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도널드 그레그 『역사의 파편들』, 창비 2015
조각난 것은 그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 역사다
김준형 金峻亨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학 jhk@handong.edu
기억의 파편도 아니고 ‘역사의 파편’이라는 제목은 개인의 회고록치고는 꽤 심각하고 거대담론적이다. 그것은 도널드 그레그(Donald P. Gregg) 전 주한미국대사가 평생 금과옥조처럼 지녀온 대학시절 은사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타고난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468면) 그는 서문에서 “파란만장한 긴 세월이 지난 지금 추억의 파편들은 먼 옛날 부서진 도자기 조각처럼 남아 있다. 그 조각들은 거의 잊혀진 과거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해준다”(7면)라고 고백한다. 삶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신념과 미 외교사의 중요한 고비들에서 현장을 지켰던 경험이 교차하면서 90년 가까운 개인사가 역사로 읽혀진다.
책을 읽고 나면 제목이 말하는 ‘파편’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세가지 색깔로 다가온다. 가장 먼저, 저자는 삶을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역사라고 했지만 이 책은 역사적 함의에 대한 파헤침보다 개인적 소회나 양심적 고백으로 더 기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소설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 등장하는 자작시들은 감수성 충만한 사적 인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CIA 요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일기나 기록이 어려웠기에 오로지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해서 4년이나 걸려 회고록을 써야 했으며, CIA와 국무부, 백악관의 검열을 통과해야 했다는 사실은 책의 전개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조금은 분절적인 이유와 닿아 있을 것이다.
둘째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미국정치의 내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여전히 미국인의 시각일 수밖에 없는 파편성을 온전히 숨길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월남전이나 이란-콘트라 사건에 대한 해석은 매우 표피적이다. 미국이 범한 많은 잘못을 지적할 때도 본질은 우회한 채 부당한 편견과 지시에 대한 본인의 의로운 저항이 전면에 부각된다. 두차례의 김대중(金大中) 구명, 광주민주항쟁에서의 미국의 행위에 대한 사과, 월남전에서 거만한 점령군의 모습과는 달리 그 속에서 양심을 지키려는 행동 등 저자의 행적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자기가 빠져나온 미국이라는 국가의 실패나 악행에 대한 표피적 묘사는 조금 아쉽다. 그러나 이런 파편성을 부각시키는 일은 인간의 유한함을 간과한 가혹한 요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 주류사회에서는 크게 빛도 나지 않은 영역에서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모습을 생각하면 비판보다 감사가 앞선다.
회고록이 보여주는 마지막 파편은 출발점과는 많이 달라진 그의 인생역정이 가리키는 역설이다. 저자는 군인, 정보원, 외교관으로 무려 43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공화당 성향을 가지고 ‘아버지 부시’(G. H. W. Bush)를 최고의 보스로 평가하는 보수적 배경을 가진 인물이지만, 미국예외주의와 극우적 성향에는 평생토록 일관되게 반기를 들어온 비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생각과 활동에도 나타나는데, 그는 공직에서 퇴임한 이후 북에 대한 압박과 봉쇄를 주장하는 북한붕괴론자를 성토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불철주야 장외투쟁(?)하는 삶을 보내고 있다. 퇴임 후 여섯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피스메이커’로서 적극적인 삶을 이어가는 것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렇다면 냉전과 분단의 분절상황에서 통합을 위해 합리적인 시각으로 살아온 그를 친북·반미주의자로 비난하는 미국과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오히려 파편적이라고 해야 맞다.
한국과 미국을 모두 사랑하면서도, 남북대결의 비극 뒤에는 늘 미국이 있다는 그의 고백에 진정성을 느끼는 한편, 미국 공직자 출신에게까지 반미와 종북의 덫을 씌우는 오늘날 아픈 우리 현실에 대해서는 좌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책에서나 실제 삶에서나 끝까지 굽힘이 없다. 미국 대외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악마화 전략’을 들고 있으며, 이것을 북한, 베트남, 이라크,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외교실패 원인이라고 규정한다. 미국이 가진 엄청난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낭비하게 만들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곤경에 몰아넣게 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에 대해 왜 그렇게도 혹독하게 대하는지, 왜 굳이 ‘악의 축’ 같은 심한 용어를 사용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그는 말한다.
바탕이 보수주의자인 그의 눈에도 미국의 선악이분법은 1950년대의 매카시즘에서 크게 탈피하지 못한 걸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것이 작금에 벌어지는 한국의 이념적 마녀사냥과 만나 배제와 대결의 이중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조각난 것은 그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라는 것이 점점 또렷해진다. 남북한의 화합을 위해 역사적 진실과 도덕적 양심을 지키려 애쓴 인물이 맞닥뜨린 우리 역사와 현실이 조각난 것이다.
저자에게 120퍼센트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공직을 떠나 야인으로 돌아온 후의 삶을 그린 제5부에서 밝힌 한미관계에 대한 소신이 그렇다. “대사로 일할 때부터 나의 목표는 한미관계를 군사동맹 관계에서 정치적·경제적 동반자 관계로 변화시키는 일이었다.”(390면) 그렇다! 우리는 이 두가지, 한미동맹과 한미관계를 분리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적어도 냉전이 붕괴된 이후에는 이미 그렇게 했어야 마땅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이 둘을 분리하는 데 익숙하지도 않고, 두려움마저 가지고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다시 격동의 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의 아시아재균형 전략이 평화공존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을 묶어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식으로 흐르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돌릴 위험이 있다. 여전히 미국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전략적 자산이지만, 군사동맹의 절대적 신화는 벗어던져야 한다. 한미관계는 깊어져야 하지만 한미관계를 규정짓는 군비경쟁의 지배적 경향은 약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신냉전이 아닌 화해와 평화의 한반도로 가는 연착륙을 의미한다. 저자가 회고록의 마무리로 삼은 문장이 귓전에 맴돈다.
“한반도의 분단은 끝낼 수 있고 또 반드시 끝내야 하는 비극이다. 그것은 서로 계속하고 있는 악마화가 대화로 바뀌고 화해가 이뤄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46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