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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려령 金呂玲

1971년 서울 출생. 소설집 『샹들리에』, 장편소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등이 있음.

 

 

 

장편연재 3

일주일

 

 

도연의 어머니가 그녀의 집을 찾았다. 반찬거리 핑계가 있었지만 결국 도연과 유철의 결혼이 궁금한 거였다. 나이가 있으니 서둘렀으면 좋겠는데 영 소식이 없었다. 분명 결혼을 원치 않는 도연 때문일 거였다. 이번 생애에 결혼은 끝났어. 그러면서도 연애는 곧잘 하기에 참짝을 아직 못 만나서 저러지, 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도연의 공개연애로 자연 기대가 커지고 말았다. 게다가 사진만 놓고 보면 둘은 영락없이 부부였다. 이것이 무슨 조화인고. 그런 생각을 했는데 보는 눈이 비슷한지 친구들도 그러한 말을 했다. 얘들은 누가 봐도 부부다. 아니면 전생의 부부였든지.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들을 적마다 둘의 인연이 그러하다면 애초부터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며 아쉬워했다.

“그 사람은 뭘 잘 먹니?”

“이런 나물 같은 거 잘 먹어.”

“그러면 좀 갖다줘라.”

“알아서 먹겠지.”

“무슨 애가 그러니. 바쁜 양반 니가 좀 챙겨야지.”

“나도 바빠. 그 나이에 뭘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면 안 만나.”

“둘 다 바빠서 결혼하면 어떻게 살지 몰라.”

“지금도 따로 바쁘게 잘 사는데 결혼하면 왜 못 살아?”

“그래도 결혼하면 누구 하나는 옆에서 챙겨야지, 둘 다 바쁘면 그게 되겠니?”

“작가하고 국회의원이 서로 챙겨줄 게 뭐가 있어? 우리는 서로 가만히 있는 게 챙겨주는 거야.”

“가만히 있는 거 너 잘하니까 얼른 결혼해라.”

“싫어, 안 해.”

도연이 어찌나 단호한지 역시 결혼은 아닌가보다, 그래 니들 마음대로 해라, 하고 어머니가 물러섰다. 참인연이면 떨어져 살아도 다른 사람한테 마음 못 줄 것이다. 부모는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자식 때문에 늙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큰 말썽 한번 없이 자란 애가 다 커서 결혼이라는 중대한 일로 속을 썩였다. 어머니는 뻐근한 가슴으로 도연의 집을 나왔다.

 

도연이 어머니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렇다고 효도가 목적인 결혼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하고 싶을 때가 오면 하겠지. 도연이 정리하던 반찬들을 가만히 보았다. 냉장고에 들어가면 맛이 덜해질 거였다. 이날은 인영의 학원수업도 없는 날이었다. 같이 먹으면 되겠네. 도연이 유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저녁 약속 있어요? 없어요. 우리 집에서 먹을래요? 좋지요. 출발하기 전에 문자할게요. 네. 그다음은 인영이었다. 오늘 학교 끝나고 어디 가니? 아니. 오늘 저녁 아저씨하고 같이 먹자. 어디서? 집에서. 집에서? 불편하면 취소할게. 됐어. 안 섹시하기만 해봐라. 어쩔 건데? 퇴진운동할 거야. 그러세요. 도연이 탕거리를 마련하느라 서둘러 마트에 다녀왔다. 미나리 대구탕을 끓일 생각이었다. 도연이 멸치육수를 먼저 올리고 대구를 막 씻을 때, 유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인영이도 있지요?”

“네.”

“인영이는 뭘 좋아해요?”

“슈트. 오로지 무조건 슈틉니다.”

“알았어요. 삼십분 뒤에 출발할게요.”

인영이 집에 오자마자 교복을 벗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틴트를 이것저것 발라보는 것이 저도 긴장한 듯했다. 도연이 집으로 초대한 첫 남자였다. 아파트 근처나 주차장까지 온 남자는 있었어도 집으로 들이지는 않았다. 혹여 결혼 관련한 식사 자리는 아닐지. 도연이 그냥 만나는 남자와 느낌부터 달랐다. 엄마가 결혼을 한다? 못할 것도 없지만 안 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다. 제가 결혼에 방해되는 것은 아닐지 괜한 걱정도 했다. 그런 양가적 감정으로 조금 씁쓸했지만, 도연이 만나는 남자가 궁금하기도 해서 겉으로 표시 내지는 않았다.

 

유철이 도연의 집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곧장 누르지는 않았다. 어디 구겨진 데는 없는지, 와이셔츠 소매는 적당하게 잘 빠져나왔는지부터 살폈다. 유철은 도연과 통화한 뒤 옷장 앞에서 한참 망설였었다. 인영이 자신의 직업을 썩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아 더욱 신경 쓰였다. 회색 슈트를 꺼냈다가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 같아 도로 넣었고, 검정색 슈트를 꺼냈다가 식사 초대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다시 넣었다. 그렇게 고민하다 입은 옷이 짙은 남색 슈트였다. 지역주민들과의 만남 행사 때 도연에게 잘 보이려고 산 옷이었다. 도연을 우연히 만난 ○○시 올해의 책 선포식 날 하필 품이 큰 정장을 입고 있었다. 도연은 근사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저는 동네 마실 나온 아저씨 차림인 것 같아 속상했었다. 그 때문에 만남 행사 때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백화점까지 가서 직원의 조언대로 정장을 맞췄다. 몸 치수를 다시 정확히 쟀고 옷도 몸에 딱 들어맞게 했다. 잠깐 한 치수 큰 것으로 살까 고민도 했지만, 직원이 좋은 핏을 옷으로 숨기지 마세요, 하는 바람에 그가 추천한 와이셔츠와 넥타이까지 사버렸다. 그랬는데 도연과 함께 온 편집자가 얼마나 뚫어지게 보는지 재킷을 벗고 있을 때에는 배에 힘을 주고 있어야 했다. 그래도 시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도연이 이 슈트 잘 어울려요,라고 말해 내내 기분 좋았었다. 그 뒤로 아껴서 입을 생각에 잘 넣어뒀는데 그것을 다시 입은 것이다. 유철이 후! 짧게 숨을 내쉬고 초인종을 눌렀다. 도연이 문을 열었다. 일찍 도착했네요, 들어와요. 그러나 유철은 들어와서도 구두를 곧장 벗지 못했다. 인영이 현관 앞에서 전의 편집자보다 더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왜 도연 옆에는 이토록 뚫어지게 보는 사람만 있는 것일까. 유철이 바짝 긴장했다. 인영이 보안검색요원처럼 그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체크했다. 그런 뒤에야 비장하게 한발 물러섰다. 유철도 그제야 준비해온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여러가지 섞어서 샀어요.”

“고맙습니다.”

인영이 아이스크림을 받은 뒤 실내슬리퍼를 내밀었다. 통과였다. 인영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유철이 도연에게 눈으로 물었다. 됐어요? 도연도 눈으로 답했다. 네. 도연은 재킷을 입고 있는 유철이 너무 손님 같아 보여 편하게 벗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받아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인영의 눈이 다시 유철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유철이 배에 슬쩍 힘을 주고 넥타이 매듭을 바로 했다. 빗살무늬가 있는 청색 넥타이었다.

“그 넥타이 잘 어울려요.”

“엄마가 사준 거예요.”

“아마 세일할 때 샀을 거예요.”

“그랬대요. 하하하.”

“근데요, 저한테 반말하셔도 돼요.”

“예에, 이제 그럴게요.”

 

도연이 식탁 가운데에 대구탕을 놓는 것으로 식사가 시작됐다. 살이 잘 오른 황태구이와 색색 나물과 각종 밑반찬으로 차려진 식탁이었다. 준비 많이 했구나. 유철이 종일 저를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었을 도연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숟가락을 들었다.

“이 반찬들은 오늘 다 한 거예요? 힘들었겠네요.”

“아저씨, 그런 거 묻지 마세요. 엄마도 할머니가 가져오면 그냥 먹어요.”

“아, 할머님이…… 맛있다.”

“밥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엄마가 했어요.”

“난 진밥도 괜찮아.”

“그럼 더 드세요.”

“다른 것도 먹어야지. 황태 맛있다.”

유철과 인영은 생각보다 쉽게 어울렸고 그럭저럭 말도 잘 통했다. 유철은 인영에게 시선을 맞추려 노력했고, 인영은 어른스럽게 엄마의 남자를 인정했다. 인영은 슈트로 예의를 갖춘 유철이 마음에 들었다. 첫 방문부터 저를 아이라고 얕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유철씨, 대구탕 이거 우리 엄마 비법으로 끓인 거예요. 맛있네요. 인영이 미나리를 피해 국물만 살짝 떠먹었다. 할머니는 저렇게 미나리를 숭덩숭덩 썰어 넣지 않았다. 손질한 미나리를 가지런히 올렸다. 그래도 유철은 맛있게 먹었다. 은근히 건성건성인 도연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둘의 결혼을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단순한 남자친구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유철이 사온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었다.

“아저씨 직업이 조금 마음에 안 들지?”

“꼭 그런 건 아닌데요, 전에 어떤 국회의원이 팬한테 꽃다발 받는 동영상을 봤거든요. 그 아저씨가 꽃다발 받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제 아내가 좋아하겠네요. 그 아줌마가 아내 생각하면서 꽃다발 준비했겠어요? 왜 팬 앞에서 아내를 챙기고 난리야. 그거 보고 국회의원들이 좀 그래 보였어요. 옆에서 다 박수치면서 웃었거든요. 누구도 그 아줌마 생각은 안 한 거죠. 괜히 꽃다발 들고 와서 되게 쪽팔렸을 거예요. 아니, 국회의원들은 원래 그렇게 생각이 없어요?”

