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심사평
제15회 창비신인시인상에는 751명의 작품이 접수되었다. 예심과정에서 엇비슷한 소재와 형식을 가진 시들이 눈에 띄었다. 많은 시에서 언니와 동생의 삶을 이야기했으나 따분했다. 쇄골, 어금니, 구름, 외투, 그림자, 바위, 책, 문장, 일기를 비유했으나 짐작 가능했다. 독백을 남발해서 화자의 속마음을 쉽게 내비쳤고, 이유 없이 활자를 진하게 하거나 변형했다. 문장과 이미지는 모호했다. 어느정도 수준있는 작품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기에 더욱 아쉬웠다.
심사자들은 이번 심사에서 첫번째 독자로서 작품을 읽었다. 울림을 주는 시가 적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김민구 김소현 김정배 김지연 김지윤 문희정의 시를 모아 이야기를 나눴다.
김민구의 시는 단단하고 선명하지만 식상한 표현이 눈에 띄었다. 「쓰레기 구별법」은 함께 응모한 작품에 비해 투박하지만 도발적이었다. 하지만 응모한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제하지 못하거나, 실패한 표현에 공을 들였다. 시적 표현, 묘사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말을 줄이면 개성을 살린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정배의 「입덧」은 제 삶을 육화시킨 진정성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시는 이렇게 끝내야 한다’는 식의 마무리는 긴장감을 떨어트렸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줘서 안타까웠다. “이윽고 이름을 물려받고/철지난 속설과 가장 뜨거웠던 이데올로기”를 오가는, 삶을 구체적으로 담은 시가 가장 큰 매력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문희정이 응모한 시들은 고른 수준을 유지했다. 행간의 여백, 절제된 언어로 느낌있는 이미지를 능숙하게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느낌뿐이라는 것, 화자의 위치가 모호하다는 것, 이미지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이다. 모호함만으로는 시가 완성될 수 없다. 설득력있는 전개가 필요하다.
김소현, 김지연, 김지윤의 시를 최종심에 올렸다. 김소현의 「신앙의 순종적 계보」 외 4편은 세련미를 갖췄다. 시의 형태가, 시어 선택이, 완성도가 기성시인 못지않게 세공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재료를 같은 모습으로 세공하다보니 재료의 색깔과 이름은 사라지고 겉모습만 남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종결어미를 바꿔가며 문장을 완성하는 습관은 식상해 보이거나 기성시를 떠오르게 할 수 있다.
김지연의 「흰 개」 외 5편은 리듬감과 세계관이 좋았다. 김지연의 화자는 시의 세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자가 묘사하는 세상은 아름다워 독자의 마음을 선하게 만든다. 「흰 개」는 그의 시가 지향하는 선한 세계와 그 리듬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시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어들이 닮았다는 점, 응모작 전체적으로 서정적인 세계에만 머물러 있어, 갈등이 없는 세계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김지윤을 당선자로 뽑는다. 그의 시는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에 비해 소탈하다. 그래서 천천히 마음을 움직이는 개성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기계적으로 학습된 수사에 기대지 않고 문장의 흐름 위에 자신의 정념을 위치시키는 방법론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이것이 반복된 학습의 결과라면 그의 시는 시적 기술을 극복한 사례이며, 반대로 절실한 표현의 효과라면 그의 정서는 자체로 시적인 결을 이룬다고 할 만하다. 요컨대 그의 시가 거대하거나 완벽하거나 새롭기 때문에 심사자들이 그의 시를 꼽은 것은 아니다. 시적 전략과 과잉과 포즈가 만연한 시단에 비추어, 그가 보여주는 직정과 낮은 어조와 소박한 도달이 좋았다. 당선자는 이 점에 대한 반성과 자부를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독자가 없으면 시는 존재할 수 없다. 시를 두고 벌어지는 수많은 논의 속에서 가끔 잊게 되는 말이다. 심사자들은 첫 독자로서 작품에 감동하기를 원했다. 아쉽게 당선하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는 격려를,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건넨다.
| 김소연 백상웅 신용목 |
시 | 수상소감
김지윤
1985년생. 대진대 국문과 졸업.
