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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성란 河成蘭

1967년 서울 출생.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웨하스』 『여름의 맛』,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A』 등이 있음. rifleha@hanmail.net

 

 

 

숭어

 

 

공터에 웬 아이들이 모여 축구를 하고 있더라고 말했더니 아내가 반색하며 물었다. “그럼 봤겠네? 희수.” 공터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그중에 희수라는 아이가 끼어 있다는 것까지 아내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공터에 모텔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아파트단지 안의 젊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벌어졌던 게 기억났다. 피켓까지 만들어 공터에서 보름 남짓 시위를 했다. 아내도 그 일에 열심이었다. 피켓에 들어갈 문구에서 ‘모텔’을 ‘러브호텔’로 바꿔 쓰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낸 것도 아내였다고 들었다. 그때 만든 카페를 통해 아직까지 이런저런 소식들을 공유하는 모양이었다.

“거기 희수도 끼었어?” 잘 아는 애인 것처럼 물었지만 사실 그는 희수의 얼굴도 잘 몰랐다. 인사성 밝은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애라는 것, 언젠가 아내의 입을 통해 그 애 이름을 들었을 때 남자야 여자야? 물었던 것, 아내가 그 애 이름을 말할 때면 반음쯤 목소리의 톤이 높아진다는 것, 그리고 사람 이름을 외우는 데 젬병인 그가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들을 끌어들이는 버릇이 그때도 발동되어, 그 아이 이름을 희수, 즉 일흔일곱살을 뜻하는 희수(喜壽)로 기억하기 시작했다는 것 등이 떠올랐다.

그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일주일에 서너번 아파트단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난 조깅 트랙을 돌았다. 내키면 뛰고 힘들면 걸었다. 그렇게 뛰다 걷다 트랙을 돌고 있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공터 쪽이 소란스러웠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둘씩 편을 나누어 발끝으로 주거니 받거니 공을 차고 있었다. 한눈에도 축구화는 물론 정강이 보호대 위에 스타킹까지 제대로 갖추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길들지 않은 새 축구화에 며칠 발이 아플 텐데…… 그는 다시 뛰기 시작했고 공터에서 조금씩 멀어졌지만 그의 눈앞으로 붉은 유니폼의 잔상이 계속 따라붙었다. “대한민국!” 구호 뒤에 따라붙는 박수 소리, 2002년 월드컵이 떠올랐다. 광장으로 광장으로,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응원단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월드컵 붐을 타고 유소년 축구팀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열기가 사그라들면서 하나둘 사라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들은 극성이었다. 분명 서너번 공을 차다 그만둘 아이들이 생길 테고 새 축구화가 그대로 신발장에 처박힌 채 먼지를 뒤집어쓰게 될 텐데. 코끝에 돋보기를 걸친 아내가 휴대폰에서 뭔가를 한참 찾더니 그에게 내밀었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의 단체 사진이었다. 배경은 공터였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모으고 전직 축구선수를 코치로 초빙해왔지.” 아이들 곁에 선 키 크고 건장한 남자가 코치인가보았다. 아이들을 훑어보던 아내가 한 아이를 콕 집으면서 “여기 있네, 희수” 했다. “응응, 그러네.” 그는 말끝을 흐렸다. 알아본 척했지만 화면 속 아이들은 너무 많았고 얼굴은 너무 작아 누가 누군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뭔가 들어설 듯 들어설 듯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은 채 공터는 오년째 공터였다. 아파트에 입주하고 공터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한참 우러러봐야 하는 옹벽의 높이에 압도되었다. 건물터로 짐작되는 그곳은 오래전에 건물이 헐린 듯 맨땅이 드러나고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나온 자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옹벽 중간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려놓은 그라피티로 얼룩덜룩했다.

대체 뭐가 있던 자리일까, 왜 그곳만, 아니 어떻게 그곳만 개발의 손길에서 비켜날 수 있었을까, 그의 궁금증도 오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었다. 아파트에 입주하던 그해 하자보수 등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입주자회의 같은 데 자주 불려나갔는데 거기에서 알게 된 남자가 있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호수로 서로를 소개하다보니 나중에도 통성명은 하지 않았고 그대로 호수로 부르게 되었다. 그는 그 남자를 702호로, 그 남자는 그를 305호로 불렀다.

702호는 재개발 조합원이었다. 이 동네 토박이로 동네에 재개발 바람이 불고 조합이 형성되고 오랫동안 이웃이었던 이들이 어떻게 등을 돌리는지 보았다. 어느날 용역이 밀고 들어와 노인들을 짐짝 들어내듯 끌어내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원조합원들이 프리미엄을 붙여 딱지를 팔고 터전을 떠난 것과는 달리 702호는 아파트를 분양받고 입주했다. 그런 702호도 공터에 대해서만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공터가 있는 줄 알았다면 분명 자신들의 아지트가 되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지부진 회의가 끝나면 남자들 몇이 호프집으로 몰려가 맥주를 한잔하고 헤어지곤 했는데, 술에 취하면 702호는 비 맞은 땡중처럼 주절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집이 막 부서지는 걸 보는데 마음이 좀 그랬어요.” 미처 치우지 못한 세간이 벽돌과 철근 등과 뒤섞이고 무너진 벽 너머로 어릴 적 자신이 벽에 그린 낙서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데 좀 그랬던 게요, 마당 구석에 플라스틱 바가지가 있는 거예요. 왜, 주황색 바가지 있죠, 이상하게 그 바가지를 보는데 좀 그런 거예요, 로봇도 아니고 사진첩도 아니고 그냥 플라스틱 바가진데요, 그걸 보는데요.”

