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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중혁 金重赫
1971년 경북 김천 출생.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1F/B1 일층, 지하 일층』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장편소설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나는 농담이다』 등이 있음. popsong7@gmail.com
휴가 중인 시체
버스에다 전 재산을 싣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누군가 그 사람을 취재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고, 나는 건성으로 들었다. 그런 사람은 흔하지.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 얘기만 들어도. 견적이 나와. 보지 않았는데 얼굴 생김새도 그려져. 수염도 좀 있겠지. 옷 스타일도 알겠고. 인생은 여행이라고, 낭만은 바다에 있다고, 생각하겠지. 내 생각과는 다를 거라는 말을 다시 들었지만 생각을 고치지 않았다. 다른 일에 몰두했고, 석달이 지난 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그 사람을 보게 됐다.
생각과는 달랐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그는 웃지 않았다. 괜한 웃음도 짓지 않았다.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다.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리포터는 버스 안의 물건들에 감탄하면서 설명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덕분에 방송은 짧았다. 기이한 사람들을 짧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원래는 좀더 긴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은데, 그날따라 더욱 짧게 느껴졌다. 얼굴이, 특히 눈빛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물어물어 연락처와 현재 위치를 알아냈다. 연락부터 할까, 직접 찾아가볼까. 연락을 먼저 한다면 예의를 갖출 수는 있어도 방어벽이 생긴다. 얼굴 뒤편의 표정은 전혀 보지 못하고, 꾸며낸 표정만 보고 올 확률이 높다. 배낭에다 짐을 챙겼다. 노트북과 녹음기, 간단한 옷가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즈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두번째 삶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였다. 확실한 것은 첫번째 삶이 끝났다는 것뿐이었다. 그냥 온몸으로 깨달았다. 불안과 공포와 환멸과 싫증과 권태와 무력이 액체가 되어 내부로부터 나를 익사시키기 직전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없었고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킬 배터리도 없는 상태였다. 두번째 직업을 찾아야 했지만 거기에 걸맞은 재능이 없었다.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그때 죽었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온도가 높아졌고, 그게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예전에는 버스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와도 그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은 삶의 열망으로 가득해 보였다.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생활하고 싶다는 말은, 모든 곳을 내 집처럼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버스를 개조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우선 내부 의자를 다 뜯어낸 다음 바닥을 새로 깔아야 한다. 냉장고나 전자레인지를 쓰려면 전기가 필요하고, 물을 보관할 수 있는 탱크와 펌프도 필요하다. 오물을 처리할 장치도 필요하다.
주원씨에게는—가명이다. 책을 쓰게 되더라도 실제 이름은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도 그의 얼굴 아래에는 ‘버스 여행자’라고만 적혀 있었다—그런 의지가 없어 보였다. 주원씨의 버스는 여느 캠핑카처럼 개조되지 않았다. 45인승 관광버스 내부에 비해 달라진 게 많지 않았다. 운전석 바로 뒤의 여섯 좌석을 뜯어내고 빨간색 3인용 소파를 놓은 점, 소파 옆 네 좌석을 뜯어내고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작은 싱크대를 놓은 점만 달랐다. 내가 보기엔 개조를 하다 관둔 것 같았는데 텔레비전 리포터는 ‘무척 특이하고 미니멀한 개조방식의 캠핑카’라고 포장했다. 주원씨는 대꾸 없이 허공을 보았다.
주원씨를 직접 만났을 때 가장 의외였던 점은 말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과묵한 인물로 보였지만 주원씨는 말이 많았다. 그의 버스처럼 시동이 늦게 걸릴 뿐이다. 음…, 에…, 그러니까…, 그게 아닙니다, 저는…이라는 도입부를 지나고 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말을 입 밖으로 내보냈다. 주원씨의 말에는 체계가 없었다. 일관적이지 않았고 우발적이었다. 때로 사람들이 그더러 ‘미쳤다’고 하는 것은 주원씨의 그런 특징 때문일 것이다. 말을 거는 방식도 주원씨에게는 중요했다.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시작하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다른 곳을 보면서 넌지시 말을 건네야 그걸 받아준다.
주원씨의 버스를 처음 만난 곳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버스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의 바닥에 주원씨가 앉아 있었다. 크지 않은 체구인데다 45인승 버스의 덩치 때문에 주원씨는 더욱 초라해 보였다. 평일 오후 4시였고 겨울의 저녁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휴가를 즐기는 것처럼 천천히 해변을 걷는 남녀 말고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주원씨는 걷고 있는 남녀를 보고 있었다.
버스의 왼쪽 옆구리에는 그 유명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나는 곧 죽는다’. 텔레비전 방송에 나간 후 주원씨의 플래카드는 인터넷에서 잠깐 화제가 되었다. 나도 저 버스 봤다. 버스 개조해서 캠핑카로 만들어드립니다. 연락 주세요. 네가 죽는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지나가는 길에 봤는데 장의차 본 것보다 더 기분 나쁘더라. 나도 죽는다. 이거 무슨 종교인데요? 버스 여행자 아저씨 반쯤 미친 듯. 저렇게 사는 사람 진짜 이해 안 간다. 조용히 살아요, 좀. 죽으려면 혼자 곱게 죽어야지. 같은 댓글이 적혀 있었다. 나 역시 텔레비전에서 ‘나는 곧 죽는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극적인 말로 이목을 끌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버스에 동승해도 되겠느냐는 부탁을 했을 때 주원씨는 쉽게 승낙했다. 그렇게 쉽게 허락했다는 것이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치 나 같은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요? 왜 같이 가려고요?”
