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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록산 게이 『헝거』, 사이행성 2018
‘사후적’ 언어로부터 도래하는 진실과 정의
이정숙 李貞淑
현대문학 연구자 punky525@hanmail.net
세상에는 상대주의적인 관점이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사례들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주의는 너무나 자주 진실을 억압하는 시시비비 프레임에 잠복해서 많은 폭력/성폭력의 ‘희생자’들이 침묵하는 쪽을 택하게 만든다.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노지양 옮김)은 이 침묵이 몸에 남긴 역사에 대한 증언이다. 1974년생인 저자 록산 게이(Roxane Gay)는 평생 가족에게까지 숨겨온 성폭력 사건을 털어놓기로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몸이 초고도 비만이 되기까지 거쳐온 변화에는 긍정적인 자기이해를 박탈당해온 정체성의 역사가 있음을 고백한다.
고통을 기록한 책을 읽을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직면’의 의지가 향한 곳이 어디인지가 항상 진짜 주제라는 점이다. 이 책은 몸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복기해야만 했던 ‘사건’에서 시작한다. 모범생 콤플렉스를 지녔고 공부를 잘했으며 스스로 인기 없다고 여기는 빼빼 마르고 내성적인 열두살 흑인 소녀는 남자친구라고 믿었던 동급생이 유인하는 대로 숲속 오두막에 따라갔다가 여러명의 백인 소년들에게 폭행과 강간을 당한다. 이 기억에는 입에서 뿜어진 맥주 냄새와 ‘팔과 성기가 누르는 힘’에 더해 “경멸과 조롱”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목소리를 발신함으로써 이미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임을 증명했지만, 저자는 ‘희생자’라는 용어를 선호한다고 한다. 해소되지 못한 불안이 지금도 그녀의 몸을 지배하고 있고, 그 영향권 안에서 하루하루 투쟁 중이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극장 같은 공공장소의 좁은 팔걸이의자나 점점 좁아지는 비행기 좌석, 보통의 출입문이 그녀에게는 모두 문젯거리가 된다. 그녀가 책에서 밝힌 숫자를 여기서 소비하지 않더라도 초고도 비만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것은 운명의 문제에 속하지만, 그녀의 키는 190센티미터이다. 한번의 시선으로 존재감을 몸의 형상으로 전도(傳導)되게 만드는 다른 ‘비범한’ 몸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소수자가 일상적으로 겪는 불편한 시선과 인식의 폭력을 달고 산다.
그러나 『헝거』에서 몸은 타자적인 서술 대상이 아니다. 비만을 인식하고 다루는 미디어문화의 선정성에 대한 비판과 연동하기는 하지만 이 에세이의 진정한 내용은 영혼에 나타나는 ‘내면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몸과 감정의 생애사이자 르뽀이며 리얼리즘에 도달하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헝거』를 관통하는 주제는 그녀의 삶을 ‘비포’와 ‘애프터’로 나눈 ‘사건’ 이후 침묵과 폭식으로 일관했던 자신의 “판단착오”, 그리고 이 “판단착오”에 대해 성인이 된 지금껏 문득문득 덮쳐오는 “죄책감”과 “죄의식”이다.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온 사람의 지독한 외로움이 그녀의 몸에 개입한 음식과 기호의 여정을 통해 드러난다. 여기까지는 사실 절반만의 이야기인데, 왜냐하면 그녀의 ‘성장기’가 대개의 여성의 삶이 그런 것처럼 이삼십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과 그녀가 아이띠계 미국인 이민자 2세로 중상위계층 출신이라는 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헝거』는 인종 문제를 정곡으로 말하지 않는 서술전략을 취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존재가 백인뿐 아니라 흑인에게조차 “익숙한 전형적 흑인의 서사에 맞지 않”(83면)는 ‘변종’이었다고 털어놓음으로써 한 개인이 일상에서 얼마나 커다란 문화적 카테고리로 재단당하는지 보여준다. 백인 주류 페미니즘의 시각을 비판하면서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자처해온 그녀가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이 비만문화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쉽지만, 적어도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 자체가 소수자문화를 재생산한다는 경험이 핍진하게 녹아 있는 점은 미덕이다. 이 점은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은 해당한다. 미처 언어화되지 않은 탓에 인식과 감각의 세분화 과정을 섬세하게 거치지 못한 채로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적 소외감 말이다. 그래서인지 “서구 사회 최초로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자유 흑인 국가의 후손”(76면)이라는 자부심이 그녀의 사회적 정체성에 온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을 준다. 위기 때마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준 것은 경제력까지 갖춘 사랑과 신뢰로 굳게 무장한 지적인 부모였지만,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가 언급한 것처럼 인정(recognition) 문제에서 ‘인종’은 정치-경제보다 문화평가적인 층위로 다뤄지며 계급보다는 섹슈얼리티와 더 긴밀한 차원에 놓인다. 저자가 처한 상황은 미국 내의 인종 문제가 페미니즘의 주류 담론으로 부상하지 못하는 한계를 일정 정도 반영한다. 흑인 소녀를 짓밟은 여러명의 소년이 백인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백인 소년들을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동네 귀족/학교 킹카였다고 묘사한 것은 은밀한 반어적 전략일 수 있다.
제목이 말해주듯 ‘허기’는 몸이 마음의 고통을 감당하면서 작동하는 증상이다. 자존감 상실과 외로움에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그녀가 막무가내로 기댔던 음식과 기호의 길을 잠시 짚어보자. 자연 식재료로 만든 아이띠 전통음식을 떠나 정크푸드로의 이반, “흡연 행위의 의식”(99면)에 매료되어 버지니아슬림-말보로레드-말보로라이트-캐멀라이트-하드팩 캐멀라이트로 이동한 궤적까지. 채식과 금연을 실천하는 지금, 연인관계에서 마조히즘적 감정 운용을 하게 되고 문신을 애호하게 된 것은 긴 방황이 남긴 ‘잉여’라고 치자. 왜냐하면 방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 독서에의 몰입, 소설·채팅·블로그까지에 바친 글쓰기를 향한 탈권위적인 애정과 열정이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무해주니까 말이다. 자타공인 구원으로서의 글쓰기야말로 『헝거』를 통해 드러나는 록산 게이의 ‘진짜’ 정체성이다.
그녀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을 때 『타임』지에 실린 리뷰를 읽고서 마침내 그녀의 아버지도 ‘사건’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320면)고 말한다. 책장을 거의 덮을 때쯤에야 도래해서 뒤늦게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이 분노는 그러나 독자들이 해결할 몫이다. 푸꼬(M. Foucault)가 『성의 역사』 1권에서 말한 것처럼, 고백에 처해 말해진 진실은 말하는 사람에게 현전하지만 불완전하고 맹목적이어서, 진실을 전달받는 사람에게서만 완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록산 게이는 언어와 합일하지 못해서 생긴 몸의 고통을 통해 윤리적 사유를 제기함으로써 뒤늦게 말해진 이 ‘사후적’인 언어가 어디까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데, 거기에 이 책의 중요한 가치가 있다. 페미니즘, 글쓰기, 그리고 음식과 자아정체성을 연관지어 사고하는 몸의 사회학과 감정의 사회학에 관심이 있는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뜻밖에, 다양한 이 분야들이 정의를 실현하는 일과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헝거』가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