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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강화길 姜禾吉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 등이 있음.

 

 

 

화이트 호스(white horse)

 

 

가장 먼저 기억나는 건, 내가 그 집에 들어갔을 즈음에 테일러 스위프트는 더이상 신인가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선아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신인이던 때, 물론 그해 가장 주목받은 가수이긴 했지만 이후 빌보드 차트와 그래미상을 휩쓰는 모습은 아니었던 바로 그 시기에 실종됐다. 그녀도 그 집, 그러니까 레지던시에 입주해 있었다. 장편소설을 구상하던 중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당시 이선아가 컨트리 음악에 빠져 있었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녀는 거의 매일 밤을 새워 인터넷 음악 사이트를 뒤적이고 관련 책들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밥 딜런의 노래는 물론이고 컨트리에 영향을 줬다는 동요까지 흥얼거렸다. 그녀는 그 외에 다른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녀가 실종된 후 사람들은 말했다. 아마 그녀의 두번째 소설은 컨트리 음악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실종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소설이 완성되기만 했다면 대단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젊은 작가를 향한 동정이나 배려가 아니었다. 진실한 기대였다.

특히 내게 그랬다. 습작 시절 나는 항상 이선아를 흉내 냈고, 그녀처럼 쓰기를 원했다. 그리고 매번 실패했는데, 그때마다 그녀처럼 쓰는 작가는 오직 이선아 한명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등단 후에도 그녀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 작가인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르쳐줬는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 관두게 됐다. 왜냐하면 우선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를 뭘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의식 과잉이라는 말을 들었고, 내가 특별한 독서목록을 감추기 위해 이선아를 이용한다는 말도 들었으며, 과대평가된 이선아를 좋아하는 걸 보니 안목이 의심스럽다는 말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책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이런 말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척, 교묘한 전략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이후 나는 정말로 책이나 작가에 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상처를 입어서 그런 건 아니고, 전략적이란 표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들은 말 중 가장 그럴싸해 보였다.

아무튼 그 집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백년 넘은 고택이었다. 최초 주인인 미국인 의사 부부는 전염병으로 죽었다. 집을 물려받은 하인은 여러명의 첩을 뒀고, 그중 가장 어린 소녀를 목 졸라 죽였다. 그 직후 시작된 소문인지 아니면 세월이 꽤 지난 후, 그러니까 집에 입주하는 사람마다 사고를 당하거나 죽기 시작하면서 나돌기 시작한 이야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굴뚝과 삼각형 모양의 녹색 지붕, 2층의 커다란 창문 두개와 칠이 벗겨진 벽, 원형 기둥 네개가 받들고 있는 낡은 포치의 천장과 널찍한 테라스. 그 곳곳에 망자들이 스며들어 있다는 수군거림만 떠다닐 뿐. 그들은 집 안 물건에 손을 대는 사람들을 해치며 존재를 드러낸다고 했다.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증명하기 위해 말이다. 집을 떠나지 못하기에, 이곳에 영원히 남게 되었기 때문에.

이선아도 망자 중 하나가 되었다고 했다.

“유령으로라도 만나고 싶어서 그래?”

전략이 소용없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내가 이선아의 흔적을 찾아 그 집에 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집에는 이선아의 물건들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이 적힌 책과 노트, 옷가지 몇벌과 슬리퍼 등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았고, 사진을 찍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이라니, 나 같으면 그냥 가져왔을 텐데. 톨스토이 기념관도 아니잖아. 내가 이렇게 말하자 친구들은 또다른 소문을 전해줬다. 실종 직후에 가족들이 물건을 치웠다가 도로 가져왔다고 말이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어딘가 계속 부딪히고 넘어져 다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돌려보냈다고 말이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가족의 유품을 버린단 말인가. 상처와 악몽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때 동료들이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너도 결국 물건들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집에 가려는 것 아니냐. 남겨진 것들의 흔적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전략적인 건 아니었고, 그냥 맞는 말이라 그랬다.

 

하지만 꼭 이선아의 물건 때문에 입주했던 건 아니다.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

지금도 그 탁하고 낮은 목소리를 기억한다. 말이 별로 없고, 무뚝뚝한 여자였다. 구불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한갈래로 묶어 틀어 올리고 다녔다. 뭐랄까, 항상 관찰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는데 햇빛에 비친 그 눈동자에는 노란빛이 섞여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은 것 같았다. 어쩌면 어렸을지도 모른다. 집을 수리한다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전문적인 단어를 늘어놓는다는 이유로 막연히 나보다 연상이리라 생각했던 거니까.

