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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임국영 林國榮
1989년 경기 안산 출생. 2017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indra885@naver.com
헤드라이너
신화는 폭거(暴擧)다. 더 후의 피트 타운전드는 공연 중 기타를 높이 치켜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 바람에 기타가 무대의 낮은 천장에 부딪혀 조금 망가지고 말았다. 그는 쓋, 마더퍽커,라는 심사로 내친김에 기타를 패대기쳐서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록 음악사에 처음 등장한 악기 부수기였다. 마왕 오지 오스본은 박쥐를 씹어 먹었고 씨드 비셔스는 베이스 기타를 내리찍어 관중 한명을 골로 보내버리려 했다. 커트 코베인은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굳이 샷건으로 본인의 머리를 갈겨버렸다. 존 레논과 면도날 다임백 대럴은 팬이 쏜 흉탄에 구멍이 뚫렸고 전설적인 써던록 그룹 레너드 스키너드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멤버 절반이 사망하고 말았다.
보라. 록커에게 일어나는 모든 폭거는 퍼포먼스다. 수많은 천재가 승천의 방식으로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택한다. 혹은, 간택된다. 그중 가장 위대한 신화이며 아름다운 폭거는 지미 헨드릭스다. 아닐 수가 있을까. 그는 육식동물이 먹이를 먹어치우듯 이로 현을 뜯었고 오므라이스에 케첩이라도 뿌리는 양 기타에 기름을 부은 뒤 불을 댕겼다. 피어오르는 불꽃 앞에 무릎을 꿇고 LSD와 가무(歌舞)에 취한 채 신음하는 그의 모습은 계시를 기다리는 샤먼과도 같았다. 실제로 그는 신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 나인틴식스티나인, 히피 삼십만명이 운집했던 바로 그 우드스톡 공연에서 말이다. 지미는 미국의 국가를 연주했다. 무난한 편곡이었다. 중간부터 시작된 노이즈를 극대화한 주법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흔히 그 소리는 폭격기가 지상으로 폭탄을 무수하게 떨어뜨리는 광경을 연상시킨다고 평해진다. 모르긴 몰라도 약에 절어 청각이 예민해진 히피들에게는 생생했으리라. 그들이 딛고 선 장소는 더이상 뉴욕으로부터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평원이 아니었다. 히피들은 베트남 어느 늪지 한가운데 알몸으로 선 채 머리 위로 떨어지는 네이팜탄을 멀거니 올려다봤다. 그야말로 떼로 귀신에 씐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일년 뒤, 27세를 일기로 지미는 죽었다.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수면 중 구토, 질식이었다. 실로 록커다운 나이에 맞이한 록커다운 결말이었다. 말하자면 지미의 신화는 완성됐다. 나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개입할 여지가 없는 그 자체로 완전한 원본이다. 내겐 새로운 신화가 필요했다. 나와 동시대에 일어난 생생한 신화가. 거대한 빛무리를 이루는 단 하나의 입자일지라도 같은 프레임에 포착되고 싶은, 지미와 한 하늘 아래 생동했던 삼십만명 중 한 사람이라도 되고픈 비루한 미망인지도 몰랐다. 평범한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단 한순간이라도 벗어나고픈 갈망이 순전히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요컨대 다들 바라는 일 아니냐는 말이다. 내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도 좋을 만한 무엇으로 탈바꿈시킬 숭고한 대사건을 우리는 기다리지 않나.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경험을 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신의 폭거를 목격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한편의 지극히 개인적인 신화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통틀어 내 삶이 가장 밝게 빛난 찰나를 포착한 스냅숏이다.
여기, 펜스 밑 개구멍을 기어서 어느 록페스티벌에 무단으로 침입한 소년 무리가 있다. 그들은 미성년이었지만 충분히 술에 절었고 담배도 피울 줄 알았으므로 도무지 무서울 게 없었다. 거칠 것 없는 그들이었으나 난생처음 목도한 대형 공연장의 위용에 놀라지 않기는 어려웠다. 학교 운동장 열댓개는 합쳐놓은 듯한 넓이의 풀밭에 그들로서는 가늠도 되지 않는 숫자의 인파가 무리를 지어 서 있거나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맥주를 마시고 튀김을 씹었다. 날은 이미 어두웠지만 사방이 오징어잡이 현장처럼 밝았다. 무엇보다 소년들의 정신을 빼놓은 것은 소리였다. 귀가 아니라 배 속을 울리는 무지막지한 음향이 전혀 새로운 중력처럼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그들, 밴드 ‘우드스톡’은 그야말로 소리의 스케일에 기가 질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폭발을 준비하는 슈퍼노바처럼 전조 없이 고양됐다.
소리의 진원지는 물론 무대였다. 우드스톡의 눈에 비친 그곳은 마치 지구를 침공하러 온 우주선처럼 거대하고 압도적이었다. 무대 앞을 만조의 바닷물처럼 메운 군중들을 살피며 멤버 중 누군가는 대형 교회의 신년 새벽기도를, 다른 누구는 전쟁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떠올렸다.
“오줌이 마렵진 않은가, 형제들?”
로니는 부러 여유로운 웃음을 흘리며 멤버들을 돌아봤다. 존은 얼굴이 굳었고 빌리는 민첩하게 로니를 마주 보며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봐, 씨드!”