“솔직히 말할게요. 저는 논픽션 작가예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고요. 따라다니다보면 뭔가 재미있는 게 나올 것 같아서.”
“내가 왜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지 알아요?”
“대충은…… 사람들한테 뭔가 알리고 싶은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닌데요.”
“버스에다 ‘나는 곧 죽는다’라고 붙여놓았는데 왜 그런 거예요?”
“나는 곧 죽을 거니까요. 죽을 거니까 계속 돌아다니는 거예요. 한군데 있으면 자꾸 생각하게 되니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는 거네요?”
“맞아요. 피하는 거예요. 도망 다니는 거.”
“어디서?”
“도망 다니는 나한테로부터 도망 다니는 거. 아니면 도망 다니면서 계속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알아보는 건지도 모르겠고. 실은 여기에다 절 가두는 거죠. 유폐라는 말 알아요? 아득하고 깊은 곳에다 가둬놓고 잠가버리는 거.”
“버스에다 가둔 거예요?”
“나는 버스에 갇혀서 오래 살 거예요. 엄청나게 오래 살 거야. 심장을 기계펌프로 바꾸고, 팔다리는 그거 알죠? 나와라 만능 팔, 가제트. 다리는 무쇠다리. 아니, 다리는 무쇠바퀴. 머리도 컴퓨터로 바꿀 건데 절대로 업데이트 안 하고, 옛날 기억만 계속 재생시킬 거야. 그래서 아주아주 오래 살 거예요.”
“기계 인간이 되면 오백년은 살겠네요.”
“오백년이 뭐야. 천년은 살아야지.”
“그렇게 오래 살아서 뭐하게요?”
“오래 사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오래 살기 위해서는 좀 기다려야 되거든. 아직은 기술이 거기까지 못 갔으니까. 첨단 기술을 내 몸에 부착하려면 오래 살아야 해. 그러니까 오래 살아야 오래 살 수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고 나서는 죄 사함을 받아야지. 죽을 때까지, 몇천년 동안.”
“제가 같이 가도 되겠어요?”
“되긴 하지만, 재미는 없을 텐데……”
“사람마다 재미의 기준은 달라요.”
“프리님은 뭐가 재미있는데요?”
“재미있는 게 없어서 재미를 찾아다니고 있는 거죠.”
“타요. 45인승이라서 자리도 많은데요. 아니지, 소파랑 싱크대 자리 빼고, 짐을 실어놓은 자리를 빼면, 현재 좌석은 서른두개. 그중에 아무 데나 앉아요.”
나 자신을 프리랜서라고 소개한 다음부터 주원씨는 나를 프리님이라고 불렀는데, 별것 아닌 단순한 호칭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전혀 ‘프리’하지 않았다.
주원씨는 운전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평소에는 잘 웃지 않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았는데 운전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작은 몸으로 길쭉한 기어 스틱을 능숙하게 움직일 때는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낮 동안 주원씨는 계속 운전을 했다. 길 위에서 행복해 보였다. 직선 도로를 달릴 때는 상쾌해 보였고, 코너링 할 때는 신나 보였다. 처음에는 주원씨를 관찰하는 입장이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나 역시 버스 위의 삶이 편안해져서 내 집같이 느껴졌다. 음악은 언제나 크리스마스캐럴이 흘러나왔다. 주원씨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다이애나 크롤의 「윈터 원더랜드」.
“이름이 다이애나 캐럴인 줄 알았어요. 이름이 캐럴이었으면 내가 더 좋아했을 텐데.”
그렇게 말하고 「윈터 원더랜드」를 따라 불렀다. 모든 가사를 다 따라 하지는 못했다. “워킹 인 어 윈터 원더랜드”라는 부분만 특히 크게 따라 불렀다.
“캐럴만 들으면 언제나 12월로 돌아가는 거 같지 않아요? 12월만 열두번 있는 것도 좋잖아요.”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여행 초반에는 주원씨에게 여러번 인터뷰를 시도했다. 버스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 버스 개조에 든 비용, 가장 기억에 남는 도로 등을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았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 주원씨는 늘 이렇게 되물었다.
“그런 게 왜 궁금해요?”
“난 취재하는 사람이니까 궁금하죠.”
“나는 프리님이 하나도 안 궁금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모르겠어요.”
“사람은 얼굴이 답안지예요. 문제지는 가슴에 있고 답안지는 얼굴에 있어서 우리는 문제만 알고 답은 못 봐요. 그래서 답은 다른 사람만 볼 수 있어요. 사람과 사람은 만나서 서로의 답을 확인해줘야 한대요.”
“그러면 거울을 보면 되겠네요?”
“거울을 보는 나는 답을 숨겨버리거든요.”
“내 얼굴에도 답이 나와 있어요? 뭐라고 나와 있어요?”
“29.”
“29?”
“그렇게 답이 나와 있어요. 29라고.”
“에이 거짓말. 숫자가 보인다고요? 29가 어떻게 나온 답인데요?”
“50에서 21을 빼면 29가 나오고, 10에서 19를 더해도 29가 나오고.”
“장난이죠? 정말 29라고 쓰여 있다고요? 무슨 관상 같은 거 공부했어요?”
“스물아홉살로 돌아가고 싶은가보다.”
주원씨가 농담처럼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어두운 방에서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처럼 깜짝 놀랐다. 스물아홉이라면 경제인들의 인터뷰집을 출간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해였다. 짧았던 나의 전성기였고, 돈도 가장 많을 때였다. 부모님이 살아 계셨고 사무실을 함께 꾸려가던 친구도 있었고, 최신식 녹음장비도 가지고 있었다. 영원할 것 같던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게 놀라웠다. 쉽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전혀 가질 수 없다.