하자보수 기간이 끝나고 더는 입주자회의에 나가지 않았다. 동이 달랐으니 702호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부딪히지 않았다. 언젠가 여름날 저녁에 딸과 아들을 데리고 나와 트랙을 돌던 702호를 본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이사를 간 모양인지 우연처럼 마주치지도 않았다. 어느날 702호는 그에게 말했다. 은근히 편이 나뉜다고, 타지에서 들어온 입주자들과 재개발 조합원들이, 재개발 조합원들도 원조합원과 원조합원에게서 분양권을 산 승계조합원으로 은근 편이 나뉜다고, 누군가의 꿈과 추억이 있던 곳에 밀고 들어와 살고 있다는 걸 모두 잊고 있다고, 305호는 어떠냐고, 부끄럽지만 심지어 자신도 그것을 잊는 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이제 이곳에 702호는 없는데 702호가 했던 말들은 툭툭 떠올랐다. 트랙을 돌 때면 102동 근처에 있었다는 불맛 나는 매운 홍합짬뽕집이 그려졌다. 107동쯤에 이르면 여기 이쯤에 우체국의 작은 출장소가 있었다지, 자리를 더듬어보는 식으로 말이다. 그럴 때면 702호의 말버릇처럼 그도 ‘좀 그래졌다’.

지난번 정기검진에서 혈압과 당뇨 수치가 약간 높게 나온 뒤로 그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려 했다. 101동에서 114동까지 연결된 트랙의 길이는 대략 1킬로미터로 네바퀴면 4킬로미터였다. 숨이 좀 가쁘게 걸으면 삼십오분 정도 걸렸다. 세바퀴째부터 등에 은근하게 땀이 배었다. 천이백세대의 대단지 아파트라 이른 아침이나 저녁이면 트랙 주변은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열심히 걷는다고 걷는데도 한참 뒤에서 뛰어온 젊은이들이 그를 앞질러갔다. 이어폰 밖으로 새어나오는 음악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이도 있었다. 자외선 차단을 위해 눈 부위에만 구멍을 낸 흰 베일을 뒤집어쓴 여자들과도 수시로 마주쳤다. 가끔 자전거가 끼어들기도 했다.

힘에 부치지 않고 약간 노곤한 정도의 적당한 운동량이었지만 때에 따라 그 일은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건강한 삶을 위한 일이 어느날은 노동처럼 감내해야 하는 일로 다가왔고 그럴 때면 하루의 할당량을 채우는 노동자가 된 기분이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날에는 좀더 살겠다고 바둥거리는 것처럼 생각되고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듯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뛰다가 조금씩 속도를 줄였고 공터 근처에 이르러서는 아예 트랙을 벗어나 단지에 있는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곳에서 공터가 한눈에 보였다. 공터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첫날보다 요령이 는 듯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코치가 아이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발끝으로 공을 토스하는 동작을 선보이면 아이들이 따라했다. 아이의 동작이 잘못되었으면 짧게 여러번 호루라기를 불었다. 희수는 누구인가, 그는 엇비슷해 보이는 아이들 속에서 희수를 찾으려 눈을 가늘게 떴다.

어린 시절 수업이 끝나고 텅 빈 운동장에 남아 아이들과 공을 차곤 했다. 체계적인 지도는커녕 제대로 된 축구공 하나 없었다. 누군가 가져온 공은 바람이 빠져 늘 찌그러져 있었다. 한번 걷어찰 때마다 공의 무게가 느껴졌다. 운동장의 모래알은 미끄러웠고 아이들의 운동화 고무밑창은 닳아서 더욱 미끄러웠다. 공을 차면 축 늘어진 공은 일이 미터 앞에 떨어지기 일쑤였고 아이들은 매번 모래 위에서 찍 미끄러졌다. 고무 탄내가 진동했다.

툭 툭툭 툭 공터를 벗어난 축구공이 바닥에서 몇번 튀면서 그가 앉은 벤치에 와 멈췄다. 공을 보고 공터를 보니 서넛 모여 선 아이들이 허리춤에 팔을 올리고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그 애들이 자신을 떠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축구공을 자신들이 있는 곳까지 차줄 실력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공을 가지러 오는 건 좀 이따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럼 공을 차주리라. 그는 벤치에서 일어서 허리를 굽히고 발밑의 공을 주워 들었다. 평평한 곳에 공을 놓고 발을 얹어 꾹 눌렀다. 공터 중앙에 정확히 공을 꽂아주겠다. 바람 빠진 공이 아니라 제대로 된 축구공을 차보았다면, 오래 신어 닳고 닳은 운동화가 아니라 스파이크 짱짱하게 박힌 축구화였다면…… 그는 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뒤로 물러섰고 알맞은 간격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멈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공을 향해 달려가면서 힘차게 오른발을 휘둘렀다.

