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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조명

 

시와 일과 슬픔과 소란과

 

 

서효인 徐孝仁

시인.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등이 있음.

seohyo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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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이어폰을 꽂은 채 줄곧 어슴푸레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군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모르는 사이」 부분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창밖을 어슴푸레 내다보는 시인 대신, 창문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인은 조금 겸연쩍어했던 것 같다.

저희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죠. 맞아요, 그런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이렇게 시작했다. 문학판에서의 인터뷰라는 것이 보통은 안면이 있는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하며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러다 술도 먹고 늦은 시간까지 같이 놀면서 무어라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있을 것이라 오랜 시간 믿어 의심치 않아왔던 이른바 문학적 분위기를 함께 들이마신 후에 헤어질 것이고 공식적으로 지면에 나갈 말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유능한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말다운 말이 되겠지만, 애니웨이 문학은 영원할 것이고 그 둘은 그날의 인연으로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와 같은 전개로 흘러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 둘은 처음이었고, 우리가 그나마 아는 것은 서로의 시가 전부였다. 내가 박소란의 시를 좋아해왔음은 두번 말하기 아까울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맞다, 그런 것 같다.

동갑내기 시인을 인터뷰하는 데 모종의 부담감을 느낀 것은 단순히 그와 내가 초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창비 2015)과 두번째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의 해설이 더불어 말하듯 박소란은 “체념과 고통의 등고선으로 가득 찬 일상을 그려낸”(남승원) 시인이고, “과묵하고 심지가 굳어 보”(장이지)이는 시인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마음속에 좀처럼 열리지 않는 슬픔의 꾸러미를 간직한 채, 밤새워 고통에 겨워하며 어쩔 수 없이 또한 하릴없이 언어라는 모양새로 시를 만들어내는 시인이자 괴로움과 설움 모두 쉽사리 발설하지 않고 하나의 묵직한 태도로 간직한 시인이 내가 그린 박소란의 이미지였다. 과연 시인 박소란은 말이 없는 사람일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시를 쓰다보면 간혹 예기치 못한 호사를 누리게 될 때가 있다. 단지 쓰고 있었을 뿐인데, 그로 인해 자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좋은 자리에 초대받거나 좋은 기회를 얻기도 한다. 주변머리가 워낙 없는 편인데,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긴 시가 자꾸만 어떤 길로 나를 이끄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한권의 시집을 더 냈을 뿐인데, 덕분에 서효인 시인과 인사를 나누게 됐고 귀한 지면도 얻게 됐다. 생각할수록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시를 쓰다보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 대체로 시를 쓰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고, 시가 어딘가로 이끄는 일이다. 순전히 편견이지만 시 때문에 괴롭다 고통스럽다 말하는 사람보다 시 덕분에 다행인 삶을 산다는 시인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시는 잘못이 없다. 시는 정말로 잘못이 없다.

 

사람을 묻은 사람처럼

사람을 묻고도 미처 울지 못한 사람처럼

 

쉼 없이 공중을 휘도는 나비 한마리

그 주린 입에

상한 씨앗 같은 모이나 던져주어요

 

죽은 자를 위하여

 

나는 살아요 나를 죽이고

또 시간을 죽여요

—「벽제화원」 부분

 

모르는 척 짐짓 물어보았다. 벽제에 꽃집이 많은지.

 

당연히 벽제에는 화원이 많다. 용미리라고, 거기에 시립묘지가 있다. 그곳에 자주 가는데, 가서 보면 화원들이 굉장히 많고 이름도 다양하다. ‘벽제화원’이라는 가게가 있을 법도 한데, 정확히 어떤 상호를 따온 것은 아니고 그냥 벽제에 있는 그 무수한 꽃집들을 생각하면서 썼다.