잠자코 무대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씨드를 존이 소리쳐 불렀다. 이봐, 씨드라니. 이 정신 나간 새끼들 같으니라고. 애석하게도 이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는 땅도 오브 코스 싸우스 코리아다. 교포도 혼혈도 아닌 네명의 소년들에게는 한국식 성과 이름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호명과 말투에 버터가 발린 이유를 밝히기에 앞서 멤버들을 소개하려 한다. 먼저 우드스톡의 리더이자 보컬을 맡은 로니. 몸이 다부지고 목소리가 걸걸한 쾌남이며 명실상부한 프런트맨이다. 다음은 베이스를 맡은 빌리. 수려한 외모에 키가 훤칠한 슈거보이다. 드럼을 치는 존은 체구는 작지만 생각이 깊은 우드스톡의 해결사다. 해결하기 어려운 일, 특히 금전적인 문제가 생길 때면 어김없이 존이 나섰다. 솔선하지 않으면 로니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지만. 기타의 씨드는 베일에 싸인 쿨가이인데 존이 생각하기에 씨드는 이모우(emo) 감성에 심취한 찐따였다. 로니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마지막에 영입한 멤버였지만 대화에 참여하는 일이 적었고 연주 실력마저 형편없는데다가 심지어는 의욕도 없어 보였다. 표정이 늘 구겨져 있어서 가끔 불시에 뒤통수를 갈겨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 녀석이라고 존은 속으로 평했다.
“흥분하지 말라구, 악동 형제!”
어느새 달려나간 로니가 씨드의 어깨에 팔을 감고 돌아왔다. 존은 씨드가 더욱 거슬렸다. 로니가 친한 척을 하는데 행주라도 씹어 문 듯한 얼굴이라니. 한편 웃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빌리가 입을 열었다.
“로니 말이 맞아, 맨. 밤은 이제 시작됐고 우리는 무대가 달아오르길 기다려야만 해. 그때까지 블루스 타임이나 즐기자고.”
빌리는 장사진을 이룬 사이드 코너로 발길을 옮겼다. 우드스톡은 인파를 헤치며 걸었다. 처음 겪는 록의 향연은 소년들이 상상하던 것과 차이가 컸다. 그들이 접한 해외 록페스티벌 실황 영상에서는 공연에 몰입한 뮤지션과 광분한 군중만을 볼 수 있었다. 먹을거리와 상품을 부려놓은 부스가 이렇게 많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패션, 술, 담배뿐만 아니라 록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영화 배급사의 부스마저 네온 간판을 내걸었다. 존은 예루살렘에 입성한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분노를 떠올렸다. 유대민족의 명절인 유월절을 맞아 대성전을 찾은 순례자들로 예루살렘이 문전성시를 이룬 때였다. 종교인과 상인들은 대목을 놓치지 않고 순례자들을 열렬하게 등쳐먹었고 그 행태에 그는 경악했다. 너희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마가복음 11장 17절 말씀. 존이 성경에서 가장 사랑하는 구절이었다. 지저스에게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했겠는가. 그는 밧줄로 만든 채찍을 들고 성전 정화에 착수했다. 성스러운 일격에 얻어터지자 소를 파는 장사꾼은 왕방울만 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고 양을 팔던 이는 가없이 온순해졌다. 비둘기 장사꾼을 지붕 위로 날려버린 직후 지저스는 눈에 띄는 테이블이란 테이블은 싹 뒤집어엎어버렸다. 그가 누구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기 전까지 묵묵히 목수 일에 매진한 사내였다. 사실상 막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질의 지저스에게 그 정도 실력행사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록킹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으리라고 존은 생각했다. 어차피 신화는 폭거다. 저 대형 브랜드의 소굴이 된 성전을 정화하기 위해 우드스톡이, 정확히 말하자면 로니가 나섰다. 마이 로드, 용서하소서. 존은 신실한 개신교도였지만 로니를 우상으로 숭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로니는 끝내주는 슈퍼스타였으니까.
로니에 대한 존의 내적 간증이 무르익어갈 즈음 우드스톡은 행진을 끝냈다. 이제 때가 됐음을 예감한 그들은 잠자코 군중과 무대를 응시했다. 소년들은 각자 조금은 비슷하고 다소간은 다른 생각에 잠겼다. 한심한 꼴이군. 한방 먹여주지. 로니는 비웃음을 지었다. 그는 60 ~70년대 영미권의 록을 숭배했다. 그 시절 이후의 음악은 일부러라도 듣지 않았는데 특히 브릿팝이라 일컫는 마시멜로우 혹은 다크초콜릿 같은 감수성의 영국발 모던록 계열은 그가 가장 혐오하는 장르였다. 그런 음악은 게이들이나 듣는 것이라 여겼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공연 중인 모던록 밴드의 음악을 몰래 들어오던 존으로서는 멜로디에 귀 기울이고 있는 티를 내지 않는 것이 곤혹스러웠다. 자칫하면 로니에게 두들겨 맞고 버림받을지도 몰랐다. 잠시 후, 무대에 올랐던 그룹이 환호를 받으며 퇴장했다. 그리고 인터벌에 들어가면서 조명이 어두워졌다.
“리더, 시작하는 거야?”
