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황석영 『수인』(전2권), 문학동네 2017

감옥 안의 우리에서, 감옥 너머의 우리로

 

 

박윤영 朴玧映

문학평론가 yuyo84@naver.com

 

 

177_439정현종은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방문객」 부분)라고 썼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황석영(黃晳暎)의 자전 『수인』은 ‘사람이 온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게 하는 만년의 수작이다. 그의 삶에는 엄혹한 시절에 대한 처절한 기록과 그 시간을 함께 나눈 사람들에 대한 기억, 존재론적 고독, 작가로서의 사명감, 인간적인 한계 등이 깊게 아로새겨져 있다. 이것은 자전의 제목인 ‘수인(囚人)’이 암시하듯,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감옥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래서 수없이 떠났지만 결국은 “모국어가 있는 곳”(146면)으로 돌아와 순순히 갇힐 수밖에 없었던 한 사내의 어쩔 수 없는 운명과 관련된다.

흔히 자서전이라고도 하는 이런 형태의 문학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여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추려 시간순서대로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인』은 감옥을 중심으로 과거의 사건들이 교차서술되는 방식을 택한다. 즉, 옥중일기라 할 수 있는 「감옥」 1~6이 서사의 중심이 되며, 황석영의 유년부터 방북까지가 자유롭게 회상되는 것이다. 감옥에서 황석영이 떠올린 것은 감옥 너머의 더 큰 감옥과, 그곳에서 스러져간 사람들, 그리고 아직 갇혀 있는 또다른 수인들이다. 황석영은 『수인』에서 한국전쟁과 분단, 냉전체제, 독재, 산업화의 모순 등 자기 삶의 궤적을 따라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깊이있게 천착하며 그것들을 우리의 행동과 사유를 제약하는 거대한 감옥으로 인식한다.

『수인』에서 서사의 중심에 놓여 있는 ‘방북’은 그 자체로 탈주에의 욕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방북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커다란 죄가 된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분단’과 ‘냉전체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억압하고 분열시키는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며,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문화 교류의 전령사”가 되어 “객관적인 ‘북한 방문기’를 써보고 싶다는”(1166면) 자칭 “평화주의자”(116면)인 황석영의 방북 의도를 이해해볼 수 있다. ‘북한’이라는 내 안의 오래된 타자는 『수인』에서 비로소 그 구체적인 형체를 드러낸다. 김일성의 육성, 평양 시내의 모습,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과 내면 풍경 등에 대한 기록은 북한을 인간적인 욕망과 삶이 부재하는 공간으로만 인식해왔던 우리의 견고한 집단 무의식에 균열을 일으킨다.

『수인』에서 황석영은 유독 몽상과 혁명 사이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 자신이 그들과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의 말처럼, “얼마나 많은 목숨이 그렇게 냉전의 경계선 위에서 사라져갔을까.”(114면) 방북 과정에서 듣게 된 백석,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등 월북 작가들의 후일담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친다. 그저 “친구 김순남을 만나고 싶었고 우리 민족의 고대 벽화를 보고 싶었”(139면)던 윤이상은 방북 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영원히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만다. 반평생을 망명자로 살아가야만 했던 윤이상의 신산한 삶을 어떻게 쉽게 가늠할 수 있겠는가.

『수인』에서 황석영의 삶은 그야말로 ‘역마’와 ‘반골기질’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로서의 치열한 자의식과 결합되어 한국현대문학사를 빛내는 문제적 작품들을 창작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즉, 그의 방랑벽과 기질적 특성은 당대의 민중을 고스란히 소설 속으로 옮겨오는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노동자로서 현장 문화운동에 매진했던 시절의 경험이 「삼포 가는 길」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거나, 베트남전쟁 참전의 체험이 「탑」이나 『무기의 그늘』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는 황석영의 술회는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아껴온 독자들에게 더없이 소중하게 읽힌다. 방북 과정에서 글쓰기와 현장활동을 병행하며 10여년 만에 완성한 『장길산』에 대한 작가의 자부가 전혀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또한 그와 그의 동료들이 묵묵히 걸었던 그 길이 곧 소설로 화한 까닭이다. 이처럼 황석영의 소설은 그의 삶 자체이자, 당대에 대한 절박한 문제제기였다는 점에서 소설적 진실성과 문학적 진정성을 온전히 담보하고 있다.

『수인』은 하나의 이야기로서 엄청난 흡인력과 흥미진진함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사의 문제적 장면들을 다면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마치 타임슬립(time slip)을 한 듯 생생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그가 그려낸 과거에는 몽상과 희망, 낭만과 열정이 넘실댄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것들이 사실은 극단적 억압과 투쟁, 가난과 죽음의 또다른 모습이었음을. 그러하기에 『수인』이 주는 이야기 읽기/듣기로서의 즐거움은 곧 걷잡을 수 없는 먹먹함과 슬픔으로 바뀌어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의 아픔에 공명하게 한다.

황석영은 『수인』의 「에필로그」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장면을 지켜보며 자신이 한평생을 바쳐 싸운 개발독재시대의 마지막을 예감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민주화와 통일은 한몸”(1360면)이며, 진정한 “분단의 극복”은 “남한의 올바른 민주주의의 실현에 의해서 획득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줄곧 밝혀왔다.(1227면) 그러하기에 거리를 가득 채운 “새로운 국민”(2440면)과 수만개의 촛불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수인』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우리 시대의 ‘굴레’에 대해 생각해본다. 너와 나를 속박하는 분단이라는 굴레와, 지구의 또다른 어느 곳에 씌워진 그들의 굴레를……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속박할 수밖에 없었던 황석영과 그의 시대를 경유하며 이 세상 어디에선가 ‘무엇’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누군가를 떠올려보는 여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