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평

 

 

 

올해 창비장편소설상에는 총 357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응모편수만큼이나 다채로운 관심과 지향, 각자의 생각과 고민이 역력한 이 작품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가능한 최대치를 담고자 하는 장편소설적 열망이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뜻깊은 성과로 이어지기가 그만큼 더 어려운 장르가 장편소설이기에 이런 열망의 건재는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지난 몇년간 지속된 경향이지만 올해도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한 작품이 많았고 역사물이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도 늘어난 추세다. 비교적 안정된 서사를 이끌면서 읽는 재미도 느끼게 해준 작품들 가운데 장르소설의 틀을 차용한 사례가 많은 점도 눈길을 끈다.

본심에 올라온 일곱편 중에서 『클라우드 일레븐』과 『히키코모리 혁명』은 참신하고 인상적인 구상을 펼쳐놓았으나 이를 좀더 치밀하게 구현하지 못했거나 스스로 잠식한 점 때문에 아쉬웠다. 『클라우드 일레븐』은 부동산과 교육 문제, 빈부격차 등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욕망과 갈등이 집약된 아파트단지 위로 정체불명의 거대 구름이 나타나면서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아파트 거주자들의 일상을 에피소드식으로 엮어냈다. 결말에 가면 이 구름이 자료 수집을 위해 외계에서 파견한 비행체였고 화자 역시 외계인이었음이 드러나는데, 이야기의 설득력과 공감을 꽤 확보한 것과 별도로 외계의 시선이라는 과감한 설정이 작품에 어떤 이질성이나 의외성도 도입하지 못한 점이 의아했다. 『히키코모리 혁명』은 최근 늘어나는 세태소설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 젊은 직장인의 삶과 문화, 연애에 걸린 기대와 함정, 성관계 동영상 불법유포 같은 첨예한 이슈들을 속도감 있고 실감나게 묘사한다. 하지만 ‘히키코모리 혁명’이라는 특유의 발상이 실제로는 히키코모리도 혁명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러니도 아니었다. 더욱이 화자의 문제가 새로운 남자친구의 ‘승인’을 통해 해소되는 방식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아름답고 위태로운』과 『숲은 머물러 있다』는 초반의 흡인력있는 서사로 기대감을 높인 작품들이었다. 모종의 트라우마를 겪고 결벽과 우울로 스스로를 벌하던 화자의 회복서사가 제목처럼 ‘아름답고 위태롭게’ 시작되는 『아름답고 위태로운』은 죄의식의 연원이 점차 밝혀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사건에 비해 지나치게 화자의 상태에 집중한 점이 ‘시적 정의’를 일정하게 훼손할 뿐 아니라 주된 서사가 계속 지연되다보니 결말에 이르러 수습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숲은 머물러 있다』 역시 고시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배경으로 일종의 미스터리 플롯을 펼쳐놓으면서 중반까지 팽팽한 긴장으로 서사를 끌고 가지만, 정작 백화점 붕괴사고로 가족을 잃은 핵심인물 김지석의 이야기에 이르러 단조로운 병리학적 서사로 흐르고 만다. 사회적 피해자와 사회적 약자의 만남이 살인으로 귀결되는 점이 문제적인데 이 작품이 그 문제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더티 스트리트』는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 가운데 가장 평가가 엇갈렸는데, 이 작품이 음모론을 배면에 깔고 역사적 장면을 군데군데 뿌려놓는 전형적인 포스트모던 서사를 모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거의 장르화된 이 소설 유형을 철 지난 유희라 여기는 입장이라면 넘어야 할 이유가 없는 진입장벽과 마주치는 셈이지만, 일단 그 장벽을 넘어가면 이 소설이 개성적인 방식으로 문장을 배치하면서 실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나긴 서사를 매력적으로 이끄는 역량을 가졌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건드리는 식민과 분단과 광주에 이르는 역사가 우리의 현재를 이토록 강하게 규정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최소한 형식상으로라도 더 많은 변주와 혼종과 균열이 있었어야 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는 없었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두 작품은 단단한 구성과 안정적인 문장, 그리고 깔끔한 마무리까지 고루 갖춘 『어느 날이 나에게』와 『내게는 홍시뿐이야』였다. 『어느 날이 나에게』는 ‘나’의 직장과 인간관계에 얽힌, 조촐하면서도 그 나름의 기대와 좌절로 점철된 삶의 드라마를 한 축으로, 대학 시절 ‘나’에게 날카로운 자의식을 불러일으킨 정진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을 다른 축으로 삼아 담백하고 세련되게 이야기를 축조한다. 미래의 기대와 설계가 아니라 과거의 기억, 그것도 삶 그 자체를 직시했기에 나날로서의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인물의 기억이 오히려 화자의 현재를 담담히 떠받친다는 점이 어떤 징후처럼 읽힌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서사의 근본적인 미약함을 상쇄하기엔 모자라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긴 논의 끝에 당선작은 『내게는 홍시뿐이야』로 결정되었다. 이 작품은 ‘엄마를 찾아서’라는 낯익은 모티프를 바탕에 깔면서도 이를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시킨다. 고등학생인 ‘나’의 엄마는 임대아파트에서 나와야 할 형편이 되자 돈을 빌려주었던 지인의 집에 ‘나’를 맡기는데, 이 집도 망하게 되면서 이제 ‘나’는 온전히 혼자 힘으로 세상에서 버텨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시종일관 너무 당당하며 연락을 끊어버리는 데서도 일말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엄마마저 부재한 상황에서 화자가 스스로의 자원을 동원하여 삶을 도모하는 가운데 우리 시대 가난한 약자들과 관계 맺고 ‘대안가족’까지 형성하는 곡진한 과정과 거기서 드러나는 화자 특유의 감성적 통찰이 이 작품의 주된 매력이다. 더없이 각박한 시절,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되, 당사자의 정동을 부각하는 이런 색다른 시선이 우리 소설의 지평을 한층 넓혀주리라 기대하며 이 소설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창비장편소설상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의 관심과 정성에도 깊이 감사드린다.