세다, 내 딸. 도연이 식탁에 이마를 대고 웃었다. 그런 거였다. 팔불출도 내 사람일 때나 예쁘지 다른 사람의 팔불출은 꼴불견이었다. 대중을 염두에 둔 직업인이라면 팔불출 등극은 신중해야 했다. 알겠어요. 백년해로하세요. 좋은 부부관계는 보기에도 참 좋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부부애를 강조하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예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과도한 스킨십은 불편한 것과 같다. 대중 앞에 선 순간만큼은 그들의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지자에 대한 예의다. 꽃다발을 아내에게 전달하겠다는 남편의 행동에 토는 달지 못해도, 제 성의를 타인에게 양도당한 지지자의 낙심은 자괴감을 부른다. 그럼 제 남편은 싫어하겠네요. 도로 주세요. 그런 반감으로 좋아는 해도 더이상 호명은 하지 않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미온적 관심으로 변모되기 쉽고, 심하면 안티로 돌변한다. 인영이 그런 비슷한 이유로 안티가 된 경우다. 초등학생 때 밤새 구운 쿠키를 들고 좋아하는 가수의 사인회에 갔었다. 겨우 만난 그에게 그 쿠키를 건넸는데 그가 대뜸 동생이 좋아하는 초코칩 쿠키네요, 하면서 쇼핑백에 넣어버렸다. 제아무리 동생 바보로 소문났어도 그러면 안 됐다. 좋은 오빠는 동생 앞에서 하고, 팬 앞에서는 좋은 가수여야 했다. 그날 인영은 그의 사인을 찢어버렸고 벽에 붙인 사진도 떼어냈다. 내가 지 동생 좋으라고 밤새 고생한 줄 알아! 그런 맘 상한 경험이 있던 차에 비슷한 행동을 한 국회의원을 봤으니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아마 쑥스러워서 그랬을 텐데, 나도 조심해야겠다.”

“네. 진짜 별로예요. 어쨌든, 전 이제 숙제하러 가요.”

인영이 아이스크림을 챙겨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인영이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유철이 후우, 숨을 내쉬었다.

“불편했어요?”

“긴장을 좀 했어요. 하하하.”

“방에 가 있어요, 커피 타서 갈게요.”

 

도연의 집에서 그녀의 딸과 함께 밥을 먹었다는 사실이 유철을 한결 안정시켰다. 이제는 길에서 우연히 인영을 만난대도 반갑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대면의 쭈뼛함을 길에서 경험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도연이 작업하는 의자에 앉아 그녀의 방을 둘러보는 것도 좋았다. 방 한구석의 책 무덤을 빼면 여느 안방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벽지 무늬까지 살피며 둘러보았다. 공개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러할 일이 없을 공간에 자신이 들어와 있는 거였다. 자신에게만 허락된 것 같은 특별함이 있었다. 그런 특별함 때문인지 별것도 아닌 봉지커피가 다 맛있게 느껴졌다. 책상에 내 사진 놓을 생각 없어요? 인영이 사진도 안 놓습니다. 왜 그래요? 딸 사진 두고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죽이지 마요, 그럼. 아직 죽일 사람이 좀 남았어요. 유철씨 사진 놓고 죽일까요? 확실하게 죽여줄게요. 내장을 돌돌 말아서. 왜 그래요 무섭게. 죽이는 게 무서운 거예요, 죽는 게 무서운 거예요? 둘 다. 도연씨는 어때요? 죽이는 거요. 거기에는 연속성이 있어요. 실패한 살인은 성공을 위해, 성공한 살인은 성공했으므로 또, 또, 또. 저기, 연쇄 살인 집필 작가님? 좋은 말로 할 때 해독제 내놓으세요. 무슨 말이에요? 커피에 독이 들었을 거 같아요. 그러자 도연이 유철을 꼭 안고 입을 맞췄다.

“됐죠?”

“인영이 오면 어쩌려고 이래요?”

“숙제한다잖아요.”

“혹시 모르는 게 있으면……”

“걔가 모르는 건 나도 몰라요.”

유철이 도연을 꼭 안았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감당이 되는 그런 여자였다. 그대로 느끼면 되는 여자, 도연이 꼭 그랬다.

 

*

 

찬바람이 불면서 유철은 더욱 자주 지역을 방문했다. 이 사람이 어디 있나 하고 찾아보면 지역 어딘가에서 주민들과 함께 있었다. 추위는 추운 사람을 더 춥게,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힘든 사람을 더 힘들게 했다. 접수된 민원은 지역 사무실 직원들이 우선 응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유철이 직접 얼굴 내밀어야 할 곳이 많았다. 유철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관련자를 찾아 의견을 전달했다. 할 수 있는 일이면 최대한 빨리 해결방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바지런함 때문인지 우리 의원님은 부르면 온다,는 신뢰도 생겼다. 곧 봄 온다 하고 지내야지요. 오히려 유철을 위로해주는 주민까지 생겼다. 그의 성실함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바쁜 일정을 수행하다보면 하루가 너무 길다 싶다가도 돌아보면 벌써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일이 생겼다. 계절은 늘 새로운 일감을 몰고 왔다. 사정이 이러하니 둘이 함께하려면 도연이 유철에게 시간을 맞추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짤막짤막한 동영상으로 확인한 유철은 늘 피곤해 보였다. 눈동자는 퀭했고 허허 웃음마저 힘겨워 보였다. 눈에 밟히는 일이 생기면 제 몸이 괴롭더라도 요령 없이 집중하는 성격 탓이었다. 그 때문에 도연은 자신이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을 내지 못하는 유철을 안심시켰다. 서두르지 않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래도 유철이 내 지금 보고 싶어 죽겠는데요, 하면 도연이 변신한 모습으로 국회 앞에서 퇴근하는 그를 기다렸다. 도연씨 머리…… 예쁘죠? 뽀글뽀글 잘 나왔네요. 크리스마스트리용 머리예요. 어떻게 이렇게 머리가 커지지? 그런 성긴 만남에도 둘의 밀도는 낮아지지 않았다. 연말에도 유철은 자원봉사를 하며 지역주민들과 함께했다. 도연은 연말연시에 몰린 송년회나 시상식에 참석해 오랜만에 선후배들을 만났다. 1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때가 아니면 따로 만날 자리가 거의 없었다. 다들 그런 만남에 익숙해 몇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양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저 보통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을 뿐이다. 어디냐고 몇시에 끝나느냐고 닦달하지 않았고, 졸졸 따라다니며 서로의 자리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가만히 두어서 더 듬직했다.

 

추위가 정점에 달한 2월에는 도연이 돌연 사라져 유철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휴대전화가 며칠이나 꺼져 있었고 문자도 확인하지 않았다. 도연이 전화기 꺼두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한번쯤 문자 정도는 확인했는데 이번에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사흘을 넘기자 끝내 도연의 집을 찾고 말았다. 그리고 유철을 도연의 어머니가 맞았다.

“어서 오세요, 의원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담근 유자청으로 차를 끓여 유철을 대접했다. 마셔 봐요, 맛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차를 마시는 유철을 가만히 보았다. 도연도 없는 집에 왜 온 걸까. 도연이 가보라고 한 걸까. 혹시 도연을 피해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닐까. 어머니는 그런 생각을 하며 유철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유철이 도연의 소식을 물었다. 그 바람에 어머니가 적이 당황했다. 얘가 말도 안 하고 갔어요? 하고 되물었다.

“급한 일이 생겼나보네요. 그래도 혹시 해서 와봤습니다.”

“뭘 좀 알아보러 간다고 나갔어요. 한 일주일 걸릴 거라던데.”

“예에. 작업하고 관련된 일인가요?”

“그런 거 같아요. 어디 작은 섬으로 취재 간다고 했어요.”

도연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로 참견이나 간섭을 싫어했다. 저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지켜보다가 마음에 들면 웃고 그렇지 않으면 그러려니 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차분히 들어봐야지. 조언하고 참견도 구분 못할까봐? 조언은 품위고 참견은 주책이야. 그래서 참견꾼의 십중팔구가 여보란 듯 주책이고. 잘한다 잘한다, 공치사하면 더 심해져. 참견거리 찾아 기웃기웃거리고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방언처럼 떠들어대. 주책은 멈추지 않아. 날로 진화해. 희한한 형태로 쉴 틈 없이 떨어. 주책중독자. 그런 사람들은 아예 상종하지 않는 게 최선이야. 그러니 도연이 유철을 만난다는 것은 그가 저런 류의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제 일의 방해를 염려해 말없이 간 것은 아닐 거였다. 사안의 문제일 수도 있고 순전히 제 성격 탓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연인 간 예의를 지키지 못했다. 관계에 따른 최소한의 고지 의무를 무시했다. 잠깐 다녀오겠다는 말이 그토록 어려웠나. 그마저도 싫다면 완벽한 남이어야 했다. 무엇을 해도 상관없고 무심해도 되는. 어머니가 딸의 무책임한 행동을 대신 사과했다.

“미안해요. 오면 따로 말할게요.”

“예. 혹시 이번 일로 다투면 어머님이 제 편이 돼주십시오. 하하하.”

어머니가 그제야 마음 놓고 환하게 웃는 유철을 찬찬히 살폈다. 겸손하고 예쁜 기품이 있었다. 골격처럼 기품도 저마다의 것을 타고난다. 거지도 기품이 좋아야 동냥 잘하는 수하를 거느리는 법이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억울한 요소 하나 없이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제 억울한 것을 다른 것으로 보완하며 살 뿐이다. 그중 대체나 보완이 가장 어려운 것이 기품이었다. 이것은 얼굴에 재를 발라도 사라지지 않고, 얼굴에 금칠을 해도 없는 것이 생기지 않는다. 흔히 태가 좋다고도 하는데 유철이 꼭 그랬다. 아직 젊은 사람이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을 가졌음에도 뻗댐이 없었다. 그래서 도연이 예쁘다고 한 거였다. 그것이 그의 외모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어머니는 그동안 둘의 결혼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유철을 보니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만하면 됐다. 둘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행복하게 오래 만나는 것도 괜찮은 삶의 방식일 것이었다.

 

오래전에, 임신한 도연이 찾아와서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둘이 좋아하고 임신까지 했으니 당연한 거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갑작스런 결혼을 염려해 둘의 사주를 봤었다.

