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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분단 너머의 한반도

 

김정은시대 북한경제의 변화

 

 

이석기 李錫基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경제학 박사. 「통일을 대비한 남북한 산업협력 전략과 실행방안」 「북한의 서비스 산업」 「북한 시장실태 분석」 등의 연구가 있음. sklee@kiet.re.kr

 

* 본고의 3절과 4절은 이석기 외 「김정은시대 경제개혁 연구: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산업연구원 근간)의 해당 내용을 요약, 재정리한 것이다.

 

 

1. 머리말

 

2018년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의 위기를 증폭하고 남북경제협력(이하 경협)을 중단시켰던 북한 핵문제의 해결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갈등과 대결 국면이 종식되고 평화와 협력의 시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희망도 커지는 중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게 되면 남북경협의 재개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과거 남북경협은 성과가 적지 않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남북경협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하지 못한 데는 남측 요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북한경제의 상황 및 제도적 조건, 그리고 북한 당국을 비롯한 북측의 남북경협에 대한 인식 등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남북경협의 재개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경협의 환경적 요건이 될 북한경제의 상황과, 경협의 제도적 조건에 크게 영향을 미칠 북한 경제관리체계의 개편 혹은 경제개혁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남북경협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2. 김정은시대의 북한경제

 

북한경제는 대부분의 사회주의 경제가 그러하듯이 효율성에 큰 문제가 있음에도 1970년대까지는 나름대로 공업국가로 성장하다가 1980년대에는 정체상태에 빠졌으며, 1990년대에는 몰락 수준으로 후퇴했다.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 대규모 수해, 김일성 주석의 사망 등으로 끝없이 추락하던 북한경제는 대략 1998년을 바닥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북한경제는 부침이 없지는 않지만 느리게나마 회복 추세가 지속되었으며, 김정은시대에도 이러한 경향은 이어져왔다. 아래 표는 한국은행의 북한 GNI(국민총소득) 추정치인데, 북한경제가 1998년 이후 추세적으로 소폭의 회복을 지속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극심한 가뭄 등으로 마이너스성장을 한 2015년을 제외하고는 북한경제가 이전보다 다소 빠른 회복세를 보이다가 2017년에는 대북 경제제재와 가뭄 등으로 상당폭 후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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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북한의 공식매체나 외부 관찰자의 전언 등을 통해서 파악되는 김정은시대의 북한경제는 한국은행의 추정치보다 훨씬 개선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경제의 회복 속도가 김정은시대에 다소 빨라진 것도 있지만 2000년 이후의 회복이 누적되었으며, 시장화가 진전됨에 따라 다른 외부 관찰자에게 북한경제의 개선된 모습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부 관찰자는 시장경제 상황을 주로 살필 수밖에 없는데 평양 등 대도시의 시장경제 활동이 김정은 집권 이후 더욱 활발해졌기 때문에 북한경제가 전반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둘째, 한국은행의 북한 GNI 추정치는 2000년 이후 지속되고 있으며 김정은 집권 이후 심화되고 있는 시장화의 영향을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2000년대 이후 북한경제의 회복은 무연탄 등 지하자원 및 1차 산품의 수출과 상업·유통, 운수업 등 민간 서비스업의 성장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한국은행의 추정치는 이같은 민간 서비스업의 성장이 미친 영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에 북한경제의 현 상태를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시장은 수많은 북한 주민들에게 소득과 일자리를 공급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그렇게 획득한 소득으로 다시 시장에서 생필품을 비롯해 ICT(정보통신기술) 제품 등 고급 소비재와 심지어 부동산1까지 구매한다. 개인뿐 아니라 많은 국영기업도 시장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생존하고 있다. 국가가 생산을 위한 물자를 충분히 공급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시장을 통해 물자를 조달하고, 이렇게 조달한 물자로 시장 수요가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시장가격으로 판매해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기업 운영을 위한 자금을 조달한다. 여전히 발전소나 제철소 등 핵심적인 기업은 계획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많은 국영기업에 이제 계획은 형식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정부는 시장을 인정할 뿐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무선통신 서비스와 같이 국가가 주도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국가나 국영기업이 이 시장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핸드폰을 비롯한 ICT 제품이나 축산물 등 고급 소비재는 종합시장(소위 장마당)보다는 국가가 주도하여 확충한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등 대형 유통망에서 주로 거래된다. 