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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제22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정은우 鄭殷宇
1989년 경기 의정부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herevoice@naver.com
묘비 세우기
재언은 식탁에 앉자마자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연주는 놀라지 않았다.
“그거 키 크는 꿈이라던데.”
오늘 아침 당번은 연주였다. 새벽에 일어난 그녀는 바닥에서 잠든 재언을 발견했다. 곧 있으면 벚꽃이 피는 시기라지만 해가 없으면 여전히 추웠다. 재언아, 연주는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그를 불렀다. 재언은 바싹 웅크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연주는 어디선가 저런 자세가 안정과 회복을 취하는 태아 자세라고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그녀의 눈에 재언의 자세는 태아보다는 콩벌레에 가까워 보였다. 콩벌레는 별다른 독이나 침도 없다. 그저 조금 단단한 외피만 믿고 바싹 움츠러든 채 안전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버티기는커녕 끝내 짓눌리고 말았지만.
“정말 끔찍했어.”
재언은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며 도리질을 쳤다. 아주 높은 곳에서 내동댕이치듯 떨어졌는데,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았어, 연주는 왠지 재언의 말이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애써 말을 돌렸다.
“성장통도 아프잖아. 아직 성장판이 안 닫혔나본데.”
“더 커지면 천장을 머리로 뚫을지도 모르겠네.”
“전등도 깨지겠지.”
연주의 너스레에 재언이 웃었다. 재언은 연주보다 키가 한뼘 정도 컸다. 그는 툭하면 천장에 달린 전등에 이마를 부딪치곤 했다. 붉게 달아오른 이마를 문지르면서 높이를 좀 조절해야겠다고 투덜거렸지만 매번 잊었다. 전등에 부딪혀본 적 없는 연주 역시 까먹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은 잽싸게 식사를 마친 후 출근 준비를 했다. 연주가 머리에 만 롤을 풀고 의자에 걸쳐놓은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는 사이 재언은 뜨거운 물로 그릇을 꼼꼼하게 헹궜다.
“오늘은 어디로 가?”
“서초에서 송파로.”
재언은 젖은 옷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대답했다. 그의 팔뚝에 실오라기처럼 길고 가느다란 흉터가 남아 있었다. 작년 말 이삿짐을 나르다가 베인 상처였다. 그날 야근을 마치고 퇴근한 연주의 성화를 받고서야 응급실에 가서 상처를 소독하고 꿰맸다. 이삿짐센터 트럭 기사로 일한 지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갔지만 그는 여전히 신출내기 취급을 받았다.
“요즘 서초만 가네.”
“재개발 때문에 그렇지. 안됐어.”
“송파도 좋은 동네잖아.”
“뭐, 서초 가는 김에 너도 태워주고 잘됐지.”
재언은 태평하게 대꾸했다. 연주는 그의 등을 다정하게 다독여주었다. 설거지를 마친 후 재언은 회색 항공점퍼에 노란색 조끼를 걸쳤다. 아무리 안전이 중요하다지만 형광 노란색은 누구에게든 썩 어울리는 색이 아니었다. 그 지나치게 밝은색 때문에 재언의 낯빛은 더 창백해 보였다. 연주는 조수석에 타자마자 룸미러로 뒷좌석에 옷가지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살폈다. 재언은 일을 마치면 꼭 옷부터 갈아입었다. 그는 먼지와 곰팡이를 묻힌 채 집으로 들어가기 싫다고 했다.
“오늘 많이 바빠?”
“아니, 저번주에 문제집 나왔으니까 당분간은 모니터링만 하면 돼.”
“다음 문제집은 언제 나와?”
“다음주부터 들어가야지. 위층 연구소만 잘해주면 금방 끝날 텐데.”
연주가 다니는 출판사에서는 중고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문제집을 출간했다. 이미 어느 정도 일정한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대표는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는 다른 출판사들이 지난해 문제에서 숫자만 바꾸어 내는 꼼수를 쓴다고 비난했다. 그러고는 사무실 바로 위층에 위치한 연구소의 존재를 운운하면서 우리 출판사야말로 정통에 가깝다며 뽐냈다. 연구소라고 해봤자 대학원생들 몇몇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문제를 만드는 공장에 불과했다. 연주는 연구소 아래 사무실에서 문제집을 편집하는 일을 맡았다. 그녀는 대표의 터무니없는 자부심과 착각에 진저리가 났지만 매달 밀리지 않고 무사히 월급을 받는다는 점에는 만족했다.
재언은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차가 부드럽게 방향을 틀었다.
“편의점에 새로운 아이스크림 나왔더라. 사다 줄까?”
“벌써?”
연주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가을 한정으로 밤맛 아이스크림이 출시된 것이 불과 이주 전이었다. 재언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스크림은 그들이 용인한 유일한 사치였다. 작년 여름만 해도 둘은 그 호사를 공유했다.
“무슨 맛인지 궁금한데? 이번에는 내가 다 먹어버릴지도 몰라.”
“다 먹어도 돼.” 재언은 빈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진짜야.”