빌리가 로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로니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동료들을 돌아봤다. 씨드를 제외한 세명의 소년은 상기된 안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제 와서 이들이 목표하는 바를 밝히기가 너무 늦은 걸지도 모르겠다. 우드스톡은 무대를 탈취할 작정이었다. 세계적인 뮤지션의 악기와 마이크를 빼앗아 자신들의 존재를 전세계에 알릴 속셈이었다. 결성한 지 반년이 가까스로 넘었고 그나마 카피한 곡이라고는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뿐인, 애송이라고 말하기도 송구한 천둥벌거숭이들임을 감안하더라도 지독한 발상이었다. 이 믿기 힘든 도전은 과감함과 무모함을 구분하지 않는 일을 남자다움이라 여기며 남자다움이야말로 록커의 소양이라고 굳게 믿는 리더 로니의 구린내 나는 아이디어였다. 처음 로니의 제안을 접했을 때 존은 탄성을 질렀다. 이 얼마나 도량이 큰 사내란 말인가! 덧붙여 빌리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웃으며 까짓것 리더가 원한다면 따라가도록 하지 따위의 멘트를 읊었고 씨드는 낯빛을 바꾸긴 했으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록밴드 우드스톡이 만취한 채 록페스티벌에 난입하게 된 정황이었다.
무엇인가 시작될 참이었다. 마지막 쿼터의 킥오프를 앞두고 상대를 1점차로 맹추격 중인 슈퍼볼 선수들처럼 서로를 단단하게 붙든, 역시나 씨드를 제외한 소년들은 다음 순간 예기치 못한 충격을 받고 나가떨어졌다.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일단의 무리가 그들을, 그중에서도 로니를 거칠게 부딪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거기다 하필이면 가격당한 부위가 로니의 어깨였고 그게 또 하필이면 왼쪽이었다. 맙소사, 왼쪽 어깨! 로니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낸 존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 직감했다. 중학생 때 이미 유망주로 꼽혔으나 왼쪽 어깨에 상처를 입어 유도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로니가 이 갑작스러운 접촉으로 인해 느꼈을 스트레스와 통증은 범인이 감히 헤아리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존은 자신을 건드린 땅딸한 사내에게 다가가 헤이, 듀드,라고 말을 건 뒤 그를 바닥에 냅다 메쳐버린 로니를 말릴 수 없었다.
밤하늘에 폭죽이 터졌다. 폭발과 함께 밝은 빛이 쏟아졌고 빛줄기가 땅바닥에 내리꽂힌 남자의 민머리와 민소매 가죽조끼 그리고 가죽바지 곳곳에 박힌 징과 체인을 흉흉하게 비추었다. 로니는 고개를 들었다. 폭죽은 가죽과 징과 체인을 몸에 두르고 입술과 귀에 피어싱을 한 일곱 덩치의 모히칸 위에서 화려하게 점멸했다.
록 앤드 롤. 그 순간 로니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였다.
한편 조명이 꺼진 무대의 세팅이 대규모로 재구성됐다. 다음 무대는 특별했다. 세계 최정상 밴드가 등장할 차례였다. 이 록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였다. 얼마나 대단한지 오직 그들만을 위한 대형 리프트가 지난 새벽에 미리 설치되었을 정도였다. 리프트는 성인 여섯명 정도는 너끈히 실을 수 있는 발코니 같은 형태로 아주 높고 먼 곳까지 사람을 이동시키는 장비였다. 보통은 전문적으로 전봇대를 타는 사람이 사용하거나 포장이사 업체를 불렀을 때나 볼 수 있을 테지만 록 스테이지에서는 더없이 화려하고 웅장한 장비가 되곤 한다. 자, 힌트를 주겠다. 기타는 여섯 현으로 인간성을 표현한다. 이 밴드에서 리드 기타를 맡은 남자는 이런 어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알 것 같지 않나? 그렇지 않다면 이 그룹의 보컬이 액슬 로즈나 리엄 갤러거와 비견될 만큼 막무가내인 성격으로 유명하다면 어떤가. 그리고 파워풀한 흉성과 서정적인 클린 보이스를 자유자재로 뽑아내는 실력자라는 것까지 밝힌다면 아마 모르기가 더 힘들 것이다.
바로 그런 인물들이 싸우스 코리아의 오줌 같은 맥주를 들이켜며 동북아에 문화적 팻맨을 떨어뜨릴 준비를 끝마치고 있을 즈음 존은 땅바닥에 바짝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달리는 로니와 가죽 유니폼을 입고 그를 뒤쫓는 세기말 전사들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존은 동무들과 방역차를 쫓다가 홀로 뒤처진 꼬맹이가 된 기분이었다. 로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버렸고 추격자들에게 자신은 안중에 없었다. 바닥에 호되게 구른 통증이 엄습했다. 존은 별안간 기도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멘, 주기도문도 사도신경도 떠오르지 않았다. 신앙을 잃고 군중의 발밑을 뒹굴던 존은 자신을 굽어보는 존재를 깨달았다. 불시에 뒤통수를 갈겨버리고 싶은 얼굴을 하고 씨드가 그곳에 서 있었다. 댐 잇.
