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는 제17회 백석문학상 예심위원으로 박성우 송종원 2인을, 본심위원으로 백낙청 김사인 최정례 3인을 위촉하고 심사를 진행하였다. 심사규정에 따라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들을 예심에서 검토한 결과와 본심위원의 추천을 통해 아래 총 10권의 시집이 본심에 올랐다.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김행숙 『에코의 초상』, 나희덕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태준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박남준 『중독자』, 백무산 『폐허를 인양하다』, 상희구 『추석대목장날』, 손택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안상학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이준규 『네모』(가나다순).
본심은 10월 23일에 진행되었는데, 대상작 모두가 나름의 매력과 개성있는 성취를 보여줌으로써 심사는 열띠게 진행되었다. 본심위원들은 우선 김소연 김행숙 나희덕 백무산 상희구 손택수 시집으로 대상작을 압축하여 논의를 거듭한 끝에 백무산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창비 2015)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폐허를 인양하다』는 치열한 현실변혁 의지와 내면의 탐구를 바탕으로 노동자 계층의 삶과 인식을 뜨거운 목소리로 대변하고, 경탄을 자아내는 절실한 시편들이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아, 심사위원 전원이 이 시집을 제17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심사평
김사인(金思寅) 시인
통상 한해에 한차례씩 시행되는 문학상은 해당 기간의 우수한 성취를 기리는 외양을 취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문학의 현황과 진로에 대한 진단과 염려가 담기게 마련이고, 그에 따른 ‘문학사적 비보(裨補)’가 일정하게 가해지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개성이 전혀 다른 세 시인을 마지막까지 주목했다. 향토의 생활 구어와 풍속을 시적으로 재현하는 데 바쳐진 상희구 시인의 방대한 ‘대구’ 연작은 격려되어 마땅한 것이었다. 자의식 과잉과 번역투 관념어의 만연 속에 빈사지경에 처한 토착 입말의 현실에 대한 한국시의 응전으로서 그의 작업은 뜻깊은 것이다. 지나친 풍물지적 성격이 시집으로서는 다소 아쉬웠으나, 그의 노력은 근년의 우리 시 동향 여하를 넘어 한국 현대시 100년의 숙제에 관계되는 것이다. 더구나 백석 시의 문학적 지향 가운데 하나에 맥이 닿는다는 점도 긴하게 감안될 법했다.
김행숙의 시집 『에코의 초상』이 구현하고 있는 말하기의 모험과 근본주의는 근래 유례가 없을 만큼 팽팽했다. 그의 시행들은 결코 상습적인 후속 진술이나 투식화(套式化)된 생각의 길에 기대는 법이 없다. 긴장된 모색을 통해 사실과 세계는 지체되면서 새롭게 확장되고, 그의 시행들은 간신히 문장을 이루는 듯하다. 김행숙의 시편들은 오늘의 한국어 문어체가 시도하는 탐구의 한 극한값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이번 시집에 이르러 그의 노력이 생소함을 넘어 어떤 심미적 안정감에 이르고 있는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다.
백무산의 이번 시집은, 전후 반세기에 이르는 산업시대를 경과하는 동안 우리 사회 산업노동자 계층의 삶과 의식이 이룩한 개안(開眼)의 폭과 깊이를 대표함직한 것이다. 그의 시를 받치고 있는 마음의 굳건함과 인식의 심도는 경의에 값할 만큼 강렬하며, 동시에 서늘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 점에 이의가 없지만, 그러나 이번 시집이 이전의 그의 시집들에 비해 내용과 형식상의 새로움을 열어주고 있거나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그간의 그의 시들이 의거해온 일종의 회로, 일종의 유형성이 여전히 답습되고 있는 듯하다는—그 불가피함, 그 지난함을 모를 바 아니지만—아쉬움인 것이다.
그의 뜨거운 목소리를 앞세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현실이 암울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백무산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삼는 쪽에 합류했다. 그러나 또다시 그를 호출하게 하는 세상의 이 진부한 답답함과 더불어, 다른 의미있는 노력을 찾아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안목의 가난’에 대한 자탄도 없지 않다.
