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현장

 

촛불이 바꾼 것과 바꿔야 할 것

 

 

박원순 朴元淳

서울시장. 저서로 『세기의 재판』 등이 있음. mayor.seoul.go.kr

 

* 이 글은 2017년 4월 20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세교연구소 공개심포지엄 ‘촛불과 한국사회: 광장의 진화를 위하여’의 기조발제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1. 촛불, 무엇을 바꿨나?

 

민주주의가 위태롭다. 세계적으로 기존 질서에 대한 불신이 높아가는 가운데 민주주의도 역시 도전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이번 촛불은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로서, 대한민국 정치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민주주의가 저절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온 사회의 성찰과 행동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정부가 탄생한 지금, 다시 촛불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선 시민들이 헌법 제1조,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의 기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점이 촛불의 큰 의미다.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헌법 1조를 외치고, 그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있다. 이렇게 온 국민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외우고 외친 적이 있던가. 문자로만 있던 헌법 제1조, 장식물에 불과하던 헌법 제1조가 그야말로 광장에 살아나온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결정문에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며 대통령의 헌법 위배 행위를 탄핵의 중대한 사유로 삼은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번에 시민들이 헌법이라는 추상적 가치가 결국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고, 자신이 곧 권력의 원천임을 깨닫게 된 것은 촛불의 가장 큰 성과라 하겠다.

두번째, 촛불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평화적 집회’였다.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대규모 시위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나 사고가 없었다. 한때 탄핵 지지파와 반대파 시위 군중이 충돌하지 않을까 위기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충돌은 없었다. 오히려 광장에 촛불과 태극기가 나란히 있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보여준 용기와 열정, 우애와 연대는 놀라운 것이었다. 분노와 열망이 동시에 일렁거렸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도 우애가 넘쳤다. 각자도생으로 고단한 개인들, 층간소음 문제로 짜증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화적 집회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이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으로 봐야 할 것이다. 권위적인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평화적 힘이 훨씬 강력하다는 역설을 믿은 결과이다.

세번째, 촛불은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했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국민의 공적신뢰를 배신하면 그 권력을 회수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는 헌법에 탄핵제도를 명시하고 있다. 촛불은 탄핵에 미온적인 정치인들을 움직였고, 국회의 탄핵안 발의와 결의, 헌법재판소의 인용을 이끌어냈다. 시민들은 정치의 제도와 헌법기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히 활용했다.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위기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했다. 민주주의는 목표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하다. 이번 촛불집회의 성공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더없이 소중하다. 시민들이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탄핵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이번 촛불은 ‘촛불시민혁명’으로 칭하는 것이 마땅하다.

촛불은 ‘시민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시민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시민이 시민주권을 행사하는 정치적 주체로 서고, 정치적 행동으로 정치권력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정치적 운명에 공동책임을 지는 것이다. 시민민주주의는 정당 중심의 대의제라는 간접민주주의의 결점을 보완하고 대의제를 성숙시키는 발전된 민주주의 형태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린 역사를 지닌 나라다. 올해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민주화의 성과와 한계를 경험한 촛불시민들은 권위주의로 회귀한 정권에서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새로운 시민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나 역시 그 광장에 있었다. 하루는 은평구에서 식당일을 하신다는 아주머니의 연설 아닌 연설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식당일은 토요일이면 가장 바쁘지만 이런 나라를 아이에게 물려줄 수 없어서 나오셨다고 했다. 그 어떤 정치인의 연설보다도 훌륭했다. 정확한 문제의식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먹고사니즘’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삶, 그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함과 위트는 나를 포함한 동료 시민들을 감동시켰다. 광장에서 지역과 계층, 연령을 망라한 다양한 시민들의 출현을 볼 수 있었다. 실로 위대한 ‘시민’의 탄생이었다.

