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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개입의 유혹을 뿌리치기
지구의 지적 생명체를 찾아서
존 페퍼 John Feffer
진보적 성향의 미국 외교정책 전문가. 외교정책포커스(Foreign Policy In Focus) 소장.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 『남한 북한』(North Korea, South Korea)이 있음.
* 이 글은 미국 온라인저널 탐디스패치(www.tomdispatch.com)에 게재(2015.9.7)된 것으로, 원제는 “Resisting the Lure of Intervention: The Search for Terrestrial Intelligence”이다. Ⓒ John Feffer / 한국어판 Ⓒ 창비 2015
그들은 지구상이 아니라 우주선에서 “가장 선하고 우수한 자들”이었으며 당시의 자유주의적 낙관주의를 체현하고 있었다.1) 1966년 첫 방영 이후 3년간 「스타트렉」(Star Trek)에는 다재다능하고 다양한 인종의 승무원들이 등장했다. 난공불락의 커크 선장은 케네디 가문의 자신만만함에서 나오는 성적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참모이자 불칸인-지구인 혼혈인 스팍은 당시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가 그러했듯이, “걸어다니는 IBM 컴퓨터” 같은 차가운 이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USS 엔터프라이즈 호(號)는 “그 누구도 가지 못한 곳을 대담하게 가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머나먼 우주의 다양한 외계 생명체들을 찾아내고 관계 맺으며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외견상으로는 순수한 인류학적 관심을 추구한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커크 선장과 승무원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최고 지침’은 외계문명의 작동방식에 대한 불개입 원칙이다. 이러한 입장은 씨리즈 창시자인 진 로든베리(Gene Roddenberry)와 그외 다수 대본작가들 사이에서 점차 커져가던 반전 동조감을 반영한다. 씨리즈 방영 초기 몇년간 맹위를 떨치던 베트남전쟁은 많은 미국인에게 지역적·문화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회를 재설계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우매한가를 보여주었다. 1960년대 중반부에는 엔터프라이즈 호에서처럼 지구상의 가장 선하고 우수한 자들이 미국의 오만함에 대해서 재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구에서의 폭력적 개입과 우주에서의 개입을 의도적으로 연결시키면서도, 『스타트렉』 제작자들은 수십년간 팬들을 즐겁게 해주며 무수히 많은 텔레비전과 영화 후속편을 만들어낸, 이 씨리즈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에 관해서는 한번도 문제삼지 않았다. 엔터프라이즈 호가 지구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지구가 태양계 너머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우주 전체가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미국이 언젠가는 다른 행성을 식민지화하려고 야심차게 노력하는 것과 더불어 미래의 군사개입을 고민하는 지금 미국인들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머나먼 지역에 개입하고자 하는 우리의 무한한 능력은 역동적 문명의 표지(標識)가 아니라, 미국에도 국제사회에도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도 치명적인 결함이 아닐까?
오렌지 구역
미국은 예방조치 성격의 최고 지침을 그다지 사용한 적이 없다.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놀라운 속도로 ‘외계’(이민족—옮긴이) 사회에 개입했다. 이미 거주 중이던 원주민을 대대적으로 분열 내지는 절멸시키면서 미국이 건국된 만큼, 사실상 그러한 개입은 국가의 유전자 코드에 기입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콜럼버스(C. Columbus) 역시 어떤 (유럽) 사람도 가지 않은 곳을 대담하게 갔으며, 외국의 해안에 해병대를 보낼 때마다 혹은 외국의 상공에 무인기를 보낼 때마다 우리는 그의 여정을 되풀이한다. 이라크가 민주주의에 대한 신보수주의자들의 훈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만큼, 미국 원주민도 ‘발견’이라든지 새로운 전염병 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등지에서 최근 일어난 미국의 개입이 커다란 해악을 끼쳤다는 상당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는 계속해서 군사적 개입을 고려하고 있다. 이란의 경우 당분간은 이러한 개입으로부터 자유롭고 꾸바도 마찬가지다. 미 정부는 북한이 희생양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동아시아 내 미국의 공격적 전투태세로 보아 특히 북한의 편집증적 지도부는 이와 다르게 느낄 것이다.