연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설령 천상의 맛이라고 해도 그녀는 반만 먹고 나머지는 꼭 남길 터였다. 늘 그랬듯이 새 플라스틱 숟가락을 가운데에 꽂은 채로 냉동고에 넣어둘 것이다. 재언은 연주가 일하는 출판사 건물 앞 도로변에 부드럽게 차를 세웠다. 연주는 재언에게 커피라도 한잔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주간 조례가 몇분 뒤면 시작될 터였다. 그녀는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차문이 닫히는 사이 재언이 무슨 말을 했지만 연주는 바람 소리가 거세 듣지 못했다.
점심시간쯤 연주는 재언이 사다리에서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
작년 여름에 재언은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연주는 그 선언이 농담인 줄 알았다. 그들은 속상한 일이 생기면 함께 매운 음식을 먹고 얼얼해진 속을 아이스크림으로 달래곤 했다. 얼마나 비싼 아이스크림이든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걸 골랐다. 뜨거운 입안에 아이스크림 한 숟갈만 들어가도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그러나 재언의 말은 진담이었다. 그는 점원에게 싱글사이즈 컵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쿠폰으로 더블사이즈 컵 하나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점원은 웃는 얼굴로 거절과 사과를 두차례 반복했다. 얼마나 열심인지 점원의 마우스가드에 희뿌옇게 김이 서릴 정도였다. 재언도 점원처럼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둘의 사과는 연주가 재언의 팔꿈치를 잡아당기기 전까지 연달아 이어졌다. 결국 연주와 재언은 싱글사이즈 컵을 하나씩 들고 나왔다.
“가게 입장에서는 싱글 두개보다 더블 하나가 더 이득이지 않나. 콘이든 컵이든 하나는 절약하는 거잖아.”
“규정 때문이겠지.”
재언은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컵을 연주에게 내밀면서 대답했다. 연주는 얼떨결에 양손에 든 아이스크림 컵을 혼란스러운 눈으로 번갈아 보았다. 숟가락을 쥘 손이 없다는 걸 알아채고는 재언이 웃으면서 도로 컵을 가져갔다. 다 먹고 나면 줄게. 그 배려는 연주에게 완곡한 거절처럼 들렸다. 서로 다른 맛을 나누어 먹고 싶었는데 혼자서만 꾸역꾸역 먹으면 외로운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연주는 왠지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나 횡재한 거야?”
“응, 기뻐해도 돼.”
“왜 그래?”
“노력해도 안 돼. 차가운 음식은 이제 무리야.”
연주에게는 거짓말처럼 들렸다. 그녀는 냉면이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등 재언이 좋아했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재언은 한사코 안 된다고만 했다. 둘의 대화는 선문답처럼 답도 나오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연주가 울먹거릴 때쯤 재언이 사과했다.
“꿈 때문이야. 냉동 탑차에 갇혔을 때, 그 순간이 요즘 계속 꿈에 나와.”
재언이 탑차 기사로 일한 지 삼개월쯤 됐을 때 벌어진 사고였다. 재언의 선임은 별것 아닌 장난이며 일종의 신고식이라고 우겨댔다. 재언은 탑차 바닥을 청소하던 도중에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탑차 문이 닫혔을 때 재언은 있는 힘껏 보조문에 몸을 부딪쳤다. 소용없었다. 그는 탑차 안 비상벨을 주먹으로 수차례 내리쳤다. 선임은 딱 십분 후에 열어주었다. 선임은 재언에게 사과하기는커녕 문을 고정하는 걸 잊어버리는 바람에 탑차에 갇혀 얼어 죽은 기사들을 들먹거리면서 꾸짖기까지 했다. 재언은 한시간은 족히 지난 줄 알았다. 고작 십분이라니. 연주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재언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널 미워해? 재언은 되레 신입이라면 한번씩 겪는 장난이라며 그녀를 달랬다. 그나마 탑차 비상벨을 열심히 눌러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나온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 선임도 끽해봐야 재언보다 서너살 위였다. 연주는 비상벨 소리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을 사람들의 속내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새로운 후임이 들어온다면 재언도 밖에서 탑차 문을 잠가버리게 될까. 다행히도 재언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이삿짐센터의 트럭을 몰게 되었다.
“꿈에서 문이 잠겨 있어서 일단 비상벨을 눌렀어. 손이 얼얼해질 만큼 눌러도 안 열어줘서 좀 기다려야겠다 싶었지. 그런데 구석에 냉동 닭 한마리가 떨어져 있는 거야.”
냉동 탑차에 갇힌 날 재언은 마트에 냉동식품을 배달했다. 마트 직원들은 탑차가 도착하자마자 상자를 나르고 진열해야 한다며 난리를 피우곤 했다. 정작 그 과정에서 물건을 흘리거나 상자 수를 잘못 기입할 경우 책임지는 건 탑차 기사들이었다.