그의 몸이 크게 흔들렸고 그는 보기 좋게 바닥 위로 넘어졌다. 헛발질이었다. “할아버지!” 아이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트랙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엉덩이가 뻐근하고 팔꿈치도 쓸린 듯 쓰라렸다. 그래도 할아버지라니. 그는 눈을 감았다. 어느새 다가온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죽은 참새를 들여다보듯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한 애가 정적을 깨뜨렸다. “숨 쉰다.”

그 말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그를 불러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눈 좀 떠보세요, 할아버지!” 왜 이렇게 불러대나, 그가 번쩍 장난스럽게 눈을 홉뜨자 놀란 아이들이 뒤로 물러났다. 햇빛을 등지고 선 아이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들었고 그를 걱정하는 눈빛은 더욱 까맸다. 어구구, 그는 과장되게 엄살을 떨었다. 희수가 여기 있을까. “아이고, 희수야, 희수야.” 둥근 얼굴에 바가지 머리를 한 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얼굴과 맞닿은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있었다. 희수구나, 네가 희수구나. 일흔일곱살 초등학교 1학년 희수. “할아버지, 희수는 오늘 안 왔어요.” 희수가 아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연락할까요?” 그와 아내를 아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됐다, 할머니한테 연락하는 건 됐고 날 좀 일으켜다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달려들어 그의 양팔을 하나씩 잡고 잡아당겼다. 요 녀석들, 맛 좀 봐라. 그는 일부러 힘을 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희수는 누구일까. 아내가 편애하는 희수. 아주 오래전이었다. 아내는 어두컴컴한 음악실 한구석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땐 아직 아내가 아니었고 두살 아래 학교 동료였다. 편애는 안 되는데, 교사에게 편애는 치명적인데, 그게 안 고쳐져요. 김선생, 나 아무래도 교사 체질이 아닌 걸까요?라며 울던 아내. 그런 아내는 아직까지 학교에 남아 있고 아내 말처럼 교사 체질인 그는 겨우 2년 남짓 교사 생활을 했을 뿐이다. “괜찮으세요?” 아이들의 얼굴 뒤로 검게 그을린 얼굴이 쑥 나타났다. 코치였다.

오른발이 땅에 닿자 어딘가 뭉근하고 지릿했다. 그는 코치 앞에서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몇발짝 걸어보았다. 그의 걸음걸이를 진지하게 지켜본 코치가 이번에는 그의 다리 곳곳을 눌러보았다. “골절 같지는 않은데요. 그래도요, 병원에는 꼭 가보셔야 합니다. 다치는 거 그게요, 진짜 황당하게 다치거든요.”

그는 천천히 발짝을 떼어놓았다. 코치가 호루라기를 불었고 아이들도 하나둘 공터로 돌아갔다. 할아버지라니, 요 녀석들. 현장의 젊은 배우들보다 펄펄 날아다니고 밤도 거뜬히 새운다, 이 녀석들아. 그래도 아이들의 눈처럼 솔직한 건 없다는데, 그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었다.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순간 주문에라도 걸린 듯했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구구 엄살을 떨었다.

 

오층 벽돌건물 곳곳에 세로로 걸린 현수막들이 바람을 안고 펄럭이고 있었다. 거기에는 미세수지접합과 유방암 등의 진료과목은 물론 수상경력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병원 출입구 왼편 화단 뒤에서 환자복 차림의 남자 몇이 옹색하게 서서 담배를 피웠다. 허리 높이의 화단턱에는 재떨이로 쓰인 음료 캔들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화단 아래도 담배꽁초와 침자국으로 더러웠다.