“어떻게 알았어요?”
“뭘?”
“29라고 쓰여 있는 거.”
“뭘 어떻게 알아요, 그냥 그렇게 적혀 있어요. 누가 봐도 그렇게 보여요. 그런데 진짜 정답이 29예요? 신기하네.”
주원씨는 모든 이야기를 그렇게 수수께끼로 만들어버렸다. 언젠가부터 나는 구체적인 인터뷰를 포기했고, 주원씨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기로 했다. 어느 순간 주원씨의 얼굴에 답이 떠올라주기를, 나도 그 답을 주원씨에게 읽어줄 수 있기를, 그 답을 시작으로 나도 뭔가 쓸 수 있게 되기를 기다렸다.
11월 하순 어느날 저녁, 산길을 오르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딸꾹질을 하는 것처럼 몸을 움찔거리더니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주원씨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엔진으로 전달되어야 할 힘이 어디론가 새어 나가고 있다는 게 소리로 느껴졌다. 열쇠를 여러번 돌렸지만 엔진을 움직일 수 없었다. 주원씨는 밖으로 나가 버스를 한번 돌아보았다. 외관에 이상이 있을 리 없었다. 정비에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엔진이나 배터리에 문제가 생긴 소리였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겠네요.”
주원씨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즈음의 내가 감상적이었던 탓도 있겠지만, 주원씨의 말은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데가 있었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겠네요’라는 말도 그랬다. 친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서 손을 덜컥 잡는 것 같은 말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잠깐 감동적이기도 했다.
늦은 시간인데다 외진 곳이어서 버스 정비사가 곧바로 오기는 힘들었다. 정비사가 새벽에나 도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주원씨는 캠핑을 준비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버스 시동은 걸리지 않았지만 태양광으로 비축해둔 전기는 충분했다. 주원씨는 저녁을 차렸다. 냉동 밥은 전자레인지로 가열했고, 역시 전자레인지에 넣어서 뜨거워진 카레를 그 위에 부었다. 매운 양념을 첨가한 참치캔 하나가 반찬이었다. 주원씨와 나는 빨간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버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밥을 먹었다. 소파에 앉아서 보는 풍경은 아름답다. 매번 바뀌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버스를 몰고 다니는 게 아니라 창문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네요. 이렇게 보니까.”
내가 혼잣말인 것처럼 주원씨에게 말했다.
“그렇네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주원씨는 쉽게 수긍하고 계속 밥을 먹었다.
“소주 한잔할래요?”
내가 가방에 있던 소주를 꺼냈더니 평생 처음 소주를 보는 사람처럼 병을 들여다봤다.
“안 먹습니다, 술은.”
“왜요? 운전자의 철칙 같은 거예요? 밤인데 뭐 어때요. 소주 한잔하면 몸이 뜨끈뜨끈해질 거예요.”
“안 마십니다.”
부정이 너무 단호해서 더는 권하지 못했다. 참치캔을 안주 삼아 소주를 세잔 마셨다.
창밖 먼 곳에서 작은 불빛들이 점멸하고 있었다. 마을의 불빛이거나 가로등이었을 것이다. 불빛이 켜졌다 꺼지는 리듬에 맞춰 주원씨는 밥을 씹는 것처럼 보였다. 전과 달리 차분해 보였고, 생각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마음의 깊은 곳으로 뛰어든 사람 같아 보였다.
그날 밤에 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을 내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충격적인 행동을 하기 전에는 어떤 식으로든 조짐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버스 맨 뒷자리인 5인석에서 팔걸이를 모두 젖힌 다음 잠을 잤고, 주원씨는 소파에서 잠을 잤다.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0시쯤이었을까. 주위는 완벽한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 어둠 속에서 시간은 무의미했다. 적당한 술기운 때문에 나는 곧장 잠으로 빠져들었다. 파도가 철썩이는 것 같은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버스 옆에 바다가 있었나. 아니었다. 주원씨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리는 소리였다.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마치 남의 뺨인 것처럼, 아니면 생명체가 아닌 사물을 때리는 것처럼 후려치고 있었다. 두 손으로 한꺼번에 때리기도 했고, 한쪽씩 순서대로 후려치기도 했다. 버스 안의 희미한 비상등 때문에 그 모습은 더욱 기괴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지, 소리를 참고 다시 잠들어야 할지 갈등했다. 알은척해야 할지, 모른 척 눈을 감아야 할지.
주원씨는 끙, 끙,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비명도 없이 자신의 폭력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누워 있었다. 개입하지 않아야 했다.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시간이 좀더 흐르자 주원씨는 뺨 때리기를 그만하고, 운전석에 가서 앉았다. 나는 몸을 반쯤 일으켜서 주원씨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훔쳐보았다. 운전석에 앉은 주원씨는 왼편의 유리창에 머리를 찧었다. 쿵, 쿵, 쿵,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한참 지나서야 주원씨는 룸미러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뺨이 얼마나 부풀어 올랐는지, 머리에서는 피가 나고 있지 않은지 보려는 것 같았다.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러고는 ‘으으으…’ 하는 동물의 낮은 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 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벌을 받은 아이 같았다. 자신은 나쁜 아이라고, 이런 고통을 당해도 싸다고, 고해성사하는 죄인의 탄식 같았다. 조금 있다가 어떤 말을 중얼거렸다. 내게는 그 소리가 ‘아냐아냐아냐아냐’로 들렸다. 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주원씨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룸미러를 통해서 나를 보았다. 나는 얼어붙었다. 몇초나 지났을까. 지금 본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맹세처럼 나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주원씨는 운전석에서 일어나 버스 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고 소리를 지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버스로부터 멀어졌다. 멀어지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러나 곧 걱정이 시작됐다. 어디로 달리는 것인지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삼십분 후에 주원씨가 버스로 돌아왔다. 괜찮아요? 내가 물었는데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나를 지나치고 소파에 쓰러졌다. 주원씨는 금방 잠으로 빠져들었다. 밤새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이 드는가 싶으면 내 안의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잘 때가 아니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새벽에 누군가 버스 문을 두드렸다. 정비사가 버스 배터리와 부품을 교체하는 동안 짧고 깊은 잠을 잤다.