“얘가 배우자 복을 타고났다. 이런 애는 지 복으로 누굴 만나도 걱정 없어. 복이 많은 배우자를 맞는 것도 배우자 복이고, 그냥 옆에만 둬도 복이 되는 것도 배우자 복인데, 얘는 후자 쪽이야. 왜 애들 이렇게 딱딱 끼워 맞추는 장난감 있지? 고거 하나는 별거 아니라도 그걸 끼워야 빈틈이 없잖아. 얘가 그래. 빈 곳을 배우자가 채우는 사주야. 그래서 없느니 있는 게 나아. 잘 살라고 해.”

누구의 복이든 있으면 서로 좋다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도연이 결혼생활을 삼년 만에 끝냈다. 빌어먹을 무당 같으니라고. 물론 도연의 임신으로 결국에는 할 결혼이었다. 그래도 어쩐지 무당이 야속했다. 차라리 좋지 않다고 했으면 주의라도 했을 것 아닌가. 그러나 비록 이 무당이 도연의 점은 잘못 쳤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용하다고 하니 발길을 끊을 수가 없었다. 심란할 때 찾아가면 그럭저럭 위로도 받았다. 이혼 뒤 통 결혼 생각을 하지 않는 도연을 보면 답답하기도 했다.

“나는 얘가 남편 복이 없는 거 같은데, 다시 봐줘봐요.”

“얘가 복이 있으니까 전남편이 그래 가라, 순순히 보내준 거지. 패서라도 잡아두는 남편이 좋은 거냐? 얘가 배우자가 없느니 있는 게 좋은 팔자는 맞아. 빈 곳은 뭐라도 채우면 구멍은 안 나 보이잖아. 근데 바꿔 말하면 뭐야?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다는 뜻이야. 사는 데 지장 없다고. 오히려 저 쪼마난 조각이 까불 때 문제가 생겨. 저 때문에 전체가 유지되는 줄로 알면. 같잖게. 이 조각이 그래. 아귀가 딱 맞으면 더없이 좋아. 근데 대충 들어는 갔는데 아귀가 잘 안 맞아서 쿡쿡 찌르면 환장하는 거야. 이런 팔자는 짝을 제대로 만나면 대운을 맞는 격인데, 생각 없이 만나면 손톱 밑에 가시 꽂고 사는 팔자가 돼. 손톱이 빠질 만큼 곪아도 옆에서는 몰라. 보면 별거 아닌 것 같거든. 대충 구멍은 메워진 거 같으니 오히려 좋다 좋다 해서 저 혼자 시름시름 앓아. 그래도 얘는 기가 세서 뽑아낸 거야. 속이 시원해지니까 일마다 잘 풀렸지? 무조건 한 놈하고 죽을 때까지 사는 게 복이 아냐. 일부종사하다 목 맨 여자가 한둘이야? 너는 행복하냐?”

나이도 한참 어린 것이 너, 너, 거리면서 반말해대는 꼴이 거슬리기는 해도, 저 나이에 저런 걸 어떻게 알고 있나, 저는 전생에 한 맺힌 것들이 몸에 들어와서 울어대는 팔자라 한 몸으로 여러 생을 살아서 그렇다, 하니 또 그런가보다 들을 수밖에 없었다. 도연의 이혼을 지켜본 어머니 입장에서도 무당의 말을 마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었다. 싫다고, 도저히 싫어서 못살겠다고 했다. 보기에는 착실하고 예의 바른 사위였다. 그러니 당시 도연의 이혼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무당의 말을 듣고서야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이해했다.

“그러니까 우리 애가 남편 복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거지요?”

“있어. 몇번을 말해. 근데 배우자 복이 많은 게 좋은 것도 아냐. 사주에 복 많다는 배우자를 얻으면 그때부터 지옥일 수도 있어. 처음에는 좋겠지, 일도 술술 풀리는 것 같고. 더 살아봐. 지가 죽도록 고생해서 뭘 해도 생색은 저쪽이 다 내. 일이 잘되면 다 제 덕이라고 하고, 안 되면 그나마 저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라고 하지. 그럼 또 그렇구나 하고 믿는다. 이거 종교야. 사주 하나 믿고 지가 다 해냈다는 배우자님을 믿음으로 모시면 저만 병신 돼. 죽어라 일하면 뭐해. 다 내 덕이다, 떡 폼 재고 있는 배우자님 때문에 저는 빛도 못 보는데. 뭘 해도 배우자님 아래 불쌍한 어린양 신세야. 그래서 지옥인 거야. 어떡할 거야, 그런다고 종교를 갈아탈 거야?”

무당은 배우자 복에 기대어 살려는 인간치고 제대로 된 인간을 못 봤다며, 제가 가진 복이나 신경 쓰며 살라고 했다. 도연이 가진 다른 복도 많은데 굳이 배우자 복에만 목을 맨다며 어머니를 타박하기도 했다. 아니, 엄마가 혼자 애 키우는 딸 걱정돼서 좀 물어봤기로서니 그걸 무슨 목을 매네 안 매네 하나. 어머니는 다시는 안 온다며 대문간에 침을 퉤 뱉고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 도연이 몇번의 연애를 했다. 저러다가 또 나 임신했어요, 결혼할 거예요, 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됐다. 나중에는 차라리 그렇게라도 했으면 하고 말았다. 그때쯤 도연이 유철을 만났다. 누구한테 숨길 수도 없이 온 세상이 알게 된 만남이었다.

 

무당 집 끊기가 아편 끊기보다 어렵다더니, 둘의 만남이 세상에 알려지고 뒤로도 제법 잘 만난다 싶으니 어머니 마음이 또 싱숭생숭했다. 말은 좀 지랄같이 하지만 도연의 이혼사정도 제법 맞힌 것 같고 아직 신기도 팔팔한 것 같아 대문간에 침 뱉은 건 마음으로 사과하고 다시 무당을 찾았다. 무당이 도연과 유철의 사주와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는 헤헤헤 영문 모를 웃음을 지었다.

“왜요? 안 좋아요?”

“아니, 사주도 괜찮고 부부관상도 좋다. 얼굴 내밀고 일하는 사람들은 관상도 중요하지. 얘가 이 선비 같은 양반을 사내로 보이게 해. 힘 있어 보이게 한다고. 그러면서도 제 기가 꼿꼿해서 안 밀린다. 합이 참 좋아.”

무당은 부부가 섰는데 임금 옆에 나인 있는 것 같고, 중전 옆에 내관 있는 것 같으면 안 된다고 했다. 부부가 대등하게 보여야지 주종의 관계로 보이면 안 된다고. 둘을 감싼 부부 테가 보름달처럼 둥글고 환하게 빛나야 좋은데, 둘이 같은 색채와 같은 함량의 빛으로 테를 만들어낸 순간이 가장 관상이 좋을 때라고 했다. 이때는 부부가 닮은 것 같은 착시효과까지 생긴다. 서로 부족한 것을 메우며 조화로운 하나가 된 순간인 까닭이다. 너 따로 나 따로 부부지간인지 원수지간인지 모를 부부는 테부터가 곱지 않다. 각자 다른 빛을 내면 남끼리 있는 것 같고, 빛이 흐리거나 아예 없으면 삭막하다. 부부가 예뻐 보일 리 없다.

“얘들은 지금 한참 좋은가보다. 둘이 닮은 듯 예뻐. 너무 안 어울려도 피곤하거든.”

보기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부부는 사랑은 차치하고 괜한 입방아에 곤욕을 치른다. 저 둘이 부부라고? 취향 독특하네. 저 정도면 취향이 없는 거지. 결혼하는 데 그냥 사람이면 된 거야. 어머, 실용적이다. 조화 무시하고 실용성만 따지면 일회용품이 최고지. 어떻게 결혼까지 했을까? 옆에서 부추긴 인간 있다,에 내 전부를 건다. 맞아, 그런 인간 꼭 있어. 쟤들도 그거 하겠지? 실용적으로 생산적이게 하겠지. 아…… 상상해버렸어, 뇌 바꾸자! 사람 구경 중에 부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벌거벗고 대하는 게 부부여서 상상에 등급이 없다. 그러니 우선 남 보기에 좋으면 손해 볼 건 없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직 결혼도 안 한 둘에게 부부 테를 말하는 것은 성급해 보였으나, 어쨌든 잘 어울리고 좋다니 듣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작가와 정치인은 너무 뜬금없는 조합 같았다. 어머니는 혹여 이번에도 없느니 있는 게 낫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짝은 아닐는지 걱정됐다.

“얘들 이렇게 좋다가도 또 금방 헤어지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요?”

“야, 세상에 불로장생 연이 어딨냐? 이것들은 오래만 가면 좋은 줄 알아.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연이 지 유전자만큼 많아. 다 쓰고 죽으래도 못 죽어. 있는 연도 못 써먹는 인간들 보면 참, 아낄 걸 아껴야지.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생이야.”

“결혼한다는 말이 없어서 그러지요. 부부의 연은 아닌가보죠?”

“궁금하냐? 어이구, 부부의 연이 뭐 그렇게 좋은 거라고, 들.”

무당이 피식 웃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서로 부부의 연이 닿아야 결혼하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무당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했다. 어떤 연으로든 만나서 결혼하면 부부가 되는 것이고, 만난 그 연대로 산다고 했다. 호연이든 악연이든. 쥐가 닭 잡아먹듯 배우자를 서서히 잡아먹는 연도 있다. 당장은 시원한 맛에 제 똥구멍을 배우자에게 맡긴다. 멋도 모르고 좋다, 좋다, 맘 놓은 사이에 배우자가 창자를 뽑아 먹고 있는 것이다. 잘한다, 잘한다, 부추기며 사지로 내몰아 제 욕심을 채운다. 배우자는 죽어나고 제 얼굴에는 야욕의 살이 오른다. 섬뜩한 연이다. 한쪽에서 기를 빨아먹는 흡기의 연 부부는 차라리 주말부부처럼 떨어져 지내는 것이 낫다. 그래야 제 기를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다. 혼자 다닐 때 유독 빛나는 사람이 주로 그런 부류다. 이런 사람은 배우자와 함께 있으면 기가 빨려 처량하고 못나 보인다. 기실 부부의 연만큼 만나기 힘들고 지독한 연도 없다. 하필 부부의 연으로 만나 꾸역꾸역 살다가 저승에서는 만나지 맙시다, 하고 눈감는 부부도 상당하다. 좋든 싫든 무덤까지 가는 것이 부부의 연이다. 그런데 다른 연으로 만난 것들이 결혼만 하면 다 부부의 연으로 만난 것으로 알고, 저 부부의 연을 흉내 내느라 제 허벅지를 찍어가면서까지 헤어지는 것에 학을 뗀다. 그렇게 생으로 버티면 명만 깎인다. 연과 삶이 달라 가는 길이 막막하고 억지의 삶이라 늘 힘에 겹다. 그러니 자신들의 연부터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만 제대로 알아도 부부가 서로 맞춰나갈 수 있기에 사이좋은 천생연분으로 지낼 수 있다. 연에도 수명이 있어 그 다함을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데, 연의 기운이 가장 좋았던 때만 생각하고 떠나려는 상대를 용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죽은 연을 붙들고 살면 자신이 가진 다른 좋은 연들까지 잃게 된다.