그래, 댐 잇. 그러고 보니 중요한 설명을 잊었다. 사실을 털어놓자면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은 실제로 서로를 부를 때 ‘요즘 어때, 맨?’이라는 식으로 말한다거나 길을 걷다가 겁나 큰 소똥을 밟고 난 직후 ‘이런 불쓋’이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내가 표기하는 말투와 호칭은 순전히 이들을 쪼다처럼 보이도록 만들기 위한 연출에 불과하다. 브릿팝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철 지난 감상주의와 혐오 발언을, 끔찍하기 짝이 없는 폭력성을 용서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단단히 시대착오적인 그들에게 내리는 심판이라고나 할까. 하하, 마더퍽커들 같으니라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예명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를테면 지금 가죽 유니폼 무리와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우드스톡의 프런트맨 로니의 이름은 블랙 사바스의 로니 제임스 디오에서 따왔다. 그렇다. 바로 그 디오 맞다. 무운을 빈다, 로니.
한편 슈거보이 빌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초짜 철학도처럼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당최 알 길이 없었다. 빌리는 로니와 함께 인파를 뚫고 추격자들로부터 도망쳤다. 그리고 길쭉한 다리로 가죽 유니폼들뿐만 아니라 로니까지 완전히 제쳐버리고 말았다. 추적을 피해 달리는 동안 휴대폰마저 잃어버린 터라 곤란한 상황이었다. 고심하던 빌리의 눈에 한 여성이 들어왔다. 왜소한 체구의 그녀는 비비언 웨스트우드가 좋아했을 법한 펑크룩 차림이었다. 빌리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것은 자신도 알지 못했던 취향을 관통한 외형 때문만은 아니었다. 웃고 떠드는 군중 속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금방 이별을 겪은 참이었다. 연인과 다툼이 일어난 표면적인 이유는 그녀의 복식 때문이었다. 그녀의 연인은 약도 없는 메탈 중독자였고 그녀가 치장한 펑크룩을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다. 반면 그녀가 잘 아는 외국 노래라고는 아버지가 권고사직을 받은 날 술김에 지하철 행상에게서 구매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골든 팝송 500선’, 그 CD에 수록된 발라드 넘버 몇곡뿐이었다. 말하자면 오로지 연인을 위해 그녀는 노력했다. 너는 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연인은 시종일관 그녀와 가까이 있기를 거부했다. 내가 이해하고 싶었던 건 개좆같은 록이 아니라 너야! 제법 록 스피릿이 담긴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애인은 예상치 못한 쌍욕에 상처를 입고 그녀를 떠나버렸다.
“도움이 필요해요.”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자신의 어깨를 덮은 커다란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키가 큰 빌리를 올려다보기 위해 경추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쳐들었다. 빌리는 매력적인 미소를 입가에 띠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셀폰을 잃어버렸거든요. 나를 도와요. 나도 당신을 도울게요.”
빌리 시언이라는 베이시스트를 아는가. 사람 좋게 생긴 얼굴로 베이스 기타를 유린하는 세계 최정상급 록 베이시스트다. 그의 특기는 오른쪽 손가락 세개를 이용한 현란한 질주형 주법이다. 어찌나 스피드광인지 피크를 꽂은 전동드릴로 연주를 할 정도다. 어쨌거나 그는 여느 세션맨들처럼 수강료를 받고 레슨을 하곤 했는데 하루는 수강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대들은 악기를 왜 배우지? 그러자 한 수강생이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 관해 늘어놓았다나 어쨌다나. 이에 빌리 시언은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유 아 어 라이어. 그럴 리 없어. 나는 여자한테 멋있어 보이려고 악기를 배웠다고. 아니지, 이 일화는 폴 길버트였던가? 어쨌거나 믿거나 말거나다.
애초에 빌리가 로니의 무모한 계획에 동참한 것도 순전히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함이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무대 위에 올라 자신의 비주얼을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쯤 얘기했으면 빌리를 어째서 빌리라 이름 붙였는지는 충분히 설명된 것 같다. 이 신속한 로맨티시스트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헤테로섹슈얼 레이디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버림받은 직후 홀연히 등장한 슈거보이에게 그녀는 복잡한 충동을 느꼈다. 어디선가 위잉위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빌리가 사랑의 전동드릴을 작동시키는 소리였다. 그녀는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빌리는 건치를 내보이며 미소 지었다. 이때 빌리의 머릿속에서 동료들에 관한 걱정과 무대를 탈취하는 목적 따위는 단숨에 증발해버렸다.
그즈음 존과 씨드 사이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다시 돌아가야 해.”
“어디로?”
“우리가 마지막에 모였던 장소 말이야.”
“그러니까 어디.”
존은 눈살을 찌푸리고 씨드를 노려봤다. 실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난생처음 접하는 무수한 인파가 수시로 자리를 옮겼다. 돌아갈 곳을 가늠할 수 없었다.
“기다리자. 로니가 돌아올 때까지.”
그 말을 듣고 씨드는 뒤돌아 걸음을 뗐다. 존은 서둘러 따라가 씨드의 어깨를 붙잡았다. 얇고 가벼운 몸이었다. 존은 용기가 솟았다.
“꼼짝 마, 씨드. 우린 자리를 지켜야 돼.”
“왜?”
“홀리 쓋, 금방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귀에 핫도그라도 박혀 있는 거 아니야?”
존은 생각했다. 이 썬 오브 어 비치가 오늘따라 왜 이리 말이 많지? 존은 눈에 힘을 실었다. 씨드가 반항적인 얼굴로 존을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존은 또 생각했다. 실력도 의욕도 없는 녀석에게 밀릴 수 없다. 하지만 어쩐지 어깨가 위축됐다. 저 스케어크로우처럼 깡마른 녀석이 어쩜 저렇게 눈빛이 사나울까? 한동안 눈싸움이 이어지다가 불쑥 씨드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이봐, 여기가 흡연 부스인 줄 알아?”