주원씨는 전날의 일을 잊은 사람처럼 계속 운전했다.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부어 있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이러는 게 이상하지요?”
본론으로 곧장 뛰어드는 것도 그의 화법이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끔찍하지요? 어젯밤에 본 것들이 다 무슨 일인가. 폭력에 취한 중독자처럼 굴었죠. 그 아이는 12번 창가 자리에 늘 앉았습니다. 저기서 볼펜으로 자기 얼굴을 긋고 있었는데, 볼펜은 나오질 않아요. 얼굴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기만 할 뿐 잉크 자국은 남지 않으니까. 다 쓰고 난 것이거나 아예 볼펜심을 뽑아버린 것인지도 몰라요. 아무도 자기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전부 다 봤죠. 가끔 커터를 쓰기도 했어요. 커터에도 종류가 많은데 아주 가느다란 거였어요. 두꺼운 건 과시하는 사람들이 쓰지요. 내가 잘 알아요. 나도 전에는 가느다란 커터를 쓴 적이 있어요. 눈으로 손등을 보지는 못했지만 손등에 낸 칼의 길 위로 피가 뭉글뭉글하게 솟아올랐겠지요. 자주 해본 솜씨였을 거예요. 너무 얕으면 피가 맺히지 않고, 너무 깊으면 터져나오니까. 아이는 너무나 태연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피를 보고 있었으니까. 반창고로 간단하게 상처를 가렸겠지요. 아이는 언제나 제일 늦게 내립니다. 다른 아이들이 내릴 때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마지막에,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 내립니다. 내릴 때는 나한테 눈으로 인사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자기와 같은 부류라는 걸 알아차린 겁니다. 아저씨는 다 봤지? 내가 뭘 하는지 알지? 나는 알지. 그런 인사를 했습니다. 알지, 다 알지. 눈으로만 인사했습니다. 곧 끝날 거야. 지긋지긋한 것들이 다 끝나고 나면 네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거야. 조금만 참아봐. 나는 달라, 나는 다 알지. 그건 거짓말이었어요. 나는 다르지 않고, 아무것도 끝나는 건 없어요.”
“그게 누군데요?”
“저는 잘 모르는 아이입니다.”
“아까 봤다고 했잖아요. 12번 자리에 앉았다고.”
“「로미오와 줄리엣」 알죠?”
주원씨는 운전을 하면서도 3번 좌석에 앉은 나를 가끔 보았다. 처음에는 오른쪽 사이드미러를 보는 줄 알았는데, 나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의 변화가 낯설었다. 언제나 허공을 보면서 말을 하던 주원씨가 내 눈빛을 찾는다는 게 신기했다.
“알죠.”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버림받고 남겨지는 이야기입니다. 남겨진 사람은 이렇게 노래를 합니다. 여기, 여기, 여기에 당신의 구더기 시녀들과 함께, 오, 여기에 남겠습니다. 여기를 나의 영원한 안식처로 만들 것이고, 삶에 찌든 이 몸뚱어리를 불길한 별들의 속박으로부터 흔들어 깨우겠습니다.”
주원씨는 그 순간 운전사가 아니라 무대에 오른 배우였다. 두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목소리를 높이며 로미오 혹은 줄리엣이 되었다.
프리랜서 논픽션 작가로 열심히 활동하던 시기에는 재미있는 현장을 많이 겪었다. 그중 단연 최고는 셰익스피어 학자들의 연말 파티였다. 제안을 받았을 때 별스러운 기획이 다 있구나, 연말 파티를 취재해서 기사로 써달라니, 그게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었다. 1부 행사는 평범했다. 누군가의 축사, 인사, 환영, 축하가 이어졌다. 2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참가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주인공 하나를 정하고 그 사람을 연기했다. 리어 왕으로, 줄리엣으로, 오셀로로, 맥베스 부인으로 변했다. 그 사람들은 돌아다니면서 희곡 속 대사로만 말했다. 첫해에는 그들의 말이 희곡 속 대사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연극배우처럼 말해야 하는 룰이 있나보다 생각했다. 모두 미친 사람 같았다.
셰익스피어 연말 파티만을 위해 일년 동안 셰익스피어의 주요 작품을 여러번 읽었다. 첫해의 기사는 내가 생각해도 형편없었다. 파티의 핵심은 놓친 채 특이한 행사를 하고 있다는 내용에 집중하다보니 코미디 같은 기사가 되었다. 나는 부끄러웠고, 두번째 해에는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었다. 녹음기를 들고 그들의 대화를 따라다녔다.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요? 나라를 통째로 주고도 교환할 수 없는 진주를 스스로 버린 남자가 바로 나요.”
“하긴 그럴 법도 하겠군요. 우리는 거대한 바보들의 무대에 울면서 태어난 존재들이니까.”