또한 북한에서 여전히 고급 서비스에 속하는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 등도 국가 주도나 용인 하에 성장하고 있다. 국가가 시장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무엇보다 재정수입, 특히 외화수입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성도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의 아사자가 발생하고 가동되는 기업이 극히 일부에 불과했던 1990년대보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분명히 개선되었으며 활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낙후된 환경에서 농민을 비롯한 많은 주민들이 어려운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외무역의 확대와 시장화의 과실은 주로 평양 등 대도시나 신의주, 혜산 등 국경도시의 중간계층 이상에 집중되고 있으며, 농촌 주민이나 내륙 중소도시 주민들 대부분의 생활상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 측면에서는 서비스업, 농림어업, 전기가스업, 건설업 및 광업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으며, 제조업의 회복 속도가 가장 더디다. 특히 시장화를 주도하고 있는 상업·유통 등 서비스업의 성장이 제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현재 북한경제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중국이 석탄 의존도를 점차 줄이고 있어 무연탄의 대중 수출은 대북 경제제재가 아니더라도 조만간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수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서비스업, 특히 상업·유통이나 음식·숙박 등 전통적인 업종은 생산성 향상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성장을 이끌어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제조업의 회복과 성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일부 제조업 부문의 생산 역량이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여전히 타 산업에 비해서 성장이 더디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 역시 경제성장, 특히 제조업의 성장을 통해 북한을 산업화된 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대북 경제 제재 탓에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나 경제특구 및 경제개발구의 설치를 통한 외자유치나 관광 인프라 확충 및 새로운 관광상품 개발을 통한 관광수입 확대 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개별 경제정책과 함께 종래 대규모 생산설비 투자를 통한 양적 성장전략에서 과학기술과 교육·훈련을 통한 질적 성장전략으로 전환을 모색 중이며, 경제관리체계의 개편 혹은 경제개혁을 통한 경제 전반의 효율성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3. 김정은시대 북한의 경제개혁: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김정은시대 경제개혁 과정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직후부터 경제관리체계의 개편을 경제회복을 위한 주요 정책수단으로 간주하고 지속적으로 경제개혁을 추진해왔다. 집권 직후인 2012년 초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된 상무조(일종의 T/F팀)에서 제시한 안을 기초로 논의와 실험적 실시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내각 권한의 강화, 기업소(국영기업)에 노동보수 지불 및 상품가격 제정 권한 부여, 국영 유통망 활성화, 농업부문 개편 등의 안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 안의 일부가 소위 ‘6·28방침’으로 와전되기도 했다. 이후 새로운 경제관리제도는 시범적·단계적 실시를 거쳐 법제화가 진전되었다. 내각 시안이 마련되고, 부문별로 시범적으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상업 부문에 우선적으로 적용되었으며, 2013년에는 농업 부문에도 실험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의 실험단계를 거쳐 2014년 5월 30일 당, 국가, 군대의 책임일꾼들과의 담화를 통해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5·30담화)이 발표됐다. 5·30담화에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도입을 핵심으로 하여 경제관리의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후 2015년까지 인민경제계획법, 기업법, 재정법 등과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실시를 위한 독립채산제 규정 등의 제정 및 개정을 통해 새로운 경제관리체계의 법제화가 완료되었다.

김정은시대 경제개혁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등 김정일시대 경제관리체계 개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김정은시대의 개혁은 그 범위나 내용이 더욱 확장·심화되었을 뿐 아니라 관련 법이나 시행세칙 등의 제정 및 개정을 통해 개혁을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김정일시대의 개혁과는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북한 경제관리체계 개편의 관건은 공식적인 체계 내에 시장을 어떻게 포섭할지였는데, 김정은시대의 개혁을 통해 시장이 마침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며, 계획화 시스템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시장과 계획이 한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은시대 경제개혁의 주요 내용