시민들은 위대하다. 시민들이 정답이다. 나는 누구보다 시민의 힘을 믿고 시민의 힘에 의지하여 시민운동과 정치를 해왔다.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민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시민저항권’을 포함한 시민권을 보장하는 광장지킴이였다.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상,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통해 기존 권력을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권력의 남용이나 오용, 부정부패 등으로 위임한 권력에 대한 신뢰관계가 깨졌을 때 시민들은 권력에 저항하고, 위임한 권력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저항권은 ‘시민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이다.

광장은 시민의 것이다. 서울시는 시민저항권을 보장하고, 광장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행정적 지원을 가동했다. 우선 물대포를 공권력 남용으로 보고 물대포에 필요한 소방수를 공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1 대규모 집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철저하게 대비하고,2 광장 주변의 화장실 개방,3 지하철 연장 등 다양한 편의를 제공했다. 집회가 끝나고 광장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매주 작전을 치르듯 청소했다.4 물론 그 어떤 준비보다 빛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이었다. 촛불은 ‘새로운 시민’이다. ‘시민권력’이 탄생한 광장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었다. 광화문광장은 시민들에 의해 재해석되었다. 서울시는 새로운 정부와 함께 광화문광장을 역사와 문화, 또 ‘시민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광장으로 재구조화할 계획이다.

 

 

2. 촛불, 무엇을 바꿀 것인가?

 

결국 국민들은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러나 끝난 것이 아니다. 광장의 요구는 탄핵과 단순한 정권교체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졌거나 지연되었던 과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정치, 재벌, 검찰, 언론, 교육, 선거제도, 지방자치 등 수많은 개혁과제가 제기되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질서였던 권위주의, 가부장적 문화, 정경유착, 연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도 표출되었다. 분권과 자치, 인권, 성평등, 환경, 그리고 불평등 해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이들 과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당장 착수해야 하는 정치개혁뿐만 아니라 경제개혁, 사회문화 전반적인 개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혁신과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개혁이 우선이다. 촛불은 정치권 전체에 대해 경고했다. 민의를 대변하고 정부의 실정을 견제하고 개선해야 할 주체인 정치에 책임을 묻고 있다. 정치개혁을 통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주요 제도를 개선하고,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대의제 정당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제는 바꿔야 한다. 우선 기득권 중심의 승자독식 선거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다양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도록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법 개혁이 필수적이다.

청소년들의 참정권 확대도 중요하다. 이번 촛불광장에서 청소년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유권자는 아니지만 성숙한 시민이었다. ‘18세 선거권’은 단일이슈에 사회의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있는 개혁법안임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통과시키지 못했다. 국민들은 대통령 선거일도 바꾸는데, 정치는 도대체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

일각에서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개헌은 가장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나 역시 새 시대에 맞는 개헌은 필요하다고 보며, 개인적으로는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개헌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개헌 과정에도 참여하고 숙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망 또한 강렬하다. 촛불의 분노에는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특히 소득불평등이 심각하다. 이번 대통령 탄핵은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박정희 신화, 박정희 향수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경제성장에 대한 환상 때문이다. 우리는 단기간에 고도의 산업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정경유착, 부정부패, 양극화, 사회갈등 등 오늘날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문제들을 용인했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는 인권과 노동은 탄압되고, 환경은 파괴되고, 공동체와 다양성의 가치는 뒷전이어도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그 결과 재벌대기업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가난해졌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촛불의 국민적 분노는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불평등 이슈는 어디 갔는가?