“하하, 상처의 고통을 모르는 인간들만 타인의 흉터를 비웃는 법이지요.”
“신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몇가지 결점을 준 것입니다.”
파티장은 수수께끼 같은 대사들이 흘러넘쳤다.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은 웃지도 않고 민망해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대사를 주고받았다. 어쩌면 랩 배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상황에 더 어울리는 대사를 기억에서 끄집어낼 것인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현장에서 알아들은 대사도 있지만 녹음기를 여러번 돌려 듣고 나서야 전체 대사를 복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쓴 특집 기사는 ‘세상이라는 무대, 우리는 모두 배우에 불과하지’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게재되었고,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댓글을 달아주었다. 세상에는 별 이상한 행사가 다 있다면서 조롱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그것도 관심이었다. 내게 기사를 의뢰한 셰익스피어 학회 사람들도 나의 노력을 칭찬해주었다. 다음 해에도 나를 초대했지만 더는 파티에 가지 않았다.
주원씨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를 들으면서 셰익스피어 학회 파티에 다시 끌려온 것 같았다. 조금 민망했고, 어색했지만, 마음이 끌렸다. 나는 그때 외웠던 대사 한줄을 주원씨에게 얘기했다.
“지금부터 내 몸이 너의 칼집이구나. 단검아, 그 속에서 녹슬어서 나를 죽게 해다오.”
운전하던 주원씨는 나를 돌아보았다. 자신만 알고 있던 비밀을 내가 발설이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내가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읊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거 거기 나오는 말이잖아요.”
“맞아요. 「로미오와 줄리엣」.”
“그런 거는 어디서 들었어요?”
“책에서 읽었죠.”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네요. 셰익스피어를 외우고 다니는 사람.”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죠.”
“아버지 같은 건 되는 게 아니었는데.”
“네?”
“「오셀로」에 나오는 대사예요.”
“죽음만이 우리를 치료해줄 의사라면 죽는 것만이 유일한 처방이야.”
“그건 어디 나와요?”
“「오셀로」.”
“「오셀로」에 그런 게 나왔었나? 기억해둬야겠네.”
“나는 죽네.”
“「햄릿」 맞죠?”
“나머지는 침묵이네.”
“「햄릿」의 마지막 대사잖아요.”
“저기 낙타처럼 생긴 구름이 보이는가?”
“그건 구름이 아니라 진짜 낙타입니다.”
“그 부분 웃기죠?”
“구름이 아니라 진짜 낙타야. 크크.”
주원씨와 내가 셰익스피어 때문에 가까워졌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믿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날 확률을 무척 낮게 생각하는 것이다. 무척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경우의 수는 아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것처럼 별의별 경우가 다 생긴다.
주원씨는 운전하다가 문득 대사가 떠오르면 내 얼굴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기억나는 대사로 맞받아치거나 생각난 말을 연극 대사처럼 바꾸어 말했다. 나중에는 그게 우리의 놀이가 되었고, 둘의 대화는 점점 연극처럼 바뀌었다. 셰익스피어 학회 파티가 우리의 일상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하룻밤 묵는 게 어떻겠나? 별빛이 우리의 저녁을 밝혀주겠지.”
주원씨가 말했다.
“어리석은 자만이 자연 속에서 캠핑을 하지. 오성급 호텔이야말로 별빛을 볼 수 있는 곳이야.”
내가 장난으로 대꾸했다.
“프리님의 얼굴에는 탐욕이 들쥐처럼 들끓고 있구나.”
“들쥐처럼 자유로운 영혼도 없지.”
“프리님은 자유의 정의를 너무 광범위하게 잡고 있어.”
“그것이야말로 내 자유일세.”
마지막 대사가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웃음을 터뜨리게 되고, 그것으로 놀이는 끝이 난다.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저녁이면 버스 소파에 앉아 글을 썼다. 처음에는 주원씨의 행동을 관찰하는 일지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둘의 대화록이 되고 있었다. 둘의 대화를 계속 써 내려가자 희곡을 쓴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우리의 대화는 터무니없이 장황하고 기고만장하게 유치하며 지나치게 멋스러운 문장들이 많았고, 컴퓨터보다는 종이에 더 어울렸다. 어느 때부터 나는 노트북을 켜는 대신 공책을 펼쳐 대화를 적어나갔다.
주원씨의 ‘발작’은 주기적으로 계속됐다. 조용한 밤이면 갑자기 나타났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졌고, 다음 날이면 주원씨는 전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척했다. 뺨은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내가 「리어 왕」에 등장하는 대사로 물어본 적이 있다.
“잠은 매일매일 죽음을 불러온다는 말이 맞구나. 어제의 일을 기억 못하니 너는 부활한 유령이 분명하다.”
“가련한 자들만 죽음과 삶을 구분하지. 생사의 구분이 없는 자에게 부활이란 말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겠는가.”
“죽음과 삶의 구분이 없는 것은 오직 신뿐이다. 당신이 나의 신인가?”
“내가 너의 신이고, 너는 나의 신이지.”
“무슨 개소리인가.”
“그것은 셰익스피어를 빙자한 욕에 가까운데?”
“미안, 마음속 말이 갑자기 나와버렸네.”
우리는 다시 웃었고 전날 밤에 일어난 일을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셰익스피어 대사 놀이를 하면서 우리 둘은 분명 가까워졌다. 현실에서의 가까움이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정신의 끈이 생긴 듯했다. 내가 그를 부추겼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는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는데, 현실을 버릴 작정을 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언어의 날개를 제공한 것이다. 함께 여행을 한 지 한달 반이 지났을 때 주원씨가 폭발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주원씨가 그렇게 된 데에는 내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시골 마을의 공터에 버스를 세웠고, 우리 둘은 그늘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네명의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부터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버스 주인 되십니까?”