언젠가 이 병원 앞을 지나다가 아내가 화단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환자들을 보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순 나이롱환자들.” 그러고 보니 깁스를 한 사람도 링거 매단 삼각대를 끌고 나온 사람도 없었다. 환자 역할을 맡은 엑스트라들로 보였는데 그가 놀란 건 그들을 향해 나이롱환자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투와 표정 때문이었다. 아내의 얼굴은 그가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목소리 또한 피아노의 저음부를 길고 깊게 누르는 듯 변했다. 그건 거기에 선 가짜 환자들을 향한 혐오감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향한 혐오감이었다. 참고 참았다가 그 모든 것을 향해 한번에 터뜨리는 무엇이었다. 그날 이후 가끔 아내는 그렇듯 대상을 찾아 깊고 진한 혐오를 드러내곤 했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런 말은 입에 담은 적도 없다는 듯 아내는 단정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이 병원의 반은 나이롱환자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검게 코팅된 병원의 자동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병원 로비에 한발짝 들여놓으면서 그는 혼잡한 로비 풍경에 조금 놀랐다. 곳곳에서 움직임이 불편한 이들이 걷고 있었다. 삐걱삐걱 관절 사이에서 기름칠이 덜 된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부러지고 베이고 눌리고 삐고, 환부도 다양해 보였지만 연령대도 그만큼이나 다양했다.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한 팔에 깁스를 한 채 유모차 안에서 바락바락 울었다. 아기의 엄마인 듯한 젊은 여자가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붕대로 머리를 칭칭 둘러맨 남자애는 아직도 술이 덜 깬 듯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보았다. 정작 놀란 건 보호자들인 듯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환자들 사이에서 동동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건 보호자들이었다. 한눈에도 대기실에 빈 의자는 보이지 않았고 로비의 모든 소리들이 3층까지 튼 허공으로 올라가 웅웅대고 있었다. 보호자들을 제외하곤 자신이 제일 멀쩡해 보였다. 아내가 그랬듯 누군가 자신도 나이롱환자로 오해하는 건 아닐까, 그는 지레 주눅이 들었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어리둥절한 채로 로비를 훑어보는데 그의 뒤로 출입구가 활짝 열리고 사람들이 뛰어들어왔다. 발소리로 보아 밑창이 두터운 작업화인 듯했는데 과연 돌아보니 작업현장에서 바로 온 듯한 작업복 차림의 남자들이었다. 그는 어어, 뒷걸음질로 물러섰고 한 남자가 스치듯 그의 앞을 지나쳤다. 기름얼룩이 묻은 회색 작업복 차림의 그 남자는 수건으로 칭칭 동여맨 한 손을 마치 성화 봉송하듯 다른 한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손을 싸맨 수건은 피로 흠씬 젖었고 핏기가 없는 남자의 얼굴은 물 빠진 작업복 색이었다. 사람들이 웅성대고 간호사들과 함께 의사가 나타났다. 손을 다친 남자가 의사를 따라 수술실 쪽 복도로 뛰어가고 그 뒤를 다른 작업복의 남자가 뒤따랐다. 그는 냇물에서 헤엄치는 송사리를 방금 떠올린 듯 두 손을 모으고 조심조심 움직였다. 오목한 손바닥 안에 거즈천으로 싸인 무엇인가가 보였다. 수술실 쪽으로 빨려들어가듯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쇳내가 풍겼다. 뒤의 남자가 들고 쫓아가던 것이 앞선 남자의 절단된 손가락이라는 것은 짐작 가능했다. 몇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느닷없는 상황에 그는 어질어질한데 이 모든 것이 익숙하게 일어나는 일들인지 병원은 금방 동요가 가라앉았다. 병원의 경비원이 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뭘 도와드릴까요?” 정중한 말씨였다.

순번표에 적힌 숫자와 수시로 바뀌는 접수창구들의 전광판 숫자를 비교해보니 대기시간만 좋이 한시간 이상 걸릴 듯했다. 이제 한쪽 다리는 아예 감각이 없었다. 자신의 차례가 된 환자가 의자에 걸쳐놓은 목발 두개를 차례로 짚고 일어섰다. 그 환자가 앉았던 자리에는 방금 전까지 읽고 있던 잡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잡지를 들고 그 자리에 앉아 오른 다리를 뻗었다. 그의 다리에서 삐걱 소리가 나는 듯했다. 잡지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둘러보다 무심코 펼쳐진 부분을 내려다보았다. 볼드체의 큰 글자는 맨눈으로도 보였다. 백수(白壽). 한자가 달려 있어 백수건달의 백수가 아니라는 것쯤 금방 알았다. 일백백에서 위의 한일자 한획을 빼고 남은 흰백의 백, 백살에서 한살 뺀 구십구세를 뜻했다. 그는 이런 식의 위트가 좋았다. 칠십칠세가 희수이니 그럼 백수는 희수의 아버지뻘쯤 될까. 백수라는 단어 아래의 겹따옴표로 인용된 문장을 읽기 위해 그는 눈을 찌푸렸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므로.” 그러니까 그 글은 아흔아홉살의 누군가를 인터뷰한 글이었다.

의학기기 회사에서 발간하는 얇은 잡지로 인터뷰 꼭지인가보았다. 백수, 아흔아홉살까지 산 사람을 그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목발 청년이 말아놓아 밑에 깔린 왼쪽 페이지를 펼치자 인터뷰이의 사진이 나타났다.

사진 아래 박힌 노인의 이름을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그는 제 눈을 의심했다. 그가 아직 살아 있었다는 말인가. 그가 대체 언젯적 노학자인가. 노학자는 어느 순간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는데 그가 노학자에 대한 관심을 끊은 탓인지 아니면 노학자의 활동 범위가 좁아진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노학자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이십오륙년 전이었다. 직접 본 건 아니었다. 그 당시 그는 일주일에 한번 텔레비전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 프로에서는 유명인사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하게 했다. 그는 그때도 노학자로 불리었다.

이십오륙년이나 흘렀는데도 노학자의 모습은 그가 기억하는 그때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는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용 돋보기를 꺼내 걸쳤다. “선생님, 그간 격조했습니다.” 인터뷰어 또한 오랜만에 노학자의 근황에 대해 알게 된 모양이었다. “왜요, 텔레비전이나 대형 강의 같은 걸 피해왔달 뿐 나는 변함없는 일상을 지내왔어요. 아침 여섯시에 기상해 맨손체조를 하고 잠깐 집의 뒷산에 올라 산책하지요. 돌아와 아침을 먹습니다. 오전에는 무조건 세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어요. 어느날은 열장, 어느날은 한줄도 안 써질 때가 있어요. 그래도 앉아 있습니다. 점심 이후의 시간은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아직까지도 날 기억하고 초대해주는 이들이 있어요, 몇명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사양하지도 않고요.”