수상자에게는, 축하보다 또다시 짐을 지운다는 미안함이 앞선다. 우리 시와 시인들이 선의와 항심을 잃지 않고 이 고달픈 시절을 잘 건너기를 빌 따름이다.
백낙청(白樂晴) 문학평론가
애착이 가는 시집이 여럿 있었지만 심사위원들 간에 토론대상으로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김행숙과 백무산의 시집이었다.
『에코의 초상』은, 김소연의 『수학자의 아침』도 그렇지만, 내 식으로 표현하면 시의 어떤 첨단 현장에서 ‘특공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문학이다. 일상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그 특별한 노력은 인간의식의 확장과 심화를 향한 고투이기도 하다. 비상한 헌신성과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인데 그 성과는 이른바 난해시로 나타나기 일쑤다. 김행숙 시집 첫머리의 「인간의 시간」이 대표적인 예일 테고 잇따르는 「존재의 집」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도 그런 셈이다. 이에 비해 「도시가스 공사의 메아리」 「물방울 시계」 「좁은 문」 「半個」 같은 시들은 좀더 접근이 쉬운 편이지만 여전히 난해시다. 그래도 이들 작품이나 여타 많은 작품이 내게는 매력적이었고, 전반적으로 김행숙의 시에서 생활의 냄새가 한층 짙어지고 활달해지기도 해서 반가웠다.
그래도 나는 특공작전은 여하간 한정된 특단의 작전이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고 크게 대중의 삶을 바꾸려면 대중과 함께 가는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참선 정진이 불자의 필수적인 수행이긴 하지만 중생제도의 보살행으로 나가는 큰 공부, 큰 사업이 없이는 온전한 자비심의 발휘가 못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부도 없이 대중사업부터 착수한 시인을 찾아보는 일이 우리 시단에서 전에 비해 줄긴 했어도 아주 드물지 않은 반면, 언어적 수련과 내면의 탐구를 치열한 현실인식 및 현실변혁 의지와 결합시킨 사례는 드물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백무산의 작업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것은 그런 까닭이며, 『폐허를 인양하다』에 이르러 그 작업이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음을 확인했을 때 기쁨과 감탄은 남달랐다. 내가 가진 책에 특별히 표시해놓은 시만 해도 「환생」 「패닉」 「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는 알겠으나」 「꽃이 나를 선택한다」 「참수」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가듯이」 「허공의 꼭지」 「난해한 민주주의」 「주변뿐인 우주」 「자유낙하」 「맹인 안내견」 등 여러 편인데, 이들만 보더라도 각기 특징적이고 다양한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을뿐더러 훌륭한 작품이 저들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동료 심사위원들도 백무산 시집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에 만장일치로 수상작을 결정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최정례(崔正禮) 시인
본심에 올라온 열권의 시집 중 집중 검토하기 위해 추천한 세권은 김행숙, 나희덕, 백무산의 시집이었다. 김소연, 손택수, 이준규의 시집을 내려놓기가 힘들었다. 손택수의 비룡재천(飛龍在天)의 유려함도 우리 시단의 소중한 성과임이 분명하고, 특별한 목소리로 구석구석 깊은 감정을 숨겨놓는 김소연, 그리고 이준규가 최후의 말로써 소멸에 이르고자 하는 각고의 외로운 작업도 눈물겨운 안쓰러움으로 이 몸에 전염되어왔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수상자로는 한 시집을 선택해야 하는 일. 이런 일에 관여하는 건 동료 시인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일이다.
김행숙의 시는 세계를 감지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인다. 그의 두번째 시집 『이별의 능력』을 마주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생생하다. 내가 마치 다른 어법의 세상에서 오래 살다가 이제 막 그의 나라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당황스러운 이상함에 매료되어 많은 신진 시인들이 그의 어법을 모방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룬 자는 없는 것으로 안다. 이번 시집 역시 이상한 감각의 세계, 익숙해지기를 거부하는 새로운 감각의 말들을 더욱 능숙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최후까지 그의 시집을 붙잡고 있었다. 떨쳐내고 나서도 잘한 결정인지 아닌지 곤혹스러웠다.