김정은시대 경제개혁의 결과물인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크게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로 불리는 새로운 기업관리체계와 무역관리체계, 그리고 협동농장책임관리제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농업관리제도로 구성된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계획 수립 및 집행, 가격 제정 및 판매, 기업 소득의 배분, 기업조직 및 고용, 설비 도입 및 처분 등에 있어서 기업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업 경영의 여러 측면에서 자율성을 강화한다는 것을 결국 국영기업의 시장경제 활동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국영기업이 시장을 적극 활용해 생산과 투자를 증대시키고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경제 성장 및 재정수입 확충을 도모하는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첫째, 기업소법을 개정하여 중앙지표의 수를 줄이고, 기업소 지표2를 도입하여 기업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지표를 계획에 반영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장을 대상으로 한 생산과 판매 활동이 공식적으로 계획에 포함되게 했다. 기업소 지표의 도입과 함께 수요자와 공급자 간 맺은 계약의 결과를 계획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 계획수행과 그 평가에 있어서도 중앙으로부터의 물자공급 여부 및 그 정도와 연계시킴으로써 국가계획의 수행과 관련한 국가와 기업 간의 갈등 요소를 완화시켰다.

둘째, 기업에 가격 제정권과 판매권을 부여했다. 즉 국가가 원료 및 자재를 공급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이를 자체적으로 조달해 생산한 모든 제품에 대해 스스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했으며, 현물계획에 의해 생산한 제품 중 공급처가 확정된 계획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제품을 기업이 자체적으로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셋째, 기업소득 분배제도도 개편해, 기업의 판매수입금에서 국가예산 및 부동산 사용료 등을 납부하고 난 자금에서 원가(종업원에 대한 생활비는 포함되지 않음)를 보전하고 남는 소득을 기업소가 자체적으로 노동보수 몫과 자체충당금(기업소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편했다. 또한 기업이 돈주3를 비롯한 주민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사용할 수 있게 허용했다.

넷째, 기업 자체자금에 의한 설비투자를 공식화했으며, 기업이 투자에 기여한 설비 등 고정자산에 대해서 기업에 일정한 처분권을 부여했다.

다섯째, 기업에 생산조직 및 고용 구조조정 권한을 일부 부여했다. 다만 고용 문제는 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여타 분야에 비해 변화의 정도는 덜한 편이다.

다음으로 대외무역제도의 개편을 살펴보면, 먼저 대외무역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가 크게 확대되었다. 종전에는 허가된 무역회사만 무역을 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무역 영업허가를 받은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에 문이 열렸다. 대외무역의 허가제라는 틀은 유지하되, 허가받을 수 있는 대상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허가를 획득할 수 있는 요건도 상당히 완화되었고, 절차도 간소해졌다. 여태까지는 기관, 기업소, 단체가 허가를 받아 무역회사를 설립하고, 이 무역회사를 등록한 뒤 영업허가를 받는 절차를 별도로 거쳐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역회사를 설립하는 절차 없이 영업허가만 받으면 된다.

그리고 무역계획을 작성하고 실행함에 있어서 무역단위의 자율성과 권한이 크게 확대되었다. 기업계획화 체계의 개편과 유사하게 무역계획의 지표를 국가적인 전략지표와 제한지표, 기타지표로 나눈 다음 전략지표와 제한지표에 대해서는 현물계획을 세우고, 기타지표는 개별 무역단위가 작성하도록 했다. 무역계획의 실행에서도 기타지표의 수출입가격은 무역단위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했다.

농업 부문에서도 기업 부문과 유사하게 계획권 확대, 포전담당책임제 도입, 조직권 확대, 재정운영권 강화, 판매권 확대, 분배제도의 개편 등 협동농장의 경영권을 전반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관리방법을 개편했다. 이제 협동농장은 알곡(곡물)에 대해서는 국가계획에 따르되 나머지 품목에 대해서는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협동농장의 책임경영제가 강조되면서 관리위원장은 농장의 수입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고 국가수매에 의존하는 알곡보다는 시장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남새(채소) 및 공예작물 생산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국가는 생산비와 관계없이 알곡을 국정가격으로 수매하도록 정해져 있는데, 이 값이 시장가격의 1/100에 불과할 정도로 낮기 때문에 협동농장은 되도록 국가수매 물량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국가는 주민이 소비할 기본적인 식량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알곡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생산목표를 설정하고 협동농장은 그 목표를 달성해야만 다른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자체 계획권을 제한하고 있다.