이어지는 질문은 평이했다. 어떻게 그 나이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느냐, 행복한 삶이란 대체 무엇이냐, 그렇게 이어지는 마지막 질문 끝에 노학자는 잠시 뜸을 들였다. 실제로 노학자가 그 부분에서 잠시 뜸을 들였다라고 씌어 있었다. 노학자가 말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가 기억하는 노학자의 목소리가 겹쳐 울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 매끄럽게 흘러가는 말들. ‘어’나 ‘음’ 같은 주저음이 결코 끼어들지 않았다. 외운 듯, 외운 것을 그대로 말하는 듯, 달달 외운 것을 노학자는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도 했던, 비슷한 말.

그때가 언제였더라, 노학자는 한 방송국에 초대되었다. 방청석에는 주부로 보이는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을 틀어둔 건 그가 아니었다. “은석아.” 아침에 어머니가 그의 방문을 두들겼다. “은석아, 대답해라, 은석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그의 문 앞에 서 있던 어머니가 돌아서서 집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그는 마루로 나와 앉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웅얼웅얼 낮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루의 큰 창에는 빛이 바랜 연두색 커튼이 쳐져 있었다. 길이가 짧아 아랫단이 깡총하게 들려 있었다. 커튼 때문이 아니더라도 마루는 늘 어두웠다. 창밖에 오래된 감나무가 서 있었다. 맞다, 감나무가 있었으니 그건 옛집에서였다. 옛집의 마루. 텔레비전은 어머니가 켜두었다. 마루의 모든 것들은 낡고 오래되었다. 비로드 소파는 비루먹은 동물처럼 털이 빠졌다.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던, 햇빛을 보기 위해서는 감나무의 가지를 쳐주어야 했던, 그러나 늘 말뿐이어서 가지는 그대로였고 집은 어두웠다. 그 어두운 집 안에 그는 갇혀 있었다. 그가 쓴 희곡은 검열 과정에서 대부분 잘려나가고 남은 것은 몇줄 되지 않았다. 왜 이런 것을 썼느냐고 저의가 무엇이었냐고 그들은 묻고 또 물었다. 왜 아기장수가 등장하느냐고, 왜 혁명이 일어나느냐고. 대답하라고 대답하라고.

그는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오들오들 몸은 떨리는데 이상하게도 몸속 어디선가 빠르고 경쾌한 박자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얼음장 아래를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자신의 몸속에서 울려 퍼지는 이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는 궁금하면서도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집중할 기력이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물이 흘러가듯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매끄럽게 흘러가는 말,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말, 그런 말을 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도 잘 아는 노학자였다. 학교에서 몇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옆구리엔 원서를 끼고 노학자는 천천히 천천히 캠퍼스를 가로질렀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천천히.

그가 고개를 들고 텔레비전 속의 노학자를 보게 된 건 노학자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노학자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낮에는 요조숙녀가, 밤에는 요부가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노학자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튜디오 안은 과장된 감탄사로 채워졌다. “아아~!” 방청석의 여자들은 훈련이라도 받은 듯 동시에 입을 열고 동시에 위아래로 두번 고개를 끄덕이면서, 뭔가 큰 깨우침이라도 있었다는 듯이 “아아~!” 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기에 있는가, 왜 저기에 서서 우리에게 저런 말을 늘어놓는가. 왜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왜 생각 같은 건 하지 말라고, 왜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인가. 수많은 젊은이들이 어디론가 끌려가는데, 당신은 왜 그곳에서 그런 이야기를, 외운 듯한 매끄러운 말들을 마법사의 리본처럼 풀어내고 있는 것인가. 왜 그곳에서 권력의 폭압에 반기를 들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왜 그것은 옳은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분연히 일어서 텔레비전 앞으로 갔고 전원 스위치를 눌러 껐다. 그게 그가 기억하는 이십오륙년 전 노학자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그는 돋보기를 고쳐 쓰고 노학자의 인터뷰 글을 처음부터 읽었다. 그날을 떠올릴 때 당시 자신의 처지와는 달리 몸속에서 울리던 경쾌한 박자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노학자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려 일부러 버스를, 버스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하루를 다짐하는, 좋아하는 자리는 버스의 맨 뒷자리로, 욕심을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다음은 목사의 설교와 비슷했다. 감사하는 삶, 오늘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삶, 후회 없는 삶. 그는 흔들리지 않는 수면처럼 고요했다.