 

사실 나로서는 벽제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벽제갈비’이고 하나는 박준 시인의 “만약 다시 벽제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최대한 아주 먼 미래였으면 한다”(『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난다 2017, 38면)라는 문장인데 박소란으로부터 하나의 이미지가 더 생긴 셈이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갈비 이미지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무색무취한 프랜차이즈의 미감처럼. 우리 그러지 말고 진짜 벽제를 이야기하자.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당신의 슬픔이, 혹은 시가, 또는 시가 가져다준 지금의 행운과 그 사이사이의 고통이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내게 벽제는 친근한 곳이다. 십오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근처에 납골묘가 있다. 누구에게든지 어머니란 각별하기 마련이지만, 내게 어머니는 조금 더 유별난 존재였다. 분신 같았다고 해야 할까. 꽤 오랜 시간을 어머니와 단둘이 보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스물네살이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치기 어린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의 내 삶은 덤이라는 생각. 아마도 감당할 수 없는 자책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떠난 후 며칠 만에 빈방에 들어 불을 켰을 때, 그때 묘한 안락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아, 마침내 나도 빛을 가졌구나, 하나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의 삶을 얻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괴상한 자책이 이후 내 삶에 끊임없이 섞여들었던 것 같다. 뭐랄까, 적당히 망하고 적당히 깨지는 편이 마음 편하달까. 이 이상한 기분이 내가 삶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이다. “나는 살아요 나를 죽이고/또 시간을 죽여요”라고 썼듯이. 하지만 나는 너무 멀쩡히 잘 살아왔고, 살고 있다. 묘하게도 그런 방식이 나를 진정시켜왔는지도 모른다.

 

왼쪽부터 서효인 박소란

왼쪽부터 서효인 박소란

 

시작부터 다소 본격적이었다. 그간 상재한 두권의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슬픔’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그 슬픔은 덤인 삶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덤이기에 바라볼 수 있는 삶의 슬로모션. 거대한 슬픔 앞에서 내 삶을 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덤으로 생각할 리 없다. 덤이 아닌, 삶의 본체에, 슬픔이 거기 있을 것이기에 시인은 그저 관조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꽃을 사서 무덤에 놓고 뒤돌아서는 사람이 아닌, 그 앞에서 죽거나 사는 삶이 된다. 울거나 웃는 사람이 된다. 있거나 없는 검정이 된다. 덤이라서, 더욱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바로 그 슬픔 앞에서. 그가 첫번째 시집에 실린 시 「용산을 추억함」을 쓰고 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덤을 살아가는 이에게 세계의 슬픔은 더욱 무거워지지 않았을까. 혹은 휘도는 나비처럼 날아갔을까.

 

십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은 더 복잡해졌다. 그간 제2, 제3의 ‘용산참사’라 할 만한 일들, 크나큰 사회적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슬픔의 무게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다만 그걸 느끼는 우리의 감각이 무뎌졌을 뿐. 언제부턴가 우리는 슬픔을 온전한 슬픔으로 받아안는 일에 굉장한 피로를 느끼게 된 것 같다. ‘좋아요’나 ‘싫어요’를 벗어난 복잡한 감정을 견딜 여력이 더는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결국 우리를 괴물로 만들어버릴까 두렵다. 가족을 잃고 사투를 벌이는 이들 옆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 여는 파티처럼. 이런 게 슬픔의 결여가 낳은 괴물이 아니라면 뭘까. 다행히 내가 아는 시는 그 무엇보다 ‘감정’의 장르다. 무용하지만, 그것을 읽는 이를 지독히 슬프게, 또 아프게 만들 수 있다. 슬픔이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도록 하는 데 시를 쓰는 내가 어떤 작은 역할이나마 보탤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시가 어렵다고 한다. 서정적인 시와 난해한 시, 전통적인 시와 실험적인 시를 불문하고 시는 어려운 장르가 되었다. 시는 ‘좋아요’와 ‘싫어요’ 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좋음과 싫음 안에 속한다고 믿었던 모든 감정과 감각을 두 국가의 영토 바깥으로 독립하게 한다. 해방케 한다. 사유를 냉전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니까 박소란의 슬픔은 좋음도 싫음도 아닌, 그 바깥을 유영하며 타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슬픔은 되돌아가지 않았네

 

얼마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는, 그 시무룩한 얼굴을 데리고서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쾅쾅 두드렸네

—「감상」 부분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기분이 그럴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소중하고 중요해서 슬픔의 분량과 기준을 정해놓고 강제하려 한다. 어떤 슬픔을 두고 그건 지나치다고 말한다. 깊은 애도를 놓고 조금 찜찜하다 고백하기도 한다. 시인에게 그러니까 슬픔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끈질기게 붙잡고 물었다.