그녀는 이선아가 실종된 후 집주인이 다급히 채용한 사람이었다. 원래도 오래된 집인 만큼 녹물, 누수, 보일러 고장, 정전 등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는데, 입주해 있던 사람까지 실종되니 부정을 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집주인은 일종의 부적처럼 그녀를 고용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곧장 집으로 찾아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곳은 시골이었고, 군 터미널에서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는 마을이었다. 게다가 집은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숲속 한가운데 있었다. 거의 헌신에 가까운 근무조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혹시 소문의 그 집주인이 아닌지 의심했다. 사택을 레지던시로 개조하고 소설가들에게만 개방한 사람. 단 한명만 머무를 수 있게 했다는, 그러나 문단의 누구도 만난 적 없다는 바로 그 집주인 말이다. 누구도 대화해본 적 없으니 그 집을 레지던시로 개방한 이유나 다소 특이한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은밀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몇번 만난 이후, 집주인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에게는 비밀스러움이 없었다. 그날도 한밤중에 불려 왔다는 것에 대한 짜증을 거의 숨기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은 없다. 나 역시도 매우 신경질이 났으니까.

“아뇨. 착각 아니에요. 저는 손도 안 댔어요. 제멋대로 소리 나는 거예요.”

인터폰이 말썽이었다. 며칠 내내 밤마다 느닷없이 인터폰이 울렸던 것이다. 초인종만 울리면 상관없겠지만, 위급 시에 관리자를 호출하는 벨까지 울려서 골치가 아팠다. 처음에 그녀는 인터폰 단자의 접촉이 문제인 것 같다고 설명해줬지만, 다음에는 사무적인 태도로 다녀갔다. 세번째에는 인터폰에는 문제가 없다며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다음 날에는 찾아오지 않았고, 바로 그날은 이렇게 말했다. “실수로 벨을 누르신 거 아닐까요.”

맹세코 아니었다. 나는 인터폰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냉담하게 대꾸했던 것이다.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라고. 내가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냐는 말투였는데, 당연히 아니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도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치는 장난은 안 했다. 그런 장난은 뒷감당에 아무 관심이 없는 애들이나 저지를 수 있는 거였다. 잡혀도 상관없고, 아니면 잡힌 이후 상대를 더 약 올리고 싶은 애들 말이다. 물론 후회는 된다. 뒷감당 따위 하지 않아도, 혼나고 망신당하면서도 빙글빙글 웃을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거니까. 그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 지금은 초인종 좀 누르고 도망친다고 해서 망가질 세상이라면 그냥 망가지는 게 낫겠다 싶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 그런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대체 왜, 관심도 없는 사람을 밤중에 왔다 갔다 하게 만들겠나. 그것도 매일매일. 나는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 집에 들어간 진짜 이유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믿는 것 같지 않았다. 은근히 나를 흘겨보고서 거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하필이면 그날 밤 욕실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거실을 가로질러 가던 그녀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 바람에 나도 함께 그 자리에 멈췄다. 왜 그런가 했더니, 소파와 좌탁 근처가 지저분해서 어디에 발을 디딜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거였다. 그곳에는 페디큐어 제품들과 바디로션, 비타민, 읽다 만 책들과 지저분한 손수건 등 내 살림살이들이 펼쳐져 있었다. 바닥에도 물건들을 잔뜩 늘어놓은 상태였다. 나는 2층 침실까지 올라가는 게 귀찮아 소파에서 잠드는 날이 많았고, 필요한 물건들 대부분을 다 근처에 갖다 뒀다. 원래 정리정돈을 잘 안 하기도 했고. 그래도 낯선 사람에게 너저분한 모습을 보이니 약간 창피하기는 했다. 그래서 바닥을 좀 치워볼까 눈치를 살피는데, 그녀가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책들이 있었다. 먼지 가득한 벽장에서 꺼내 늘어놓은 이선아의 책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잘못 본 걸까. 어느새 그녀는 책과 잡동사니들을 넘어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따라 들어갈 생각도 없었는데 눈앞에서 문이 그렇게 닫히자 나는 살짝 민망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 척 나는 태연하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바닥에 내려놓은 클립 상자를 밟았다. 클립들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것들을 주웠다. 그때였다. 현관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터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주파수를 잘못 맞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욕실 문을 두드렸다.

“봐요! 인터폰에서 소리가 나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반응이 없었다. 나는 욕실 문손잡이를 잡았다. 소리를 직접 들려줄 생각이었다. 그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민요 같기도 하고 동요 같기도 한 어떤 노래의 후렴구. 나는 인터폰에 대고 물었다.

“누구세요?”

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누구세요? 답이 없었다. 인터폰은 옛날식이라 화면 창이 없었고, 마이크와 스피커만 있었다. 밖을 확인하는 방법은 현관문의 외시경을 들여다보거나, 문을 열고 나가보는 것밖에 없었다. 진짜 귀찮아 죽겠네. 나는 중얼거리며 현관문에 다가갔다. 외시경에 눈을 가져갔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뿐이었다. 역시, 인터폰이 고장 난 건가. 그때 쾅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문이 흔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문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후다닥 달아나는 소리. 이 동네 아이들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들이 관리 사무실 벨도 손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재빨리 문을 열었다.

