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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윤지관 『위기의 대학을 넘어서』, 소명출판 2019
대학은 기업화라도 제대로 이루었는가
김민섭 金旼燮
연구자 3091201lin@gmail.com
이 책에 대한 감상이나 평을 말하기에 앞서, 다소 민망하지만, ‘소명출판’이라는 파라텍스트와 얽힌 개인사를 간단히 언급해두고 싶다. 이는 연구자로서 나의 정체성이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은행나무 2015, 이하 『지방시』)라는 책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명출판은 대학의 인문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알 만한 출판사다. 특히 국문학 관련 학술도서를 많이 출간했다. 2008년 내가 국문학 석사과정에 입학해서 모 한국학연구소의 조교로 배정받았을 때, 연구소의 서가에는 소명출판과 협업한 총서들이 가득했다. 그 책들은 마치 딱지본 소설처럼 울긋불긋한 표지를 하고서 나름 그 업계에서는 ‘힙’하다고 할 만한 감성을 뽐내고 있었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여러 선배 연구자들이 소명출판에서 박사논문 등의 연구 성과를 묶어냈다. 언젠가 나도 학부조교에게 “나도 나중에 꼭 여기에서 책을 낼 거야” 하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나는 2015년에 『지방시』를 쓰고 대학에서 나왔다. 주로 학술도서를 기획하는 것으로 알았던 소명출판에서 『대학론, 대학을 공부하다』(2017)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2017) 그리고 이 책 등을 출간하며 대학 이슈를 다루고 있음을 최근에야 알았다. 다시 소명출판의 책을 읽는 일은 없으리라 짐작했는데,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예측 불가능하고 종종 얄궂게 귀결되곤 한다.
저자의 본인 소개에 따르면 “최근 10년 가까이 본업인 영문학을 접어두다시피 하고 대학 문제에 몰두하”(4면)고 있는 영문학자다. 부임한 덕성여대에서 대학민주화를 위한 싸움에 나섰고, 이명박정부가 사립대학 정상화의 명분으로 구재단 복귀를 추진하자 구 재단 복귀 반대투쟁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이 근래 공부의 결과물인 동시에 대학 현장에서 부딪친 실천의 과제들과 대면하는 가운데 얻은 성과임을 강조한다. 그만큼 이 책은 풍부한 자료와 경험을 바탕으로 그간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다루었다. 한국 대학 개혁을 위한 담론을 조망할 수 있고, 그것이 BK21(두뇌한국21), CK(대학특성화사업), 프라임사업(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사업) 등 국가 주도의 사업과 어떻게 연계되었는지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그에 더해 ‘지구시대의 대학연구’라는 다소 거창한 부제에 걸맞게 대학의 신자유주의화(기업화)가 결국 미국을 위시한 전세계적 경향이며 거기에서 벗어나는 탈근대적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이 책은 대학 개혁의 현주소, 근대 대학의 이념, 구조조정의 방향, 사학 개혁의 필요성 등에 대해 순차적으로 짚어간다. 이 서사에서 인상적인 몇 부분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대학은 신자유주의화(기업화)되었다 ② 그 극복을 위해 공공성 회복과 특성화 전략이 필요하다 ③ 무엇보다도 이제는 교수들이 나서야 하고 ④ 사학 개혁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아주 특별할 것은 없는 내용들이지만 저자는 ‘인문학자’로서 해야 할 말들을 했다. 특히 저자 자신의 학문과 공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책의 곳곳에서 잘 드러난다. 인문학과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 것이다. 나 역시 저자의 시선과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정규직 교수가 아닌 전직 비정규직 연구자로서 바라본, 약간은 다른 방식의 대학의 균열을 다소간 덧붙여두고 싶다.
우선 대학이 기업화라도 제대로 이루었다면, 어쩌면 나는 아직 제도권의 연구자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가 ‘책무성’이라고 한 공공의 영역은 다시 말하자면 민주시민을 양성해내는 ‘교육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은 이것을 거의 상실해가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이 페르소나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택한다. 예컨대 ‘경제의 영역’에서 갑자기 이것을 꺼내는 것이다. 대학은 학부생과 대학원생에게, 혹은 다른 형태의 외주 노동자에게 여러 노동을 담당하게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노동의 댓가를 지불해야 할 때는 갑자기 정규직 교수자와 학생만이 존재하는 교육기관이 되고 만다. 이것은 한국 대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는 2004년에 “조교들은 기본적으로 학교와 경제적인 관계보다는 교육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서 대학원생의 노동을 ‘교육적 관계’에 편입시킨 바 있다. 나는 대학이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는 데에,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런 몰염치한 편법(위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자본의 시대에서는 글로벌 체인화된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법의 눈치를 보아야 하지만 정작 대학은 그렇지 않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도 사람을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지방시』 참조)
그에 더해 “이제 교수들이 나설 때다”(165면), “현실론을 넘어서 실천으로 나아가자”(143면)는 저자의 말은 어느 정도 공허하다. 그는 “교수 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고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대학 내부에서 일어날 필요가 있다”(178면)고 주장하지만, 그 기득권 구조의 해체를 어떻게 이룰지에 대해서는 제안하지 않았다. 저자는 그것을 가장 정확하고 급진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당사자다. 성균관대 천정환 교수가 “후속세대를 위한 학술펀드의 조성이나 60세 이상의 임금피크제 등 정규직 교수들이 ‘사회적 대타협’과 비슷한 정신으로 할 일이 많다”(경향신문 2018.12.18)라고 한 것처럼, 이제는 실천의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
사실 대학에서 테뉴어를 받은 정교수가 ‘지금 이 시대의 대학은 어떠한가?’라는 물음표를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몸담고 있는 공간이 가진 구조적 균열이나 결함은 대개 중심부와 주변부의 어느 경계에 위치한 이들의 눈에 더 잘 들어오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시간강사라든가 대학원 수료생 같은 젊은 연구자들은 자신의 처지에서 그대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읽어내곤 한다. 모든 개인은 구조에 영향을 받고 순응할 수밖에 없는 대단히 나약한 존재다. 여기에서는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재원과 권한을 독점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선한 사람을 언제든 악하게 만들고, 악한 사람은 더욱 악하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무척 특별한 개인이다. 『위기의 대학을 넘어서』라는 그의 저작이, 이후에는 당사자들의 성찰과 실천을 담아서 좀더 정교해진 연작으로 나올 수 있기를 응원한다. 소명출판 역시 양질의 학술도서를 계속 기획하는 가운데 그 지식장의 현재를 담아낼 수 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