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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가이아 빈스 『인류세의 모험』, 곰출판 2018

인류세를 살아가는 생존지침서

 

 

김기흥 金起興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dinkim@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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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40도 시대’ 그리고 ‘라오스 댐 붕괴사고’라는 두가지 뉴스는 일견 상관이 없어 보인다. 40도에 이르는 폭염이 새로운 정상성이 되어가는 상황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메콩강에 건설 중이던 댐이 갑작스럽게 무너져버려 수천명의 사람들이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모습이 한반도 40도 시대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전자는 자연현상이고 후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재해지만 둘 다 인간이 자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일어난 결과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환경과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은 자연과 인간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환경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은 2002년에 지질학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세계는 기존의 홀로세(Holocene)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자연이 개입하거나 인간이 직접 개입한 흔적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시기라는 의미의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개념을 제안한다. 인간의 활동이 생물권과 지구의 지질, 화학적 구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흔적이 수만년 또는 수백만년 동안의 인류세에 보존될 것이며 그 지층은 다른 지질학적 층위와는 전혀 다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가이아 빈스(Gaia Vince)가 쓴 『인류세의 모험: 우리가 만든 지구의 심장을 여행하다』(Adventures in the Anthropocene, 김명주 옮김)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연에 미친 근본적인 영향과 그 결과로 인해 다시 인류의 삶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다. 인류세를 둘러싼 그간의 다양한 논의와 논쟁과는 다르게 이 책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실감 넘치는 현실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실상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현상의 발생 빈도 증가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나친 개발과 개입이 가져오는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과는 떨어진 느낌을 줘온 것이 사실이다. 내가 살아남기도 힘든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전지구적인 환경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생활공간을 빽빽하게 채울 만큼의 전파와 전기신호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며, 내가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이 고스란히 땅에 매립되어 하나의 두꺼운 층위를 이루고 있고, 바다를 뒤덮은 미세플라스틱이 물고기와 해양생물에게 유입되어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상황은 현실이다.

우리 지구는 75억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공기에서 화학물까지 다양한 자원을 공급하고 있다. 5만년 전 불과 수천명의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생물종이 아프리카에서 홍해를 건너 아시아로 넘어오면서 시작된 여정은 이제 자연을 움직일 힘을 갖게 되었고, 바람이나 빙하가 수만년의 세월에 걸쳐 만들어내는 암석과 토양 그리고 강과 바다에 대한 움직임까지 변화시키게 되었다. 열흘마다 백만명이 살 수 있는 도시가 건설되고 있고 이들 호모 사피엔스를 위해 18테라와트의 에너지가 필요하며 50억명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인터넷에 접속하게 되면서 지구의 자원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고갈과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 인류세의 풍경이며 현실이다.

하지만 가이아 빈스가 보여주는 인류세의 풍경이 비극적이고 파국적이지만은 않다. 500여면에 이르는 모험에서 저자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놀라운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네팔과 라다크 고산지대의 노력, 남아메리카 최남단 빠따고니아의 수력발전 계획, 케냐 북부 사막지대인 투르카나 호수와 꼴롬비아 까르따헤나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 볼리비아 은광의 처절한 모습과 아마존 열대림 지역을 보존하려는 생생한 모습을 기자 출신답게 직접 보여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대기, 산, 강, 농경지, 바다, 사막, 사바나, 숲, 암석, 도시 등 각 장마다 공간을 중심으로 인간에 의한 자연 변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저자는 다양한 인류세의 환경에서 어떻게 공학적 상상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가를 묘사한다. 예를 들어, 라다크의 고원지대에서 고갈된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공학적으로 인공빙하를 만들어 여름에 작물을 재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물을 얻는 방법이라든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곧 사라지게 될 몰디브가 쓰레기와 파파야 그리고 코코넛으로 인공섬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게 한다.

지구온난화가 촉발한 전지구적 생태 위기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대한 문제와 우려를 담아내기 위해 제안된 ‘인류세’ 개념은 이제 지질학은 물론 사회과학에서까지 보편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운명을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는 ‘자연에 대한 인류의 기술적 개입’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과학공학적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러니한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인류세의 전지구적 수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이른바 ‘지구공학적 방식’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기온 상승을 막기 위해 성층권에 황 입자를 주입해 햇빛을 다시 우주로 반사시켜 작물의 수확량을 20% 정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유전자 변형작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인간의 건강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탄소 에너지원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서 원자력을 다시 강조하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과학공학이 가지는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간과한 채 과학공학적 해결책을 맹신해온 일종의 ‘과학주의’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인류세’의 대안적 개념으로 제안한 ‘크툴루세’(Chthulucene)는 관심을 가질 만하다. 해러웨이는 인류세의 부정적인 문제점을 피하고 좀더 다양한 종과 인간 사이의 유대와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단순히 인간을 중심에 놓고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시도는 이미 ‘인류세’라는 개념의 등장으로 그 유효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인간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려는 기존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생물종과 환경과의 연대를 모색한다면 ‘인류세’를 창조한 인간의 과오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이아 빈스가 보여주는 생동감 넘치는 인류세의 풍경이 우리에게 근본적인 인식전환을 요구하는 외침처럼 들리는 것은 40도에 이르는 폭염과 우리가 만들어놓은 댐이 허무하게 붕괴한 사건이 이제는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