외교 친화적 성격의 오바마 행정부 역시 시리아 지역에서의 새로운 비밀 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고,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소말리아 그리고 예멘에서 무인전투기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150개국에 특수부대를 파견했다. 또한 동맹국들과 함께 이슬람국가(IS)에 5000번 이상의 공습을 감행했다. 아프가니스탄(9800명)과 이라크(3500명)에는 상당한 수의 미군이 주둔 중이다. 수백개의 미군 주둔지와 그곳에 배치된 15만명의 복무요원들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군사행위들이 세계를 재배치해왔으며 그것도 전혀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랬던 것이 아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침략, 공습, 점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에 이르는 이슬람권의 위기를 초래했다. 소말리아와 예멘 같은 취약한 국가들은 극심한 대혼란에 빠졌다. 시리아와 이라크는 치명적인 극단주의의 온상이 되었다. 이집트와 걸프만 근처 국가의 독재주의 지도자들은 이 혼란을 이용해 자신의 냉혹한 정책을 정당화했다.
2차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상태인 최근의 난민 위기 역시 9·11테러에 대한 부시 정권의 군사적 대응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아프가니스탄은 난민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였고, 이라크가 근소한 차이로 두번째였다. 오늘날 난민을 가장 많이 양산하는 나라는 시리아다. 미국은 시리아를 침략하지는 않았지만, 바샤르 알 아싸드(Bashar al-Assad) 대통령을 퇴각시키고 이슬람국가와 그 비호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시리아에 개입을 했다. 20세기 동남아시아에서의 낭패만큼이나 지구 전체를 재설계하려는 21세기 미국의 시도 역시 좋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런 와중에 ‘대담하게 가려는’ 충동은 더이상 신식민주의적 개입주의와 군사적 모험주의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구 너머로 원정군을 보내려는 열망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주도권을 다투는 몇몇 시도는 지구 온난화로 지구 내 인간 생존이 불가능해질 때를 대비해 화성을 식민지화해서 대안으로 제공하고자 한다. 외계를 향한 이러한 노력은 적어도 지구를 연고지로 삼은 이들에게는 종말이 다가왔다는 점증적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저자들이(과학자들은 말할 것 없고) 지구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핵무기 때문이든 탄소 배출 때문이든 단순히 과도한 인구증가 때문이든, 인류는 지구상의 삶의 중요한 한계점에 다가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을 테러 경계 시스템의 색 분류를 빌려 오렌지 구역이라 부르자. 지난 반세기가량 동안 인류는 지구를 폭파할 만한 핵무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폭발적 경제활동을 통해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화석연료를 소모했으며, 생태계 파괴 상태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너무 성공적으로 인구를 재생산한 나머지 탐욕스러운 메뚜기떼처럼 지구의 식량부족을 일으킬 위기를 초래했다.
만약 위기경보 순위를 낮춰 오렌지 구역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문명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을 거뜬히 통과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장난감들, 즉 핵무기, 석탄화력발전소, 종교적 피임금지 등을 치워버린다면, 졸업생이 되어 지구적 의식(planetary consciousness)의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낙제생이 되어 지구에서 퇴출된다. 계절학기로 학점을 만회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상 핵, 탄소, 인구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시험이 있다. 그것은 경계를 넘어, 바다를 건너, 그리고 어쩌면 저 외계 우주에까지 개입하고자 하는 인간의 성향이다. 최고 지침을 따르든 말든 ‘대담하게 가는’ 「스타트렉」의 욕구는 인류를 난관에 빠뜨려왔다. 머나먼 곳에 전초기지를 세우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인 보험증서로 간주되었지만, 다른 나라의 문제에 개입하고자 하는 우리의 바로 그 성향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었다. 지구상의 기후변화에 본격적으로 대처하기보다 화성 내 식민지 건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매년 1조 달러에 가까운 예산을 국내 문제 해결에 쓰는 대신 국방비에 투자하는 것과 기능적으로 동일하다. 주의력결핍증 치고도 이런 중증이 없다.
