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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진향 외 『개성공단 사람들』, 내일을여는책 2015
살아숨쉬는 개성공단을 엿보다
이우영 李宇榮
북한대학원대 교수, 북한미시연구소 소장 wylee@kyungnam.ac.kr
남한사회의 북한이나 통일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고 비합리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노래하지만 정부가 ‘통일대박’을 홍보해야 할 정도로 통일을 바라지 않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따지고 보면 ‘통일대박’이란 말도 상대를 적대시하기만 하는 근래의 남북관계를 생각한다면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렇다보니 엄마 등에 업혀서 탈북했던 젊은 여성이나 남한에 정착한 지 20년이 넘은 사람이 북한의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TV 프로그램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합리적인 토론이나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고 우격다짐식의 주장이나 정략적인 담론이 지배적이다. 이와 더불어 분단과 통일의 실질적 주체여야 할 남북한 주민들은 제쳐둔 채 체제와 이념 같은 거대담론에만 치우치고 있는 경향성도 통일 이야기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드는 또다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부합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과도 떨어져 있는 통일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 한 올바른 정책이나 수준있는 연구 그리고 건설적인 평화 및 통일 운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성공단 사람들』이 반가운 것은 무엇보다 부제인 ‘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기적의 공간’으로서 개성공단에 대해 남북의 ‘사람’ 이야기를 ‘현실’에 바탕을 두고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성공단 사람들』은 다소 특이한 구성의 책이다. 총론의 성격을 갖고 있는 1부는 개성공단 관련 논의 전반을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개성공단 근무 경험자와의 면접을, 그리고 3부에서는 면접을 수행한 필자들의 좌담과 개성공단 관련 에피소드를 모아놓았다.
이 가운데 김진향(金鎭香)은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을 지낸(2008~2011)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의 기획·총괄과 1부와 3부 2장의 집필을 맡았다. ‘개성공단에 대한 기본 이해: 오해와 진실’이라는 제목이 붙은 1부에서 그는 개성공단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과 개성공단이 남북관계에서 갖는 의미를 개성공단의 현황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1부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개성공단에 대한 오해와 진실’인데, 평자가 앞서 문제 삼은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통일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퍼주기’ 대북정책의 상징으로 매도되고 있는 개성공단을 추상적이고 정략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실에 바탕을 두고 꼼꼼히 살펴보면 북한보다 남한의 이익이 크다는 것, 안보적 차원에서도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북한을 공부한 학자인 동시에 대북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한 행정가, 개성공단 실무자 등을 거친 김진향의 개인적 경험이 독자들로 하여금 개성공단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관련된 쟁점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2부에서는 3인의 필자가 남한 기업 소속으로 개성공단에서 근무한 9인과 나눈 인터뷰를 통해서 이들이 개성공단 근무과정에서 겪은 여러 경험을 생동감있게 담아낸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개인적인 성향과 근무한 기업의 직종, 경력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보통의 남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냉전문화에서 살아오면서 북에 대한 공포감과 적대감을 갖게 되었으며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은 거의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따라서 ‘적지(敵地)’ 근무가 결정되면서 본인과 그 친지들이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같은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사회주의적 삶’에 익숙한 북한 노동자와, 그들을 관리하면서 자본주의의 핵심인 기업이익을 실현해야 할 이들 인터뷰 대상자들 간의 갈등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겪은 갈등에는 노동과 생산이라는 근본 가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옷차림 같은 일상의 다름에서 오는 것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 증언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과 기업, 공단 관계자들이 기울인 다양한 노력이 있었고, 여러 시행착오의 극복과 남북한 사람들의 상호이해 증진을 통해 최소한 개성공단 안에서는 평화와 공존이 실현되고 있음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개성공단 사람들』은 다음의 몇가지 점에서 중요한 책이다. 첫째, 남북관계를 이야기하는 방식의 전환이다. 추상적인 정책이나 이념 차원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현실의 처지, 특히 기업이나 사람의 차원에서도 통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다. 더 나아가 통일 문제가 체제 차원과 사람 차원에서 어떻게 관련되는지도 실감케 한다. 가령 천안함사건이 개성공단의 남북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생생하게 묘사된다. 둘째, 개성공단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돼서 개성공단이 애초 계획대로 확장되면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새롭게 개성공단에 참여하고 싶은 기업이나 이미 가동 중인 기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셋째, 남북한 교류나 통합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사람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보내고 있으며 장기간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특별한 사회문화적 ‘접촉지대’이다. 일회적이거나 단기간에 걸친 기존의 사회·문화교류와는 차원이 다르다. 평자가 속해 있는 학교와 연구소의 경우 통일과정에서 남북한 주민들의 ‘마음의 통합’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지속해왔는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렇듯 개성공단의 발전이나 남북관계의 개선 그리고 왜곡되어 있는 통일 담론의 극복에 기여할 바가 많은 책이지만 동시에 몇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1부에 담긴, 개성공단이 남북한 간 평화정착과 통일에 중요하다는 기획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기는 하지만 다소 선언적이다. 이러한 까닭에 개성공단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2부의 내용이 의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1부에서는 개괄적인 현황이나 기존 논의의 문제점을 좀더 냉철하게 서술하고, 2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했다면 그 자체로서 개성공단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을 것이다. 다음은, 어쩔 수 없는 조건이지만,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아쉬움이다. 북한 사람들이 ‘기적의 공간’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살고 있는지에 대한 비중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전략과 정책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 차원에서 개성공단을 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중요한 실험장이며 교류협력의 새로운 터전이다. 개성공단의 성공여부를 떠나 이 책이 개성공단에 대한 학문적 주목을 포함해 다양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