숲의 송진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아이들은 이미 멀리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밤바람에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만 났다. 나는 소리쳤다. 그만두라고. 한번만 더 그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리고 돌아섰는데,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설명했다. 누군가 장난을 쳤다.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인터폰이 계속 울리는 것 같다. 나는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었는데도 어쩐지 변명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심드렁한 말투로 내게 대꾸했다.

“이 밤중에 애들이 여기까지 왔다구요?”

그해 여름, 나는 그 집에 갔다. 이선아의 물건이 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나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일년간 단 한줄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선아의 유품은 대부분 추리소설이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코난 도일, 존 딕슨 카, 윌리엄 아이리시, 그리고 체스터턴. 거의 반백년도 더 전에 인기를 누렸던 작가들의 번역본 책들이 잔뜩 있었다. 그 외에도 오르골, 연필깎이, 손목시계, 이가 빠진 찻잔 같은 것들도 있었지만 서명이 없어서 이선아의 물건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가 궁금한 건 책이었다. 이선아는 체스터턴을 좋아했는지, 그의 책이 가장 많았다. 유명한 추리소설인 브라운 신부 시리즈 외에 시집과 평론집, 에세이, 전기문까지 있었다. 그중 시집들은 한눈에 봐도 희귀서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만큼 오래된 원서였고, 평론집과 에세이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대한 영어 논문과 한국어 논문까지 있었다. 이선아는 컨트리 음악이 아니라 체스터턴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관리자가 집을 떠난 직후, 그러니까 욕실 누수가 생각보다 심각해서 공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심란한 말을 하고 사라진 이후부터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고백』을 읽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권이었다.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졌다. 브라운 신부가 사건의 정황을 그려내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책장에서 거의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우산 끝으로 바닥을 두드릴 때면 더더욱 그랬다. 중요한 말을 한다는 예고였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용의자를 걸러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낼 거라는 뜻이었다.

또다시 브라운 신부가 우산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드디어 동기가 밝혀질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슬럼프 자체는 별로 괴롭지 않았다. 원래 영감이 미친 듯이 샘솟는 유형의 작가도 아니었고, 많이 쓰는 편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않은 이유는, 오만하다, 거짓말하지 마라, 허세 부리지 마라, 이런 말들이 되돌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상만 해도 싫었는데, 왜냐하면 솔직히 허세가 아닌 건 또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이 안 써지는 건 어차피 즐거운 일이 아닌데 굳이 그 속내를 들켜가면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어차피 내 고통인데 굳이 누군가와 공유를 해야 하나? 그래서 다음 장편소설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석달을 놀았다. 같은 핑계로 석달을 더 놀았고, 이후 석달을 또 그렇게 했다. 그러자 장편소설은 어떻게 되어가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빚 독촉을 받는 기분으로 지내는 건 진짜 좀 괴로웠기에, 도망치듯 그곳으로 내려가 숨었던 것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곳.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고요히 일어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며 주문 외우듯 중얼거릴 수 있었다. 이것도 삶이다. 쓰지 않아도 내게는 삶이 남아 있다. 문학은 삶의 전부가 아니다. 물론 몇분 후에는 비장함을 다 잃어버린 채 얼굴의 뾰루지를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하곤 했지만. 이것만 없으면 완벽한데. 아, 진짜 아름다워.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노랫소리가 요란했다. 새벽 두시였다. 이 시간에 또 장난을 친다고? 나는 현관문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밖을 내다볼 필요도 없었다. 노랫소리가 끊어졌던 것이다. 가위로 리본을 잘라낸 것처럼 쓱 사라졌다. 나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책을 집어 들었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노래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했고, 새삼스럽게 낯설기도 했다. 나는 손끝으로 남은 책장을 잡고 한쪽으로 넘겼다. 책장들이 가벼운 바람을 일으키며 반대편으로 넘어갔고, 역자가 쓴 해설 부분에서 멈췄다. 읽던 부분으로 되돌아가려던 나는 그 글의 한 구절에 시선을 멈췄다.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체스터턴은 평생 자신을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작가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문장 옆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화이트 호스(white horse).”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나는 바닥에 나뒹구는 체스터턴의 시집들을 뒤적였다. 역시 있었다. 『발라드 오브 화이트 호스』(The Ballad of the White Horse).

체스터턴의 시집들 중 하나였다. 메모는 이 시집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선아는 왜 이런 문장에 밑줄을 쳤을까. 이 의견에 동의했던 걸까? 나는 시집을 심각하게 들여다보다 피식 웃었다. 무슨 상관이야. 체스터턴에 대한 평가는 저 문장이 다가 아닐 터였다. 그를 시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터 이런 글귀에 신경을 썼다고. 나는 시집을 내려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스로를 시인으로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구절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때로부터 일년 전, 그러니까 글을 쓰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무렵 나는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버스를 놓친 여자의 이야기였다. 그 여자가 휴게소에 들어오는 다음 버스를 찾아 어떻게든 집에 돌아가려 벌이는 소동극이었다. 쓰는 내내 즐거웠다. 끊임없이 농담을 늘어놓는 기분이었고, 가능하다면 그 기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나는 그 소설이 좋았다. 제법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내 예상과 달랐다.

