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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태호 엮음 『‘과학대통령 박정희’ 신화를 넘어』, 역사비평사 2018
박정희 진리의 레짐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
김기흥 金起興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dinkim@postech.ac.kr
미셸 푸꼬(Michel Foucault)는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주체로서 우리는 항상 지식을 향한 의지를 위하여 참과 거짓을 대비한 뒤, 거짓은 나쁜 것으로 여기고 배제하는 전략을 통해 권력을 만들어낸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배제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권력은 ‘진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그 지식을 재생산하고 강화한다. 푸꼬는 진리와 권력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진리의 레짐’(regime of truth)이라고 지칭했다. 이렇게 형성된 진리의 레짐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소소하게 작동하고, 각 개인이 스스로 이 권력-지식 관계 안에서 자신을 훈육하고 길들인다는 것이 푸꼬의 지식-권력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박정희라는 이름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산업화’ ‘근대화’ ‘경제성장’ 그리고 ‘과학기술’이라는 단어와 연관된다. 한국에서 ‘과학기술’은 대개 민족적 발전과 근대화라는 목적을 위한 도구로 취급되어왔다. 이러한 경향은 서구에서 과학이 자체적인 발전과정을 거쳐온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박정희라는 인물을 통해 개발민족주의의 도구로서 과학은 우리에게 ‘진리의 레짐’이 됐고 우리는 그 지식-권력 안에서 스스로를 훈육하고 내재화했다. 지난 2010년 발간된 『과학대통령 박정희와 리더십』(김영섭 외 지음, MSD미디어)은 그러한 경향을 대변한다. 이 책은 최고지도자의 의지에 의해서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그리고 저개발국에서 개발국가로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박정희의 관심과 배려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과학기술학자인 브뤼노 라뚜르(Bruno Latour)의 용어로 다시 말해보자면, 박정희는 과학기술 발전의 주요 결정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일종의 ‘의무통과점’이 되는 것이다.
한편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시도됐으며 역사적인 사실과 증거를 꼼꼼히 재구성하여 그것이 단지 구성된 형태의 ‘진리의 레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학문적 결과물도 제시되어왔다. 『‘과학대통령 박정희’ 신화를 넘어: 과학과 권력, 그리고 국가』는 이러한 결과물을 집대성하여 기존 지식-권력을 재편하려는 과학사-과학기술학계의 노력의 산물이다. 과학기술 발전에 있어 박정희 신화와 가장 관련 깊은 대표적인 정책이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설립(1966)이다. 여기에는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이던 최형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책은 KIST 설립 및 최형섭의 역할과 고민에 대한 재해석으로부터 시작한다. ‘과학기술입국’을 만들기 위한 KIST 설립은 박정희 과학신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신화가 된 통념에 의거하면, KIST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 과학기술정책 수립과 과학기술인에 대한 조직화의 결과였다. 즉 과학 분야에 대한 국가중심적인 관리체제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통념과 매우 다른 분석을 보여준다. 이미 해방 직후부터 과학자들은 새로운 국가건설 과정에서 과학 부분을 담당할 독립기구와 연구소를 설립해달라고 요구했고 그것의 실현 형태가 KIST라는 것이다. 또한 박정희가 순수하게 근대화라는 목표를 위해 과학기술 분야를 지원했다기보다는, 국가안보를 위한 ‘국방과학’ 측면에서 이를 지원했다고 말한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 발전과 적용은 일사불란하게 자원을 동원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국가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수 요소이기도 했다. 이러한 동원국가체제 유지에 과학자 사회가 단순히 수동적으로 동원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과학자 사회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우수한 과학자 사회의 재생산을 위해서 당시 박정희의 개발국가적 동원체제에 상응하는 자발적인 움직임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 이러한 자발적인 대응방식이 바로 ‘전 국민의 과학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과학의 대중화라든지 과학영농을 통한 과학화 캠페인은 대부분 이러한 대중 동원을 위한 명분으로 ‘과학’이 사용된 것이었다.
과학기술처 같은 정책조직이나 KIST 같은 연구조직 설립, 과학문화운동인 전 국민의 과학화운동과 영농과학, 쥐잡기 운동과 기능올림픽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연구하며 저자들은 박정희를 중심으로 구축된 진리의 레짐을 해체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지난 40여년간 공고하게 구축된 진리의 레짐을 한순간에 해체하기란 어렵다. 저자들의 풍부한 과학사적 배경지식과 꼼꼼하게 조사된 역사적 증거들이 그 출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두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번째는 몇몇 연구가 박정희정부의 기술관료적 정책의 원형을 일제가 아닌 미국에서 찾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박정희가 일제시기 만주국에서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며 습득한 기술관료적인 계획경제와, 과학분야 진흥을 목표로 한 일제의 국가주도 정책이 박정희정부 과학정책의 기초가 되었음을 이미 많은 역사연구가 밝혀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미국의 영향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 같다.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일본의 제도를 원용한 것이 아니라, 미국 경제학자 월터 이사드(Waler Isard)의 지역과학이론을 차용해 미국의 선진 지역과학 이론을 습득해 준비한 결과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또한 사람과 공존해오던 쥐를 전국민적 쥐잡기 운동을 통해 갑자기 박멸의 대상으로 바꾼 것이 한국에서 유행성출혈열을 연구한 에드윈 타이슨(Edwin Tyson)의 조사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만주사변 당시 유행성출혈열이 확산된 탓에 이에 대한 의학적 관심이 일제시기인 1931년에 이미 높아져 있었음을 간과한 것이다. 두번째는 박정희와 과학기술을 논하며 정책, 제도, 시설, 심지어 비인간인 쥐까지 다루지만 여성 관련 주제가 없다는 점이다. 여성 과학자나 기술자의 존재가 다룰 내용이 없을 정도로 미미했는지는 의문이다.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산업화에 기여했으며,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에 과학계에서 여성의 역할을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의아하다.
박정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개발민족의 도구로서 과학적 진리의 레짐은 이제 재편될 필요가 있다. 그가 만들어놓은 뿌리 깊은 국가주도의 개발주의적 동원체제는 이미 상당부분 해체됐다. 하지만 과학기술과 연관된 분야에서 박정희를 중심으로 구성된 지식-권력은 아직도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새로운 진리의 레짐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