 

“희한한 연으로 만난 부부는 자식들도 따로따로야. 영 한가족 같지가 않아. 근데 재혼이라도 부부 연으로 만나면 따로 낳아 온 자식들까지 닮아가. 신기하지? 그러면 전에는 꼭 진짜를 참칭한 배우자하고 살았던 것 같아. 근데 정말 그런 경우도 있어. 그러면 요물이 진짜 행색하면서 남의 빚을 가로챘다고 하지. 보면 비슷한 것 같은데 좀 이상해. 달라. 탱자하고 귤처럼. 진짜하고 엇비슷한 모습으로 홀리는 거야. 그렇게 가로챈 남의 빚으로 지 팔자에 없는 복을 누리는 거지. 남편은 빚도 못 갚고 바치기만 하고. 요물한테 빼앗긴 건 갚은 게 아냐. 요물한테 홀린 아내도 마찬가지야. 이제 빚 좀 받으려나보다 했다가 오히려 살점을 뜯어 먹히면서 살아. 피까지 빨려. 헛고생 안 하려면 지가 누구랑 살고 있는지 빨리 알아채는 게 상책이야.”

“무섭네요. 근데 참배우자는 어떻게 만난대요?”

“내가 아냐? 하늘이 알지. 그건 분명해. 막 던져놓지는 않아. 반드시 필연의 장소에서 만나게 해. 그때 지 짝 지가 알아봐야지 뭐, 옆 사람이 알아?”

“근데 그게 참 그런 게, 요물인 줄 알았다고 지가 알아서 나간대요? 무슨 증거로 쫓아내요. 여태 산 배우자가 요물이다, 그러면 누가 믿어요?”

“왜 나한테 그래. 니들이 속세 법으로 살지 하늘 법으로 사냐? 나는 그런 요물들이 있다고만 알려준 거야. 아, 요놈 이거 국회의원이라며. 이놈한테 만들라고 해라. 요물 인정법. 니들은 법이 있어야 인정하잖아. 우리도 옛날에는 직업으로 쳐주지도 않았어. 법으로 그렇다니까 그제야 직업인으로 보대. 나도 세금 낸다. 직업코드 41622. 그니까 이놈한테 하나 만들라고 해.”

“아니, 왜 이 양반이 만들어요? 남들이 들으면 내 딸 오해하겠네.”

“쯧쯧쯧, 이것들이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이러니 백날 악악 소리쳐도 변하지를 않는 거야. 보면 그저 행복에 겨운 것처럼 여보 당신 사랑해, 하는 것들만 있지, 부부관계를 심각하게 고려 중입니다, 하는 것들은 하나 없어. 둘이 사진 찍고 자랑할 줄만 알지, 지들이 일 안 해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관심도 없어. 목매고 그 모습 내려다보면서 죽어가는 사람들 심정이 어떻겠냐? 너는 행복하구나. 그렇게 죽은 것들이 내 몸에 들어와서 울어! 니 딸년이 왜 복이 많은 건지 이제 알겠냐? 목에 이빨 박고 안 놔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려. 여기 국회의원 마누라들 자주 온다. 어떡하면 나랏일을 잘할까요, 이러는 것들은 거의 없어. 어느 지역으로 가야 될까요, 이번에는 될까요, 여자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러는 것들만 있어. 한 놈은 어찌나 계집질을 하고 다니는지 마누라가 부적까지 써 갔다. 여기 얌전해지는 거.”

“그런 부적도 있어요? 있다고 해도 그렇지, 그걸 써줬어요?”

“당연하지, 얼마나 비싼 건데. 그 양반은 일 잘 풀리는 부적으로 알 거야. 근데 갑자기 여기가 조신해지면 좀 놀라겠지. 그러면 보신한다고 좋다는 식당 찾아다니겠지. 식당은 단골 생겼다고 좋아하고. 물건 대는 사람은 덩달아 신나고. 그러다가 그 양반이 다시 팔팔해지면 마누라가 또 나를 찾겠지. 나는 더 좋은 거 하나 써줘야지. 그러면 그 양반이 또 더 좋은 식당 찾겠지. 이렇게 경제가 도는 거야.”

“경제가 왜 그런 걸로 돈대요, 글쎄. 근데 그 의원이 누구예요?”

“야, 너만 고객이냐? 어디서 큰 손님을 까래?”

 

부부 연의 상대를 만났다고 다 부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부부가 되지 못한 것이 한이 될지언정 다른 연이 더 강한 팔자면 그렇게 산다. 인간이 연에 집착하는 존재도 아니다. 필요하면 악연 호연 가리지 않는다. 코앞의 이익과 목적이 우선인 까닭이다. 무당의 말을 듣던 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도연과 유철은 무슨 연이라는 것인가. 부부 연이지만 부부는 안 된다는 것인지, 다른 연으로 만났지만 부부는 될 거라는 것인지, 복채를 받았으면 점을 쳐줘야 할 것 아닌가. 다른 무당들은 물어보면 척척 말해주더만 이 무당의 속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툭하면 하늘이 알아서 한다는데 들어보면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혹시 이 무당이 신기가 떨어진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어쨌든 둘이 잘 어울리고 부부 테도 곱다 하니 결혼 날짜나 잡아보자 싶었다. 날짜 한번 잡아본다고 탈이야 나겠는가.

“얘들 결혼 안 한다고 했다며?”

“재미로 잡아보게요. 하고 안 하고는 지들 마음이지요, 뭐.”

“너는 얘들이 부부가 되길 바라는 거냐, 부부라고 사방에 떠들고 싶은 거냐?”

“뭘 떠들어요? 식을 올려야 남 보기에도 좋고 지들도 안정되니까 그러는 거지요.”

“얘 둘은 벌써 안정됐어. 식 안 올려서 니가 남 보기에 부끄러운 거지, 맞지?”

“나이 먹은 애들이 저러고 다니면 좋아요?”

“지랄을 한다. 나이 먹었으니 저러고 다니지, 애들이 그러고 다니냐? 그렇게 살겠다면 그렇게 살게 둬. 다 살게 돼 있어. 지들이 싫다는데 왜 내가 날짜를 잡아주냐? 이미 부부로 잘 지내고 있구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벌써 부부합방 했다. 부부 연으로 만나서 하늘이 허락한 날 잤다고.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다 마쳤다. 요 미간에 자국이 보여.”

“어디요?”

“너는 못 봐. 그러니까 식 같은 거 안 중요해. 저 하늘이 벌써 허락했어.”

“어머 얘들 부부 연이었어요? 그게 다 좋은 건 아니라면서……”

“이제는 부부 연이라니까 지랄이네. 합 좋은 나쁜 부부 연은 없으니까 걱정 마셔. 도둑질도 손발 척척 맞아서 할 거야. 그니까 둘이 알아서 하게 냅둬.”

하여간 무당 말은 그랬다. 하늘이 벌써 허락했다고. 그런데 무슨 각시가 신랑한테 말도 없이 며칠을 떠나 있나. 신랑이라는 이놈은 왜 당장 달려가지 않나. 무당 점이 또 틀린 건가. 물론 흥분하지 않고 상황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유철이 듬직하기는 했다. 어머니가 도연의 얘기를 하면 반짝반짝한 눈으로 들었다. 그렇게 좋으냐.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데 굳이 결혼을 입에 올릴 필요가 없었다. 도연이가 재첩국을 참 좋아해요. 언제 하동에서 먹고 오더니 일년에 한두번은 꼭 가서 먹어요. 재첩으로 한 건 다 좋대요. 저도 좋아합니다. 언제 같이 가서 먹어야겠어요. 잘하는 집 알거든요. 어머니는 이놈이 빈말이라도 한번 모시겠다는 말은 안 하네, 하면서도 둘이 좋으면 됐다,고 웃어넘겼다. 그러고는 작은 병에 유자청을 덜어 집을 나서는 유철의 손에 쥐여주었다.

“아끼지 말고 먹어요.”

“잘 먹겠습니다, 어머님.”

 

유철은 도연의 어머니를 만나고 온 것이 좋았다. 격의 없는 자리여서 긴장감도 덜했다. 어머니는 딸의 남자라고 이것저것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도연의 이야기만 했다. 차 마시는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다. 불편해도 먼저 일어날 수 없는 유철을 생각해 자리도 먼저 정리했다. 쫓아낸다는 오해를 하지 않도록 유자청도 손에 쥐여주었다. 이스탄불에서 긴장했던 자신과는 달리 매우 일상적인 말로 만남을 편안하게 했던 도연이 떠오를 정도였다.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능력도 유전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도연의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 추운 날 도대체 어느 섬에 혼자 있다는 것인가. 걱정이 화로 바뀌고, 화가 다시 걱정으로 바뀌기를 반복한 일주일이었다. 그러다가 도연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덜컥 화를 내고 말았다.

“어디예요, 도대체!”

“지금 집에 왔어요.”

“집으로 갈게요.”

“아니, 당장 정리할 게 있어서요. 마치면 잠실로 갈게요.”