 

슬픔이나 울음은 내가 가장 신망하는 ‘시적 언어’라 할 수 있다. 한때 나는 누군가 왜 시를 쓰는가 하고 물어올 때마다 ‘울고 싶어서, 펑펑 울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보잘것없는 감정적 토로가 시의 힘을 빌리면 그 이상의 무엇으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거다. 특히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 이후 남아 살아가는 일에 대해 오래 생각해온 나는 슬픔이야말로 산 자와 죽은 자가 투명하게 교신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다. 그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내게 슬픔은 떠난 존재를 기억하는 일, 그 존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에 가깝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하나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 옷만 갈아입었을 뿐 속은 같은 몸체인 질문을 여럿 던진 이유는 이 시인이 가진 보기 드문 지속성 때문이다. 많은 시인이 세상이 알아주든 아니든 상관없이 시집과 시집 사이 변화에 대한 강박에 시달린다. 특히 첫번째와 두번째 사이에서 그 정도가 최대치일 것은 일견 자연스럽기도 한데, 그에게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은, 자신만의 시를 쓰겠다는 의지로 바뀐 듯해 놀랍다.

 

내게 어떤 유의미한 지속성이 있기는 한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단지 나는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 자연스러움이 나를 서서히 진전시켜 궁극에는 어떤 끝으로 데려다주지 않을까. 새 시집을 준비하는 내내 염려스러웠는데, 나도 모르게 남의 옷을 주워 입고 내 옷인 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 새로운 무언가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지금의 나를 지키고 싶다. 내 본연의 리듬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가고 싶다.

 

사이즈도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은 채, 그것이 남의 옷인지도 잊어버리고 뻔뻔스레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한바퀴 돈 건 아닌지, 그 360도 회전을 모두가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마음은 두번째 책을 낸 작가의 통과의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경우에는 점잖은 겸손이다. 자연스러운 것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를 만나는 동안 그 일은 가능하게 느껴졌다. 다른 인터뷰를 보니 시인은 본인더러 무덤덤한 사람, 무난한 사람이라 말해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실제로 무난하고 또 무던한 편이다. 그렇지만 그런 내게도 분명 어딘가에 예민한 구석이 있기는 할 것이다. 설사 그런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되도록 내색하고 싶지는 않다. 튀어 보이거나,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나는 무던한 척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이길 원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 시도 그런 게 아닐까. 글은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쓴 사람을 드러내게 마련이니까. 아주 무난하게 읽혀도 좋다. 대체로 별다른 게 없다고 여겨진대도 괜찮다. 그러함에도 아주 가끔 나와 꼭 닮은 독자가 있어, 익숙한 것들 속에 웅크린, 조금은 대수롭다 할 만한 지점들을 포착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고백도 덧붙여주어서 다행이었다. 점잖은 고백과 친근한 투정 그 어디쯤의 이야기일 테지만.

 

근데 한편으로 두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 제 또래 혹은 더 어린 시인들이 쓰는 어떤 참신한 발상 같은 것에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서 내 것이 내 것답지 못하게 변했을까 두렵기도 했다. 나는 차라리 내가 다른 시인의 영향을 안 받았으면 한다. 유행이나 첨단도 내게는 안 맞는 옷 같다. 가끔 너무 고리타분하고 답답해 보여도, 내 것이 아닌 옷은 어울릴 리가 없으니까. 그저 내 옷장 안의 옷을 내가 계속 입을 수 있다면 족하다. 물론 늘 같은 옷을 입어서야 안 되겠지만 적어도 훔쳐 입거나 빌려 입지는 말아야지 생각하고 검열한다. 교정지를 볼 때 특히 그랬다.

 

『심장에 가까운 말』에 실린 「김밥천국」을 읽고 나서 나는 신사동 김밥천국에 갈 때마다 김밥을 삼키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가만 바라보는 인간이 되어버렸는데, 다음과 같은 시를 읽고 나면 또 읽기 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다. 이번에는 지난겨울 내내 썼던 전기장판이다.