담배를 입에 문 씨드는 연기를 내뿜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 그루피지?”
존은 씨드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평생 접해본 적도 없는 단어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존은 그 말이 모욕적이었다. 그리고 기시감을 느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말이 하필이면 자신에 대한 비난일 것이라는 예감이 존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루피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었지만 무지를 고백하는 것은 더 큰 치욕이었다.
“너 같은 새끼란 뜻이야.”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씨드는 명백히 여성 비하적인 쐐기를 박은 뒤 몸을 돌렸다. 존은 함부로 꽁초를 버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씨드의 등을 바라봤다. 문득 존은 로니가 씨드를 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녀석은 진짜야! 진짜배기라고! 만약 지금이 70년대 영국이라면 퀸엘리자베스호 선상에서 「갓 세이브 더 퀸」을 연주하고 경찰에게 연행됐을 사람은 씨드 비셔스가 아니라 이 친구일 거야! 안 그래, 형제들? 술에 취한 로니는 그때도 씨드의 어깨 위를 팔로 감싸고 있었고 씨드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존은 그 장면이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불쾌했다. 존이 씨드에게 느낀 감정은 누울 자리를 페르시안 친칠라에게 빼앗긴 치와와의 기분과 흡사했다. 그러나 그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존은 씨드에 대한 불만만 키울 따름이었다.
실은 존 역시 씨드와 마찬가지로 로니에게 스카우트된 멤버였다. 존은 교회 청소년 찬양단에서 활동했다. 모태신앙인 존이었지만 주일마다 「부흥2000」이니 「로만 식스틴 나인틴」이니 하는 곡만 연주하느라 알게 모르게 신심마저 깎여나가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로니와 눈이 마주쳤다. 로니는 강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를 띤 채 가장 뒷줄, 좌우로 기다란 목제 의자를 혼자 차지하고 앉아 존을 주시했다. 존은 로니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는 유명인이었다. 럭비부 선배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근방에서 패싸움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나타나 전장을 누빈다는 얘기가 있었고 심지어는 돈을 받고 다른 학교의 싸움에 참가하는 용병을 자처할 정도로 피에 굶주렸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런 로니가 어째서 이곳에 나타나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인지 존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뭔지는 몰라도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존은 통한의 드럼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바로 그것이 로니의 마음에 쏙 들었다. 마침 로니는 실력 좋은 드러머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몸소 존이 다니는 교회를 찾은 것이었다. 전임 드러머가 로니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화근이었다. 몇번인가 바닥에 메쳐진 드러머가 그대로 밴드를 기어나가는 바람에 로니는 급하게 새로운 연주자를 구해야만 했다. 이봐, 넌 마치, 그러니까, 엄, 존 본햄 같은걸? 예배가 끝나자마자 존에게 건넨 로니의 첫마디였다.
존은 ‘엄’ 존 본햄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난데없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존은 바로 그 로니에게 인정받은 것이었다. 그날부로 존은 우드스톡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로니는 존을 본격적인 록의 세계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존은 나중에야 존 본햄이 전설적인 그룹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대면 이후로 존 본햄이라는 이름이 로니의 입에 오른 적은 없지만 존은 최선을 다했다. 합주를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틈에 레드 제플린의 곡 중 드럼 플레이가 가장 돋보이는 곡으로 정평이 난 「모비 딕」을 연주해서 로니에게 어필하기도 했다. 한번 더 로니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하지만 쉴 때는 조용히 있으라는 핀잔을 듣는 게 고작이었다. 애석하게도 로니는 존과의 첫 대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을 구원한 인사말이 실은 로니가 알고 있는 드러머가 존 본햄뿐이었기 때문에 튀어나온 것이었다는 사실을 존은 먼 나중에야 알게 된다. 그래, 그랬다.
씨드를 바라보는데 그날의 로니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존은 씨드를 뒤쫓았다. 따라와. 그런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드디어 헤드라이너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대 앞에서 환호가 터져나왔고 그 사이에 섞인 씨드와 존은 고양되었다. 불꽃같은 도입이었다. 그들은 경쾌한 기타 리프로 약 한시간 반 뒤 록 음악사의 새로운 신화가 될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씨드는 군중을 헤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고 존은 거리를 유지하며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중간도 못 가서 씨드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군중들 사이에 사람으로 이루어진 벽이, 거대한 원형의 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원진의 가장 앞줄을 맡은 사람들이 자세를 낮춘 채 팔을 벌리고 막아섰다. 뒷사람들이 섣불리 앞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주제에 본인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만 같은 태세였다. 원진 안으로 깃발을 든 무리가 빠르게 빙빙 돌며 뛰었다. 웃통을 벗은 사람도 있었고 바지까지 벗은 사람도 있었으며 얼굴과 몸에 온통 페인트를 칠한 사람도 보였다. 곡은 클라이맥스를 앞두고 고조되었고 군중의 목소리가 그것을 따라 높아졌다. 집약된 한순간, 모든 것이 절정에 달했다. 군중은 니트로를 폭발시킨 험비처럼 원진 안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씨드와 존이 난생처음 겪은 ‘슬램’이었다.