노학자의 인터뷰 어디에도 억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위로의 말은 없었다. 그 누구도 될 수 있었던 아이들의 사라진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한집 걸러 한집, 곡이 흘러나오는 골목에 대한 이야기도, 그 어디에도 기계에 끊겨 달아난 손가락에 대한, 동료의 손가락을 주워 보물처럼 들고 가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없었다. 뚝뚝 피가 떨어지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가 듣고 싶었던 결정적인 그 말 한마디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십오륙년이 흘렀지만 옛집의 어둑한 마루를 흘러나오던 그때 그 강의에서 그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는 저 밑에서 끓어오르는 혐오를 견딜 수 없었고 노학자의 저서 중 하나가 틀림없는 책의 제목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한말씀만 해주소서!” 모르긴 몰라도 지금 자신의 얼굴도 순 나이롱환자라고 말하던 아내의 혐오에 차 찌그러진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말씀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는 뒤돌아선 남자를 향해 말했다. 뒤돌아선 그 남자는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기자가 되어 노학자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뒤돌아 있었지만 그는 노학자가 알록달록한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노학자가 입고 있는 재킷은 빈티지한 고급스런 옷감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노학자의 등에 대고 질문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은 생을 사시겠습니까.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 말 한마디는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꿈속에서도 얼마나 힘을 들였는지 목이 다 칼칼해졌다.

어느 순간 노학자가 뒤돌아 앉았다. 그런데 노학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노학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별안간 왜 인터뷰어에서 인터뷰이가 된 건지 꿈속에서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는 대답하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자신 앞에는 인터뷰어가 앉아 있는데, 꿈 밖의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걸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해야 하나. 꿈속의 그는 자기 앞에 앉은 인터뷰어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당황한 듯 그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과 같은 생을 사시겠습니까. 여자의 목소리다. 가냘픈 목소리가 ‘까’ 부분에서 떨린다. 몇살쯤 되었을까. 이십대 초반, 중반? 여전히 꿈 밖의 그는 알 수 없다. 대신 꿈속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주먹을 꼭 쥐고 있다.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그럴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깨어난다. 병실이다.

“그러니까 아빤 왜 하필 발목이 부러져가지고.”

혀 짧은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취에서 깬 그는 잠시 뒤에야 커튼이 쳐진 옆 병상에서 건너오는 말소리라는 걸 깨닫는다. 옆 병상의 환자도 발목이 부러진 모양이었다.

“그럼 손목이 부러져야 했을까?” 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꼭 부러져야 한다면 손목이 낫지.” 혀 짧은 목소리를 가로채고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 이게 진짜 말이면 다인 줄 알고. 왜 아버지 손목이 부러져야 되냐? 말이 돼? 말이?”

“아, 진짜. 내 말은 발목 대신 뭐가 부러져야 한다면, 안 부러지면 좋은데 뭐가 꼭 부러져야 한다면, 그게 손목이면 좋았겠다는 거지.”

“이게 진짜 입만 살아가지고.”

견원지간인 오누이가 문병을 왔다. 혀 짧은 소리가 구원투수를 찾듯 “아빠” 하고 불렀다.

“그러니까 원이 말은, 그랬더라면, 발목이 아니라 손목이라면 이번 여행은 다 함께 가지 않았겠느냐 그 말이지. 너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지.”

“내 말이 딱 그 말이야. 그럼 갔을 거잖아, 여행.” 부녀는 죽이 착착 맞았다.

“그럼 누가 아빠 밥 먹여주냐?” “내가 하지.” “세수도?” “그럼, 당근이쥐.” 이번에도 아버지는 허허 웃기만 했다. 목소리를 착 가라앉히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뭘 그렇게 급하게 다니셔가지고요. 얼마나 더 번다고요. 이게 뭐예요? 아버지 때문에 잡은 여행인데 정작 아버지는 없고요.”

“윤아, 나는 괜찮다.”

“얼리버드 패키지가요 다 좋은데요, 딱 하나 나쁜 게요 그거래요. 값이 싼 대신 예약을 취소할 수가 없는 거라고요. 아버지가 이렇게 다칠 줄 누가 알았어요.”

아버지가 말했다. “괜찮다, 윤아.”

그는 눈을 감았다. 우리 애가 살아 있었다면 우리 애도 그랬을까. 목소리를 착 가라앉히고 날 가르치듯 그렇게 말했을까.

“그러게 아버지는 왜 공을 차가지고요, 애들도 아닌데요.”

그의 발목을 일별한 의사는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지시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며 “김은석씨, 복도 끝 오른쪽에 영상의학과 있거든요, 엑스레이 찍고 오세요” 했다.

“엑스레이를요? 그냥 좀 삔 거 같은데요.” 의사는 이런 환자 한두번 상대한 게 아니라는 듯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했다. “김은석씨가 의사예요?” “아니요,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코치가요, 축구 코치가요.” “그럼 그 코치가 의사예요?”

발목이 부러졌고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는 코치의 말이 떠올랐다. 다치는 거 그게 황당하게 다치는 거거든요. 마취실로 옮겨지고 곧 간호사가 들어와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그의 거기에 소변줄을 끼워 넣었다. 너무 아파서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여보, 김선생.” 커튼이 젖혀지고 아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으응, 최선생.” 그도 오랜만에 아내를 그렇게 불러보았다. 그는 아내가 앞의 병상에서 일회용 스티로폼 접시와 과도를 빌려와 키위 껍질을 벗기는 걸 지켜보다 잠에 빠져들었고 곧 아내의 콧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는 오래전 어둑한 옛집의 마루에 앉아 두려움에 떨던 그의 속으로 흐르던 바로 그 선율이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콧노래를 부르는 건가,라는 역정도 잠시, 지금은 자고 이따 깨면 꼭 노래 제목을 물어보리라 그는 몇번이나 다짐했다.

