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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마에노 울드 고타로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해나무 2018
비정규직 메뚜기 박사의 생존기
강연실 姜姸實
가톨릭대 박사후연구원 fmlm66@gmail.com
사람들에게 ‘과학자’를 묘사해보라고 하면 대개 한두가지 전형적인 모습으로 답할 것이다. 안경을 쓰고 하얀 실험복을 입은 남성이 플라스크와 시약으로 가득한 실험실 안에서 무언가를 하는 모습. 그는 종종 아인슈타인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거나 미국 시트콤 「빅뱅이론」(The Big Bang Theory)의 주인공처럼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연구 외의 세상 물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현실 속 과학자는 여성이기도 하고, 인종도 다양하며 장애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실험실이 아닌 ‘필드’라고 부르는 야외에서 주로 연구하는 사람도 있고, 본인의 연구 영역 외에 정치적·사회적 활동을 열심히 하는 과학자들도 찾아볼 수 있다. 통념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과학자는 꽤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지 않는 과학자의 한 모습은 비정규직 과학자다. 『과학자가 되는 방법』(이김 2018)의 저자인 생물학자 남궁석은 흔히 ‘포닥’이라고 부르는 박사후 과정이 본래는 박사학위 취득 후 단기간의 훈련 과정을 의미했는데 이제는 ‘박사학위 취득 이후 정규직 직장을 찾기 전에 거치는 모든 비정규직 일자리’를 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모든 비정규직 과학자가 박사후 과정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과학계에서 배출되는 박사의 숫자에 비해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비정규직 박사후 연구원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비정규직 과학자의 삶은 어떤가? 마에노 울드 코오따로오(前野ウルド浩太郎)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젊은 괴짜 곤충학자의 유쾌한 자력갱생 인생 구출 대작전』(バッタを倒しにアフリカへ, 김소연 옮김)은 ‘돈도 없고 직장도 없는 비정규직 메뚜기 박사’의 고군분투기다. 저자는 어린 시절 과학잡지에서 메뚜기떼에 관한 기사를 읽고 ‘나도 메뚜기에게 먹히고 싶다’는 소망으로 줄곧 곤충학자가 되기 위한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박사학위가 “지옥행 편도 티켓”(119면)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꿈 너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몇 안 되는 ‘정규직’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자리싸움이었다. 3년차 박사후 연구원이던 저자는 계약 종료를 앞두고 “안정인가, 진짜인가”(127면)라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실험실 연구로 착실히 실적을 쌓을 것인가? 아니면 논문을 쓸 자료를 얻을지도 미지수인 아프리카 사막에서 진짜 메뚜기떼를 찾아 연구할 것인가? 결국 아프리카의 모리타니로 향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가뭄이었다. 메뚜기떼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이 책은 과학자의 낭만적인 탐험기라기보다는 처절한 생존기다. 다만 그가 마주한 것은 모리타니 사막의 험악한 자연환경도, 메뚜기떼의 습격도 아니다. 그에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과학계, 그리고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일이다. 저자는 과학자의 일과 사회인의 생계를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업무로 곤충을 연구하면서 제한된 임기 없이 취직하는 것.”(121면)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직업으로서 ’곤충학자’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은 사막의 아름다운 (혹은 징그러운) 메뚜기가 아니라 취업 전선에서 밀려날까 불안해하고, 고갈되어가는 통장 잔고에 좌절하며,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고심하는 “방황하는 박사”(299면)다.
과학자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저자는 모리타니로 떠나기 전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논문을 발표해야 한다”(129면)는 비장한 각오를 한다. 몇 안 되는 정규직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박사들의 의자 싸움에서 ‘논문’은 가장 중요한 무기다. 저자는 과열된 경쟁으로 인해 새로운 발견을 발표하는 수단으로서 논문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새로운 발견을 하는 풍조”(123면)까지 생겨났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않다. 어디에서도 계속 연구할 수 있는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박사후 연구원이므로 “실적, 즉 논문을 발표하지 않으면 죽을 운명”(189면)인 것이다.
과학자들이 경쟁적으로 논문을 발표한다는 것이 곧 가치있는 과학 지식이 증가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모리타니에서 목격한 것은 쓸 만한 지식의 부재다. 모리타니 메뚜기연구소의 바바 소장은 메뚜기에 대한 논문이 수없이 발표되고 있지만, 정작 아프리카 지역 곳곳에서 메뚜기떼로 인한 심각한 농작물 피해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는 없다고 단언한다. 메뚜기연구소는 모리타니 전역의 메뚜기 발생 상황을 감시하고 방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메뚜기 병충해 방지를 염두에 둔 연구는 수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과 실험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고, 요구되는 것과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93면)가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학술 논문은 그것이 담고 있는 지식 그 자체보다 박사들의 생존 경쟁 수단으로서 더 가치있는 것이 되었다.
논문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던 마에노는 과학계 외부에서 생존 방법을 모색한다. 마땅한 실적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유명해지는 방법을 택한다. 다소 엉뚱한 발상이지만, 스스로 흥미로운 사람이 되어서 메뚜기 연구에 대해 폭넓은 대중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전략이 그의 복안이었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모양과 행동을 바꾸는 메뚜기처럼, “연구자로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상변이를 발현해 많은 인상(人相)을 갖는 것이 활로를 개척하는 열쇠가 될 것”(327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아프리카에서의 연구와 생활을 공유하고, 잡지에 글을 쓰고, 동료 ‘벌레 박사’들과 함께 일본 최대의 UCC 축제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벌레학회를 기획하기도 한다. 저자가 연구비 지원을 받는 데 이런 경험들이 얼마나 중요한 기여를 했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논문 인플레이션’이 만연한 학계와 메뚜기 연구에 높은 관심을 보여준 과학계 밖 사회를 경험한 마에노의 사례는 생존을 고민하는 과학자가 시도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회라는 톱니바퀴”(327면) 속에서 과학자는 그와 그의 연구가 갖는 가치를 재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웃픈’ 과학자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직업으로서 과학자를 택한 이들에게 연구와 생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는 곧 과학자의 업이다.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이 사업가의 일이듯, 과학 연구는 과학자에게 인류의 지식을 넓히는 데 기여한다는 큰 목표가 아니더라도 생계를 유지하게끔 하는 ‘일’이다. 과학자도 실적과 돈, 취직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연구를 잘하도록 지원하는 일은 그들의 생계에 큰 문제가 없도록 하는 일을 포함해야 한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이 주장이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학원생이나 갓 박사학위를 받은 이들이 종종 연구에 필요한 비용만 지원받거나 혹은 간신히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수준의 수입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마에노가 지원받은 연구비의 액수를 보면 이웃나라 일본도 그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가 과학계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거나 정책적 해결 방법을 제안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이야기는 보편적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