나는 계속 책더미를 뒤적였다. 『발라드 오브 화이트 호스』는 한국어 번역본이 없었다. 혹시 이것도 농담인가. 대신 나는 한국어 논문 두개를 발견했다. 체스터턴이 ‘화이트 호스’라는 고유명사를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당연히 재미없어 보였고, 그래서 별로 읽고 싶지 않았지만 영어사전을 뒤적거리며 이 시집을 읽는 것보다는 덜 피곤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어쨌든 논문이라면 똑똑한 사람이 썼을 테니 내가 어설프게 독해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나는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분도 지나지 않아 지루해졌다.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철학이론과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도식이 계속 등장했는데, 이게 수학논문인지 공학논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국어 논문인지조차 의심스러워서 중간에 표지를 두번이나 확인했다. 진짜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간신히 이해한 걸 요약하면, 화이트 호스는 하늘에서 내려온 영적 존재, 혹은 구원이나 선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체스터턴은 그 뜻을 활용해서 시를 썼다고 했다. 전통적이고 신화적인 발라드. 이 결론만으로는 이선아가 책 속 밑줄 옆에 왜 화이트 호스라는 메모를 적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떤 힌트도 되지 않았다. 백마 탄 왕자님의 의미만 쓸데없이 깊이 알게 된 것 같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자마자 문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도 숲을 가로질러 왔기 때문인지 물기 가득한 풀냄새가 났다. 나는 새벽에 초인종이 울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인터폰을 대충 한번 쳐다보며, 욕실에 있을 테니 만일 벨이 울리면 불러달라고 했다. 그때 다시 보겠다고 말이다. 인터폰이 울리는 걸 직접 보기 전에는 내 말을 믿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만하다고도 생각했다. 저 사람 입장에서는 소설가랍시고 들어와 있는 사람이 멀쩡한 인터폰을 타박하고 동네 애들을 흉보고 있었으니까. 옛날 책들을 꺼내 바닥에 늘어놓고 빈둥대고, 정리정돈은 물론 청소도 하지 않고. 내가 생각해도 굳이 나를 신뢰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오해를 바로잡는 방법은 현장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나는 중얼거리며 거실 소파에 누웠다. 나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고, 인터폰은 조만간 또 울릴 테니 말이다. 그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그 전까지 나를 절대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타인에 대한 판단을 끝낸 사람에게는 이런저런 설명을 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첫 책을 내던 무렵, 나는 꽤 긴장해 있었다. 그 소설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혹평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몇몇 계간지의 리뷰 코너에서 등단작인 단편소설을 호되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다. 남자 두명이 폐쇄된 도시의 방 안에 갇혀서 죽어가는 설정이었는데, 죽음을 다루는 태도가 지나치게 낭만적이라고 했다. 남자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나. 어떻게 등단했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장편소설을 쓴 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되리라 생각했다. 내가 열심히 쓴 작품을 다른 사람들도 소중하게 여겨주면 좋겠지만 세상살이가 뭐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긴장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한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칭찬만 받고 사니. 소설가가 작품 좀 비난당했다고 유치하게 화내면 안 되지. 소설가라면 자고로 대범해야지. 또 생각했다. 왜 화를 내면 안 되는데. 열받는 건 열받는 거지. 내가 무슨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있나. 필요 없어. 데스노트를 쓸 거다. 매일 밤 부두인형을 끼고 춤을 출 거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나면, 고상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죄책감도 들어서 도서관에 가서 철학책 같은 걸 대출하곤 했다. 『소수자의 문학을 위하여』나 『글쓰기의 영도』, 그리고 ‘저자의 죽음’ 같은 표현이 난무하는 책들. 결국 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책이 나오던 시기 나는 나름대로 생각이 많았고, 그래서 툭하면 다짐하듯 되뇌었다. 그 소설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은 없다. 나보다 더 많이 고민한 사람은 없다. 나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래서 썼다. 이건 내 것이다. 누구도 앗아갈 수 없다. 그러나 정말로 모든 것은 내 예상과 달랐다.

사람들은 내 소설을 지나치게 좋아했다.

그 순간,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인터폰으로 달려갔다. 누구세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걸렸군, 걸렸어. 나는 욕실 문을 두드렸다.

“초인종이 울려요!”

그녀는 안에서 뭘 하는지 답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나는 욕실 문을 밀어 열었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시선을 멈췄다. 타일을 뜯어낸 벽 안쪽에 축축하게 젖은 검은 곰팡이들이 가득했다. 퀴퀴한 냄새가 공기 속에 가득했다. 이 사람 뭐야. 이런 상황에서 문을 닫고 일한단 말이야? 그러나 문제는 내 궁금증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불렀다.