유철은 그녀가 다녀온 곳이 섬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심도 들었다. 따지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도연의 세계였다. 간단한 질문과 대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그렇게 조용히 떠나지는 않았을 터였다. 유철은 그 때문에 불안했지만 더 깊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너무 위험한 일일까봐, 그러면 도연을 잡을까봐, 여태 그런 일을 한 사람인데 이제 와 안 된다고 해버릴까봐. 그것은 그녀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그 세계로도 데리고 가겠지. 그러한 기대로나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막연한 미래의 일보다 오피스텔로 올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도연은 사흘 만에 나타났다. 유철의 걱정이 무색하게 밝은 표정이었다.

“보통은 다녀온 날보다 정리하는 날이 더 길지 않아요?”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왔는데, 도로 갈까요?”

“아뇨, 너무너무 잘 왔어요. 너무너무 걱정했거든요.”

“위험한 일이 아니라서 가볍게 다녀왔어요.”

“위험은 내 집에서도 생겨요. 혹시 모르니까 우리 비상신호 만들어요.”

“저기, 내가 그렇게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집 밖은 다 위험해요.”

“아까는 내 집도 위험하다더니. 남의 집에 숨어 살아야 하나……”

“지금 그런 농담이 나와요?”

도연이 호오 숨을 내쉬었다. 미리 말하지 않고 간 것은 다분히 고의적이었다. 무슨 일로 가는지 물으면 대답이 막막할 거였다. 도연은 과정이 아닌 결과물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모든 과정이 결과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대개가 버려졌다. 그러니 누가 근황을 물어도 대답이 어려웠다. 그냥…… 이런 스트레스는 연인에게 더욱 많이 받았다. 그들은 무슨 자격이라도 획득한 것처럼 세세한 보고를 원했다. 어디서 어떤 일을 무슨 생각으로 하는지. 열린 주방 식당도 비법은 감추는 법이다. 그런데 한 연인은 자신이 아는 분야라며 동행을 자처했었다. 뭘 좀 안다고 주방 앞에 서서 요리에 참견하는 고객과 뭐가 다른가. 그럼에도 굳이 따라나섰다. 내내 괴로웠다. 나는 내가 보고 내가 느끼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저것이 천사로 보입니까? 내 눈에는 악마로 보입니다. 나는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그것을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 귀에 당신의 말을 넣지 마십시오. 전문가는 나도 당신도 아닌 현장의 그들입니다. 그는 아는 만큼만 봐서 문제였다. 제가 아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는 중에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이런 사람이 동행하며 열정적으로 떠드니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을 물어보면 도연이 안다고 추측한 범위 내에서 설명했다. 그것까지는 네가 알 필요 없어. 필요 유무와 범위까지도 제가 재단했다. 이런 사람이었구나. 징글맞은 경험이었다. 그것이 그와의 이별여행이 되었고, 그곳에서의 일은 단 한 문장으로도 옮겨지지 않았다. 그 뒤로 연인에게는 특히 입을 다물었다. 쉽게 내칠 수 없는 사람의 참견이 더욱 힘든 때문이었다. 물론 유철은 저러한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직까지 어떤 간섭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미리 말을 하지 못했다.

“일은 방해 안 할 테니까, 말만 해주고 가요. 그대로 믿을게요.”

“알았어요.”

도연이 순순히 대답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장소를 지목하고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홀연 사라지는 것보다 나을 것이었다. 여하튼, 도연은 며칠을 잠실에서 지냈고 그 뒤로는 칩거했다. 유철도 드문드문 문자를 보냈다. 문자 확인하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려주세요. 살았어요. 그럼 됐어요. 그사이 봄이 왔다. 도연이 집에만 있어서 봄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올봄은 달력과 무관하게 빨랐다. 인영이 봄옷 투정을 하는 바람에 한소리 했는데, 밖을 보니 사람들이 벌써 봄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봄이네. 어쩐지 밥만 먹으면 졸리더라니. 무슨 봄이 이리도 빨리 오나. 도연이 마감 날짜가 표시된 탁상달력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던 한 날은 도연이 유철의 오피스텔로 와 침대에 폭 엎어졌다. 올봄은 유독 일이 겹쳐 사정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영이 별것도 아닌 일로 신세타령을 해댔다. 친구들 중 저만 반이 갈렸다는 둥 친구들은 뭐가 다 있는데 저만 없다는 둥 듣자듣자 하니까 제 휴대전화가 해킹당한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 제일 필요한 게 뭐야. 그냥 지금 운동화가 불편하기도 하고. 그 비싼 한정판 운동화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도연을 힘들게 한 거였다. 나가자. 그래서 함께 나왔는데 인영이 운동화 말고도 이것저것 고르는 통에 쇼핑몰에서 보낸 시간만 네시간이었다. 그래서 인영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저는 오피스텔로 와버렸다. 나 고춧가루 잔뜩 넣은 라면 좀 끓여주세요. 기다려봐요. 그랬는데, 도대체 유철이 라면에 뭘 넣었는지 온몸이 떨릴 만큼 매웠다.

“고춧가루랑 청양고추, 그게 마침 있어서……”

“이가 다 뽑힐 것 같아요.”

도연은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했다. 유철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날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끓였다. 그걸 또 도연이 기어코 국물까지 싹 비웠다. 배가 성할 리 없었다. 곧 배가 부글부글 끓었다. 아…… 안 되겠다. 결국 도연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런 도연을 보며 유철은 미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설거지나 해놓자고 생각했다. 이날 마침 도연이 온다기에 오피스텔 앞 호숫가에 만개한 벚꽃을 즐길 생각이었다. 잔바람에도 휘날리는 꽃잎을 밟으며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었다. 그런데 도연의 상태를 보니 산보는 틀린 것 같았다. 도연이 화장실에서 나와 설거지 뒷정리를 하고 있는 유철을 뒤에서 안았다.

“시원하게 쏟았어요.”

“좀 괜찮아요?”

유철이 도연의 어깨를 감싸고 소파로 갔다. 도연이 소파에 앉은 유철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그러고는 그의 손을 잡고 손등을 비볐다. 손이 왜 이렇게 거칠어졌어요. 남성미 있어 보이잖아요. 무슨 남성미요? 환절기라 그러나보다. 가방에 핸드크림 있는데 주고 갈게요. 생각날 때마다 발라요. 누구 생각날 때요? 나. 일년은 쓰겠네요. 생각보다 빨리 쓰네. 내년에 하나 더 사줄게요. 비싼 거니까 되도록 아껴서 이년 쓰세요. 얼마짜린데요? 삼천이백원. 슈퍼 가기도 귀찮은데 왜 그렇게 빨리 써요? 내가 잘못했어요. 오늘 밤에 온몸에 다 바를게요. 열정적으로 그리워하면서. 하하하. 도연이 유철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웃었다.

“유철씨 덕분에 스트레스가 싹 풀렸어요.”

“그럼 자고 가요.”

“안 돼요. 요즘 인영이가 예민해서 되도록 같이 있어야 해요.”

“나도 봄 타는 남잡니다.”

“김밥 싸서 어디 소풍이라도 갈까요?”

“다음주부터 우리 지역 꽃축제 시작해요. 같이 가요. 간 김에 식목행사도 같이 하고. 다른 의원들은 부부동반으로 오는데, 내만 맨날 혼자 심고……”

도연이 유철을 가만히 올려보다가 그의 양 귓불을 살짝 잡았다. 고개 숙여봐요. 왜요? 뽀뽀하게. 물려고 그러죠? 아니, 와봐요. 싫어요. 도연이 귓불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아아. 엄살은. 도연이 나갈 준비를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이 없을 때는 징글맞게 없다가 겨우 하나 생기면 곧 다른 일이 겹쳤다.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도 여럿이었다. 올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유철과의 만남을 의식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청탁은 모두 거절했다. 유철과 만나면서 도연의 글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중 미세먼지 이야기는 네티즌 간 진영 싸움으로까지 번졌었다.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도연 자신의 소신을 밝혔을 뿐인데도 유철 진영에 유리한 글로 해석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연인을 정치적 동지로 본 까닭이다. 그러나 도연은 유철이 자신과 함께하는 순간만이라도 정치에서 쉬게 하고 싶었다. 그가 짊어진 모든 의무를 잠시라도 내려놓게 하고 싶었다. 그를 정치여지도 속에서만 살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하는 자리에 앉았다 한들 행복하겠는가. 누구를 위한 행복인가. 도연 자신도 온종일 글을 쓰다가 유철을 만났는데 그가 또 쓰자고 덤비면 바로 드러누울 것이었다. 차라리 나를 죽이십시오. 서로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도연의 인생에 정치가 사라질 리 없고, 유철의 인생에 문학이 빠질 리 없다. 그저 각자의 일을 해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가 알게 모르게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라는 신분이 워낙 강렬해 발목 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너도 곧 공천받겠다. 소설가면 소설이나 써. 소설을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은 자신들이면서 도연을 힐난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감수해야 했기에 혼자 삭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연인입니다. 동지하고 불타는 의지의 섹스 안 합니다. 이때는 마감이 다급한 수필을 쓰고 있었다. 꽃구경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연이 가방을 들었다.

“도연씨 혹시 재첩국 좋아해요? 그거 되게 잘하는 집 알아요.”

“그건 그냥 길에서 파는 거 먹어도 되게 맛있어요.”

“그렇긴 한데, 거기는 현지인들만 아는 맛집이에요.”

“아…… 우리 당일치기로 다녀올래요?”

“일박 이일.”

“다음 주말.”

유철이 먼저 나가 오피스텔 문을 열고 섰다. 도연이 현관을 나가며 유철을 슥 보았다. 유철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그걸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나? 어쩐지 찜찜했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이 제철을 맞았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럴 때는 먹어야 했다. 유철과 도연은 벚꽃으로 화사한 호숫가를 멀리서만 보고 그대로 대로로 나왔다. 유철이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근데 유철씨는 언제부터 재첩국 좋아했어요?”

“그거 싫어하는 경남 사람 별로 없어요.”

“예에…… 갈게요.”

도연이 탄 택시가 출발했다.