 

퇴원한 뒤부터 거실 한 귀퉁이, 늘 비어 있던 일인용 소파가 그의 차지가 되었다. 텔레비전이 정면으로 보이는, 늘 앉던 삼인용 소파에 앉았다가 곁에 와 앉는 아내가 다친 그의 다리를 조심성 없이 건드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천장의 불빛이 덜 미치는 조금 어두침침한 구석의 일인용 소파에 앉아 깁스한 오른쪽 다리를 좌탁 위에 걸쳐두었는데,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아내가 에스엔에스에 올린 모양이었다. 아내의 계정은 학교 제자들은 물론이고 고교, 대학 동창들, 아파트단지 내의 젊은 엄마들까지 팔로워가 많았다. 금세 사진 밑으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퇴원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어쿠, 다리 다치신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희수도 제 엄마의 휴대폰을 통해서 위로 문자를 남겼다. 할아버지, 다음엔 꼭 공을 차 멀리 날리세요. ^^

누군가 어, 옛날 영화 주인공 같아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히치콕요, 다리 다쳐 옴짝달싹 못하는 왜 그 영화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 집을 들여다보는 영화요? 그럼 변태 아닌가요? ㅋㅋ , 잠시 뒤 히치콕의 영화를 검색한 이들이 재바르게 영화 제목은 물론 다리를 다친 사진기자의 이름과 그 역할로 분한 배우의 이름까지 올렸다. 졸지에 그는 히치콕의 영화 「이창」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그가 소변줄을 꽂고 회복실에서 나오는 상황까지 다 중계한 모양이었다. 첫 사진의 제목은 ‘아직도 스무살 청년인 줄 아는 우리 집 남자’였다.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은 안 봐도 다 짐작이 갔다.

그는 더이상 젊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해주기라도 하듯 자신보다 많아야 열살 아래인 의사가 계속 그를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목발은 아예 권하지도 않고 휠체어 대여에 대한 정보만 알려주었다. 이제 일년 뒤 다시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재생력이 늦으니 상처가 아무는 데 한참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요의와는 상관없이 소변줄을 타고 흐르는 미지근한 그 느낌이 남아 있는데, 그 모든 과정들이 아내의 발랄함에 희화화되고 만 것이다.

이제 두번 다시 그런 객기는 부리지 못할 것이다. 두번 다시 자신의 발 아래로 굴러온 공을 차려는 마음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조금씩 위축되고 겁쟁이가 되어서 어쩌면 지금 앉아 있는 일인용 소파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뒷방 늙은이가 되고 말겠지.

다리 다친 사진작가가 아니더라도 아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하루 종일 그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멀리 떨어진 트랙으로 사람들이 오갔다. 그렇게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오래전 이렇게 창밖을 내다보던 기억이 겹치곤 했다. 학교였다. 그는 2학년 3반의 담임을 맡았다. 수업시간이면 학교 운동장은 텅 비었다. 그는 불안했고 수업 도중 문득문득 말을 멈추고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교문으로 수상쩍은 누군가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그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과거의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건 사복형사도 그도 아닌 한 여학생의 뒷모습이었다. 왜 그 장면이 떠오르는지 알 수 없는데 과거의 그 세계는 어릴 적 그가 보았던 히치콕의 영화들처럼 흑백이었다.

 

그날 아침 그는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면서 안방 화장실에서 새어 나오는 아내의 콧노래를 들었다. 바로 그 노래였다. 병원에서 듣고 잠에서 깬 뒤에 물어보리라 다짐했던 그 노래, 나중에 물어보았지만 아내는 어떤 노랜지 떠올리지 못했다. 아내의 콧노래가 멈추고 잠시 뒤 속옷의 고무밴드가 아내의 배에 맞고 탁 튕기는 소리가 났다. 다시 콧노래가 이어지고 아내가 온몸에 뭔가를 두드려 바르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콧노래는 이제 2악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앞에 흐르던 분위기와는 정말 다른 곡이 되었다. 무언가에 쫓기고 도망치는데 쫓기는 그것이 드디어 낚이고 만다. 이 부분부터 특히 긴박감을 살려 불러야 한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앞머리에 분홍 헤어롤을 만 아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살다 살다 별일이다, 싶은 표정이었는데 아마 자신도 모르게 아내의 콧노래를 따라 읊조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내가 이 노래 기억하지,라며 제목을 말했다.

“숭어.”

그는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내의 말을 고쳐주었다.

“송어입니다, 최선생.”

 

오월음악제가 떠올랐다. 그가 담임을 맡은 2학년 3반의 합창곡은 바로 「숭어」였다. ‘송어’가 ‘숭어’로 잘못 번역되었다고 말했지만 송어로 바꾼 가사가 아무래도 입에 붙지 않아 이번만 숭어로 부르기로 반 아이들과 합의를 보았다. 장미가 만발하고 열어둔 창으로 장미향이 섞인 훈풍이 날아들었다. 축제로 들썩이는 학교 분위기와는 달리 그는 불안했고 두려웠다. 그는 삭제된 희곡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다. 삭제된 부분은 대사 없이 동작으로만 진행될 것이다. 그들은 분명 그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비밀이 새어나갔을 수도 있다. 언제 그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자꾸 창밖을 살피던 시절이었다.