“지금 소리 난다니까요!”

이번에도 그녀는 답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손끝으로 가볍게 쳤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제야 음악 소리가 내게도 전해졌다. 엄청 시끄러운 음악 같았다. 빠른 박자와 리듬으로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노래였다. 반면 초인종 소리는 이미 멎어 있었다. 내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그녀는 군소리 없이 밖으로 나와 인터폰을 살폈다. 버튼 여러개를 눌러보더니 플라스틱 본체를 떼어냈다. 심상찮은 표정으로 안쪽을 바라보던 그녀가 중얼거렸다.

“별문제가 없는데……”

“아니에요.”

나는 곧장 설명했다. 분명 소리가 들렸다. 밖에 아무도 없다. 내가 확인했다. 인터폰에 문제가 있다. 그냥 벨 소리도 아니고 동요인지 민요인지 알 수 없는 노래의 후렴구가 계속 반복된다. 제대로 좀 봐달라. 그리고 강조해 덧붙였다. 관리 사무실 벨도 내가 누른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느닷없이 울린 거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슬슬 화가 났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단 말인가. 뭐라고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이 집 초인종은 알람이에요. 노래는 안 나와요.”

그녀가 인터폰 안쪽의 버튼을 눌렀다. 딩동, 하는 벨 소리가 짧게 울렸다.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입맛이 없었다. 식탁에 차려놓은 커피와 식빵을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부엌에 악취가 가득했다. 욕실에서 흘러나온 냄새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냄새보다는 소리였다. 내가 한달 동안 들은 노래는 뭐란 말인가. 누군가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울려 퍼지던 그 노래 말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매 순간, 착각하는 일이 가능한가.

그러나 냄새도 문제이긴 했다. 악취가 커피 향과 섞이며 더 괴상한 냄새를 풍겼다. 나는 커피를 싱크대에 버리고 빵만 챙겨 거실로 나왔다. 바닥에 늘어놓은 책들이 보였다. 살짝 섬뜩했다. 이선아인가. 내가 자신의 물건들을 건드려서 그런 소리를 들려준 건가. 노래는 내게 보내는 경고였던 걸까. 더는 건드리지 말라고.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댔고, 좌탁에 발을 올렸다.

겁을 주고 싶었다면 진작 눈치채게 해야지. 한달 내내 후렴구만 듣게 하다니 유령이 너무 무른 거 아닌가. 가위에 눌리거나, 오밤중에 물벼락을 맞거나 이 정도는 되어야 무섭지. 아닌가. 다른 것들도 있었는데 내가 못 알아챘나? 욕실에서 쿵쿵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누수공사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뭐라 따질 말도 없었다. 그러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다 그녀의 계략일지도 모른다. 나를 내쫓기 위해 일부러 인터폰에 이상한 장치를 심은 것이다. 관리사무소 벨이 울린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이러다 나중에는 저 형광등도 깜빡이고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고 그러는 거 아닐까. 그리고 내가 이상하다고 말하면 그녀는 아니라고 하겠지. 착각하신 거라고.

재밌네.

갑자기 식욕이 돌았다. 나는 다 식은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퍽퍽하고 질겨서 맛은 없었지만, 먹기 시작하니 괜찮았다. 나는 금세 빵을 다 먹어치우고 좌탁에 올려둔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진짜로 그런 일이 가능한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먼저 가짜 인터폰을 검색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다음으로는 노래가 나오는 인터폰을 검색했다. 부동산 매매에 관련된 결과들만 떠올랐다. 그러다 인터폰에 얽힌 도시괴담 몇편을 발견해서 정신없이 읽었다. 집 초인종이 울리는데, 인터폰 화면에는 아무도 떠오르지 않고, 벨 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그 외에는 별것이 없었다. 검색어를 바꿔가며 찾아봤지만 정말로 이렇다 할 결과가 없었다. 포기하고 노트북을 덮으려는 순간, 갑자기 의문 하나가 떠올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그 노래가 들리는 거지?

나는 동요를 검색했다. 당연히 엄청나게 많은 결과가 쏟아졌다. 나는 민요로 검색어를 바꿨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목도 가사도 없이, 일부 멜로디만 기억하는 노래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멜로디를 떠올렸다.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박자는 빨랐다. 어릴 때 멋모르고 따라간 교회나 성당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부를 법한 노래.

