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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오함마를 든 천사, 최종병기시인
조인호 시집 『방독면』
박슬기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연애시의 두 형식, 기쁨의 윤리와 슬픔의 윤리」와 「폴리에틱스(polietics), 잉여들의 정치학 혹은 시학」이 있음. seekilon@hanmail.net
고독한 방 안에서 그는 밥풀로 인형을 만들었다. 바늘과 망치와 도끼를 먹으며 인형은 자랐다. 너무 커진 인형은 닥치는 대로 쇠를 먹어치워서 나라 안에 더이상 쇠가 남지 않았다. 그 무엇으로도 인형을 죽일 수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괴물이 되어버린 그 인형을 불가사리(不可殺伊)라 불렀다.
“오래전 나는 이 이야기를, 도시 끝에 위치한 고물상의 늙은 인부에게서 전해 들었다”(「불가사리 三—제국에서 보낸 한 철(鐵)」). 인부는 이 최후의 괴물이 “G구역 노란 물탱크 속에 숨어 살던, 한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자석에 붙은 쇳가루에서 탄생했다고 전한다. 아니, 정확히는 쇳가루의 “어떤 끌림”에서 탄생했다. 조인호(趙仁鎬)의 첫시집 『방독면』(문학동네 2011)은 한 아이의 상상에서 탄생한 거대한 철의 괴물 불가사리와도 같다.
쇠가 끓어오르는 용광로에서 시작하여, 소년들의 배틀로얄이 이루어지는 돔을 거쳐, 전 인류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제국에 이르기까지, 이 시집을 관통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철을 먹어치운 괴물의 강력한 힘이다. 손쉽게 환원한다면, 철의 힘은 무기를 앞세운 거친 제국주의의 알레고리인 동시에, 이 광대한 살육의 시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가능성인 ‘장미의 힘’에 대한 알레고리다. 가령 이런 구절들, “무기를 닦기 위해 기름이 나는 땅을 폭격하는 비생산적인 일을 우리는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총에 물을 준다. 방아쇠를 당겼을 때 총구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장미,를 위해 우리는 매일 밤 총구 속에 졸졸졸 물을 주고 잠자리에 든다”(「최종병기시인훈련소」)에서 철의 힘으로 상징되는 “총”은 무기인 동시에 녹슨 장미다. 그렇다면 방독면을 쓴 시인은 제국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훈련되는 최종병기가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환원할 때, 이 시집이 분출하는 강한 에너지는 비평적 수사 속에 얌전히 포섭되어 길들여진다. 철의 알레고리, 그것은 시인의 의도일 수 있지만, 의도에 우선하는 것은 야만적인 힘에 이 시인이 걷잡을 수 없이 매혹되었다는 사실이며, 그리고 성공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철가면을 쓴 채 홍등이 켜진 도살장골목을 붉은 쇳물처럼 흘러다녔다 도살장 골목 어둠 저편 번쩍거리는 칼날들이 뱀의 혀 같은 용접 불꽃처럼 쉭쉭거렸다 붉은 장화를 신은 인부들이 소 머리가 가득 쌓인 수레를 끌고 다녔다 도살장 담벼락엔 덩굴장미가 대퇴부 핏줄처럼 번지고 있었다 담벼락 너머 높다란 송전탑에서 철근들이 금속성의 동물 울음소리를 내며 뒤틀렸다”(「철가면」).
이렇게 광대하고 거친 철의 세계를 우리 시에서 본 적이 있는가? 조인호는 철을 다루는 우람한 근육, 근육이 휘두르는 오함마(큰 해머) 같은 노동의 원초적인 힘을 우리 시에 성공적으로 들여온 거의 최초의 시인이다. 이 시집에서 철은 총과 탱크, 탄환 같은 전쟁의 알레고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함마와 용광로, 철로와 다이너마이트 같은 노동의 힘이기도 하다. 광기로 번쩍거리는 전쟁의 도구와 정련되지 않은 원초적인 근육의 보조도구는 야만적이고 거친 힘이라는 점에서 사실은 동일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금속은 단순히 제국주의 전쟁의 알레고리가 아니다. 말하자면, 한국시는 조인호로 인해서 ‘실제로 벌어지는 전쟁’과는 상관없는 총과 탱크를 가지게 된 셈이다.
모든 안온한 것을 파괴하는 힘은 사실, 혁명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조인호는 세상을 파괴하는 탱크의 이미지를 거칠게 내뱉었던 임화(林和)의 투쟁시를 계승하고, 아나키스트로서의 존재를 지향해온 동세대 시인 장석원(張錫原)의 옆에 선다. 그러나 임화에게 탱크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는 의지의 표상이었으며, 장석원에게 혁명의 언어는 격렬한 사유의 진동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면, 조인호에게 철의 힘은 ‘오함마’ 그 자체다. 육화된 철이자 사유될 수 없는 힘이다. “붉게 탄 석탄 같은 광대뼈와/횡단철도 같은 쇄골을 가진/한 사나이의 어깨 위,//묵직한 해머처럼 얹혀 있던 불발탄”(「스스로 재래식무기가 된 사나이」)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사나이는 철이며 묵직한 해머 그 자체다. 해머에게 해머에 대한 사유를 물어볼 수는 없는 일, 그에게는 혁명의 순간을 열어갈 행위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할 때, “최종병기시인”이란 철을 단련하던 지하의 어두운 철광에서 지상으로 추락한 “미확인 지하물체”(「피랍」), 철에서 태어난 불가사리이자 우라늄의 천사다. 오함마를 투석기처럼 휘두르며, 우우우 달려가는 그. “상상할수록//강력하게 벽화가 그려진다/습기 찬콘크리트 밖으로/쩍쩍 갈라져나오던 금/그 수천의 나뭇가지 사이로/무지갯빛 광석이/그 천연의 빗살을 드러낸다”(「무지갯빛 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