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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박차민정 『조선의 퀴어』, 현실문화 2018

이상하고 기묘한 근대의 경계

 

 

이주라 李珠羅

한림대 한림과학원 HK연구교수 challa2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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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식민지 조선은 ‘모던’이라는 수식어에 갇혀버렸다. 식민지 조선은 한국의 근대적 통치 및 문화 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한 시작점이었기에, 한국에서 근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살펴보기 위한 출발점으로 기능했다. 서구식 근대사회의 형성을 종착역으로 삼든, 보편적 근대의 신화화에 의문을 제기하며 역사의 선조적 발전관을 전복하든 식민지 조선은 그 모던함으로 조명받았다. 근대적 법이나 의료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근대적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소비문화가 어떻게 발달했는지, 근대사회의 새로운 주체인 학생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근대적 사회에 등장한 문제적 주체인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은 무엇을 소비했는지 등등이 가장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특히 성과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삼을 경우, 대부분 신여성이라는 존재 혹은 자유연애라는 담론에 관심을 쏟았다. 반면 근대사회의 형성과정 속에서 배제된 존재들, 그러나 엄연히 그 시대를 묵묵히 살아갔던 인물들에 대한 담론화 작업은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여성, 동성애자 등등은 조롱의 대상으로 그려질 뿐 근대적 담론의 주체로 주목받지 못했다.

박차민정의 『조선의 퀴어: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은 모던한 식민지 조선에서 누락된 자들을 대상으로 삼아 식민지 조선을 재조명한다. 근대적 섹슈얼리티 담론 속에서 배제되고 억압당했던 동성애자, 변태성욕자, 반음양, 여장남자 같은 젠더 비순응자들을 통해 근대사회의 배타성을 폭로한다.

『조선의 퀴어』는 그 연구대상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근대의 타자로서 퀴어한 존재들은 그간 독립적인 연구주제로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계보학적 연구의 모범적인 성과를 보여준다는 점도 중요한 미덕이다. 저자는 서구의 성과학 지식이 수입되고 근대적 법체계가 작동하면서, 전통사회에서 관습적으로 용인되던 성적·젠더적 실천들이 문제시되는 상황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남·여라는 배타적인 두 성(性)을 근간으로 한 이성애 중심의 근대사회가 얼마나 이상하고 기묘할 수 있는가에 공감하게 만든다. 가령 강원도의 남성동성애 연구를 참고하여 그려낸 식민지 조선의 남성동성애 문제는, 전근대 사회에서는 관습적으로 용인되던 남성동성애 관계가 근대사회에서는 야만이나 불법으로 인식되는 과정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전통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선적인 발전과정을 따르지 않았고, 교착과 지연의 과정들을 수반하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 그리하여 모던한 사회에 정착하지 못했던 동성애자들이 전근대의 관습을 유지하거나 탈근대의 세계로 질주하는 모습을 통해 근대사회는 절대 균질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이 책은 당대의 흥미로운 사건을 제시한 후 그 사건의 사회적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로 든 사건들은 기존의 식민지 관련 저작들에서 소개된 것도 있지만, 그 사건들을 해석하는 시각은 이 책에서 더욱 풍성해진다. 근·현대 여성작가의 작품 속에서 가끔 형상화되기도 했던 ‘S관계’, 즉 여성동성애의 문제는 낭만적 사랑의 관계나 이성애의 대리보충인 유사연애의 관계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저자는 ‘S관계’를 통해, 동성애를 근대적 질서로 전유하려는 시도들, 동성애에서조차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 차이를 덧입히고자 하는 근대적인 경향들, 동성애에서 드러나는 계급의 문제, 동성애 관계를 통해 고학력 여성들이 발견한 대안적 삶의 가능성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하나의 사건을 섹슈얼리티 담론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관점, 계급의 문제, 문화적 경향성, 대안적 가능성까지 다층적으로 접근하여 해석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다층성이 식민지 조선사회에 대한 다각적 검토를 가능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해석 중에서 가장 힘있게 다가왔던 지점은 계급적 분석이 드러난 부분이었다. 사회와 역사 분석의 기본적인 관점임에도, 식민지의 성과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 분석에 있어서는 자주 놓치고 있었던 지점 같다. 신문과 잡지라는 한정된 자료를 통해 식민지 조선을 들여다볼 때, 이 근대매체가 누구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인지는 간과하기가 쉽다. 저자는 서두에서부터 이 책이 다루는 자료가 근대의 중·상층 지식인의 시선에 의해 담론화된 것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모든 사건을 분석하는 과정 속에서 이 담론을 말하는 주체가 부르주아 엘리트들임을 계속 환기시킨다. 예를 들어 식민지 조선에서는 변태성욕을 하층민의 전형적인 문제로 그려냈다.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하층민을 욕망 조절을 못하는 선천적인 범죄자로 규정하면서, 근대사회의 온갖 성적 욕망의 문제를 이들에게 전가했다. 하층민은 유전적으로 성적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는 범죄자로 인식됐기에, 성적 계도의 대상은 중·상류층 소년으로만 한정되었다. “계급은 성을 둘러싼 범죄에 전혀 다른 서사를 부여하는 요소였다.”(105면) 하층민의 성 문제는 선천적 변태성욕자의 범죄로 취급받았으며, 하층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추태는 처벌받지 않았다. 반면 중·상류층의 성 문제는 계몽과 계도를 통해 교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으며, 중·상류층 여성을 대상으로 한 추태는 쉽게 처벌받았다. 계급적 시선을 놓치면 성을 둘러싼 이 차별의 구조를 지나칠 수 있다.

최근에 성과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와 실천적 모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성, 남성 그리고 퀴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성정체성 안에서 다양한 진영을 형성하며 각각의 목소리를 개진하는 중이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그리고 퀴어 진영 안에서도, 더 나아가 남성들 내에서도 하나로 쉽게 통합될 수 없는 다종다기한 입장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 젠더 이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 같다. 물론 주류 언론에서는 혐오 논란에만 초점을 맞춰 젠더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조선의 퀴어』에서 나타나듯이, 배타적 진영논리에 휩쓸리는 것은 남/녀,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적 체계를 강화하려는 근대의 주류 담론에 포섭되는 것임을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의 퀴어』는 올바른 성 윤리를 확장하려는 근대의 노력이 오히려 다양한 퀴어들을 만들어내는 역설적 상황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근대가 설정해놓은 경계 속에서 모두 퀴어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근대의 경계 자체를 기묘하고 이상하게 만들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