 

*

 

봄의 한복판에 들어서면서 지방선거의 윤곽도 드러났다.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탈당과 입당으로 어제의 가족과 헤어져 새 둥지를 튼 사람도 있었고, 언젠가 그렇게 왔다가 도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여기도 저기도 마땅치 않아 무소속으로 나선 사람도 있었다. 공천과 경선 잡음으로 시끄럽기는 했으나 후보가 확정되면 그를 중심으로 캠프가 꾸려졌다. 유철의 지역구 인근 지역의 선배 의원도 도지사로 출사표를 던졌다. 최대 관전 포인트로 부상한 지역으로 부담이 큰 곳이었다. 보수정당에서 사활을 건 만큼 자당도 맷집과 이미지 좋은 주자를 내세웠다. 의원직까지 내려놓았으므로 그도 물러날 곳이 없는 싸움이었다. 유철도 자신의 보좌진 몇을 그의 캠프로 지원 내보냈다. 경남 현역 의원이라고는 겨우 둘 남았는데, 그나마 한 중진 의원이 도지사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는 바람에 유철이 더 뛰어야 했다. 경남 곳곳에서 출마한 후보들이 그의 지원 유세를 기다렸다. 죽어도 고향 까마귀라고, 고향 까마귀가 아니면 옆 동네, 친구네 동네, 돌아가신 조상 동네 까마귀라도 끌고 와야 할 실정이었다. 보수정권이 쌓아둔 기반을 뚫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다. 자당이 우세한 각종 여론조사 발표로 기대가 큰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이곳은 여론조사를 뒤집는 결과가 종종 발생해왔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유철은 그러한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변한 것은 알겠는데, 잘하는 것도 알겠는데, 차마 표까지 주기는 어쩐지 저어하는 마음. 잘하셨습니다. 투표가 원래 자기 맘에 드는 사람 뽑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도무지 변한 것이 없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 한번 찍어보자는 겁니다. 일 못하면 다음에는 안 찍으면 될 거 아닙니까. 선거가 이번에만 있습니까. 유철은 주민들이 안심하고 자당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지난번에는 대통령 뽑아준 분도 많았잖아요. 뽑아놓으니까 잘하지요? 이쪽저쪽 다 찍어줘봐야 정신 바짝 차리고 쌔빠지게 일합니다. 먹고살기 힘드시지요? 그러면 대통령하고 말 좀 통하는 사람을 뽑아야 예산도 빵빵 타올 거 아닙니까. 중앙당의 지원도 좋았고 후보들도 서로 협력하며 잘 움직였다. 경남에 자당 바람이 분 듯 우세지역도 늘었다. 이대로만 가면 되겠다, 할 무렵 일은 정작 유철에게서 터졌다. 과거 이스탄불에서의 사진이 상대 진영으로 제보됐다. 술탄아흐메트광장에서 포즈를 취한 한 관광객 뒤로 유철과 도연이 걷는 모습이 찍혔다. 매체마다 불미한 추측성 보도가 난무했다. 한참 잘나가던 선거판에 유철이 찬물을 확 끼얹은 것이다.

 

손써볼 시간도 없는 기습 보도였다. 상대 진영에서는 경남 지역구 의원을 강조하며 사건을 부풀렸다. 유철이 출사표를 던진 후보도 아닌데 선거와 밀접하게 연관시켜 당의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안 그래도 연초부터 터진 당내 인사의 성추행 관련 사건으로 지도부가 골머리를 앓은 터였다. 겨우 진정되나 싶었는데 본격 선거전이 시작되자마자 유철에게서 또 터지고 말았다. 저런 부도덕한 당에서 낸 후보들을 우리가 어떻게 믿겠습니까! 저들에게는 선거의 신이 붙었나. 하필 이때 사진이 저쪽으로 제보될 것이 무어란 말인가. 지역 의원이라고 여기저기 얼굴 내밀었는데, 후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이스탄불 사진과 나란히 배치한 보도자료를 마구 뿌려댔다. 어떤 연관이라도 지어 후보들의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사진이라는 물증에 유철 자신도 흔들렸다. 이스탄불 건에 대해서는 전혀 무방비 상태였다. 유철은 모든 유세에서 손을 떼고 아파트에서 두문불출했다. 그럼에도 속속 새로운 뉴스가 등장했다. 과거 호숫가 사진에 대한 해명도 다시 거론됐다. 새빨간 거짓말. 불륜. 유철이 단숨에 소주를 들이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몇년 전 일주일이 너무 민감한 시기에 되살아났다. 개인 일탈로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소란을 잠재울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문제는 도연이었다. 벌써 인신공격이 도를 넘어섰다. 그대로 사퇴하면 그녀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다. 유철이 고민 끝에 김보좌관에게 연락했다. 경험 많은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유철의 연락을 받은 김보좌관이 담담하게 아파트를 찾았다. 유철한테서까지 이러한 일이 터져 착잡한 차였다. 김보좌관이 유철이 따라준 소주를 마시지도 않고 곧장 물었다.

“사실입니까?”

“예.”

김보좌관은 유철의 대답을 듣고서야 소주잔을 비웠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유철이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났다. 여행지에서 처음 본 여자였다. 하도연. 그럴 리야 없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순간 그녀를 의심하기도 했다. 혹시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을까. 작가라는 사람이 국회의원을 몰라봤을 리가. 도연이 작정하고 덤빈 거였다면 유철의 갑작스런 이혼도 설명이 됐다. 그 여행이 빌미가 되어 이혼당한 것일지도 몰랐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김보좌관은 자신의 의심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유철에게 물었다.

“작가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아직은 아무 말 없습니다.”

유철은 자신이 이혼남으로 속이고 도연을 만난 것으로 하고 싶었다. 영 틀린 말도 아니었다. 분명 유철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도연도 유철을 혼자로 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김보좌관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었다. 대부분의 사건이 설마 하는 일로 벌어지지만 보통은 자신의 상상이 더 편한 쪽을 믿었다. 혼자 여행 다니는 이혼녀가 젊은 국회의원을 물었다,가 현재 여론이었다. 그것으로 가정을 지키지 못한 유철에게도 유책 책임을 물었다. 사진 날짜가 유철의 이혼 바로 전인 것도 문제였다. 그것으로 둘의 만남이 그때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됐을 거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김보좌관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철의 표정에서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유철은 진실을 말했다. 그의 이혼에 도연은 관여하지 않았다. 사랑으로 인한 거짓 증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모두 살 수 있을까. 사진이라는 확실한 물증이 존재했다. 나란히 뒷짐 지고 반보가량 떨어져 걷는 사진이었다. 유철이 그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얼마나 낯이 어두웠는지 김보좌관은 잘 알고 있었다. 며칠 만에 그토록 평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도연 때문이었으리라. 자연인일 때 의원님은 참 행복했구나. 어쩌면 유철은 그렇게 살아야 했을지 몰랐다. 떠밀려 들어온 정치판이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일로 유철의 정치생명은 끝났다. 명쾌한 해명 없는 불륜 의혹은 그것만으로도 치명적이었다. 이대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면 그곳에서도 행복하지 못할 거였다. 평생 불륜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할 것이었다. 김보좌관이 답답한 마음으로 소주를 삼켰다.

 

유철의 출발은 미미했으나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그도 제 처지에 눈을 떴고 영리하리만큼 차분하게 입지를 다졌다. 먼저 나서지는 않아도 주어진 일은 꼼꼼하고 깔끔하게 해냈다. 그의 학습능력과 성실함도 앞날을 밝게 했다. 그렇게 잘 나아가다 엉뚱한 암초를 만났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운명은 이렇듯 긴 시간이 아니라 찰나로 결정지어졌다. 그 순간, 그것으로 인해. 김보좌관이 긴 숨을 내뱉고 그제야 제 생각을 말했다.

“단순하게 털어버리십시오. 공감은 안 돼도 그럴 수는 있겠구나, 하는 정도면 됩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더 하기 전에 이미 끝난 일로 종결시키십시오.”

느닷없는 악의적 의혹에 대한 해명이 우선이어야 했다. 술탄아흐메트광장은 관광명소로서 유철과 도연도 그곳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일축해야 했다. 자국 국회의원과 작가로서 서로 알아보고 잠시 담소를 나눴다. 증거로 당시 도연과 유철의 호텔 바우처 사본을 첨부하기로 했다. 그것으로 둘의 체류기간과 숙소가 달랐던 점을 어필할 수 있었다. 사진이라는 물증을 다른 물증으로 덮어야 했다. ○○시 올해의 책 선포식 날에 만났다고 한 지난 해명에 관한 의혹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장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것을 이성으로서의 첫 만남이었다는 뜻으로 정정하고, 순화시킨 표현으로 오해를 부른 점 사과드린다,는 해명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미숙한 점을 먼저 사과함으로써 이해와 용서라는 관용을 얻어내야 했다.

“우연히 만나서 얘기 좀 했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아니라는 증거 있습니까?”

유철도 동의했다. 해명서를 보도자료로 뿌리고 곧 사퇴 선언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정치공세라고 맞설 수도 있었으나 유철이 선거판의 주인공이 아니었으므로 서둘러 빠지는 것이 도리였다. 더이상 둘만의 일주일을 도마에 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정치를 계속하는 한 아군 적군 없이 징글맞게 떠들어댈 것이었다. 그때마다 매번 아니라고 부정해야 할 터였다. 더는 못할 일이었다. 유철이 도연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당장은 이것이 최선일 것 같아요. 네에. 도연이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도연이 당시 사용한 바우처 사본을 유철에게 메일로 보냈다. 여행 때마다 간략한 기록과 함께 남긴 바우처가 이렇게 쓰일지는 전혀 몰랐다. 유철이 도연의 메일을 확인하고 김보좌관에게 알렸다.

“바우처 왔습니다.”

“예, 잘 수습될 겁니다. 가보겠습니다.”

김보좌관이 유철의 배웅을 받으며 아파트를 나왔다. 이 판은 왜 늘 이러한가. 선거 때만 되면 모두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때마다 늘 지는 꽃이 생겼다. 어떻게 져도 이런 일로 지나. 김보좌관이 아파트 현관을 나와 담배를 물었다.

