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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은실 엮음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휴머니스트 2018

여성의 제한된 행위성은 어떻게 동의와 자발성으로 해석되는가

 

 

김소라 金昭摞

숭실대 강사 stellati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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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한 여성이 3년 전 참여한 스튜디오 촬영회에서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노출과 성추행을 당했으며 이때 촬영된 사진이 최근 유출, 유통됨으로써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했다. 이후 유사한 피해를 당했다고 고발하는 여성들이 나타났고, 사진계에서 이루어지는 비공개 스튜디오 촬영회의 실상이 폭로되었으며, 불법촬영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유통하는 산업과 이를 ‘놀이’로 즐기는 남성문화가 드러났다. 이는 여성의 몸에 대한 상품화와 착취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양상에,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산업적 구조에 주목할 필요를 제기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스튜디오 실장이 자신과 피해자가 나눈 메신저 대화를 공개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피해자에게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찾아보기 힘든 대화의 어투와 지속적인 연락, 추가촬영 요청 등은 피해자에게 ‘기대되는’ 태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녀의 피해는 부인되었고, 피해자를 무고죄로 처벌하라는 다수의 청와대 청원이 등장했다. 지난 7월 피의자가 결백을 주장하며 투신·사망한 뒤, 거짓 피해를 고발했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피해 여성의 처벌과, 성폭력 수사 종결 이전에는 무고 사건 수사에 착수하지 않기로 한 검찰의 수사 매뉴얼 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했다.

여성의 성폭력 피해 고발에 대한 의심과 부인, 무고 주장은 사실 익숙한 풍경이다.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한 행동에서는 폭력이 성립할 수 없으며, 설사 폭력이 발생했다고 해도 계약에 동의한 이가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는 협소한 이해에 대해 페미니즘은 그간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성폭력의 의미를 재개념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답답함은 남는다. 왜 우리 사회는 피해를 고발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자신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자원화하는 여성의 제한된 행위성을 동의와 자발성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그토록 관대한가? 여성의 일상과 경험을 권력관계나 구조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 행동의 결과로 간주하는 담론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이 가운데 경제력을 갖춘 여성, 성공한 여성, 능력 있는 여성, 사회와 남성이 할당한 자리를 벗어난 여성에 대한 분노가 정당화되는 방식은 무엇인가? 피해자의 고통이 아닌 구조를 전면화하기 위해 어떤 질문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 책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페미니스트 크리틱』은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9명의 저자들은 성폭력, 군대, 성매매, 10대 여성, 아이돌 산업, 저출산, 이주 등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착취하는 압도적 권력과 무력한 피해자로서 여성의 고통을 대비시키기보다 그같은 문제제기의 틀이 가진 한계를 검토한다. 또한 구조적 제약하에서 제한적으로 발휘되는 여성의 행위성을 자기계발을 향한 자발적인 욕망의 추구로 은폐하는 담론과, 그같은 담론이 지배적인 신자유주의체제에서 이득을 얻는 이들에게로 질문의 방향과 대상을 전환한다. 이러한 기획은 페미니즘의 대중화, 그리고 신자유주의체제의 본격화 속에서 나타나는 젠더관계와 정치학의 변화라는 현실적 상황을 그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능력과 경쟁력을 갖춘 나’의 계발이 생존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관심을 어떻게 유지·유도할 것인가, 사회적 변화 속에서 ‘동의’ ‘자발’ ‘합의’ ‘강제’ ‘불/평등’의 의미가 새롭게 갱신되는 가운데 페미니즘은 이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 것인가.

이같은 문제의식이 갖는 장점은 섹슈얼리티라는 문제를 다룰 때 두드러진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젠더권력관계, 신자유주의 등의 구조적 영향력이 부인되고 개인의 행동이 자발성으로 가장 쉽게 위장되는 영역이 섹슈얼리티라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평판을 좌우하고 존재 자체를 비난하는 근거 역시 섹슈얼리티가 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랑이나 합의된 관계가 아니라 폭력이었음을 인정받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의 고통을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으로 전시해야 하고(1장, 권김현영), 사회적 보호와 합법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 성매매 여성은 무력한 미성년자의 얼굴을 해야 한다(4장, 민가영). 이때 제한적 행위성은 곧 자발성으로 이해된다. 성매매 여성들의 소비는 외모의 치장이라는 허영심의 추구나 더 많은 수익을 위한 ‘자발적’ 투자로 간주되고, 그마저도 노력하지 않는 손쉬운 노동으로 소비능력을 확보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3장, 김주희).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추문을 확대재생산하는 가운데 여자 아이돌의 불운과 굴욕을 기뻐하는 마음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유독 여성들의 소유와 성공을 실력이 아닌 운에 의한 것으로, 불평등한 현실로 인식하는 대중적 감정을 드러낸다(5장, 김신현경).

이는 여성의 고통이 아니라 이를 야기하는 사회적 구조, 그리고 이를 인지하는 대중의 감정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도록 한다. 동시에 구조적 억압과 자율적 개인 간의 이분법이 가진 한계를 검토함으로써 ‘동의’ ‘자발’ ‘합의’ ‘강제’ ‘불/평등’ 같은 개념들뿐 아니라 개인의 ‘욕망’ 역시 지극히 성별화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상당 부분이 그간 논문, 책, 칼럼 등 다양한 지면을 통해 저자들이 해온 이야기임에도 이 책의 기획이 의미를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양한 현상을 통해 “현재 여성들이 직면한 이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젠더에 관한 기존의 시각, 사유 방식과 문제 제기의 틀 자체가 변화”(서장, 김은실, 8면)해야 한다는 제안이 제시됨으로써 ‘더 나은 논쟁’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에서 젠더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학문적 논의와 이론적 지식을 제시함으로써, 페미니즘 대중화의 시기에 페미니즘이 계몽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사회정의와 새로운 미래를 향한 생명력 있는 변혁적 사상으로 이해될 필요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 글의 길이가 짧다보니 글의 핵심적인 주장과 개념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기존의 사유방식에 대한 검토가 치밀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주제가 발견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더 나은 논쟁을 ‘권리’로 명명한 책 제목은 마치 더 나은 논쟁이 외적 요인으로 인해 박탈되어온 것처럼 인식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책의 기획을 잘 드러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미덕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주창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에게 “‘몸의 자원’과 ‘몸의 피해’를 오가며 ‘몸과 함께 소진되어가는 삶’”(민가영, 118면)을 야기하는 구조적 조건을 해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같은 아쉬움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할 뿐 아니라, 그같은 기획에의 동참이 우리 모두의 과제임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