존은 전쟁이 시작된 줄 알았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패싸움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맞은편에서 달려드는 낯선 사람을 향해 죽일 듯이 몸을 부딪쳐오는 이 군중의 기행에 존은 기함했다. 그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웃었다. 심지어 어느샌가 무리에 끼어서 낯선 이들과 부대끼고 있던 씨드마저 입가에 피를 묻힌 채 웃었다. 존은 씨드가 웃는 모습을 처음 목격했다. 존이 아는 씨드의 감정표현은 우울 아니면 불만이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끝난 뒤 몇몇은 어깨동무를 하고 리듬에 맞춰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했다. 씨드가 누군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방방 뛰고 있는 모습 역시 생소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잠시 후 몇몇 사람이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기다란 행렬이 되었다. 수련회 레크리에이션 시간의 꼬리잡기 놀이처럼 그들은 인간 기차를 만들고 어딘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씨드는 그것을 타고 떠나고 있었다. 존은 씨드의 등이 멀어지는 것을 하릴없이 바라봤다. 존은 씨드가 가는 곳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행복의 나라로!
존은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홀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존은 씨드의 그림자를 쫓아 군중을 헤쳐 나갔다. 인간 기차 행렬의 꼬리는 보이지 않았다. 무대와 가까워질수록 인구밀도가 높아졌고 점차 앞을 향하기가 어려웠다. 술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슬램에 휘말려 집단구타를 당하듯 정신없이 밀쳐졌다. 존은 인간의 물결에 밀리고 밀려 무대 바로 앞쪽, 리프트가 설치돼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척에서 불세출의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충격받았다. 존은 무대와 관중의 열기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로니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인파에 몸을 숨기고 게릴라처럼 적들을 제압할 요령이었지만 결국 로니는 한시간도 훨씬 넘는 숨바꼭질 끝에 머천다이징 부스 앞에서 가죽 유니폼 둘에게 배후를 잡히고 말았다. 뒤통수를 가격당한 로니는 반쯤 정신을 잃었다. 그들은 그로기에 빠진 로니를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로니는 스모킹 에어리어에 도착했다. 최종 보스가 담배를 피우며 로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놈이 망쳤어. 무슨 말인지 이해해?”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스킨헤드가 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공연장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음향을 뚫고 스킨헤드의 저음이 또렷하게 들렸다. 로니는 직감적으로 그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스킨헤드는 허리를 곧게 세우며 얼굴을 찌푸렸다. 로니가 아까 바닥에 내리꽂았을 때 심각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로니는 속으로 자신이 상대해야 할 숫자를 여덟에서 일곱으로 고쳤다. 이 정도 위기는 친구처럼 늘 곁에 있었다. 로니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끌려오는 동안 컨디션을 조금 회복했다. 기회를 엿봐 저 보스로 보이는 스킨헤드에게 달려들어 「언더 씨즈」의 스티븐 씨걸처럼 목을 꺾어버리리라.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 감긴 체인을 재빨리 풀고 양옆에 버티고 선 두 놈의 얼굴에 휘두를 생각이었다. 기세가 꺾인 잔반들을 요리하는 것은 존에게 맡겨도 어렵지 않을 일이었다. 업어서 메칠지 손바닥으로 후려칠지 하는 고민만이 남을 터였다.
“책임을 져야겠지.”
스킨헤드가 이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자 가죽 유니폼들이 로니에게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노 프로블럼. 렛츠 록.
한편 공연은 막바지였다. 단 한곡만이 남았다. 문제를 하나 더 내겠다. 팀의 리더이자 퍼스트 기타를 맡은, 그러니까 에디는 연인과 함께 만월의 바다를 알몸으로 즐겼던 경험을 모티프 삼아 이 곡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오아시스의 「원더월」과 비견되기도 하는 이 곡은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연인들이라면 한번쯤은 모텔의 욕조든 소금쟁이가 떠다니는 개울가든 함께 발가벗은 몸을 담그고 맞지도 않는 음정으로 듀엣을 불러본 경험이 있다는 소문으로도 유명한, 그래, 바로 그 곡이다. 바로 그 명곡이 이들의 고정 피날레였다. 덧붙여 이 공연의 방점을 찍기 위해 기타 솔로 씬에서 에디가 리프트 위에 오를 예정이었다. 에디는 관중의 머리 위를 돌다가 가장 높은 곳, 달과 가까운 위치에서 연주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인트로가 시작되고 나서야 존은 정신을 차렸다. 술기운과 공연에 취해 있느라 본연의 목적을 완전히 잊었다. 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로니가 실망하겠지? 흠씬 얻어터지고 쫓겨나겠지? 지금이라도 무엇인가 해야 해! 정신을 차렸다는 말은 실은 거짓이었다. 취기가 뒤늦게 올라오는 체질이었던 존은 분별력을 완전히 잃었다. 존의 눈에 에디가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판타스틱한 기타 플레이를 이어가며 리프트를 향했다. 존은 마침 펜스를 앞둔 위치였다. 그 순간 모든 군중이 에디에게 주의를 빼앗겼다. 심지어 경호원들조차 말이다. 존이 펜스 위에 올라섰다. 곡이 클라이맥스를 향했고 에디가 리프트에 두 발을 디뎠다. 그가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공에 떠오르는 일은 적어도 그때만큼은 희귀하지 않았다. 같은 순간 이 페스티벌에서 지상과 떨어진 채 움직이는 사람이 에디 말고도 두명이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한명은 예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누구일까.