강영숙 강지희 김형수 윤성희 한기욱 황정아

 

 

 

수상소감

 

4407

김설원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및 동대학원 박사 수료.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2009년 『여성동아』 장편소설공모에 당선. 소설집 『은빛 지렁이』, 장편소설 『이별 다섯 번』 『나의 요리사 마은숙』이 있음.

올봄, 나는 꽃을 많이 찍었다. 생김새가 비슷비슷해 보이는 나무들이 해마다 가지각색의 꽃을 피우면 그저 바라볼 뿐이었는데 올해는 ‘만능기기’를 꺼내 촬영 버튼을 누르기 바빴다. 나도 모르게 그래지는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버스정류장에서, 올림픽공원에서, 경희궁에서, 대학도서관 뜰에서, 융건릉에서…… 나는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휴대전화 속 카메라 안에 꽃들을 담았다. 명자나무꽃, 둥굴레, 꽃잔디, 하늘매발톱, 금낭화, 조팝나무꽃, 씀바귀, 복사꽃…… 꽃 검색 앱을 통해 그 이름들을 머릿속에 새기는 즐거움도 누렸다. 꽃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외삼촌에게 “올해는 유별나게 꽃이 좋아. 나도 늙나봐”라고 말했더니 “늙는 게 아니라 뒤늦은 발견이야”라는 답장이 날아왔고, 나는 그 ‘뒤늦은 발견’을 오래 곱씹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머물면서 눈여겨보는 꽃들은 어느 순간 돌이 되어버린 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아닐까. 어떤 상황과 공간에 걸맞게 재고 따져 만들어낸 인물들이 오래 침묵하다가, 그 기다림에 지쳐 돌이 되고, 마침내 꽃으로 환생한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까지 더해져 그 ‘딱한 환생’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봄이 무르익을수록 “나야, 나” “나도 여기 있어!”라고 말하듯 사방에서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크게 빚을 졌으나 갚을 길이 없는 심정으로 아침을 맞이하다가 수상 소식을 들었다.

혼자만의 놀이처럼 꾸준히 소설을 쓰면서 기쁨보다는,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와 그래도 차마 놓지 못하겠다는 미련 사이에서 쓸쓸했는데 한가지는 확실히 얻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직 어설프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그 때문에 내 소설의 인물들을 돌로 만들었다는 자기반성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내가 뒤늦게 꽃을 피웠다. 대번 온몸에 생기가 감돈다. 하지만 들뜬 마음도 잠시, 그 꽃에 은은한 향기라도 풍기게 하려면 내 소설의 집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햇살과 공기와 바람이 되어준 그와 그녀들이 눈앞에서 계속 살랑댄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내 작은 방에 불빛을 비춰준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