무리 중에서 키가 가장 큰 남자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주원씨가 대답했다.
“뭘 팔러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영업하시면 안 됩니다.”
“팔러 온 거 아닙니다.”
“뭐,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을 하죠.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당신들을 도와주러 온 것이다. 파는 게 뭐예요? 건강보조제? 인삼? 녹용? 아니면 사이비 종교예요?”
“전혀 아닙니다.”
“나는 곧 죽는다. 이건 왜 붙여놓은 겁니까? 당신이 곧 죽어요? 시한부 인생이야? 곧 죽는 사람이 버스에다 저런 걸 붙여놓을 리가 없잖아.”
“죽으니까 죽는다고 하는 거죠.”
“누가 죽는데?”
“누구나 죽습니다. 나도 죽고, 당신도 죽고. 버스에 붙여놓은 건 나한테 하는 소리입니다. 나는 곧 죽으니까 정신 차리고 살아라. 한시간도 잊어먹지 말고,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라. 오래오래 살기 위해서는 죽는다는 걸 알아야죠.”
“그건 네 집 안방에 붙여놓으면 되잖아.”
“여기가 저의 집입니다.”
“웃기고 있네, 죽는다는 말로 사람들 꼬셔서 약 팔고 관심 끌고, 내가 모를 줄 알아? 지난번에 여기서 약 팔던 새끼들도 내가 다 감옥에 처넣었어. 알아? 너같이 이상한 약 팔아서 사람들 죽이고 그러는 새끼들은 뿌리를 뽑아야 돼.”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남자 세명과 나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누가 누굴 죽여?”
주원씨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손가락질을 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기록하기 위해 나는 녹음기를 켰다.
“당신 같은 인간들이 파는 약은 독약이야. 알아?”
“당신도 죽어. 알아?”
“웃기고 자빠졌네. 그럼 알지, 내가 몰라? 내가 그럼 평생 살겠냐? 죽지. 죽겠지. 그런데 너보다는 내가 오래 살겠다.”
“죽는데, 곧 죽는데 왜 그러고 있어? 빨리 가서 자신을 돌아봐요.”
“지랄한다. 약 파는 거 아니면 무슨 종교 같은 건가본데 우리 동네 사람들 그렇게 물렁물렁하지 않아. 빨리 꺼져. 버스 박살 내기 전에.”
“이 버스가 뭔지 알아요? 이건 내 관이에요. 나는 여기에 묻힙니다. 아주 오래 살고, 그래도 죽어야 한다면 여기에 묻힙니다.”
“무슨 헛소리야. 진짜로 내가 여기에다 뼈를 묻어줘야겠네.”
“당신이 삶의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는 동안, 내가 당신 대신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안개 때문에 죽음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이미 안개 건너편에 도착한 사람이에요. 나는 선지자야, 죽음의 전령이라고.”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주원씨는 내가 보기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남자를 향해 말하더니 나중에는 허공에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주원씨를 말리기 위해 뒤에서 두 팔을 잡았을 때 몸에서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이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 싶었다.
“당신이 그렇게 원한다면 내가 죽음이 되어줄게. 세계가 멸망하는 걸 상상하지 못한다면 내가 세상을 멸망하게 해줄게. 나는 다 봤어. 당신이 보지 못한 것들을 다 봤다고. 죽음도 봤고 칼로 몸을 긋는 것도 봤고 내가 이 두 눈으로 다 봤어. 모든 고통이 내 몸을 관통했고, 그래서 이렇게 배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거라고.”
주원씨와 맞서 이야기하던 남자가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냥 돌아가는가 싶던 키가 큰 남자는 버스에 붙어 있던 ‘나는 곧 죽는다’ 플래카드를 뜯어내려고 했다. 플래카드는 천으로 된 것이 아니라 스티커로 글자를 만들어 붙여놓은 것이었다. 키가 큰 남자는 뜯어내는 대신 망가뜨리는 쪽을 택했다. 외투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온 래커를 꺼내 플래카드에 분사했다. 나는 주원씨를 붙잡았다. 주원씨는 키가 큰 남자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내가 뒤에서 붙잡았다.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원씨가 다치는 것보다 플래카드가 망가지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 죽는다’에서 ‘곧’이 사라지고 ‘죽’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주원씨는 소리를 질렀다. 내용을 알 수 없는 괴성이었다. 나머지 남자들도 지켜보기만 했다. ‘는’이 사라지고 나자 키가 큰 남자가 래커를 바닥에 버렸다. ‘나’와 ‘는다’만 간신히 보였다.
“오늘 내로 꺼지지 않으면 버스까지 박살 낼 거야. 나는 경고하면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야.”
키가 큰 남자는 나머지 남자 세명과 함께 버스에서 멀어졌고, 주원씨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내 손으로 전해졌다.
주원씨와 나는 곧장 동네를 빠져나왔다. 키가 큰 남자의 협박 때문이 아니라 더는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리 둘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동네를 벗어난 후로도 주원씨는 두시간 동안 말없이 운전만 했다. 나 역시 정면만 바라보았다. 풍경이 나타났다가 옆으로 스쳐 갔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들이 구불구불해지고 가려져서 보이지 않고 다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검은 새들이 떼를 지어 어디론가 날아갔다. 누군가 우는 소리도 들렸는데 새소리인지 창밖의 동물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몇개의 산을 넘고 또다른 오르막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주원씨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더니 갓길에다 버스를 세웠다. 3번 좌석에 앉아서 안전띠도 하지 않고 있던 나는 앞으로 튀어나갈 뻔했다. 주원씨는 버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도로 위에는 차에 치인 고라니 한마리가 누워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사고를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지만 충격을 크게 받은 듯했다. 주원씨와 내가 다가가는데도 먼 하늘에 시선이 고정돼 있었다.