나는 영어 동요를 검색했다. 결과는 비슷했다. 다만 범위를 정했기 때문인지 처음보다는 수월했다. 이 멜로디가 들어맞는 곳 하나만 찾아내면 될 것 같았다. 어딘가 분명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는 홈페이지와 블로그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사이트 하나를 찾아냈다. 영어 동요들이 A부터 제목별로 다 정리되어 있었다. 수백곡이 넘어 보기만 해도 기가 질렸다. 하지만 어차피 할 일도 없었다. 나는 노래를 하나씩 클릭해서 듣기 시작했다. 몇초를 듣고, 창을 닫았다. 다음 노래를 듣고 닫고, 다음 곡을 또 틀었다. 목이 뻐근해지고 노래들이 뒤섞이며, 어떤 음악이 어떤 노래인지 모르겠고 내가 기억하는 노래도 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들려왔다. 나는 노래 제목을 확인했다.

She’ll be coming round the mountain.

분명 이 노래였다. 이 노래의 후렴구가 계속 반복되어 들리고 있었다. 나는 「She’ll be coming round the mountain」을 따로 검색했다. 미국의 전래동요, 지역 민요, 컨트리, 포크송 같은 설명들이 떠올랐고, 가사도 찾을 수 있었다.

컨트리 음악?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어쩐지 주위가 썰렁하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노래의 가사를 읽었다.

그녀는 산으로 돌아오고 있다네.

그녀는 여섯 마리 화이트 호스를 타고 돌아온다네.

돌아온다네. 돌아온다네.

화이트 호스. 우연치고는 지나치게 자주 보는 단어였다. 나는 좌탁 아래 내팽개쳐둔 시집을 집어 들었다.

『발라드 오브 화이트 호스』.

소설을 쓰기 전까지, 그러니까 등단을 해서 이쪽 업계의 추상적인 언어들이 머릿속에 밀려들기 전까지 내게 있어 ‘발라드’는 항상 ‘노래’라는 뜻이었다.

나는 키보드를 눌렀다.

“여섯마리 화이트 호스” 그리고 “노래”.

많은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젯밤 그 논문에 따르면 화이트 호스는 일종의 고유명사이자 전형적인 표현이었다. 당연히 수백곡이 있을 것이다. 우리도 ‘님’을 찾는다는 노래라면 셀 수 없이 많으니까. ‘화이트 호스’가 등장하는 시와 노래를 연이어 찾아낸 건 그렇게 유난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저 우연에 불과했다. 다소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그때,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컨트리 뮤직. 밥 딜런. 「Absolutely Sweet Marie」.

나는 스크롤을 내렸다. 익숙한 표현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항과 젊음의 상징, 노벨문학상, 혁명의 시. 나는 정보들을 빠르게 넘겼다. 그가 어떤 가수인지는 나도 대충 알았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이 노래의 가사였다. 나는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손가락을 멈췄다. 가사가 보였다.

당신이 약속한 여섯마리 화이트 호스. 오늘 밤 당신은 어디에 있지?

“선생님.”

나는 고개를 들었다. 먼지투성이의 그녀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이쪽으로 좀 와보세요.”

무섭지 않다는 말을 하기에는 약간 늦은 것 같았다.

 

욕실 벽에 구멍이 나 있었다. 검고 흉측하고, 심란했다. 뭔가 악독한 것이 구멍을 통해 이쪽으로 흘러 들어올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근원지를 찾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자기도 이런 상태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요.”

공사를 완료하는 데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은데, 발생지점이 욕조 옆이라 샤워를 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했다. 변기는 쓸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 화장실에 못 들어가는 때도 있을 거라고 했고, 벽을 다 들어내고 배관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매우 지저분하고 복잡할 거라고도 했다. 집에 머무르기 불편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는 나름대로 나를 배려했던 것 같다. 만일 집에 남게 된다면 내가 소음과 먼지, 탁한 공기를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줬던 거니까. 하지만 그 시기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 소리에 시달리고 있었고, 내 이야기를 믿지 않는 그녀에게 어느 정도 감정이 상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이 매우 거슬렸다. 만일 내가 남는다는 선택을 한다면, 어떤 불편함이 발생하든 다른 말을 하지 말아달라는 뜻처럼 들렸던 것이다. 어차피 둘 중 마음에 드는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대답했다.

“저는 괜찮으니까 수리해주세요.”

천천히 해주셔도 된다거나,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는 그런 빈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빨리 처리해줬으면 좋겠다는 말만 했다. 뻔뻔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건넨 말이었는데, 그녀는 별 반응이 없었다.

이후 며칠은 그녀의 예고대로였다. 화장실 바닥에 물을 떨어뜨리지 말라거나, 변기 사용을 참아달라거나 마른 수건으로 세면대를 닦고 나오라거나, 그런 것들은 대체로 적응할 만했다. 녹슨 배관이 드러난 벽 안쪽의 광경도 처음 봤을 때만큼 흉측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재밌는 건 아니었다. 변기에 앉아 오줌을 싸고 있을 때면 그 휑한 구멍에서 바퀴벌레나 쥐가 기어 나올 것 같은 음습한 상상이 밀려들곤 했으니까.

