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이성부 李盛夫

1942년 광주 출생.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우리들의 양식』 『백제행』 『전야』 『야간산행』 『지리산』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도둑산길』 등이 있음.

 

 

 

삼촌

 

 

나 서너살 적 흙담벼락 아래에 쪼그려앉아

낫으로 팽이를 깎아 돌리며 놀아주었던

삼촌이 있었다 어른 같은 중학생이었다

 

언제부턴가 삼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앞집 판자 울타리 너머로 주먹밥을 넘겨주시던 할머니와

울타리 너머에서 주먹밥을 받는 낯익은 두손을 보았다

할머니는 그 손이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북동 굴다리에서 맞닥뜨린 순사를 때려눕히고

피해다니는 것이라고

어른들 틈에서 엿들었다

 

어린 나의 안에서 태어난 그리움이

먼 하늘가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해방이 됐다는 어느날 저녁

집에 있던 삼촌이 끝내 붙잡혀갔다

오라에 묶이어 가는 모습을 먼발치로 보면서

나는 담벼락으로 돌아와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나의 그리움은 크게 다쳐 피를 흘렸다

그러고도 무럭무럭 자라 먼 하늘가를 기웃거렸다

 

육이오가 터지고

개성형무소에 갇혀 있던 삼촌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북으로 갔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까지도 삼촌은 소식이 없다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했으나

그리움은 칠십이 지나서도 자랄 대로 자라

먼 하늘가 언저리에

가슴 뛰는 산 굽이굽이로 달려갔다

 

 

 

함구(緘口)

 

 

오래 산에 다니다 보니

높이 올라 먼 데를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오래 높은 데 오르다 보니

나는 자꾸 낮은 데만 들여다보고

내가 더 낮게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산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매사를 깊고 넓게 생각하며

낮은 데로만 흐르는 물처럼

맑게 살아라 하고 산이 가르쳤습니다

비바람 눈보라를 산에서 만나면

그것을 뚫고 나아가는 것이 내 버릇이었는데

어느사이 그것들을 피해 내려오거나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올라갈 때가 많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낮은 데가 더 잘 보이고

내가 더 고요해진다는 것을 갈수록 알겠습니다

나도 한마리 미물에 지나지 않으므로

입을 다물어 나의 고요함도 산에 보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