주로 업무시간에 까페에 앉아 시를 씁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땡땡이를 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는 대신 시를 쓰고, 남들보다 오래 점심시간을 갖습니다. 직장 상사들은 이런 제가 언제나 불만이고, 저는 이 시대가 불만입니다. 내 불만이 더 크니까 좀더 욕을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시절 글을 잘 못 썼습니다. 문장 하나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다고 자주 혼났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지금도 글을 잘 못 씁니다. 원래 변태적 성향이 있는 걸 알았지만 요즘은 혼나는 게 더 즐겁습니다.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에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란 걸 압니다.
모두 공복에 쓴 문장들입니다. 변변한 영양분 없이도 죽지 않고 자라줬습니다. 고마운 마음만큼 불안도 큽니다. 가지에 걸린 구름에도 나무가 부러질 것 같습니다.
심약하고 둔한 아이. 저를 닮아서 그렇습니다. 강한 척 허세 부리고 싶지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심약하고 둔해서 포기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서범석 선생님, 선생님께 시를 배우지 않았다면 저는 이 막막한 어둠이 어둠인 줄도 모르고 지냈을 겁니다. 선생님께 언제나 감사합니다.
화요일 저녁마다 함께 시를 쓰는 주현이, 주원이, 그리고 우리의 선생님이자 자랑인 우성이 형. 지금 이 시간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던 형의 위로가 없었다면 이 시간은 오지 않았을 거란 걸 압니다.
현이 형, 형 말대로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동혁아, 나 함께 시인이 되자던 약속 지켰어. 그러니까 너도 더 건강해야 돼.
저와 함께 시를 써준 엄마, 아빠, 친구들 그리고 ‘틈’ 사람들 모두 감사합니다. 홀로 쓴 시는 없습니다. 시인이 뭔지는 몰라도 네 꿈이기에 응원한다던 그 말이 저를 지탱해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창비에 감사드립니다.
소설 | 심사평
올해 18회를 맞은 창비신인소설상에는 총 866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올해도 응모작들의 주제와 형식의 경향은 매우 다채로웠다.
개인의 일상을 세밀하게 묘파한 작품에서부터 시사적인 소재를 다양하게 변주한 작품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장르적인 실험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종, 부재, 결핍의 상징을 개인이 당면한 사회적 트라우마의 문제로 천착하려는 시도가 많았던 점도 기억할 만하다. 반면에 특정한 상징과 반전구도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지 못한 작품도 여전히 많아서 아쉬움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제를 성찰하는 작가의 고유하고 개성적인 시각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모두 네편이다.
「트리 오브 소울」은 가족관계의 상처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힘겨워하는 위태롭고 연약한 청춘남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간 작품이다. 세대적인 감수성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방식이 좋았으나 가족이라는 존재를 투시하는 시선이 심화되지 못하고 여러가지 에피소드의 나열에 휘둘리는 점이 아쉬웠다. 주제를 담는 상징으로 놓인 나무나 집의 공간이 주요 서사와 얽히지 못한 채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약점이다.
「천국에서 7분」은 감각적이고 매끄러운 문체와 독특한 우울의 정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 역시 사회에 쉽게 안착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불안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폐쇄된 공간에서 인물들이 욕망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좌절과 소외의 감정을 분위기 묘사 이상으로 밀고 나가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선량한 이웃」은 지식정보의 상상력을 가동하여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에 대한 비판적인 사유를 드러내려고 한 작품이다. 작품의 의욕적인 시도에 비하여 층간소음이라는 주제 자체에 접근하는 관점이 새롭지 않으며 주제를 이끌고 가는 서술의 방식 역시 설명적으로 나열되고 있다는 아쉬움이 컸다.