견디기 힘든 건 소음이었다. 드릴로 벽과 바닥을 부수는 소리가 머릿속을 함께 흔들었다. 이틀이면 된다고 했지만 소음은 나흘째까지 이어졌다. 드릴 소리가 멈추면 뭔가를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멈추면 다시 드릴 소리가 났다. 그리고 모두 멈췄다 싶은 순간, 어딘가를 박박 긁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나는 조금만 참으면 일주일이 된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그렇게 닷새째가 되자 보상이 돌아오는 듯했다. 소리는 멎었고, 욕실에는 벽이 다시 생겼다. 그녀가 이제 누수 점검만 하면 된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녀를 거의 끌어안을 뻔했다.

그러나 다음 날, 나는 벽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가 욕실에서 피곤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에요?”

어디선가 물이 또 새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혼자서는 역부족이라며 다른 사람을 불러 제대로 탐지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는 욕실 문을 닫았다. 벽을 부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뭘 원망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말 화가 났다.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 처음에 분명 일주일이라고 했고, 다 끝났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더니 이제 와서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욕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녀에게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 나 역시 당신을 믿지 못한다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든 책임지라고 말하려 했다. 그 순간,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괴상한, 장난기 가득하지만 어쩐지 잔인하게 느껴지는 웃음소리. 나는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외시경에 눈을 댔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숨을 쉬며 한발짝 물러서는 순간, 일주일 동안 들려오지 않았던 노랫소리. 「She’ll be coming round the mountain」의 후렴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돌아온다네. 돌아온다네. 돌아온다네. 귓속이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찼다. 웃음소리. 노랫소리. 쾅쾅 두드리는 소리. 바닥이 흔들리는, 집이 무너질 것 같은 흔들림. 돌아온다네. 정말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햇볕은 강하고 뜨거웠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정수리 한가운데가 뜨겁다는 생각뿐이었다.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송진 냄새가 진해졌다. 나는 숨을 몰아 내쉬었다. 소리에서 멀어진 덕분인지 마음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애써 숨을 들이마셨다. 여름 숲의 싱그러운 향기가 몸 안으로 밀려들었다. 소나무 냄새가 상쾌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여전히 화가 났다. 일주일이면 다 해결된다고? 인터폰에는 문제가 없다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나뭇잎들이 손끝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저 집에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바란 건 겨우 그것뿐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지? 뭐가 그렇게 잘못된 거지? 그 순간, 손바닥에 끈적끈적한 것이 달라붙었다. 송진이었다. 나는 짜증이 났지만 급한 대로 바닥에서 마른 나뭇잎을 찾았다. 그러나 그 나뭇잎도 끈적거렸다. 결국 양손에 송진이 잔뜩 묻고 말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흙바닥에 양 손바닥을 가져가 댔다. 옷이나 머리카락에 송진을 묻히는 것보다는 손바닥을 아예 흙으로 덮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일어서며 손을 털다 오른손을 어딘가에 부딪혔다. 돌아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그릇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송진과 더러운 빗물, 먼지와 새똥이 가득한 그릇이었다.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숲속의 나무 모두 껍질을 긁어냈고, 그 자리에는 구멍이 파여 있었다. 바로 그 구멍 아래 그릇을 받쳐 송진을 받고 있었다. 하얀 점액이 흘러내리며 그릇 아래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바닥도 지저분했고, 진득거렸다. 송진에 들러붙은 벌레들이 더듬이와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나무들은 마치 피범벅이 된 것 같았다. 숲속의 청량함은 진작 날아가버렸다. 헛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된 것이 이 주변은 괴상한 풍경들만 한가득이었다. 이런 곳에 숨어 있으려 했다니. 이런 곳에 시간을 숨겨두려 했다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이 반성적이고 교훈적인 기분이 드는 것까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랄까, 사람들이 내 소설을 보고 사유를 추구하는 윤리적 자세를 운운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현대인의 복잡한 내면을 그려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똑같은 심정이었다. 물론 그때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해석의 가능성은 무한한 법이니까. 그리고 나는 운이 좋았다. 누군가는 좋은 소설을 쓰고도 혹평을 받았고, 누군가는 아예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잘 쓴다고 해서 모두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버티다 못해 사라지는 작가들도 수두룩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뭐랄까. 그래. 그건 화이트 호스였다.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느닷없이 찾아와서 나를 공주처럼 대하는데, 굳이 아니라는 말을 할 필요가 있나. 알아서 내 발을 털어주며 손을 잡아 계단 위로 이끄는데,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되나. 물론 나는 작은 컵케이크를 만들었을 뿐이지만, 사람들이 그걸 10단짜리 대형 케이크로 생각하는 걸 굳이…… 해명해야 하나?