중국의 방식
15세기에 중국 제독 정화(鄭和)는 함대를 이끌고 아시아 전역과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까지 수차례 원정을 갔다. 그는 중국해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는 해적들을 쳐부수고 머나먼 실론 지역까지 군사적으로 개입했다. 그의 거대한 보물선들은 각각이 콜럼버스의 ‘싼타 마리아 호’보다 여섯배 정도 큰 규모였으며, 기린을 포함해 여러가지 진귀한 것들을 싣고 돌아와 중국 황제에게 진상했다. 외교관으로서 그는 당시에 상당히 후진적이라 중국의 관심권 밖에 있던 유럽을 제외하고 수십개국과 조공관계를 수립했다. 정화의 마지막 원정은 1430년대 초반, 즉 콜럼버스가 태어나기도 20년 전이었다.
정화의 해상원정은 중국이 세계의 상당한 지역을 식민 지배할 초석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보물선단의 마지막 원정 직후에 중국 황제는 해외이동을 금지하고 원양선박의 건조와 수리를 중단시켰다”라고 루이스 레바테스(Louise Levathes)는 『중국이 바다를 지배했던 시기』(When China Ruled the Seas)에서 기록한다. “거역한 상인과 뱃사람 들은 처형당했으며, 백년이 지나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해군은 스스로 소멸의 길로 갔다”는 것이다.
중국이 식민주의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 아시아라는 뒷마당에서는 조공관계를 유지했다. 중화(中華)는 이후에도 수백년간 지배적 위치를 잃지 않았으므로, 신생 유럽 국가들에 즉각적으로 주도권을 빼앗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정화와 그의 성과를 포기한 중국의 결정은 현대 역사의 주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실질적으로 엔터프라이즈 호의 노선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중국은 미지의 땅으로 ‘대담하게 가서’ 광대한 식민제국을 건설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군사적 방법을 도모하지도 않았다.
19세기 무렵에 도리어 유럽 식민 열강국들의 약탈을 겪게 된 중국은, 아무나 집어가면 되는 보물상자처럼 연안지역을 따라 여러 부분으로 분리되었다. 백여년 이상 굴욕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과거 왕조들의 부와 권력을 되찾으려는 일련의 노력이 뒤를 이었다.
현재 중국은 군사적으로 허약한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해외파견군을 갖추지 않았다. 전세계에 걸친 광범위한 상업적 이권을 가지고 있으나 세계의 경찰국가인 척하지도 않는다. ‘무리없이 부상하는’ 동안에, 중국은 대부분 자신의 정원을 경작하는 데 몰두했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국 경제를 전지구적인 발전소로 바꾸어놓았다. 지난 수십년간 국방비를 증액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련의 운명을 파멸로 이끈 식의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원치는 않았다. 대체적으로 신식민주의적 관계를 수립하는 데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따라서 아시아나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자원을 뽑아낼 때에도 속국을 세운다거나 군사 주둔지를 만든다거나 혹은 특수부대 같은 것을 파견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심지어 북한과 맺고 있는 반(半) 조공관계에 대해서도 베이징은 상당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초고도 수준에서 단순히 인상적인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중국은 또다른 정화 해상원정의 순간에 직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극적인 경제성장은 그간 군비지출을 두자릿수 비율로 늘릴 수 있게 해주었다. 최근 들어 중국은 핵무기고를 현대화하고 있으며, 공군과 해군력을 한층 본격적으로 정비하고, 이웃 나라들과의 국경분쟁으로 몸을 풀고 있다. 베이징은 세계에 대한 야욕을 접고 환경 친화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경제 프로젝트에 다시금 집중할 수 있을 것인가. 달리 말하자면, 중국은 다른 초강대국의 자기파괴적 노선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위험한 오렌지 구역에서 지구가 탈출할 수 있도록 이끌 것인가.