“아직 살아 있어요.”
내가 말했다.
“네, 아직 살아 있어요.”
주원씨가 말했다.
인터넷으로 본 기사가 떠올랐다. 로드킬당한 동물을 발견했을 때는 도로에 들어가서 직접 처리하려 하지 말고, 야생동물을 구조해주는 곳에 신고하라는 내용이었다. 휴대전화를 꺼내서 전화번호를 검색하려는데 주원씨는 이미 도로로 들어가 고라니의 다리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주원씨, 뭐 하는 거예요?”
주원씨는 대답하지 않고 고라니를 갓길로 끌고 갔다. 바닥에 고여 있던 피가 자국을 만들면서 고라니를 따라갔다. 누군가 커다란 붓으로 검붉은 획을 그은 것 같았다.
갓길로 끌어낸 고라니를 잠깐 바라보더니 주원씨는 버스 안으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찾았다. 그동안 나는 도로를 관리하는 기관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주원씨가 빨랐다. 내가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주원씨가 주사기를 꺼냈다.
“그게 뭐예요? 주사하려고요?”
“편안하게 갈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전화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직 숨이 붙어 있는데요.”
주원씨는 내 질문에 대꾸 없이 익숙한 동작으로 주사기를 준비했고, 말릴 틈도 없이 고라니의 몸에다 액을 주입했다.
“고통 없이 끝날 겁니다. 지금까지는 고통스러웠겠지만 이제는 다 끝났어요. 이제 그만 가서 쉬어요.”
처음에는 나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대답을 할 뻔했다. 주원씨는 고라니를 보고 있었다.
“잘 알겠지만, 환생 같은 건 없을 겁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잖아요? 완전한 무로 돌아가요. 긴 잠을 잔다고 생각해요. 꿈을 꾸도록 해봐요.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피곤할 겁니다.”
주원씨는 고라니의 몸통을 어루만졌다. 한 손으로 고라니의 두 눈을 가려주었다. 여기에는 더 볼 게 없다는 듯 시선을 막아주었다. 고라니는 규칙적으로 몸을 들썩이다가 어느 순간 축 늘어졌다. 주원씨는 계속 고라니의 몸통을 두드리면서 어루만졌다. 꿈을 꾸도록 해봐요. 긴 잠을 자는 겁니다. 계속 그렇게 중얼거렸다.
주원씨가 약품을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익숙한 행동으로 보아 자주 일어나는 사건임은 분명했다.
고라니를 간단하게 묻어주고 주원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갈 기세였다.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느새 지평선으로 해가 가라앉고 있었다.
“아주 간단한 실수를 했을 뿐인데요.”
주원씨가 입을 열었다.
“실수요?”
3번 좌석에 앉아 있던 내가 되물었다.
“아주아주 간단한 실수를 했을 뿐인데 큰 벌을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비극이 다 그렇지 않나요? 신화 속의 주인공들도 그렇고.”
“신화라…… 그렇네요. 신화 속 인물들이 그렇죠. 그런 사람들에게는 벌이 곧 용서일까요? 벌을 충분히 받았다면 그걸로 용서받은 것으로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자신들만 알겠죠.”
“간단한 실수라는 건 없어요. 그렇죠? 실수는 간단하지 않아요. 아무리 사소한 실수라도, 실수는 간단할 수 없어요.”
“주원씨의 실수를 말하는 거예요? 어떤 실수를 했는데요?”
“스쿨버스를 운전했어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기회는 없었어요. 할 수 있는 게 운전밖에 없었지만 운전을 좋아했어요. 아이들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을 너무 좋아했고, 거울에 비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정말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거울에 비치는 아이들을 다 알고 있어요. 누가 외롭게 혼자 앉아 있는지, 누가 누굴 따돌리는지, 누굴 좋아하는지, 누굴 싫어하는지, 저는 보아서 다 알고 있어요. 매일 똑같은 시간에 등교하고 누가 결석을 하고 누가 있는지 없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실수라는 건 간단한 게 아니에요. 그 모든 기록을 한꺼번에 통째로 순식간에 지워버립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서 죽어야 해요. 여기가 내 관이고, 무덤이고, 천국이고, 지옥입니다.”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흥분하지 말고 얘기해요.”
“알겠다고요? 아니요, 몰라요, 모를 수밖에 없어요. 안다고 얘기하지 마세요. 원망은 안 합니다. 지금까지 여기까지 온 거로 충분해요. 우리는 곧 죽을 거예요.”
주원씨는 갓길에다 버스를 세웠다. 주원씨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먼 곳을 바라보았다. 주원씨는 그날 밤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때렸다. 채찍 소리가 났다. 말릴 수 없었다. 몇분 동안 자신의 뺨을 때린 주원씨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여기까지입니다.”
주원씨가 말했다.
“네?”
들렸지만 들리지 않은 것처럼 내가 되물었다.
“나는 죽었네, 호레이쇼. 이제 침묵만 남았어.”
“어디로 가려고요? 주원씨, 내 얼굴을 보면서 얘기해요.”