나희덕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그의 지금까지의 시집 중 가장 감동적으로 읽었다. 시집 전체가 독특한 색채를 띠면서 이전보다 휠씬 자유로워졌고 어법이나 구성도 이질적인 것을 섞어 감각과 사유의 흥건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부에서는 혈육의 끔찍한 죽음을 겪고 절제하고자 하나 도저히 감출 수 없어 풀려나오는 말들이 절실하게 전해온다. 동시에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결연해지면서 삶에 밀착된 말들이 이전보다 더욱 폭넓은 깊이를 확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 개인사는 시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백무산 시인은 현실에 굳건하게 두 발을 딛고 시를 생산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잔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혹은 그곳에 발 딛고 무심한 듯 생각을 펼쳐 보일 때 문득 그것들이 현실 너머의 장면처럼 느껴진다. 이게 정말 현실 속에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꿈속의 장면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이런 것들을 누군가는 초현실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악몽」 「피」 「철물점에 가서」 「그날」 등 이런 시들이 어찌하여 초현실로 읽히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절실하기만 하다면 현실과 초현실은 한끗 차이라는 것, 동전의 앞뒷면처럼 결국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그의 시는 실현해 보이고 있다. 그의 시 곳곳 처참한 장면들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셋 중 누구라도 다 편들고 싶은 상황에서 긴 논의가 있었다. 그의 수상에 축하를 보낸다.
수상소감
백무산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84년 『민중시』 1집에 「지옥선」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인간의 시간』 『길은 광야의 것이다』 『초심』 『길 밖의 길』 『거대한 일상』 『그 모든 가장자리』 『폐허를 인양하다』 등이 있다.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오장환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뜻밖의 수상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백석의 영향을 별로 받지도 못했는데……’라는 것이었습니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으나 부끄럽다는 말이 첫마디 소감이었습니다. 백석뿐 아니라 이용악, 김기림, 오장환…… 그리고 카프의 시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일찍이 일궈놓은 길을 모른 채 세월을 허비했고, 종종 그들이 버린 길에 들어섰고, 그들의 실패를 반복하느라 열정을 소비했습니다. 오래도록 공단의 작은 책방 하나가 유일한 학교였던 나는 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발견했을 때 나는 자신이 부끄럽고 너무 한심스러웠지만,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들을 다시 과거에 묻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점차 그것은 지나간 길도, 정해진 다른 길도 아닌, 아직 발을 디뎌보지 못한 미답의 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나의 과거에 있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으나, 어쩌면 과거가 아니라 도래할 지점 어딘가에 있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혼자서 세상을 허덕일 만큼 다 허덕여보고 나서 그들의 빛나는 길에 언 발 들여놓으면 눈앞에 무엇이 펼쳐질까 상상해본 일이 있습니다. 어느 한 시인에게도 닻을 내려본 적이 없는 나는 언젠가 그들과 제대로 만날 것을 생각합니다.
이렇듯 나의 궁핍한 문학에는 가계도 족보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의 갈비뼈에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창비가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몫을 열어주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몫에서 태어났음을 알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이유로 모든 권력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히려 다양성을 질식시킬 것입니다. 권력의 균형 없이는 다양성의 꽃을 피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양성은 때로는 불균형한 다양성을 강요합니다.
위임된 권력, 선출된 권력에 대해서는 소환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계급간의 불평등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권력에 대해서는 단죄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가로막고 대안적 진출을 저지하는 권력에 대해서는 해체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힘의 우위에서 소수를 힘으로 배제하는 권력에 대해서는 개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창비가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러한 권력에 속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시대의 한계를 개인의 오류로 몰아가는 것도 책임있는 행동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쇠퇴의 썰물은 감추어진 흉기를 드러냅니다. “시대가 쇠퇴하고 있을 때 모든 경향은 주관적”이라고 말한 괴테의 지적은 매우 적절한 듯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무엇을 바꾸겠다는 버릇을 드러내었지만, 이제 불가능함을 깨닫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메아리도 없는 절규였고, 완성이 불가능한 모래 위의 구조물이었고, 돌아서면 증발하는 휘발성 액체였고, 실패의 기록물일 뿐이었습니다. 나의 행장은 이게 전부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