 

일부러 장판을 켜지 않은 날에는

무거운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덮게 된다 죽은 척

짓궂은 장난을 치는 아이들처럼,

아버지도 나도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슬픔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전기장판」 부분

 

내 것을 쓰려는 고군분투와 슬픔을 잊지 않으려는 의지에서 그의 시는 노래하고 웃고 운다. 장이지의 해설을 빌리자면 “스스로의 타자성을 은폐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그 타자성을 인격화”(162면)하는 데에서 그의 개성은 돌올하다. 나는 박소란 시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타자가 기거하는 장소의 구체성을 꼽아보았다. 장소라면 나도 꽂혀 지낸 날이 오래여서 괜히 혼자 동지를 만난 기분까지 들었다. 시인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그런데 저는 제 시를 잘 몰라요……” 그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을 때 극심히 흔들리던 내 동공을 그는 알아챘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해설을 보니 어쨌든 이런 딸은 “행복해져야 할 것이다”(166면)라고 하니까, 너무 따뜻한 말이어서 좋았다. 첫번째 시집이 워낙 감정적이었으니 상대적으로 두번째 시집은 슬픔에 대해 계속 얘기하고 있음에도 읽는 이들이 대체로 덤덤해졌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어떤 기운이라고 한다면, 이별이나 죽음의 기운에서 점차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어떤 식으로든, 어찌 되었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박소란의 시는 일상의 공간이나 그곳에 위치한 사물을 지극히 일상적인 방식으로 재배치하여 비일상의 오브제가 되게 한다. 말하자면 도시의 후미진 변두리, 전철 종점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십오분은 더 들어가야 하는 그곳. 박소란에게 가장 시적인 공간은 어디일까.

 

내가 생각하는 시적인 공간은 누구나가 발 딛고 살아가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회사라고 생각한다.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얼핏 무미해 이렇다 할 감상이 개입할 틈이 없어 보이지만, 그 껍질을 한꺼풀만 벗기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삶의 내밀한 속살 같은 것. 파티션 뒤에서 소리 없이 흐느끼는 사람의 얼굴. 회의록 폴더 하단에 놓인 사직서 파일. 그런 것이 주로 내 마음을 끈다.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질문도 던져보았다. 그렇다면 최근 시인의 시선을 가장 오래, 많이 묶어놓는 장소는 어디인지, 자주 가는 서점? 서점 가는 길의 골목?

 

근래 내 시선이 오래 머무는 곳은 꿈이다. 원래는 그런 편이 아닌데, 요새는 어떻게 된 일이지 꿈을 자주 꾼다. 너무 선명한 꿈을 꿔서 그 꿈을 곱씹는 일이 잦다. 지금은 곁에 없는 그리운 이를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또 후회로 남은 과거의 일을 바로잡기도 하는데…… 그 기분이 묘하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꿈에서조차 현실의 공간을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다는 것. 꿈에서도 나는 주로 집이나 일터, 지하철, 동네 천변, 커피숍 같은 곳에 있다.

 

꿈이라니 의외였지만 어쩌면 꿈이야말로 우리 일상에 밀착한 공간이 아니던가. 그 꿈의 대화가 앞으로 어떤 시로 화할지 궁금하다. 어떤 시이든 단단하고 바지런할 것이다. 아무래도 시인은 꽤 단단한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에 “일을 잘하고 싶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덧붙였다. 그건 내가 회사에서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한데, 나로서는 약한 부분을 감추려는 허세에 불과하지만 그의 음성에서는 담백한 단단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여전히 아스팔트 위를 걷고 여전히 살아 있다

벽돌의 바람대로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시를 쓴다

아름다운 시는 거리 곳곳을 날고 그러다 지치면 당신 품에 들어 쉰다

 

나는 과연 벽돌이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따금 몸을 던진다

당신은 벽돌을 던진 적이 없다

—「이 단단한」 부분

 

특히 시 쓰는 것도 일이라는 말은 완벽하게 재청하고 싶었다. 일을 잘하면 좋겠다는 말도 그 안에서 더욱 빛이 났다. 그는 오랜 시간 잡지사에서 근무하다 최근에 그만두었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는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에게 하는지 그에게 하는지 모를 질문을 던졌다.

 

요즘은 노원구의 한 서점에서 상주 작가로 일하고 있다. 간간이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출판사에서 단행본 편집 일도 한다. 이렇게 비정규의 삶을 산 지는 이년 정도 됐다. 상주 작가 프로그램이 끝나면 곧 다시 정규직 모드로 돌아갈 계획이다.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정말이지 숭고한 일이다. 자기를 먹이고 누군가를 부양하는 일. 그런 일이 너무 두서없이 몰아닥칠 땐 시를 쓰는 일이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생계를 두고 빚는 고민이나 갈등마저 여지없이 시였다. 생활의 결이 촘촘한 시. 때로 추레하고 궁상스러울지언정 언어에 함몰되지 않는 시. 그런 시에 계속해서 집착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생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시는 예술과 생활 사이에 있고, 정확히는 예술보다는 생활 쪽에 더 가까이 위치하는 것 같다. 그렇다. 시 쓰는 것도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잘해내고 싶다. 잔꾀 부리거나 얕은 재주에 기대지 않고, 하루하루 출근 도장 찍듯이.