그 애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 애 발목만 떠오른다. 여선생들이 그 애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저 애 발목 말예요, 너무 선정적이지 않아요?” 그 애의 발목은 가늘었다. 그 애도 그걸 알았는지, 발목양말을 말아서 복사뼈가 교묘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그렇다고 전부 그 애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 애는 인근의 남학교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고 했다. 이 학교 2학년 3반의 누구를 처벌해달라는 투서가 교장실로 날아들었다. 그 애가 같이 어울렸다는 남학생들의 부모로부터였다.

그 애를 퇴학시키자는 여교사 부류에 아내인 최선생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아니 아내는 햇병아리였기 때문에 어쩌면 의견이 있어도 따로 내놓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애를 다그친 건 나이 든 여자 교감이었다. 대답해. 대답하라고.

학생부실 바닥에 꿇어앉은 그 애는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교감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펄펄 뛰었다. 김선생, 당신 반 애가 이런 애야. 이런 애가 당신 반이라고. 서른이 겨우 넘은 젊은 나이의 그는 눈앞의 일에만 신경이 가 있었다. 그 애를 변호하지 않았다. 너는 왜 내가 보낸 신뢰에 따라와주지 못했니, 넌 왜 나를 배신한 거니, 교감의 앞에서 그 애를 추궁했고 고개를 들지 않는 그 애의 머리카락을 감아쥐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애는 눈을 내리깔고 그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 애가 떠오르는 걸까. 왜 아빤 하필 발목이 부러진 거야? 병실에서 들은 혀 짧은 여자애의 투정이 떠올랐다. 왜 나는 발목이 부러진 걸까, 왜 하필 발목이. 그는 벽에 기대놓은 목발을 집어 들어 양쪽 겨드랑이에 끼웠다. 한발 두발, 오른발이 나갈 때는 왼쪽 목발이 나가야 한다. 이번에는 왼발 오른쪽 목발, 서로 교차되듯 자연스럽게, 오른발 왼쪽 목발, 그러다 발이 꼬이고 그는 수술한 다리로 바닥을 짚고 말았다. 통증에 다리가 꺾이고 바닥에 무릎을 호되게 찧었다. 너무도 아파 이가 앙다물어졌다. 다문 이 사이로 신음처럼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놈의 발모가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통에 그 애의 교복치마는 흙투성이였다. 일어나라. 그 애가 일어나 치마의 흙먼지를 털었다. 습관이었던 듯 신고 있던 면양말을 돌돌 말았다. 가느다란 그 애의 발목이 나타나고 반질거리는 복사뼈가 드러났는데 그는 별안간 욕지기를 느꼈다. 참아야 하는데 어쩌지 못하고 인상을 쓰고 말았다. “그놈의 발모가지.” 그 애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뭘 봐? 그 애의 두 눈동자가 서서히 흐려졌고 그 애는 인사도 없이 돌아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애가 그런 애라고도 그런 애가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 애를 그렇고 그런 애라고 낙인찍지는 않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음으로 다른 선생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보름 전 꿈속에 나타나서 그를 인터뷰한 건 바로 그 애였다. 그 애는 그의 정면에 앉았는데 얼굴은 뭉개진 듯 알아볼 수 없었다. 대신 돌돌 말아 신은 흰 양말이, 반질반질한 자갈돌 같은 복사뼈가 드러난 그 애의 가느다란 발목만이 거기 있었다. 그 애가 물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과 같은 생을 사시겠습니까? 그는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다. 혹시 듣지 못했니?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그는 울기 시작한다. 모릅니다. 전 어제 한국에 돌아왔어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애가 말한다. 다른 건 몰라도 딱 한마디만 해주세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세요. 가늘고 울먹이는 목소리.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울면서 그는 그런 자신이 노학자와 다를 게 무엇인가 생각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 노학자를 향해 손가락질할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은 음악실에 모여 최선생의 반주로 합창곡을 연습하고 있었다. 「숭어」. 경쾌한 선율을 뒤로하고 그 애는 텅 빈 복도를 걸어나가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가로질러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 몇개월 뒤 그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거의 모든 대사가 생략된 희곡을 무대에 올린 그다음 날 미국으로 떠나 이년 뒤 돌아왔다.

돌아온 어느날 어머니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네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벽에 누군가 마루를 향해 돌을 던졌다고, 나가보니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멀어지더라고. 그는 그 애의 짓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정말 그 애가 한 일이었을까.

그 애를 만나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데, 그 말을 꼭 해야 하는데, 그 애를 어디에서 찾을지 알 수 없다. 아내의 에스엔에스를 통하면 되지 않을까.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그 애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아 그 애 소식을 알고 있는 애들이 한둘은 있지 않을까. 오십이 다 된 중년 여자들을 애들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머릿속의 계획과는 달리 그는 뭔가 께름칙하고 두려웠다. 그 애의 소식을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런 그의 마음과는 달리 그의 얼어붙은 저 강 아래로 돌돌 시냇물이 흐르듯 발랄한 음률이 흐르고 있었다. 「송어」가 아닌 「숭어」의 경쾌한 리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