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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정대성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 당대 2019
‘68’이라는 기억의 전장을 역사화하기
강정석 康正碩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puissance@hanmail.net
1917, 1968, 1989. 20세기 역사에는 연도로 표상되는 사건들이 있다. 역사학의 맥락에서 이들은 각각 ‘단기 20세기’의 시작과 전환 그리고 종료를 상징하는, 지구사적 변환의 계기로 평가된다. 10년 주기로 치러지는 ‘기념제의 시대’에 이 세개의 숫자기호가 주역으로 자리 잡은 현상은 그 표상에 함축된 역사적 파장의 크기를 웅변한다. 그 가운데 1968은 당대에서부터 50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기까지 찬사와 비난이 각축하는 기억과 해석의 전장이 되어왔다. ‘계획 없는 반란’ ‘과격주의자들의 발작’ ‘자본주의를 재탄생시킨 사건’ 대 ‘새로운 사회운동’ ‘세계혁명’ ‘문화혁명’ 등. 1968이라는 기억의 전장에 등재된 해석의 목록은 다층적이고 다방향적이다.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는 1968을 둘러싼 이런 기억과 해석의 전장 한복판에 개입하여 1968을 역사화하려는 시도이다.
1968을 역사화하는 작업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30주년인 1998년 무렵부터 1968의 서사를 당대의 활동가들과 그 반대편의 비판자들, 동조하거나 방관한 목격자들의 증언과 기억에서 벗어나 좀더 객관화하려는 시도는 꾸준하게 이어져왔다. 특히 40주년을 맞은 2008년, 프랑스 68년 5월의 주역 다니엘 꼰벤디뜨(Daniel Cohn-Bendit)가 “68은 역사가 되었다”고 고백한 것은 1968이 명실상부한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포고령과 같았다. 50주년을 넘긴 현재에도 이 책의 출간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이 책이 1968 전공자가 펴낸 한국 최초의 연구서일 뿐만 아니라 좀더 중요하게는 1968이 지닌 당대의 급진적 함의를 놓치지 않으면서 1968의 현재화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눈에 띄는 장점은 연구서임에도 술술 읽히는 문장이다. 학문적 삶의 대부분을 바쳐 68 연구를 천착해오면서도 지역 시민사회와의 연대와 소통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이력에 걸맞게 저자는 진중한 문제의식을 날렵한 문체에 실어 풀어낸다. 여러 지면에 발표되었던 글을 한데 묶다보니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더러 있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68은 ‘신성화와 악마화의 양극단을 오가는, 끝나지 않은 해석의 전장’이지만 본질은 혁명이라는 것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1968이 글로벌 냉전의 한복판에서 동과 서, 남과 북을 가로지르며 분출된 ‘전지구적 운동’이자 ‘저항과 연대의 세계화’의 출발점이었고,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개인적 해방과 집단적 해방을 동시에 겨냥함으로써 정치의 의미를 재장전한 ‘새로운 문화혁명’이라는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면서 출발한다.
총 4부, 8개의 장으로 구성한 책에서 저자는 주 연구분야인 독일 1968을 중심으로 ‘68의 지형도’를 펼쳐 보인다. 1부에서는 독일 의회 외부저항 운동(APO)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기존의 문화혁명 해석을 비판하면서 68의 정치적 의미를 환기했다. 2부는 저자의 박사논문 주제인 반(反)슈프링어 캠페인과 슈피겔 사건을 ‘지나간 미래’와 ‘돌아온 과거’라는 재기발랄한 대구로 병치하여 들여다보는 가운데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이 독일 68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부각했다. 3부는 독일 68의 상징적 인물인 루디 두치케(Rudi Dutschke)와 베노 오네조르크(Benno Ohnesorg)를 각각 혁명의 ‘아이콘’과 ‘순교자’로 다루면서 68의 급진화 문제를 둘러싼 논쟁 및 68 기념 작업과 연관된 공공역사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마지막 4부에서는 68 이후 독일 뉴라이트 논쟁과 68 동독배후설 및 68의 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점화된 역사 다시쓰기 공방에 초점을 맞춰 68의 현재적 쟁점을 해부했다.
