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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임동근‧김종배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반비 2015
메트로폴리스 통치술의 정교한 해부
염복규 廉馥圭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pkyum1@empas.com
이 책은 작년에 저자 임동근(任東懃, 이하 ‘저자’)이, 시사평론가 김종배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사사로운 토크’에 출연해 ‘정치지리학’이라는 주제로 10회 방송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방송과 동일하게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가 근대 이후 어떻게 ‘통치’되어왔는가이다.
먼저 구성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1~2장에서는 식민지시기~1950년대에 말단 행정기구로서 동(洞)이 등장한 과정, 그에 이어지는 1950년대 서울 지방자치의 특징, 현재 서울의 범위에 이른 1963년 행정구역의 확장과정과 의미 등을 다룬다. 다음 3~6장은 1960~80년대 서울 토지·주택 정책의 추이와 그 이면의 의미를 살핀다. 여기에서 핵심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바로 오늘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현대 도시생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아파트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7~10장은 199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기 서울 내부 정치의 작동 메커니즘과 그 결과로서 다양한 도시정책의 의미를 분석한다. 여기에서는 지방자치제의 부활, IMF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도시 변화의 물결, 이명박-오세훈 시장 시기의 각종 개발정책, 현재의 마을만들기 정책 등이 파노라마처럼 숨가쁘게 펼쳐진다.
평자는 이미 팟캐스트 방송을 들은 바 있는데, 근현대 도시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당시에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이번에 활자화된 것을 천천히 읽으면서 반복이라는 느낌을 받기보다 흥미가 배가되는 경험을 했다. 이는 저자의 ‘언변’에 기인한다기보다는(언변이 나쁘다는 뜻은 물론 아니지만) 다루어지는 콘텐츠, 즉 저자가 쏟아내는 지식과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테마는 그 하나하나가 한권의 책으로 다루어져도 무방할 만한 것들이다. 이런 내용이 400면 남짓한 책 한권에 압축되어 있다보니 독자로서는 정말 재미있는, 행복한 책 읽기가 가능했지만, 반대로 내용을 세세하게 이해하면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도시 통치를 둘러싼 여러 정책, 현상이 상호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어떤 정책, 현상에는 반드시 표면과 이면이 있다는 통찰이다. 박정희정권기 도시개발과 관련하여, 체비지(替費地, 시행자가 개발사업 재원 마련을 위해 매각할 수 있는 땅)의 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도입했다는 것(3장), 아파트 선분양제도는 ‘분양 로또’를 기다리는 수많은 중산층 후보군을 양산함으로써 이들을 정치적 저항으로부터 이탈시키는 효과를 낳았다는 점(5장), 현재의 이층제 지방자치제는 필연적으로 기초와 광역 자치단체간의 ‘비효율적’ 다툼을 낳는바 이는 지방자치단체를 통제하려는 중앙정부와, 빈틈을 노려 이익을 취하려는 자본 모두가 원하는 구도라는 사실(7장) 등등은 저자가 풀어놓는 수많은 이면의 이야기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또한 이 책은 이른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1960년대 건설부장관 주원(朱源), 민선 2기 서울시장 고건(高建) 등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저자는 최대한 중립적 스탠스를 취하면서 그들의 역할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독자로서는 우수한 테크노크라트에 대해 호의적인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점은 독재와 민주주의의 정치변동을 대단히 유연하게(?) 사고하는 저자의 감각과도 연결된다. 예컨대 “기술관료들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는 국토계획이 1972년에 만들어지면서부터 어느정도 일관성있게 유지되었다는 점을 아주 높이 살 수 있습니다. (…) 오히려 테크노크라트의 힘이 약해지면서 지방자치제가 도입되고, 1기 신도시, 2기 신도시가 추진되는 등 언제 갑자기 신도시가 생길지도 모르는 불확정성이 커집니다”(135면) 같은 기술은 저자 특유의 감각, 그리고 이런 감각을 가져야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진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평자는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을 수긍하고 때로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아쉬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통치술의 전개를 다룬다. 그리고 명시적으로 저자가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 통치술은 대체로 성공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험악한 IMF 시기마저 “그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면서도 봉기 한번 없었”던 것이다(393면). 그렇다면 이런 ‘성공적인 통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이 생각하는 ‘통치를 넘어서는 자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현재의 서울시 마을만들기 정책에 대해 시 당국의 목표와 방향 제시가 없다고 비판하며 “자치가 언제나 선(善)일 수는 없”으며, “어떤 자치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389면). 이 지점에서 저자는 더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도 강조하지만 그의 주된 관심이 실천 이전의 분석 내지는 진단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조심스레 덧붙이자면 이 아쉬움은 저자가 기대고 있(다고 짐작되)는 푸꼬(M. Foucault)의 ‘통치성’(governmentality) 이론과도 연결된다. 평자가 느끼기에 통치성 이론은 통치술을 해부하는 데 매우 유용하지만 그를 따라가다보면 ‘통치의 외부’로 나가는 길은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앞에서 “저자가 쏟아내는 지식과 정보”라고 했지만, 그것은 단지 사실의 전달 차원이 아니라 어떤 결과와 더불어 그런 결과가 가시화되기까지 권력과 자본이 어떻게 작동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앎’〔知〕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방송대담이라는 형식과 분량(시간이라고 해야겠지만)의 한계로 그 앎이 매 장마다 ‘조금만 더’에서 끝난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려 1000쪽에 달한다는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서울을 통치하기』)이 하루 빨리 출판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세상에 선보인 이상 이어지는 독자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애프터서비스’는 저자의 당연한 의무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