씨드였다. 씨드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외부에 온전히 맡겼다. 등 밑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떠받치고 어디론가 옮겨가는 감각은 경이로웠다. 광주리 안에 몸을 웅크리고 물길 위를 천천히 떠내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씨드는 자신이 불빛을 좇는 오징어처럼 스테이지를 향하려 했던 까닭을 드디어 깨달았다. 찾았다. 내가 있을 곳. 경이를 체험하고 있는 것은 씨드뿐만이 아니었다. 손을 뻗어 씨드의 몸을 지탱하고 옮기는 관중 역시 놀라운 기분에 사로잡혔다. 올라선 지 30초도 되지 않아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보통의 다이브와 달랐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씨드의 몸은 갓난아기처럼 가볍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그의 몸은 땀 대신 냄새나지 않는 물파스라도 묻어 있는 것처럼 시원했다. 씨드의 근처에 있던 모든 관중이 그에게 손을 뻗고 싶어했다. 지금 연주되고 있는 곡이 특별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씨드로부터 신성을 느꼈다. 이 녀석은 진짜배기야. 로니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당연하지. 이 녀석은 전생에 진짜 씨드 비셔스였으니까.
“보이. 이 곡을 좋아하나?”
스킨헤드가 물었다. 로니는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뭇매를 맞은 직후였기 때문에 대답하기 곤란했다. 누군가 로니의 입에 담배를 물리고 불을 붙였다. 말보로 레드였다. 역시나. 그것은 록커의 담배였고 로니 역시 말보로 레드를 피웠다. 로니는 깊숙하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러자 방금까지 폭격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만 들리던 귓속으로 에디의 기타 솔로가 파고들었다. 로니는 피떡이 된 눈을 억지로 뜨고 달 가까운 곳으로 승천하는 리프트를 바라보았다. 멋지군. 내가 원하던 광경이야.
“방금 좋아졌습니다.”
스킨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리고 그는 아주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 그 소리가 로니에게는 또렷했다.
“이제 마저 맞자.”
리프트가 높이 솟아오른 직후 에디는 이 허공을 부유하는 발코니에 매달린 크레이지 코리안을 발견했다. 그는 예정에 없던 비상사태에 당황했다. 당장 사람이 죽게 생겼다. 공연을 멈춰야 해. 더군다나 지금 떨어지면 밑에 있는 팬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겐 마이크가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깁슨 레스폴 커스텀뿐이었다. 몇몇 관중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정작 리프트를 조작하는 스태프는 정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에디와 존은 더 높은 곳을 향했다. 구해야 해!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지금 일생일대의 필(feel)에 젖어 있었다. 기타 지판과 손끝이 달라붙는 감각, 스피커로 출력되는 아름다운 사운드가 연주를 멈추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찰나였지만 에디는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기분을 맛보았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할 것 같다는 예감. 그리고 그는 기적적인 기지를 발휘했다.
에디는 몸을 낮추고 오른손을 뻗어 존에게 내밀었다. 존은 에디의 도움으로 리프트 위에 올라섰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존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기타 연주가 끊이지 않았지? 의문은 어렵지 않게 풀렸다. 존이 주섬주섬 안전한 위치로 올라오는 동안 이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는 왼손가락만을 사용해서 지판을 누르고 당기는 탭핑 주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기막힌 순발력이었다. 기타의 톤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부득이함이 따랐지만 관중은 이 무대를 위한 특별한 편곡이라 여겼고 심지어는 그 연주마저 아름다웠다. 공연이 끝나고 며칠 뒤에 있던 인터뷰에서 에디는 만약 죽기 직전에 떠오를 것 같은 장면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일 것이라 회고한다. 그리고 그는 머지않아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도로변에서 호세 곤잘러스라는 얼뜨기 히트맨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다. 머리와 가슴에 각각 한발씩 관통당하고 마는데 즉사해버리는 통에 주마등이 스치거나 속 편하게 회상 따위를 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팬들은 상상한다. 그가 죽는 순간 떠올렸을 정경을. 소년 하나를 달고 밤하늘의 발밑까지 올라 달빛을 받으며 연인과의 추억이 담긴 곡을 연주하는 에디 리의 심정에 관해서 말이다.1
신화는 여전히 폭거다. 그러나 모든 폭거가 신화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신화가 되는 폭거는 무엇인가. 신 내지는 반(半)신, 영웅이 일으켰거나 혹은 그에게 일어나는 폭거일 때야만 비로소 신화는 탄생한다. 그러므로 밴드 우드스톡의 폭거는 시작부터 무의미했다.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 객기를 부린 한무리의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존의 기행은 그나마 세계적인 한 밴드가 록 음악사에 남길 전설적인 퍼포먼스의 양념이 되었다. 리프트에 매달린 어글리 코리안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유튜브에서 조롱 섞인 화제가 되었을 뿐 존과 우드스톡에게 어떠한 영광도 돌아가지 않았다.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온 존은 경호원들에게 들려서 손수 페스티벌 입구까지 모셔져 퇴장당했다.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은 순전히 에디의 호의 덕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우드스톡은 합주실에 모였다. 로니는 팔에 깁스를 하고 전신에 골고루 붕대를 두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순간을 봤어야 해, 형제들. 그 바스타드들을 내가 어떻게 제압했는지를 말이야. 정말이지 끝내주는 밤이었다구.”