나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경제사회 체제로 ‘위코노믹스’(WEconomics)5를 제안한다. 위코노믹스는 모두의,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경제를 말한다. 위코노믹스는 재벌대기업 중심에서 탈피하여 중소기업과 노동자 등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경제를 말한다. 위코노믹스는 경제뿐만 아니라 노동, 복지, 환경, 인권, 다양성, 공동체,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들이 동등하게 보장되는 것을 말한다. 위코노믹스는 선성장 후분배, 낙수효과와 같은 낡은 질서의 폐기를 의미한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고, 시민 누구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경제민주화 정책, 노동이사제, 반값등록금, 청년수당 등 한국형 기본소득, 원전하나줄이기 등이 위코노믹스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정책들이다. 이미 서울시는 서울의 혁신과 성과를 바탕으로 한 정책을 새로운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앞으로도 서울시의 혁신실험은 계속될 것이며, 그 혁신의 결과는 새로운 정부의 밑거름으로 제공될 것이다. 앞으로 지방정부가 다양한 정책적 실험을 해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정부는 지방정부에 권한과 예산을 이양하길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일상의 촛불’을 켜자고 제안한다. 일상의 민주주의가 단단하지 않으면 그 어떤 제도도 사상누각이다. 우리나라에선 지역의 생활정치보다 거대담론을 앞세운 중앙정치에 더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민주주의는 추상적이고 낭만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선거 때만 하는 민주주의도 곤란하다. 이번 촛불광장의 에너지가 시민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정치적 시민으로 우뚝 설 때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한국정치의 위기 순간마다 늘 혁명적 광장이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항쟁과 혁명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것은 일상의 광장, 일상의 정치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제도만큼이나 민주주의자를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

2004년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초청으로 3개월간 독일을 여행한 적이 있다. 196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68혁명’ 세대가 문화예술운동, 국제평화운동, 심지어 종자주권운동 등에 참여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독일 녹색당 역시 ‘68세대’가 주축이 돼 만들었다. 68혁명은 지금까지 사회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며 다양한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 촛불은 여러 면에서 68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탈중심적인 성격이 뚜렷했다. 운동의 지도부나 배후는 없었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나오거나 혼자 나와서 홀로 나온 사람과 만나 연대를 이루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번 촛불시민들은 대규모 사회운동의 경험이 없던 세대와 한번도 집회에 참가해보지 않은 개인이 대다수였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연령층을 포괄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다원화된 시민들의 자발적인 조직화가 돋보였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활용한 소통과 연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분위기만 봤을 땐 시위라기보다 축제에 가까웠다. 깃발 하나에도 풍자와 유머가 넘쳤다.

촛불을 든 이유에서부터 촛불의 형식까지 그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시민, 새로운 민주주의자가 탄생했다. 단순히 탄핵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탈권위주의, 정경유착 해체, 탈핵, 분권주의, 일상적 민주주의 등 다양한 과제로 분화되고 사회 전반의 변화를 열망하는 것도 68혁명과 닮았다. 이번 촛불은 정치개혁뿐만 아니라 경제·사회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촛불이 일상의 민주주의자가 되어 다양한 의제를 재생산해내고, 대안적 삶을 실험하는 생활정치를 통해 정치적 주체로 우뚝 선다면 새로운 정치는 가능하다.

나는 평소 ‘시민의 힘, 시민력(市民力)6’을 강조해왔다. 위대한 시민이 위대한 국가,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시민들이 권력을 감시하는 수동성을 탈피해 정치를 통해 적극적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인문적으로 성숙한 ‘시민’의 토대가 정치도, 경제도 완성한다. 그 모든 것이 시민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시 행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생활정치 학교’다. 서울시는 시민과의 소통과 참여를 넘어 시민사회와 협치하는 ‘플랫폼 정부’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평생교육과 시민대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에게 자신의 일상과 정치가 연결되는 지점을 제공하고, 시민들이 제도적 공간에서도 적극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행정은 관료주의와 권위주의가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었고, 관료들은 시민을 대상화하고 시민참여를 행정의 양념 정도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지금 서울시 공무원들도 소통과 협치의 철학을 이해하고, 시민사회와의 협치 거버넌스를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래 걸리더라도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가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게 해야 혁신할 수 있다. 물론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서울시 행정이 ‘플랫폼 정부’로 전환되었고, 그 거버넌스가 시민민주주의, 생활정치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3.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번 광장에서 탄생한 새로운 시민을 어떻게 새로운 정치주체로 세울 것인가? 새로운 정치주체와 함께 어떻게 정치를 혁신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것인가? 이것이 광장에서 촛불과 함께한 나의 고민이었고,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하다.