새로운 농업관리체계에 의한 가장 큰 변화는 생산된 곡물의 분배방식이다. 분조관리제를 강화하되 지금까지의 현금분배 대신 현물분배를 기본으로 하면서 현금분배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과거에는 협동농장이 농장원에게 식량으로 분배하는 몫(인구 1인당 겉곡 260kg)과 협동농장이 자체적으로 사용할 종자, 사료 등의 곡물을 제외한 나머지를 국가수매 형태로 판매해 확보한 현금을 분배원천으로 삼았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하에서는 현물분배와 현금분배를 병행 실시한다. 현물분배는 생산에 투입된 영농비(토지사용료, 관개 및 전기 사용료, 국가가 공급한 농자재 대금, 지원노동력 등)와 공동기금 몫(이듬해 사용할 종자, 사료 등)을 현물로 계산해 이에 해당하는 곡물만큼 먼저 의무적으로 국가수매에 응하고 나머지 몫을 농장원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관리제도는 협동농장이 주민들로부터 필요한 유휴화폐자금을 직접 확보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4. 평가와 한계

 

김정은시대의 경제개혁은 비록 소유제의 개혁은 포함하지 않았으나 이전에 비해서는 좀더 본질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첫째, 국가와 기업의 역할 재조정을 통해 기업의 생산 및 투자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김정은시대 기업관리체계의 변화는 기존의 소유권 제도, 그리고 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계획화 체계는 유지하면서 기업의 생산 및 투자 확대를 저해하는 제도적 장애를 제거하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의 물자공급 능력 및 투자재원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기업의 생산·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활용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제도 개편의 주된 방향은 암묵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국영기업에 의한 시장거래를 불법 혹은 비합법으로 만드는 제도를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다. 특히 국가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국가와 기업 간 이해관계 충돌의 여지를 제거 내지는 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국가의 물자공급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업에 계획, 생산, 물자조달, 가격제정 및 판매에 관한 권한을 이양함으로서 생산 확대 및 효율성 제고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계획위원회 등 중앙정부는 기업의 생산과 투자에 기여한 만큼만 기업 경영활동을 통제하고 수익을 요구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제도를 수정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약간 후하게 평가하자면 국가와 기업이 각각 생산과 투자에 기여한 바에 따라서 자기 몫을 갖도록 하는 것이 이같은 제도개편의 정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합당한 몫을 보장받음으로써 기업이 생산과 투자를 늘리면 그만큼 재정수입 등을 통해 국가에 돌아가는 몫도 커지리라는 것이다.