 

*

 

유철의 해명서가 보도자료로 뿌려졌다. 해명과는 상관없이 불미한 의혹의 당사자로서 우선 책임을 느끼고 의원직도 내려놓았다. 지도부도 그의 사퇴를 만류하지 않았다. 힘내라,는 위로의 말로 유철을 떠나보냈다. 민감한 시기에 터진 예민한 사안으로 사실이든 거짓이든 덧붙일 말이 없었다. 유철의 사퇴를 안타까워하는 네티즌들도 있었으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의석수 하나가 소중한 마당에 무작정 사퇴부터 하면 어떡하나. 대놓고 다니는 것부터가 아무 사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 아니냐. 사건은 대략 이런 모습으로 마무리됐다. 유철은 일면 후련하기도 했다. 씁쓸한 퇴출이었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국회에 있을수록 세상과 격리되었다.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에서 약속된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정해진 길로만 다니는 동안 세상과 더 멀어졌다. 이제라도 빠져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유철이 의원 사무실에서 챙겨온 얼마 안 되는 물건들을 오피스텔 구석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도연에게 전화했다.

“왔어요?”

“네. 보고 싶어요.”

“갈게요, 기다려요.”

도연은 유철의 사퇴 선언을 담담하게 지켜보았다. 삼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의 뒤로 대한민국국회 로고가 선명했다. 저곳에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었나보다. 자신과 함께한 일로 궁지에 몰린 것이 속상하기도 했다. 다시 떠올려도 좋았던 일주일이었다.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 가능한 만남이었다. 각자의 고민이 너무 무거워서 같이 다니며 조금씩 덜어내는 여행이었다. 반짝이는 사랑을 경험하고 그 힘으로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라고 다독였던 일주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찍힌 사진일 거였다. 도연은 유철이 여행 뒤 바로 이혼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설마 아니지요? 그동안 유철과 도연은 자신들의 이혼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과거의 상실을 만회하기 위한 만남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성질의 사랑이었다. 사랑을 절대 이념으로 삼아 서로의 아픈 과거까지 껴안으라는 요구도 없었다. 아픈 과거는 각자 스스로 떠나보냈고 둘은 새로운 사랑을 했다. 그렇게 잘 보냈거니 했던 유철의 이별이 지금 다시 거론됐다. 그의 혼인기간 중 일주일에는 자신도 들어가 있었으므로 그 기간만큼은 남의 일도 아니었다. 비록 유철의 이혼이 그 일주일 때문은 아닐지라도, 이혼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은 일주일도 아닐 거였다. 그러니 같이 책임져야 했다. 그 일주일로 시작된 사랑이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유철이 먼저 제 것을 내려놓았다. 그만큼 허전하고 쓸쓸할 거였다. 도연은 그런 그를 홀로 둘 수가 없었다.

 

살려는 자의 세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유철을 염려하는 동정론도 있었으나 그가 의원직을 내려놓은 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다. 의전받으며 제약받는 삶이 아닌 혼자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택했다. 그랬으므로 사람들이 걱정하는 만큼 비참하거나 괴롭지 않았다. 억지로 입은 남의 옷을 그제야 벗은 것처럼 홀가분하기도 했다. 도연의 눈 깜빡이는 장난에마저 기분 좋게 행복했다.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집게로 집었어요. 예쁘네요. 파마할까요? 그런 파마도 있어요? 같이 해요. 눈썹에 뼈다귀를 말고 어떻게 있어요? 그걸로 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하. 도연이 세상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위로나 격려를 했다면 아마, 슬펐을 것이다. 오히려 예뻐 보이려고 눈썹을 올리고 왔다며 생글생글 웃었다. 고통을 품지 않은 행복은 없다. 그로 인해 지금 이 순간이 더 귀했다. 그 집게 가져와봐요, 내가 한번 해볼게요. 그런 거 말고 사랑한다고 해봐요. 안 해도 알잖아요, 사랑해요. 알았어요. 하하하, 귀여워. 도연이 유철에게 입을 맞췄다. 에헤이, 나는 멋있는 거예요. 알았어요, 멋있어요. 도연이 입을 맞추며 유철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연아 아니, 도연씨 잠깐만요, 커튼…….”

도연이 몸을 일으켜 유철의 허벅지에 앉았다.

“가만히 안 있을래요? 한 방에 보내버리는 수가 있어요.”

유철이 피식 웃으며 두 손으로 도연의 볼을 감쌌다. 조금 있으면 나 힘들어요, 그러고 자세를 바꿀 거면서 말만 저랬다. 말만 들으면 유철은 할 때마다 수시로 어딜 다녀와야 했다. 쪼그만 게 기운도 없으면서 까분다. 유철이 도연 입 속으로 자신의 혀를 넣었다. 도연이 그의 혀를 제 혀로 받았다. 유철은 도연의 혀와 그 밑으로 고인 침과 치아를 감싸고 있는 입술이 좋았다. 자신의 혀를 야금야금 받아주는 도연이 예뻤다. 유철과 도연이 밀착한 몸으로 서로만 바라보고 있을 때 유철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측근만 쓰는 전화였다.

“뭐고, 저거는?”

“받아봐요.”

“됐어요.”

유철이 도연을 꼭 안고 소파에 눕혔다. 전화벨은 잠시 끊겼다가 곧 다시 울렸다. 아무래도 급한 전화 같았다. 도연이 받아보라고 재촉했다. 유철이 손을 뻗어 탁자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었다. 그러나 곧장 받지는 않았다. 가만히 볼 뿐이었다. 도연의 가슴이 철렁했다. 또 무슨 일이 터졌나. 유철이 국회를 떠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유철이 마지못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를 건 사람은 유철의 전처 정희였다. 혹여 혜승과 관련한 급한 일이었다면 서둘러 문자라도 남겼을 터였다. 그런 적이 있었다. 이날은 전화를 받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통화를 시도했다. 다른 때였다면 유철도 정희가 할 어떠한 말도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아이의 엄마이고 어쨌든 인연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도연을 안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왜 지금이야. 유철이 전화를 받고도 아무 말이 없자 정희가 먼저 말했다.

“뭐야, 그 여자.”

“끊자, 내일 전화할게.”

유철이 전화를 끊고 탁자에 툭 던졌다. 벨이 다시 울렸다. 유철이 전원을 꺼버렸다. 도연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그러다 유철과 눈이 마주쳤다. 노여움과 미안함이 고스란히 읽혔다. 이 남자가 끊자,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가 누구일까. 발기된 성기를 순식간에 수축시킨 사람이었다. 도연의 체온도 급히 떨어졌다. 둘의 몸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였다. 유철의 전처. 도연이 픽 웃고 유철을 꼭 안았다. 당신이 만든 소맥 마시고 싶어요. 유철이 도연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볍게 퉁 튕기고 일어났다. 유철이 소맥을 준비하는 동안 도연이 김치를 볶았다. 라면의 면만 삶아 볶은 김치에 올려 사리로 사용했다. 그것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소맥으로 쓴 세상을 희석시켰다. 괜찮아요, 다. 건배.

 

분노한 사람이 때를 가려 화를 내려면 무진 인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정희는 아이 아빠인 유철이 늘 건실하길 바랐다. 헤어졌어도 그의 행보를 주시한 이유다. 이스탄불 사진 의혹도 알고 있었다. 조용히 그의 입장표명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해명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여. 너희 같이 간 거야, 맞지? 정희는 제 아둔함에 혀를 찼다. 유철의 깍듯함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의 성격 탓으로 타인과는 늘 일정 거리가 유지됐었다. 이성을 대하는 눈빛도 친절함을 넘어서는 법이 없었다. 그랬기에 여자관계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이혼은 오로지 자신의 결정이었다. 대화는 오래전에 멈췄고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지도 한참이었다. 정희는 유철의 무시를 같은 무시로 대응했다. 유철이 자신의 가치를 모른다면 자신도 그의 가치를 알아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서로의 존재가 피곤일 수밖에 없었다. 더는 견딜 수 없어 헤어지자고 했다. 그대로 무기력하게 살다가 황혼이혼에 도달하고 싶지 않았다. 유별난 다툼도, 험난한 고비도, 특별한 행복도 없는 생활이었다. 유철은 불편한 일에는 입을 다물어버리는 성격이어서 모든 것이 그의 침묵에 묻혔다. 끔찍했던 침묵의 공간. 그것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렇게 헤어진 동안에도 정희는 그것이 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스탄불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줄곧 그랬다. 그런데 여자가 있었다. 파탄의 원인을 그제야 알았다. 정희는 호숫가 사진 해프닝으로 둘 사이를 알게 되었다. 사진을 보며 자신은 왜 저런 키스를 못했는지 씁쓸하기도 했다. 자신은 도연보다 더 어리고 예쁠 때 유철을 만났다. 더없이 푸른 이십대였다. 그때도 그런 키스는 없었다. 산책처럼 가벼운 키스를 원하는 여자에게 그만큼 가볍게 입을 맞춰주는 남자. 당신이 그런 것도 할 줄 알았어? 많이 변했네. 그 정도였다. 전남편의 사랑에 가타부타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사실을 안 지금은 달랐다. 헤어지기 전부터 여자가 있었다. 너무 빨리 그것에 분노할 자격을 잃었다. 아무리 봐도 대단할 것이 없는 여자였다. 그랬기에 둘의 만남에 호의적일 수도 있었다. 그저 그러네. 국회의원도 별수 없군.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별 볼 일 없는 여자 때문에 자신이 방치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뭐라도 하나 대봐. 나보다 뭐가 더 나은지. 유철이 거칠게 전화를 끊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 여자가 옆에 있었다. 직감이었다. 여보세요. 전화의 첫 응답에서부터 짜증이 묻었다. 유철이 전화를 무작정 끊었을 때는 너무 하찮아서 휴지통에 툭 버린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더러운 것들. 정치인이었으면 정치적으로라도 사과했어야지. 그 정도 성의도 없니? 니들 가만히 안 둬.

 

다음 날, 도연이 집으로 돌아가고 유철이 정희에게 전화했다.

“솔직하게 말해줘. 언제부터야?”

“이스탄불에 도착한 다음 날.”

“잤어?”

“잤다.”

“그 여자, 여행 다니면서 아무하고 막 자는 여자야?”