기존 연구사 비판(1부)과 새로운 해석 영역의 발굴(2부), 기억과 역사를 매개하는 공공역사라는 방법론(3부)과 끊임없이 현재화되는 역사전쟁(4부). 저자가 재구성한 68의 면모는 자못 입체적이다. 민감한 독자는 이런 책의 구성이 일관되지 못하고 각 장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각 부의 머리와 각 장의 꼬리에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함으로써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소하고 있다. 또한 ‘68의 지형도’를 그려낸다는 저자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다층적이고 다방향적인 책의 구성은 오히려 68의 지형에 내장된 굴곡과 요철, 바꿔 말하면 역사적 등고선을 드러내는 배치로 읽을 수 있다.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의 핵심 문제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1968의 현재화’이다. 여기에서 현재화는 시대가 변했으니 과거의 모든 것이 변한 상황에 맞춰 각색되어야 한다는 탈역사적 현재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현재의 참조점으로 소환되는 과거를 당대와 현재의 맥락 위에 병치하여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1968의 현재화’는 ‘1968의 역사화’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현재의 논쟁 지평에서 출발하여 1968의 긍정적 함의를 되새기려 하는 이유이자 1968을 ‘끝나지 않은 혁명’ ‘미래형의 역사’로 부르는 근거일 것이다.
1968을 현재화·역사화하려는 저자의 기획은 행간에서 읽히는 핵심 논변과 쟁점을 놓치지 않으려는 진중한 문제의식, 그것을 최대한 대중적 언어로 풀어 전달하려는 서술방식을 볼 때 성공적이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향후 1968 연구와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장기 60년대’와 ‘글로벌 60년대’라는 역사학적 시각이다. 이 두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저자의 핵심 논점인 ‘문화혁명’ 및 ‘저항과 연대의 세계화’와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우선 ‘장기 60년대’는 1968년의 다양한 저항을 195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1957~73년)에 이르는 장기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의 장점은 1968을 섬광처럼 번쩍였다 사그라진 일시적인 혁명의 순간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삶과 사회의 변혁을 모색한 장기 지속적 투쟁의 맥락에서 조명하는, 폭넓은 역사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그렇게 볼 때 1968년의 봉기들이 냉전 및 소비자본주의가 조성한 정세와 맺는 역동적이고도 장기적인 길항관계에 주목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봉기들의 함의가 좀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저자 역시 문화혁명을 비판적으로 논하는 대목에서 이 요점을 서술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은 저자가 비판하는 아서 마윅(Arthur Marwick)의 문화혁명 논변이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장기 60년대’라는 개념 틀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의 의미를 제대로 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마윅의 탈정치화된 문화혁명 해석을 겨냥한 저자의 논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문화’혁명에서 문화‘혁명’으로 따옴표 이동을 하고, 문화에 정치적 의미를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장기 60년대’라는 마윅의 개념 틀이 1968을 해석하는 길을 넓히고 눈을 트이게 한 점을 인정하는 가운데 탈정치화된 문화혁명 해석의 한계를 동시에 짚었다면 좀더 균형 잡힌 서술이 되었을 것이다.
‘글로벌 60년대’는 1968 연구에서 국제적이고 트랜스내셔널한 차원을 강조해온 독일사회사연구소의 연구자들이 2008년부터 가다듬고 있는 개념이다. ‘글로벌 60년대’ 연구는 1968을 프랑스와 독일, 이딸리아와 미국 등에서 전개된 일국적이고 서구적인 현상으로 보는 관점을 벗어나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이르는 지구적 저항의 네트워크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요컨대 ‘글로벌 60년대’는 1968 해석의 일국중심주의, 서구중심주의를 넘어 동과 서, 남과 북을 아우르는 1968의 지구사를 모색한다. 이러한 문제틀은 저자가 1968의 본령으로 강조한 ‘전지구적 운동’ ‘저항과 연대의 세계화’라는 인식과 공명한다. 저자의 연구 초점이 독일의 1968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독일 SDS(사회주의학생연합)와 미국 SDS(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연맹)의 교류와 연대, 베노 오네조르크의 죽음과 루디 두치케 암살 시도를 둘러싼 국제적 공분, 베트남전과 체 게바라(Che Guevara)의 게릴라 전략뿐만 아니라 프라하의 봄, 중국의 문화혁명이 독일의 1968년에 미친 영향이 다루어졌다면 ‘저항과 연대의 세계화’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더욱 선명해졌을 것이다.
몇가지 서술상의 공백이 이 책의 장점과 미덕을 과소평가하는 요소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공백일 뿐 한계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1968을 연구의 영역으로 삼는 학자들에게 하나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1968의 본령이 저항과 연대의 세계화에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장기 60년대’와 ‘글로벌 60년대’가 유용한 연구의 틀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1968 연구야말로 지구적 차원의 학문적 연대와 소통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말대로 1968이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화된 역사라면, 1968이라는 기억의 전장을 역사화하는 길 위에서 만나 연대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