둘째, 시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뿐 아니라 그것을 계획화 체계 내에 이식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국정가격과 상이한 협의가격 및 시장가격을 계획화 체계에 반영함으로써 시장과 시장가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더불어 국영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공식적인 유통기구가 아닌 시장에 판매하는 것을 허용했다. 심지어 수입품의 시장 판매도 허용했다. 시장을 중앙지표 및 국가납부금으로 구성된 계획 수행을 위한 핵심수단으로 인정했다고 볼 수 있는 요인들이다. 중앙지표의 비중을 줄이고, 기업소 지표의 비중을 확대하며, 기업이 시장을 토대로 기업소 지표를 수행할 것을 허용한다거나 국가가 물자를 공급해주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 조달한 물자로 중앙지표를 수행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평가를 수용하는 것 등이 계획 수행수단으로서 시장을 공식적으로 허용한 대표적인 내용이다. 기업의 현금 거래도 폭넓게 허용했다. 기업의 기본 계좌 외에 별개로 허용되는 현금계좌에 판매대금을 입금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기업이 자체적으로 개발·생산한 상품을 시장에 현금으로 판매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셋째, 기업 자율성 강화와 함께 제도화를 통한 통제력 회복을 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1990년대 이후 기업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의 상당 부분을 제도의 형태로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화는 한편으로는 기업의 시장경제행위에 합법성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그동안 국가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던 경제활동에 국가가 공식적으로 개입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시장거래를 중심으로 한 기업경영을 활성화하는 측면과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을 제약하는 측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넷째,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특히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내각 소속 중간 규모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어느 정도 생산능력이 있으며, 중앙지표를 수행해야 하지만 경영의 지속과 성장을 위해서는 시장 판매와 계약 판매가 핵심인 중간 규모의 기업들이 그렇다. 일단 이 기업관리체계 개편은 군부나 당 등 특권부문에 소속되었거나 관련된 기업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각 소속 기업 중에서도 전략물자를 생산하는 핵심기업은 기업소 지표의 도입이나 가격 책정 방식의 변화 등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중앙지표가 전혀 없는 지방의 중소 규모 기업 역시 이미 시장경제활동을 통해서만 존속되고 있고, 기업이 배분할 자원이 크지 않기 때문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김정은시대의 경제개혁은 북한의 시장화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시장화를 크게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경제 운영방식에 내재되어 있던 모순이나 갈등적 요소를 상당 부분 제거할 것으로 기대된다. 즉 국가는 국가 운영을 위해 전략적으로 장악해야 할 부문이나 기업은 직접적으로 관장하면서도 그외의 부문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산이나 투자 등에 기여한 만큼의 통제력만 행사할 뿐 여타 영역에 대해서는 기업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편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적지 않은 한계도 내포하고 있다. 첫째, 개혁의 범위가 제한적이다. 특히 소유제도의 개편과 관련해서는 조금의 진전도 없다는 점이야말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의 근본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계획화 체계에 있어서 국가와 기업 간의 역할조정과 갈등 해소를 추구하지만 계획화 체계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국가와 기업 간의 관계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국가가 어떠한 제도적 근거도 없이 기업과 경제주체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사회적 과제(혹은 정책과제), 충성자금(혹은 혁명자금), 세외부담 등에 대해서는 일말의 변화도 없는 셈이다. 내각 중심의 경제관리방식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군·당 등 특권부문이 주도하는 경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별다른 대응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기업의 투자재원 확충을 유도할 제도 변화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업관리체계 개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이는 내각 소속 중간 규모 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경영 자율성 여부보다는 시장 수요가 있는 상품을 개발하거나 생산능력을 확충하기 위한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주민 유휴화폐 조달의 제도화 등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김정은시대의 기업관리체계 개편도 북한경제의 이 핵심적인 과제에 대해서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개편을 통해 기업의 생산이 확대되고, 그에 따라 국가재정이 확충되면 설비투자 또한 늘어나겠지만, 중앙정부 재정을 통한 투자만으로는 북한경제 전반의 성장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재 북한산업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것이 질적·양적 생산역량의 부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투자재원의 확충을 견인할 수 있는 제도의 변화 없이 의미있는 경제적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영 자율성의 확대는 이미 현실적으로 커져온 자율성을 사후적으로 인정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이 조치로 생산요소 투입이 얼마나 증가하고 생산성이 향상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셋째, 기업이나 농장 등에 제도적으로 부여하기로 한 자율성과 권한이 실제로 제대로 지켜질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협동농장의 경우 농업생산물, 기업의 경우 판매수입 및 기업가처분소득 등 이른바 분배의 영역에 대해 북한정부가 종전과는 달리 개입하지 않고 기업·농장의 자율처분에 맡기겠다고 한 약속을 과연 지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실제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제기된다고도 한다. 새로운 제도를 경제주체들이 신뢰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인데, 비핵화의 진전 등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의 해제 등 대내외 경제적 여건이 개선되어야 북한 당국도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5. 남북경협에 대한 시사점

 

남북경협의 측면에서 북한 측 환경은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경제는 더디지만 회복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회복이 시장화 추세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소비재가 시장에서 거래되며, 국영기업에 의한 자본재와 중간재 거래도 상당 부분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에서도 내수가 형성됨에 따라 한국기업에 북한은 이제 생산지로서뿐 아니라 시장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게 되었다. 북한이라는 시장은 남북경협을 통해 더욱 확대될 것이다.