 

물론 요즘 회사는 출근 도장 대신에 지문을 찍고, 내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에는 지각을 하면 기본급을 분 단위로 나눠 월급에서 공제한다. 음…… 어쨌든 나도 일을 잘하고 싶다. 시인의 생활 감각이 드러나는 시로는 「상추」가 제격이다. 이 시를 이야기하다가 나는 시인에게 상추를 사는데 고기를 사지 않아 걱정이었다는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걸었다가,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그의 대답에 제법 규모가 큰 여진을 동공 주변에서 다시 겪어야 했다. 이렇게나 부박한 내게도 시적인 고민이 있어서, 괜히 털어놔보았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시와 삶의 밀착에 대한 것. 시적 화자와 시를 쓰는 실제 나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문학의 기본으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는데, 그리고 나 또한 그 거리감을 중시했는데 요즘은 그게 잘 안 된다. 심지어 그러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일상을 스스럼없이 내비치되, 그것이 시적이어야 한다는 부담은 있다. 그의 시를 보면 그 균형감이 잘 잡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고민 상담 대신 이런 질문도 괜찮겠지. 인간 박소란과 시인 박소란 혹은 페르소나 박소란은 얼마나 가까운가, 혹은 먼가.

 

생활인 박소란과 시인 박소란이 나는 되도록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너무 가까워서 마치 한 몸 같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또래 시인들이 탄생시킨 여러 매력적인 화자들과 그들의 미적 정서, 눈부신 발화를 이미 익히 알고 있다. 그러니 나는 그냥 민낯 그대로 내가 사는 얘기를 잘 옮겨내는 데 집중하고 싶다. 다만 일상과 언어가 더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야겠지만. 일상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언어는 진정성을 잃지 않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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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단단한 답변이었다. 나는 어쩐지 분위기를 혼탁하게 만들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날도 날은 좋았지만 미세먼지가 극성이었다. 박소란 시인이 두 시집을 내는 사이 문단에는 많은 일이 벌어졌고, 드러났다. 문단 내 성폭력 폭로에서 미투운동, 페미니즘 리부트와 문학의 반응까지……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한때 나에겐 한가지 불안이 있었다. 나의 시 쓰기가 시와는 무관한 어떤 일로 인해 어느날 문득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문학장 안에서 맞닥뜨리게 될 부조리, 폭력 앞에 회의하고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시 쓰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러니까 시에 대한 내 의지나 애정과는 상관없이 내가 시를 그만둘까봐 겁이 났던 거다. 문학장 내 상존하는 부조리, 폭력의 양상은 다양하고, 이를 모조리 성이나 위계에 의한 것으로 일괄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작은 문예지로 갓 등단한 비교적 젊은 여성 시인에게 여타의 위험은 더 가까웠던 게 사실이다. 언제 어느 때고 닥칠 수 있는 일처럼 여겨졌으니까. 남성 시인, 남성 작가들은 어떤가. 이런 불안을 느끼며 지낸 적이 있나.

 

없었다. 나는 잠자코 듣기를 택했다. 말하기, 듣기, 쓰기 중에 무언가를 자유롭게 택할 수 있는 나의 권력에 조금은 놀라면서.

 

문단을 잠식한 혼탁한 기류, 그건 너무 오래 곪아온 종기 같은 거였으니까. 최근 나타난 일련의 변화는 당연한 수순 같다. 이런 과정을 응시하면서 이제는 더 섬세하게 사고하고 실천해야겠지. 폭력을 폭력으로 진화(鎭火)해서는 안 될 테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될 테니까. 매사에 신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한편,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여성 시인으로서’로 시작되는 질문을 대체 언제까지 받아야 할까. 이 익숙한 질문의 저변엔 ‘여성 시인인 너는 응당 그럴듯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강압적인 요구가 깃든 것은 아닐까 되짚게 된다. 이제는 여성이 아닌 이들이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자주 말해야 할 차례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나는 나의 차례를 기다리는 권력까지 손에 쥐고 있던 것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진화해왔던 성별의 일원으로서, 남성 시인으로서, 남성으로서, 나로서 응당 답을 갖고 있어야 할 시간이 왔다. 이미 왔는데 모르는 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심각한 논의와는 별개로 ‘시 쓰기 강제 은퇴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한 대목은 인상 깊었다. 그만큼 시 쓰기가 절박한 걸까. 일이라면 언제든 그만둘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휴먼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질문 같아 조금 우스웠지만, 적지 않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시 쓰는 게 행복한가요? 당연히 오소소 돋은 소름을 떨어내고 겸연쩍게 웃을 수밖에 없어서, 다음처럼 말했다. 웃으며 시작했다가 실컷 운 다음에 다시 슬며시 웃는 게 시 쓰기 같다고. 당신은 어떠하냐고. 그래서 행복하냐고.