중국은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다. 중국 강경파들은 베이징이 정화의 원정을 막은 황제의 결정을 되풀이한다면 외국 열강이 또다시 중화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리고 확실히 미국이 군사감축의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중국도 더욱 강력한 전투력 투사 능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면책조항
억만장자 엘런 머스크(Elon Musk)는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닷컴(.com) 시대의 산물이다. 페이팔로 처음 백만장자가 되었고 이후 전기차를 시장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벤처기업인 쏠라시티를 통해 태양에너지에 거액의 판돈을 걸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보다도 더 큰 야망을 가지고 있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The New York Review of Books)의 쑤 핼펀(Sue Halpern)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머스크는 전기자동차와 태양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지구의 기후변화가 낳을 최악의 결과를 방지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한편, 이보다 좀더 희망사항이나 망상에 가까운 방식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 지구적 해결책이 먹히지 않아서 문명이 위기에 처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는 스페이스엑스(SpaceX)가 화성에 인류의 식민지를 건설하도록 한다.”
스페이스엑스는 머스크가 지구를 위해 마련한 면책조항(escape clause)이다. 현재 스페이스엑스의 로켓들은 1998년 이래로 미 항공우주국(NASA)과 그외 4개국의 항공우주국이 주둔하고 있는 국제 우주정거장에 기자재를 보내는, 거품을 빼고 보면 사실상 운송업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머스크의 계획은 미 항공우주국의 최선의 씨나리오보다 십년 빠른 2026년까지 화성에 인류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한편 네덜란드인 바스 란스도르프(Bas Lansdorp)에 의해 설립된 화성 정착 팀인 마스원(MarsOne)은 100명의 식민지 개척 지원자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24명을 추려냈다. 이 대담무쌍한 초기 우주인들은 2026년에 화성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편도 여행을 떠나서 그곳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식민지의 초석을 세울 예정이다.
블루 오리진(Blue Origin)이라는,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설립한 또다른 민간출자 우주탐사기업 역시 “우리 행성 너머로 인류를 뻗어나가게 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우주탐사 경쟁은 한때 냉전기 강대국들이 그들의 기술적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주탐사 경쟁은 국가 간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지구상의 가장 부유한 우두머리 수컷들 간의 경쟁이 되었다.
역사학자 프레드릭 잭슨 터너(Frederick Jackson Turner)가 1893년에 발표한 영향력있는 논문인 「미국 역사에서의 프론티어의 의미」(The Significance of the Frontier in American History)에 따르면, 미국의 성격은 끝없이 펼쳐진 ‘임자 없는’ 서부의 땅과 전대륙을 식민지화하려는 욕망에 의해 형성되었다. 19세기말 프론티어의 소멸은 미 제국의 출발점이자 ‘미국 문명’을 이른바 덜 계몽된 지역으로 전파한 시점과 겹친다. 출로가 막힌 ‘대담하게 가려는’ 에너지는 어디로든 향하지 않으면 안됐던 것이다.
오늘날은 프론티어가 사라지는 또다른 순간이다. 지구상에 더이상 탐험되지 않은 지역은 없다. 그리고 문명을 (혹은 대혼란을) 전파한다는 프론티어 이념은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와 리비아의 실망스러운 정치 사태는 물론이고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따라서 엘런 머스크나 제프 베조스처럼 야망에 들썩이는 사람들이 우주를 그들의 ‘마지막 프론티어’라고 명명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화성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쫓아낼 원주민도 없고 개입할 이질적 문화도 부재하기에, 최고 지침의 세세한 부분을 두고 논의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점에 속아서는 안된다. 화성에 개입하는 것도 지구 내 어리석인 행동들이 가진 어떤 약점들을 공유한다.