김정은시대 경제개혁은 남북한 경제협력의 여건을 크게 개선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경제는 여전히 국영기업이 중심이므로 남북경협의 대상은 국영기업일 수밖에 없다. 이들 국영기업은 국가가 물자를 공급하지 않는 영역에서 시장을 대상으로 한 생산 및 판매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남북경협이 추진될 수 있는 영역에서 국영기업의 시장경제 활동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향후 재개될 남북경협이 남북한의 공동번영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시장경제 원칙에 기반해 추진되어야 하는데, 최근 북한의 제도개혁으로 이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공식화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매년 신년사에서 그것의 실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등 중앙정부가 새로운 경제관리방식을 통한 경제발전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의 관심이 큰 남북경협이 시장경제 원칙에 의해 추진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새로운 경제관리체계하에서는 내각 소속 중소규모 기업들이 직접 대외무역 및 합작·합영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남북경협은 남북한 기업이 직접 소통하지 못하고 남한의 기업과 북한의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 같은 조직이 접촉해 사업을 결정하고, 북측 기업은 생산만 하는 구조였다. 이러한 방식은 상호 정보가 부족한 현실에서 사업을 촉진하는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북측 기업의 직접적인 참여를 봉쇄해 남북경협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경협에 따른 북한 기업 및 산업의 성장과 그로 인한 경협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의 제도화가 완료되었지만 현재 이것이 북한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김정은 위원장을 위시한 북한의 중앙정부가 제도만 만들고 실행할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중간 관리기구나 기업, 혹은 지배인 등 기업 운영자들이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에 따라 기업을 운영할 의지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고,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생산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이전과는 다른 능력을 요구하고 새로운 위험을 제기한다. 아직 대부분의 기업 및 중간관리기구의 관계자들이 이러한 능력이나 위험을 감수할 태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향후 남북경협을 추진하고 확대시켜나가는 과정을 통해 김정은시대 경제개혁이 더욱 진전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의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스스로 마련한 제도를 활용해 시도하고 있는 경제개혁을 현실화하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향후 남북경협 재개 시 민간경협은 철저하게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해 추진할 것을 요구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남북경협의 접촉면을 다양화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경제개혁으로 남북한 기업이 직접 무역이나 임가공사업, 그리고 투자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막는 제도적 제약은 크게 완화되었다. 북한 당국이 남북경협에서 내각 소속 국영기업의 직접참여를 허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우리로서는 남북한 기업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한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실현해나가야 한다. 군부나 당의 소속 내지 관련 기업보다 내각 소속 기업과의 경제협력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남북한 경제협력의 지역적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남북경협이 북한의 특정 지역에서 특정 범주의 기업과 한정된 방식으로만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경제관리제도 개편을 지렛대 삼아 북한 전역에서 내각 소속 중소규모 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경제주체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경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경협이 과거와 같이 국지적·제한적인 범위를 넘어서 전면적으로 추진되며, 이를 통해 북한경제가 성장해나간다면 한국경제의 성장동력 확충에도 상당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남북경협과 북한경제의 성장이 같이 이루어지게 되면 한국의 기업과 산업은 북한지역에 새로운 시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북한에서 이미 내수시장이 형성되고 있거니와 남북경협을 통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면 시장으로서 북한의 의미는 급속도로 커질 것이다. 소득의 증가에 따라 의류 등 생필품뿐 아니라 가전제품, ICT 기기, 자동차 등 소비재 수요가 급증할 것이며, 이는 한국의 기업에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북한의 경제성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간재 및 기계류 등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텐데, 이를 한국기업이나 남북한 협력기업이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건설수요도 급증할 것이기 때문에 금속 및 화학자재 등 건설 자재나 장비 등의 시장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남북경협이 전면적으로 진행되면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동북아시아 경제권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며, 이 거대 경제권은 한국경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한국은 섬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대륙과의 연결통로를 확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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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확하게는 부동산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이 거래된다.
  2. 중앙지표는 국가계획을 통해 기업에 하달하는 계획인데, 주로 물적인 생산목표의 형태로 전달된다. 기업소 지표는 새롭게 도입된 것으로 기업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계획목표인데, 주로 금액 기준으로 표시된다.
  3. 돈주는 일정 규모 이상의 화폐자금을 축적하고 이를 상업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굴리는 북한판 화폐자본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