우선 다음 정부에서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필수적이다.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개혁과제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 나는 ‘촛불공동정부’7를 주장해왔다. 촛불공동정부는 정당 간 연정과 시민사회와의 협치라는 양 날개로 운영된다. 차기 정부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소야대 국회다. 국민들의 요구와 열망은 다양할 수밖에 없고, 숙의와 제도화 과정을 요한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정권교체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는 낭만적 믿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어떤 정권교체인지가 중요하다. 촛불공동정부는 단순한 통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배경과 세력 사이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의 개혁과제를 중심으로 연정과 협치의 장으로 진화해야 한다.

정당혁신을 통한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 이번에 정당을 중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결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기존의 정당이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당은 정당혁신을 통해서 촛불시민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 이들이 일상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제도정치가 시민사회와 분리될 때 늘 문제가 생겼다. 시민사회와 제도정치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또 유기적 관계를 맺어야 정치개혁이 가능하다. 정당도 정부도 시민사회와의 협치가 중요하고, 또 새로운 시민들이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는 제도, 그리고 새로운 정치세력화도 중요한 과제이다.

촛불시민은 ‘시민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이제 정치의 시간이다. 정치는 광장에서 표출된 촛불시민의 분노와 열망을 구체적 변화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정치가 스스로를 과감하게 혁신하고, 사회경제개혁 등 국가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지 못한다면 정치의 설 자리가 없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온 사회의 통합역량을 결집해야 촛불이 남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촛불광장 지킴이’를 넘어 ‘촛불시민 지킴이’가 되고자 한다.

촛불의 분노와 열망이 휘발되지 않도록 일상의 정치로 살려내는 것,

촛불시민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 그 힘으로 정당정치의 혁신을 견인하는 것,

이것이 광장에서 잉태한 시민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자 혁신정치를 꽃피우는 길이라고 믿는다.

 

 

--

  1. 2016년 10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서울시가 소화전을 통해 경찰 살수차와 물대포에 물을 공급해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서울시 산하기관인 소방재난본부가 소화전에서 쓰는 물은 화재 진압을 위한 건데, 지금 데모 진압을 위해서 그 물을 쓰게 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후 소방수 공급은 중단되었다.
  2. 서울시는 2016년 10월 첫 촛불집회 이후 집회규모가 점점 더 커지자 3차 집회부터 광화문광장 인근에 시와 자치구 등의 공무원을 배치해 시민 안전과 편의를 지원했다. 시의 집계에 따르면 3차 집회부터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다음날인 3월 11일 20차 집회까지 현장에 직원 1만 5천여명(연인원)을 투입했다. 같은 기간 지원한 구급차, 소방차, 청소차량 등 각종 장비도 1천대가 넘고, 지하철역 인근 등에서 안전관리에 투입된 인원 총 6300명, 집회 중 있을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비해 대기한 구급대원과 소방관 등도 4500명에 달한다.
  3.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청계광장 인근에 이동화장실을 10여개 설치하고, 광화문광장 인근 건물 관계자들을 설득해 총 200개가 넘는 화장실을 확보해 시민에게 개방했다.
  4. 집회가 끝난 뒤 광장과 거리를 청소하기 위해 투입한 환경미화원과 직원, 자원봉사자는 4천명에 육박한다. 청소차량도 500대 넘게 동원했다.
  5. 우리 모두를 의미하는 ‘WE’와 경제를 의미하는 ‘Economics’를 결합한 조어로 2016년 7월 8일 동남아 순방시 태국 방콕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UN ESCAP) 강연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후 경제, 노동, 복지, 환경 정책을 아우르는 필자의 경제사회 비전으로 발전했다.
  6. 시민력은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일본의 싱크탱크들이 일본인들이 가진 정신적·기술적 지식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만든 개념이다. 필자는 2016년 3월 3일,‘서울시 평생학습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시민의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시민력’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시민력 지수를 만들어 시민교육을 향상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7. 필자는 2017년 1월 10일, 탄핵 국면에서 새롭게 탄생할 차기 정부는 민주세력의 연대와 협력을 통한 ‘촛불공동정부’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원순

저자의 다른 계간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