로니는 평소보다 들떠서 영웅담을 늘어놓았지만 그의 형제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존마저도 로니를 심드렁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늘 웃는 얼굴로 로니의 얘기를 들어주던 빌리의 눈동자에 슬픈 기색이 어려 있었다. 다만 꺼져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그래, 끝내주는 밤이었지.
연습이 시작되자 우드스톡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평소보다 합주가 더 엉망이었던 것이다. 순전히 씨드 때문이었다. 씨드는 코드를 바꾸고 스트로크를 하는 박자를 단 한 소절도 제때 맞추지 못했다. 평소에도 실력이 형편없긴 했으나 유독 심각했다. 억지로 연주를 이어가던 씨드는 넥을 잡고 기타를 바닥에 패대기치기 시작했다. 기괴한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씨드는 새빨개진 얼굴로 기타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워낙 근력이 약한 탓에 기타는 속 시원하게 부서지지도 않았다. 씨드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날 그는 어느 때보다 연습을 많이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실력이 뒷걸음질 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전생에 씨드 비셔스였기 때문에 음악에 소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지친 씨드가 기타를 손에서 놓았다. 로니가 입을 크게 벌린 채 씨드를 바라보고 있을 때 존이 입을 열었다.
“그만둘래.”
로니는 존에게 고개를 돌렸다. 존은 로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모던록이 좋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로니는 평생 기르던 반려동물이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갈 때가 왔어,라는 말을 남긴 채 창문 밖으로, 달나라로 아주 날아가 버리는 뒷모습이라도 목격한 듯한 얼굴을 하고 얼어붙었다. 한가지 깨달은 사실은 이들이 더이상 자신의 형제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 형제. 자신의 목줄을 단단히 동여맬, 폭풍이 와도 꺾이지 않을 단단한 나무. 그런데 어느날 뒤돌아보니 나무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다. 로니는 덜컥 겁이 났다. 홀로 남겨진 것 같아서였다. 화가 끓어오른 로니는 앞에 있던 마이크 스탠드를 발로 쳐서 쓰러뜨렸다. 스탠드에 꽂혀 있던 마이크가 바닥에 부딪히면서 둔탁하고 짧은 하울링이 스피커를 통해 튀어나왔다.
“씨팔, 바른대로 지껄여봐. 대체 내가 몰매를 맞고 있을 때 뭘 하고 있었지? 너희들 전부!”
빌리가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D코드로 시작해서 A로, 그리고 Bm와 G로. 아주 평이한 템포로 반복해서, 차분하게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베이스 줄을 번갈아 퉁겼다. 로니는 모르는 밴드의 모르는 곡이었지만 존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유투의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였다. 빌리가 연주를 멈추고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빌리의 눈가가 젖어 있단 사실을 세 소년은 알아차렸다.
“난 셀폰을 잃어버렸어. 사랑이 시작됐고 끝이 났지. 그녀의 여자친구가 그녀를 되찾아갔거든. 결국 셀폰을 찾지는 못했어. 그게 전부야.”
“달 밑에 있었어.”
로니가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씨드가 입을 열었다. 씨드는 손가락으로 존을 가리켰다.
“저 녀석이랑.”
로니는 아주 느린 속도로 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존은 로니를 바라보지 않았다. 존은 자신을 가리킨 손을 거두지 않은 씨드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존은 생각했다. 평생 저 눈빛을 잊지 못할 거야.
리프트에 매달린 직후 존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로니였다. 스킨헤드가 로니를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존은 놀라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 존은 빌리를 발견했다. 빌리는 한 여자와 블루스 타임을 갖고 있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씨드를 바라봤다. 씨드는 팔을 좌우로 벌린 채 눈을 감고 군중들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성스러운 광경이었다. 신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성자를 옮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씨드가 눈을 떴다. 씨드의 눈에 달이 들어왔다. 그리고 허공에 매달린 존을 발견했다. 먼 거리였지만 존은 씨드의 눈동자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눈동자 안에 비친 달도 보였는데 단지 술에 취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날 밤은 기적이 허락된 밤이었다. 씨드는 미소 지으며 존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존은 이제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떤 것도 믿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폭거의 찰나였다. 존의 개인적인 신화는 그럴듯한 숭배 대상도 메시지도 없었다. 그러나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존재하는 것처럼 존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마치 한번 죽고 다시 태어난 듯한 감각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남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을 테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태어난 일에 감사했다. 잠시 후 존은 리프트 위에 올랐다. 모든 일이 끝이 나고 기계장치가 밑으로 향하고 있을 때 에디가 말을 걸었다.
아 유 오케이, 보이?
암 낫 오케이. 벗. 암 오케이.
존과는 무관한 신화가 된 기타 히어로가 웃어 보였다.
아이 노우. 댓츠 쿨, 맨.
합주실 안에 흐르는 정적이 우리를 짓눌렀다. 전혀 새로운 중력처럼. 벽 너머로 다른 팀이 연주하는 소리가 강 건너에서 열린 페스티벌의 음악처럼 들려왔다. 빛을 잃고 우뚝 선 우드스톡은 마치 폐장한 유원지의 대관람차 같았다. 가장 먼저 밖으로 나선 것은 나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겪은 신화의 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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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 리와 그의 밴드 그리고 음악에 관해 해럴드 사쿠이시(Harold Sakuishi)의 저서 BECK: Mongolian Chop Squad 를 참고했음을 밝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