, 10번 메르스 환자 귀국 “치료비 14억원”」, 서울신문 2015.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