「젠가의 시간」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모두 흔쾌히 합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일상의 가라앉은 풍경 아래서 치열하게 진행되는 욕망과의 처절한 사투를 주시하는, 신인답지 않은 성숙한 관찰의 시선에 놀라고 감탄했다. 이 작품이 다루는 노년의 욕망이라든지 육체와 성에 대한 사유는 최근 소설에서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자극적인 묘사나 극적 결말의 작위성으로 흐를 수 있는 도발적인 소재를 이렇게 세심하게 조율하여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들여다보는 깊은 성찰로 이끌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소설에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강렬하게 환기되는 생명과 육체의 황홀한 감각은 도덕과 윤리의 금기에 정면으로 맞부딪치면서 인간의 존재이유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결국 문학적 상상력이 궁극적으로 대결하는 것은 불가해한 욕망의 심연을 지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가 아닌가. 이제 첫 발걸음을 딛는 신인이 이 본질적인 질문을 화두로 삼아 예리하고 끈질긴 서사적 탐색을 보여준 것에 대해 더없는 위로와 힘을 얻는다. 앞으로도 두려움 없이 더 깊은 곳에 상상력의 추를 드리우고 정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관심과 정성을 실어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응모자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 백지연 윤고은 전수찬 황정아 |
소설 | 수상소감
김수
1981년생.
감정이 사라졌던 얼마간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봄이 두번 지나는 동안 주머니에 카드를 넣고 다녔다. 감정에 대한 단어가 적힌 카드였다. 나는 어느 친절한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받았고, 그는 하루에 한번, 카드를 훑어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기쁨, 슬픔, 괴로움, 외로움…… 멋쩍다 생각하면서도 그의 조언대로 했다. 시간이 지난 후, 방바닥에 깔린 카드를 우두커니 바라보는데 어떤 감정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한장 집어들었다. 부끄러움이란 단어가 적힌 카드였다. 서른이 지나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아가는 첫걸음이었다.
감정에도 물을 주고 말을 걸어야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어떤 감정은 스스로 재갈을 물고 침묵 속으로 빠진다. 그 입을 열게 하는 건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는 것과 비슷하다. 사랑과 수치심에 대해 생각했다. 쓰는 동안 그 감정을 잃어버릴까봐 겁이 났다. 소설은 덩어리진 어떤 감정을 조심스럽게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서툴고 미숙한 나를 자책했던 순간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을 통해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 중 하나였다. 카드를 버렸다. 사람과 사물에 깃든 감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우리의 표정이 비슷해질 때마다, 내가 아직 무언가를 느낄 수 있고, 하나의 감정을 우리가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소설을 쓰면서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미지근해지지 않도록 자극을 준 양재역 할리스 멤버들. 늘 그리운, 서로의 놀이터였던 수유 동인들. 오래전 만화보다 소설을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해주신 최인석 선생님, 걱정과 격려의 문자를 보내주신 이만교 선생님, 소심한 제 어깨를 무덤덤하게 토닥여주신 강영숙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성실히, 열심히 쓰는 것으로 보답하겠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아끼고 오래 만져두었던 감정을 꺼낸다. 고맙다.
평론 | 심사평
값진 독서경험을 선사하는 응모작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심사는 응모작들 간의 우열을 가리는 일의 어려움에 앞서 동시대 한국문학에 관한 심도있는 토론에 참여한 듯한 보람을 안겨주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을 현재의 맥락에서 재평가하려는 시도에서부터 새로운 감수성으로 무장한 젊은 시인, 작가 들의 작품세계를 첨예하게 의미화하려는 기획까지 관심사도 다양했다. 그러나 최근 비평의 몇가지 문제점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글도 적지 않았다. 대상이 된 작가와 작품을 비평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근본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보다 작품이 이뤄놓은 성취를 친절히 뒤따르는 데만 급급한 이른바 작품해설 류나, 외국이론의 틀에 작품을 꿰어 맞추는 이론편향이 여러 재능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기대와 우려 속에서 선자들은 1차 토론을 거쳐 4편의 글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박성태의 「불안의 세계, 심연의 가치: 편혜영론」, 최진석의 「비인간의 공-동체와 문학: 황정은의 소설이 던진 물음들」, 조대한의 「시적 윤리들의 공존: 작은 주체들이 타자와 만나는 시간」, 김요섭의 「역사의 눈과 말해지지 않은 소년: 조갑상의 『밤의 눈』과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 대하여」가 그들이다.