환경 전문 언론인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는 『뉴요커』(The New Yorker)에서 화성을 식민지화하려는 다양한 발전계획에 대해 “어디를 가든 우리는 우리 주제대로 살게 된다”고 지적했다. “스스로의 지성으로 제기된 도전을 해결할 수 있든지 없든지 둘 중 하나다. 아마도 우리가 외계 생명체를 대면하지 못한 이유는 현존하는 외계 생명체들이 행성을 들쑤시고 다니는 유형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정원을 돌보며 조용히 집에서 지내왔을 것이다.”
아마도 진정으로 지적인 존재들은 중국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 우주선을 만드는 일을 멈추었을 것이다.
지구의 지적 생명체를 찾아서
화성을 식민지화하려는 투지와 발맞추어, 과학자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새롭게 하고 있다. 1억 달러의 예산으로 막 시작된 ‘획기적 듣기’(Breakthrough Listen)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는 거대한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가장 가까운 행성 거의 백만개와 은하수에 근접한 백개의 은하를 조사하고 있다. 점차 커지는 크라우드소싱의 중요성을 반영하여, 삼백만의 사람들이 연동된 컴퓨터를 사용해서 밀려들어오는 전파망원경 자료를 분석하는 데 일조한다. 우주 내 생명체 거주 가능 행성의 존재 확률을 계산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에 따르면, 지능을 가진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들을 수 있다면, 그들도 아마 우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어떤 제정신을 가진 외계 지적 생명체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블라지미르 뿌찐(Vladimir Putin),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 미국 모델 겸 배우)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종족과 접촉하고 싶어하겠는가.
외계인이 존재하든 말든, 그들이 우리처럼 오렌지 구역에 갇혀 있든 아니든, 우리는 여전히 ‘지구의’ 지적 생명체를 찾는 무모한 시도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지성이란 표현이 형용모순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요요마(Yo-Yo Ma) 말고도—를 기다려왔다. 결국 전통적으로 지성으로 정의되어온, 개념적·영토적 경계를 끈질기게 넓히는 행위는 우리를 임박한 자멸이라는 막다른 길로 이끌었다.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는 인간의 지성 그 자체가 치명적인 변종이라서, 인류라는 종을 스스로와 충돌하게 만들었고 지구의 종말을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누군가가 땅을 경작해서 씨앗을 심고 도시를 건설하자는 기발한 생각을 해내기 이전, 즉 인류가 수렵·채집생활을 했을 때가 인류와 지구에 훨씬 나은 상태였을 것 같다.
대담하게 앞으로 전진하려면 인류는 지성을 재정의해야 할 것이다. 사슴고기와 딸기로 연명하던 유목민의 상태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현대판 정화의 선단처럼 우주 방방곡곡에서 실어오겠노라 약속하는 보물에서 등을 돌리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지성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전파, 테러 근절, 시장접근성 보존 같은 유혹적인 노래에 귀를 닫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지성이 필요하다. 다른 행성을 더럽힐 계획을 세우느라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보다 이 행성을 보전하는 데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지성이 필요하다.
핵무기를, 제트엔진을, 그리고 우주탐사 로켓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오렌지 구역으로 더 깊숙이 빠지게 되며, 대담하게가 아니라 맹목적으로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인식을 하고 있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이른바 화성 탐사대원들처럼 미지의 세계를 향해 편도여행을 하는 중이다. 다만 우리의 우주선은 지구이며, 우리는 안전한 곳에 도달하기 전에 자살 특공임무로 그걸 파괴해버리기 일보직전에 있다.
번역 | 유선무(柳先茂)·아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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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선하고 우수한 자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이라는 표현은 베트남전쟁을 다룬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의 같은 제목의 책에서 따온 것으로, 미국 역대 가장 뛰어난 지식인들로 평가받은 케네디 행정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은 이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궤도를 수정하지 않고 베트남전쟁이라는 잘못된 목표로 돌진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최고의 인재들』(글항아리 2014)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