“내 얘기만 해. 내가 어떻게 할까?”

“헤어져.”

유철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정희는 이혼도 자신이 결정하고 따르라고 했었다. 세련된 애잔함으로 자신의 세계를 찾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국회의원인데, 강사 시절보다는 나을 텐데, 그런 거 필요 없으니 떠나겠다고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일 것이었다. 당신 없는 곳에서 있을 만큼 있으려고. 유철은 그때 도연을 떠올렸다. 한 여자가 아직 이스탄불에 있었다. 애써 보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것만 보는, 그곳이 어디든 길이 있으면 그냥 가는, 그런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정희가 원하는 삶도 그러했을지 몰랐다. 가라. 발 가는 길로 가서 몸 닿는 사람 만나면 잘 쉬어라. 헤어졌으므로 그녀의 행보를 신경 쓰지 않았다. 들려오는 얘기도 없었고 듣고 싶은 얘기도 없었다. 그만큼 미련이 없었다. 이미 이혼이 기정사실인 상태로 산 부부였다. 그 시기를 확정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결국 정희가 날짜를 잡았고 유철도 동의했다. 그 뒤로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것이 좋았다. 후련하게 넥타이를 풀고 기분 좋게 샤워했다. 혼자임을 철저히 즐겼다. 도연을 만나고서야 집에 대한 기대가 달라졌다. 오피스텔의 전자키를 누를 때마다 문 열면 혹여 그녀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지역구 아파트에 들어설 때조차 그러했다. 문 열면 그녀가 없어 쓸쓸했다. 그녀의 화장품이 자신의 것과 나란히 있는 것이 좋았다. 서랍을 열면 보이는 그녀의 옷가지가 좋았다. 그러니까 집에 사람이 있는 게 싫었던 것이 아니라, 집에 정희가 있는 게 싫었던 거였다. 그런 정희가 도연과 헤어질 것을 명령처럼 요구했다.

“헤어져서 너한테 갈까? 뭐 어렵나, 그동안도 살았는데.”

“그 여자 전화번호 대.”

“내가 너한테 간다고, 내가.”

정희가 전화를 툭 끊었다. 그가 오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다른 여자의 몸을 알아버린 남자였다. 혹시 온다 해도 그와 감각 없이 보낼 생활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런데 유철이 오겠다고 했다. 회개로 인한 귀가도 아니었다. 제 삶을 버리고 끔찍한 곳으로 투신하겠다는 남자의 헌신이었다. 오로지 그 잘난 여자를 위해서. 아직은 아니었다.

 

*

 

이스탄불 사진 의혹은 성공적으로 묻히는 듯싶었다. 국민들의 관심이 지방선거에 쏠려 사퇴한 의원의 의혹은 가십거리 정도로 소비됐다. 선거만 없었다면 사퇴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았을 거라는 동정론으로 이 일은 유철과 도연에게 딱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정희가 제 페이스북에 올린 폭로글로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막연한 제삼자가 아닌 피해 당사자 조강지처의 등장이었다. 정희는 거짓 해명으로 사퇴쇼를 벌인 유철과 도연을 맹비난했다. 비참했던 결혼생활은 물론 그간 저들이 해온 거짓 해명과 이스탄불에서의 행실을 낱낱이 까발렸다. 거짓말을 일삼는 자는 절대로 공직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되며, 남의 가정을 파탄 낸 자는 글을 쓸 자격이 없다는 소신도 밝혔다. ‘의로운’ 대중은 ‘피해자’의 편이었다. 서류에 도장 찍기 일주일 전이면 정상참작해야 되지 않냐? 아주 드물게 이런 글이라도 올라오면 그에게도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이혼 전이면 일주일이 아니라 하루도 안 돼. 양아치냐? 도장 찍는다고 바지부터 벗게? 법에 목숨 걸었냐? 도장 찍기 직전까지 법으로 바지 잡고 지랄 떨게? 바지가 아니라 살인이었으면 저는 상관없다고 딱 잡아뗐겠지. 여기서 왜 살인이 나오냐? 법 무시할 거면 법 없는 무인도에서 실컷 벗고 살아, 등신아. 그동안 유철의 사퇴에 안타까움을 보였던 네티즌들도 강력한 안티로 돌아섰다. 겨우 버텼던 도연마저 무너졌다. 신작 출간이 무기한 연기됐다. 이미 보낸 짧은 원고들마저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불륜에 대한 사회적 선고는 사형이었다. 사실상 결별 상태였다 하더라도 할 말이 없었다. 맞습니다. 무조건 인정했다. 유철은 정희부터 완벽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세상의 비난은 감수하겠으나 정희는 용서가 안 됐다. 정희는 유철이 없는 곳에서 쉬고 싶다며 떠난 여자였다. 도연은 그가 있는 곳에서 쉬고 싶다며 함께한 여자였다. 왜 떠난 여자가 함께 있는 여자를 추궁하는가. 도연을 가정을 깨뜨린 주범으로 몬 것에도 화가 났다. 가정을 깬 사람은 오로지 자신과 정희였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았다. 그래, 어쨌든 불쾌했다니 미안하다. 인정할게. 그만 보자. 배신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너무 오래 남이었다. 한집에서 남끼리 동거한 죄. 그 죄로 타인들이 내 여자의 섹스를 지적하는 일이 벌어졌다. 빌어먹게 무엄한 법이 그 일주일을 아직 남이 아니라고 선고한 까닭이다. 상대의 어떤 행동에도 무관심으로 신경 쓰지 않았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왜 여자만 아닌가. 그때까지도 내 여자이고 싶었니? 그래서 그날 그런 차림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던 거야? 나는 법이 명령한 섹스가 아닌 내가 원하는 섹스를 하고 싶었다. 충동이든 사랑이든. 너는 아니었다.

 

정희는 유철이 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 만났다. 한 동기와 대학 때부터 같은 동아리를 운영했던 사이라며 저녁 자리에 동석하면서였다. 당시 정희도 대학원 진학을 고심하던 때라 조언도 받을 겸 때때로 만났다. 다음해에 예정대로 입학은 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그러나 유철과의 만남은 지속되었다. 수업과 상관없이 중국 고서에 대한 정희의 해박한 지식에 호감을 가졌었다. 정희는 늘 가볍게 본 거라고 했지만 상당한 통찰이 있었다. 그러면서 연인으로 발전했고 더 많은 대화를 했다. 가끔은 너무 깊게 들어간다 싶기도 했으나 그러려니 했다. 그러던 중 강의 자리를 얻었고 청혼도 했다. 내하고 결혼할래? 없는 집에 미래도 불투명한 자신과 결혼하겠다는 정희가 황송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학업과 강의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가끔은 정희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유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재빨리 파악했다. 거기까지여야 했다. 정희는 점점 유철의 부탁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강의계획서를 살피고 자신이 문헌을 보충했다. 수업 진행에 꼭 필요한 문헌들도 아니었다. 당연 강의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넌 니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니? 너무 태연한 간섭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동료들끼리 모이는 자리에도 거리낌 없이 동행했다. 여보, 아직 멀었어? 먼저 준비하고 기다리니 니가 거길 왜?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제수씨랑 같이 와서 깜짝 놀랐다. 금슬 좋네. 그러다 학생들 답안지까지 손을 대는 일이 벌어졌다. 유철이 책상에 둔 답안지에 정희가 연필로 학점을 매긴 것이다.

“이게 뭐야?”

“그거 때문에 밤 꼬박 새웠어. 애들 점수 잘 체크해봐.”

정희는 남편과의 일심동체를 넘어 아예 물아일체 상태였다.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하나. 그러니 유철의 일은 더이상 그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 어떤 성과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정희 자신의 성과였다. 내가 해냈어. 그러니 유철의 일로 제가 더 바빴다. 여보, 그 설문지 어디 있어? 모임에 나간 김에 해와야겠다. 징그럽다, 너. 학교도 니가 나가. 내가 니 얼굴마담이 아니잖아. 정희가 그러는 데에는 유철의 책임도 있었다.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그랬냐고 그러라고 알았다고 그냥저냥 넘어간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정희도 유철이 만족하는 것으로 알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의지한다고까지 여겼다. 유철이 자신을 힘들어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알았대도 상관없을 거였다. 제 일 제가 하는 것일 뿐이었으니까. 그랬기에 학점 사건까지 벌어진 것이다. 유철의 마음은 그때 떠난 것이나 진배없었다. 우연한 만남은 있어도 우연한 이별은 없다. 장점이 단점으로 단점이 더 큰 단점으로 부각되면서 서서히 진행됐다. 누가 뭐래도 제 눈에는 예뻤던 것이 남들보다 더 흉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그녀를 보기 싫어했고 입이 대화를 거부했다. 그러던 어느날 유철이 둘째를 가지자,고 했다. 그대로 살 수는 없었다. 둘째가 생기면 혹시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몰랐다. 그것을 정희가 거부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면 안아. 처음부터 그것이 없는 결혼이었다. 정희가 핵심을 건드렸다. 호감과 사랑을 혼동한 결과였다. 혈기왕성할 때 호감 가는 여자를 만났으니 결혼까지 해버린 것이다. 성급한 결정이었다.

 

그러던 중에 도연을 만났다. 네? 그 흔한 평범함에도 심장이 뛰었다. 도연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었고, 제 가슴으로 꼭 안아보고 싶었다. 사랑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자연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무엇에 반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었다. 네? 하고 돌아본 찰나에 반할 만한 무엇을 보았겠는가. 물으니 아무것이나 답할 테고 그것이 실제 예뻐 보였으므로 거짓도 참도 아니었다. 몰라서 못하는 사랑은 없다. 사랑이 저절로 무엇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랬기에 질질 끌던 결혼생활도 끝낼 수 있었다. 우리는 회복될 수 없다. 정희는 사랑을 받길 원했고, 도연은 사랑을 했다. 정희는 사랑을 원해서 불행했고, 도연은 사랑을 해서 행복했다. 유철은 그런 도연을 사랑하며 행복했다. 그 행복에 과거의 불행이 나타나 상처를 냈다. 원하는 게 뭐야. 말해. 제발, 사라져.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