“내 몸이 녹슨 칼의 칼집이구나. 이제 칼과 함께 나는 삭아버릴 거야. 부식되어 너덜너덜해지고 갈라져서 부서지고 나면 칼은 아무것도 자르지 못할 것이고, 이곳은 칼의 무덤이 될 것이다.”
“주원씨.”
“아아아아아아아아.”
주원씨는 소리를 지르면서 자기 머리를 두 손으로 내리쳤다. 나는 버스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주원씨의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배낭과 겉옷을 집어 들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주원씨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멀어지는 버스를 보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두달 정도 여행을 함께하던 사람이 갑자기 나를 버렸다는 사실도,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황량한 겨울나무뿐인 산길에 혼자 있다는 실감도, 지금까지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주원씨가 실재한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나는 버스를 바라보았다. 버스의 뒷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시는 주원씨를 만나지 못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그의 소식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곧 죽는다’라는 문구도 지워졌으니 주원씨의 버스는 평범해졌다. 그 버스를 주목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와 ‘는다’만 남은 플래카드를 눈여겨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달 동안 내가 공책에 기록한 내용은 폭탄의 파편 같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었고, 상처받은 한 사람, 분열된 한 사람의 기록뿐이었다. 그 사람과 주고받은 대화 일부분만 남았을 뿐이다. 파편을 모아 원형을 복구할 수는 없었다. 타버린 재를 긁어모아 종이를 만들 수는 없었다.
주원씨와 헤어지고 며칠이 흐른 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스쿨버스 사건’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보았다. 뭔가를 알아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주원씨가 떠올랐고 별생각 없이 ‘스쿨버스’와 ‘사건’이라는 단어를 입력한 것이다. 몇 페이지를 넘긴 후 주원씨와 관련된 몇년 전 기사를 찾아냈다. 사건의 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당시 많은 신문에서 주원씨의 사건을 다뤘다. “간 큰 통학버스 운전사, 음주 운전으로 아이 죽일 뻔” “아이 매달고 30미터 질주, 술 취한 통학버스” “학교 경비가 막아낸 드렁큰 스쿨버스” “아침의 만취 질주, 질질 끌려간 아이”. 기사 제목은 사건만큼이나 자극적이었다. 후속 기사를 더 찾아보았다. 다행히 아이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마지막 아이가 버스에서 내리다 가방끈이 문에 걸렸고, 주원씨는 그걸 발견하지 못했다. 30미터를 달리다 학교 경비가 버스를 막아 세웠다. 경비가 없었다면 아이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주원씨는 전날 밤 늦게까지 마신 술이 핏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릎 꿇은 사진도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아이의 병원에 찾아간 주원씨가 병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울고 있는 사진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이후에 어떻게 마무리됐는지에 대한 기사는 찾지 못했다.
사건 때문에 주원씨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어떤 사건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계로 옮겨놓는다. 아마 주원씨가 그런 이동을 겪었을 것이다. 사건 이전의 주원씨를 상상해본다. 도무지 그려지질 않는다. 그때도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읊조리며 여행을 다녔을까. 그때도 오래 살고 싶어했을까. 아니면 죽고 싶어했을까. 그때도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렸을까. 사건 이후의 삶도 상상해본다. 운전면허를 다시 발급받기 위해, 버스에서의 실수를 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버스에서 쫓겨난 후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갔을 때 보일러는 고장 나 있었다. 방바닥은 견딜 수 없이 차가웠지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버스보다 좋았다. 집에 있는 모든 이불을 꺼내서 바닥에 깔고, 침낭을 뒤집어쓰고, 온풍기를 강하게 틀어둔 채 잠을 잤다. 며칠 동안 잠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때 나는 죽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첫번째 삶을 끝내고, 두번째 삶으로 넘어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은 죽음과 닮았고 죽음은 잠의 끝과 같다. 우리가 여태껏 한번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잠들었다가 죽는 게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코를 골면서 자던 누군가 ‘컥, 컥, 컥’ 숨을 멈추는 듯하다가 다시 숨을 쉴 때, 그는 죽었다 살아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과 삶이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주원씨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록을 태우려고 마음먹은 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우리는 친구였을까? 취재 계획이 성공했다면 버스 여행자의 삶에 대한 작은 책이 한권 탄생했겠지만, 스쿨버스 사건으로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길 수 있었겠지만 내 손에 거머쥔 것은 곧 재가 될 부스러기뿐이다. 마지막 대사를 읽는다. 나는 죽었네, 호레이쇼. 이곳은 무덤이 될 것이다. 주원씨는 죽었을까? 죽지 않았다면 어디쯤 있을까? 최소한의 음식만 먹으며 지내지만 기름값과 자질구레한 버스 수리비를 지불하다보면 언젠가 여행을 끝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버스 여행이 끝난다면 주원씨는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
내 뺨을 한번씩 때려본다. 귀가 멍해지고 잇몸이 찌릿하다. 고통이라고 부르기엔 미세한 통증이다. 조금씩 강도를 올리면서 때려보고 있다. 내가 나를 때리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주원씨는 버스에 매달려 끌려갔던 아이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뺨을 때렸을 것이다. 그 아이는 죽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죽인 거야. 마지막에 내렸던 아이, 커터로 손등을 긋던 아이를 생각하면서 세차게 자신의 뺨을 후려갈겼을 것이다. 나는 내 뺨을 때리면서 다른 것을 생각했다. 미안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자신을 벌준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원씨와 헤어진 게 벌써 이년 전인데 많은 순간을 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머리보다 뺨이 주원씨를 기억하고 있다. 공터의 드럼통에다 피워놓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대화로 가득한 공책을 불 속에 던져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