박성태의 글은 편혜영 소설세계의 구조적 특징을 ‘불안’이라는 열쇳말을 통해 설득력있게 분석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문장력과 유려한 문체가 강점이었다. 그러나 이 글이 기존의 편혜영론에서 충분히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작품해설 이상의 문제의식이 아쉬운 글이었다. 그에 비해 김사인에서부터 진은영과 이장욱, 황인찬과 이제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와 경향의 시인들을 폭넓게 다루면서 “조용한 윤리적 발화”에 주목해 주체와 타자의 유의미한 관계맺기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조대한의 글은 고유한 문제의식이 돋보였다. 하지만 개념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복합적인 논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이따금 드러나는 과도한 표현이 선자들을 망설이게 했다.
결국 최진석과 김요섭의 글이 끝까지 남았다. 황정은의 소설세계에서 “공동체 너머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비인간의 윤리”를 발견한 전자는 치열하고 열정적인 사유와 숙성된 학구가 돋보였으나 작품을 이론 쪽으로 당겨서 읽는 경향이 있었고, 조갑상, 한강의 장편소설을 다룬 후자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성실한 독서를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역사적 현실과 문학작품 간의 관계를 끈질기게 탐문하는 패기와 뚝심이 남달라 보였으나 문장과 서술방식이 다소 거칠었다. 토론 끝에 후자를 택하기로 선자들은 합의했다. 이론이 승한 글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순진한 애정이 더 소중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선자에겐 축하를, 선에 들지 못한 응모자들에겐 꼭 다시 만나자는 말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 강경석 한기욱 |
평론 | 수상소감
김요섭
1988년생. 가톨릭대 국문과 졸업. 성균관대 국문과 석사과정 재학중.
“그는 달이 공포가 아니라 밤의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을 놓기 직전에야 알았다.” 『밤의 눈』의 실제 배경은 경남 진영읍이며 소설 속 대금유족회는 금창유족회를, 옥구열은 김영욱씨를, 한용범은 김영봉씨를 모델로 했다. 5·16 직후 김영욱은 징역 7년을, 김영봉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시민의 행렬 속에서 낙인을 벗었던 옥구열, 김영욱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했고 기본법이 제정된 지 7개월 뒤에 달의 저편으로 떠났다. 그리고 7년 뒤 유족회활동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는다. 『소년이 온다』의 소년, 박동호의 기록은 찾지 못했다. 그래. 내게 그의 모든 기록이 있었다 한들 소년의 웃음도,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산 자들의 삶을 굴절시킨 소년의 죽음, 오직 그것만이 우리에게 남았을 따름이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일렁임을 바라보는 밤의 눈, 문학이 남아 그 모두를 지켜보고 있다. 내 글은 단지 그 문학에 비친 어느 형상에 대한 모사에 불과하다.
문학이 웅얼거림으로 주저앉는 종언의 시대를 두려워했었다. 그러나 문학의 눈이 지켜보고 있음을 생각한다. 고개를 들어 그 눈을 바라본다. 그 속에서 시대와 삶을 굴절시키는 것들을 찾을 수 있기를. 나의 문학도 그것을 응시하기를. 이제 문학을 응시하는 삶에서 초침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눈을 감지 말라.
문학의 응시를 지속해간 조갑상 선생님과 한강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들의 문학을 경유하지 못했다면 이 글은 결코 여기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덥지 못한 막내아들을 지탱해주신 어머니와 아버지, 형에게 감사드린다. 그분들이야말로 내 삶과 문학의 원점이다. 벌써 수년째 함께 글을 써가고 있는 창작모임 ‘만끽을 위한 만끽’의 동료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서로의 글을 길잡이로 둘 수 있기를 바란다. 청소년 인문학교육 협동조합 톨레레게 동료들에게도 감사드린다.
가톨릭대 국문학과의 선생님들과 선후배, 친구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담아 보낸다. 이상한 사람을 알뜰히 챙겨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말은 몇번을 해도 부족할 것이다. 함께 공부했던 소설학회의 친구와 후배 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정년을 앞두신 류양선 선생님께 가르침에 대한 감사를 좋은 소식과 함께 전해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성균관대 국문학과의 선생님들과 학형, 학우 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학문의 길에 이제 막 걸음을 내디딘 어설픈 사람이 잠깐 기대어 서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긴 시간 어리숙한 제자를 다독여주신 스승, 홍기돈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선생님께 배운 비평의 길을 지켜가며 문학과 마주해갈 것이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