문제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건 좋았는데, 어쨌든 사람들은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니까, 가끔은 내가 진짜로 그런 사유를 추구하는 작가라는 생각에 휘말릴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혼자 까페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였다. 예술은 고결한 작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작품이 훌륭할 때 그 작가도 함께 고결해지는 것인가. 고결함은 읽어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인가.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체한 것 같았고,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면서 점차 소설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정말 대단한 선물이었다. 약속된 선물, 기다림, 오늘 밤, 화이트 호스. 그러면 밥 딜런의 화이트 호스는 뭐였을까.

그도 원하는 것이 있었겠지. 그러니까 저항했겠지.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 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이트 호스는 저항의 댓가로 받으려 한 것일 수도 있고, 그를 구슬리기 위해 상대가 약속한 것일 수도 있다.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체스터턴에게 그랬듯 화이트 호스는 밥 딜런에게도 여전히 선물이었다. 하지만 밥 딜런에게 이르러서는 그 노래의 품에 맞는 의미의 선물이 됐다. 그는 선물이 필요했고, 약속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화이트 호스를 가져야만 했다.

이선아도 찾아 헤맸던 걸까. 흙투성이가 된 손바닥을 털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는 찬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싶었던 건 아닐까.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을. 노래를 부르는 사람, 그러니까 쓰는 사람만이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의미, 그런 화이트 호스를.

바람이 불었다. 이마의 땀이 식었다. 흥분이 밀려들었다. 매우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 같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꿀 수 있을지 몰랐다. 바로 내 이야기를.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일년 만이었다. 감정이 날아가기 전에 이 모든 것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나는 발을 내디뎠다. 그때였다. 신발 아래에서 끈적하고 축축한 것이 느껴졌다. 흙더미에 둥글게 뭉쳐진 송진 덩어리였다. 발아래에서 짓이겨지는 뭉툭한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뭘 쓰고 싶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쓰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빨리 돌아가 씻고 싶었다.

됐어.

살다보면 생각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집에 돌아가야 했다.

 

숲에서 돌아왔을 때, 집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그녀를 불렀다. 조용했다. 나는 욕실로 갔다. 그녀는 없었다. 벽에 휑한 구멍이 다시 처참하게 뚫려 있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구멍을 잠시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욕실을 떠났다. 나는 다시 그녀를 불렀다. 대답은 없었지만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유리컵에 담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음악 소리가 컸다. 내가 싱크대에 다가서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부엌에서 나가려 했다. 나는 손을 흔들어 괜찮다고 표시했다. 그리고 싱크대의 물을 틀었다. 송진은 잘 벗겨지지 않았다.

“따뜻한 물로 해보세요.”

그녀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말했다. 뭐가 문제인지 안다는 말투였다. 나는 그녀 말대로 했다. 찬물로 씻어낼 때보다는 나았지만, 얼마나 많이 들러붙었는지 송진은 완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끈적끈적한 느낌만 겨우 사라졌다. 한번 씻어서는 다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수도꼭지를 잠갔다.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의 물병을 꺼냈다. 그 바람에 이어폰이 핸드폰에서 뽑혀 나갔다. 그녀의 음악이 부엌에 울려 퍼졌다. 느리고 서정적인 템포의 팝송이었다. 그녀가 내게 물을 따라주며 멋쩍은 듯 웃었고, 노래를 끄려 했다. 나는 말했다.

“노래가 좋아요. 들어보고 싶어요.”

진심이었다. 그 멜로디는 내가 그 집에 들어간 이후 처음으로 듣는, 제대로 된 노래였다. 그녀와 나는 식탁에 나란히 앉아 찬물을 마시며 음악을 들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주황빛 노을이 지며 햇살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이 집에서 나가야 할 것 같다고,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부엌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런 말로 뭔가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노래의 후렴구에서 익숙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화이트 호스. 이후 내가 찾아보게 될, 바로 그 노래의 구절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순간 나는 어렴풋하게, 어쩌면 앞으로 내가 화이트 호스의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 이후를 찾아다니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건 그때의 느낌일 뿐이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금세 잊었다. 나는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궁금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예요.”

“아…… 그렇군요.”

그리고 나는 되물었다. 요즘 나온 노래냐고.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기는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그냥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내용이라고만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노래에 대해 묻지 않았다.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언젠가 내가 또다른 컵케이크를 구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쓰겠지. 쓰다보면 또 쓰게 되겠지.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르겠다.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후 나는 그녀와 연락하지 않았고, 그해가 지나기 전 그녀는 관리자를 그만두고 집을 떠나버렸으니까. 그녀도 그 집에서 그렇게 사라졌다. 그러나 모두 이후의 일이다. 그 순간에는 앞으로 다가올 일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나는 그녀와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들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의 차디찬 느낌을 만끽하면서, 몸에 스며든 송진 냄새를 맡으며 해가 저무는 걸 구경했다. 노래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네가 이끌어줄 사람이 아니야. 나는 공주가 아니고, 이건 동화도 아니란다. 나는 너의 화이트 호스가 필요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