 

나는 무표정으로 시작해 조금 운 다음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오는 쪽에 가까운 듯하다. 때로는 내 시에 물기가 너무 흥건한 것은 아닌가 고민스러울 때도 물론 있다. 혼자 있을 때는 펑펑 울더라도 남들 앞에서는 좀 묵묵한 표정이었으면 좋겠다. 시 쓰는 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행복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괜찮다. 나쁘지 않다. 어쨌든 시를 쓰는 순간에는 지루하지 않으니까. 세상은 자주 지루한데 말이다.(웃음)

 

어떤 지속성을 시인의 장점으로 꼽았지만 어쨌든 시는 계속 쓸 것이고, 지속하는 동안 모종의 변화는 필수적으로 올 것이다. 시인의 내면에는 어떤 변화나 움직임에 대한 갈망이 없을까? 박소란의 슬픔, 웃음과 울음, 노래와 입은 문 저편에 가 있는가. 이렇게 열린 문 다음의 방향이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어떤 전략을 두고 그에 맞춰 나아가는 타입은 아니라, 계속 써봐야 알 것 같다. 쓰면서 겨우 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당장은 기존에 해오던 일을 더 단단히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싶다. 다만 ‘나는 이런 시만 쓸 거야, 쓸 수 있어’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현실과 일상에 대한 감각, 실물감을 잃지 않으면서 결코 그 일상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것이 목표다. 결국에는 삶의 이야기다. 언젠가 한 지면에 쓴 적이 있다. 아름다워서 누구든 감탄하는 시가 아니라 구질구질한 시, 꼭 엄마가 담가 보내준 쉬어빠진 김치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하는 시를 쓰고 싶다고. 문 이편의 지극한 삶의 이야기가 궁극적으로는 문 저편에 보내는 안부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을까. 어쨌든 잘 살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 마요, 하는. 그렇게 문 저편의 ‘한 사람’을 향해 가까이, 더 가까이 가는 것.

 

문 저편의 한 사람에 나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나는 그와 나의 평행이론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검증하는 데 힘썼다. 우리 둘은 1981년생 닭띠로 동갑이다. 우리 둘은 시인이다. 우리 둘은 일을 잘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우리 둘은 무던한 성격이다(그렇다고 주장한다). 규모가 크지 않은 문예지로 등단하였으며 해당 문예지는 없어지거나 이름과 성격이 바뀌었다. 그는 이러한 나의 가설을 재미있다는 듯 듣고 있었으나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었음을 배려 깊고 너른 성격답게 이미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인터뷰를 마친 후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우리가 있다고 믿었던 문학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문학적 분위기는 일을 할 때, 그러니까 시를 쓸 때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나는 그가 하는 일의 실적을 보는 게 즐겁다. 그가 그리는 슬픔의 지도를 따라 일상적이며 동시에 지극히 낯선 곳에 당도하고 싶다. 손을 흔들고 싶다. 안녕하세요, 소란입니다, 하고 말하는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나는 그동안 잘 지냈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싶다. 그 말과 말 사이에 우리 삶의 슬픔과 웃음과 눈물과 버팀과 쓰러짐과 노래와 침묵이 모두 있을 것이다. 소란스럽고, 소요할 것이다. 조용하고 단단할 것이다.

 

풍경 저 바깥 어딘가

손을 흔드는 또다른 사람이 있는가 어쩌면

 

넘어진 사람은 일어선다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인해

사람은 걷는다

저 바깥 어딘가

 

그러나 결코 당도하지 못할 한 사람을

 

나는 본다

눈이 오고 있으므로

눈이 그치지 않고 있으므로

—「소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