“꿈속인데도 놀랐어. 일단 숨기고 보자 싶어서 그 냉동 닭을 잠바에 쑤셔 넣었지. 얼마나 꽁꽁 얼어 있는지 내 몸도 얼어붙는 것만 같았는데 기다려도 문이 안 열리는 거야. 계속 잠바에 그걸 넣고 있자니 춥고, 꺼냈다가 문이 열리면 들켜서 혼날 테고. 꿈에서도 혼나는 건 별로였거든. 그러니까 괜히 그 닭한테 짜증이 나더라? 얘는 왜 죽어서 날 이렇게 힘들게 하나, 죽었는데 쓸데없이 차가워지기까지 하는구나 싶더라고.”
재언은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한 정거장 전에 벨을 누르고 하차하면서 버스카드를 찍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연주는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잠꼬대처럼 두서없고 끝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냥 내팽개칠까 했어, 그런데 닭이 없는 거야. 추워서 다시 잠바를 여몄더니 뭔가 묵직하고 차가운 게 아직도 있고, 잠바를 도로 벗었더니 또 없어졌고. 문은 안 열리고 꿈에서도 안 깨고.”
“어떻게 깼어?”
“포기하고 거기서 잤어. 너무 피곤했거든.”
연주는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컵들을 길가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녀는 차갑고 축축한 손바닥으로 재언의 얼굴을 매만졌다. 차갑다, 재언이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또렷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꿈은 원래 반대랬어.”
“하여간 이연주는 우기는 데 도사야.”
재언이 웃었다. 연주는 그의 볼을 꼬집으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김재언이 아이스크림을 안 먹고 얼마나 배기나보자.”
연주는 장담한 대로 편의점에서 꼬박꼬박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들을 사왔다. 그녀가 보란 듯이 눈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재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언은 연주에게 뜨거운 차를 타주면서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즈음부터 연주는 기묘한 습관을 하나 만들었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반만 먹고 새 플라스틱 숟가락을 뜯어 남은 아이스크림 가운데에 꽂아놓았다. 한정 아이스크림은 그때가 아니면 팔지 않으니까 재언을 위해 남겨두겠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댔다. 재언은 농담조로 그 습관을 두고 묘비를 세운다고 했다. 그렇게 치자면 냉동고는 일종의 공동묘지인 셈이었다.
재언의 부모는 재언을 화장한 후 집 근처 산에 뿌리기로 했다. 연주가 상가에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다가 잠시 눈을 붙인 사이 결정된 사안이었다. 소식을 전해준 재언의 남동생은 미안하다는 듯 양해를 구했다. 연주는 괜찮다는 말과 어쩔 수 없다는 말 중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둘은 오랫동안 동거했지만 법적으로는 무관한 사이였다. 재언의 죽음은 연주에게 어떤 법적인 책임도 지우지 않았지만 아무런 권리도 허락하지 않았다. 남동생은 재언처럼 두꺼운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짐 정리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연주는 거절했다. 아무리 재언과 닮았다 한들 생판 모르는 남이 집에 드나들게 할 수는 없었다.
상을 치르느라 삼일간 연차를 몰아 쓴 후 출근한 사무실은 쑥대밭에 가까웠다. 연주가 편집과 간행을 맡았던 수학 2 문제집이 화근이 되었다. 전국의 고등학생 반 이상이 가입했다는 까페에 올라온 리뷰 몇줄이 문제였다.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밝힌 게시자는 풀리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문제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같은 문제집을 푸는 전교 1등인 친구도 마찬가지라며 들먹거렸다. 연주는 그 근거에 깃든 확신이 새삼 슬프게 읽혔다. 차장은 출제자보다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편집자의 탓으로 몰아갔다. 연주도 반성하는 척했다. 일종의 쇼였다. 다음 문제집을 순조로이 출간하기 위해서는 재빠르게 책임을 묻고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연주는 시말서와 대처 방책에 대한 제안서를 작성하는 한편 해당 학생에게 사과 메일을 보냈다. 결국 그녀는 한달이 넘도록 재언의 짐을 정리하지 못했다.
재언의 물건들은 주인의 부재를 모른 채 무방비하게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자질구레한 영수증이 꽂힌 노트와 옆구리가 터진 지갑, 브랜드 로고가 박힌 모자, 라면 국물이 튄 만화책, 충전기만 새것인 전기면도기, 술에 취해서 돌아다니다가 한쪽만 남은 블루투스 이어폰, 둘둘 말린 채로 굳어버린 1종 수동 운전면허 문제집. 피곤에 찌든 연주가 귀가할 때마다 그 물건들은 염치도 없이 그 자리에서 뻔뻔하게 버티고 있었다.
재언이 이삿짐센터로 이직한 지 한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는 불쑥 불쌍하다고 말했다. 누가, 우리가? 연주가 묻자 재언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 그는 이사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이사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계약이 끝날 때마다 옮겨 다니는 철새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서울 중심부에 산다는 자부심으로 고고한 척하다가도 이삿짐센터 트럭이 수도권 변두리로 들어서면 소리 없이 움츠러들곤 했다. 재언은 이제 그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연주는 재언의 착한 마음씨를 좋아했지만 가끔 그 착함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재언의 고객들은 재언이 그들을 얼마나 불쌍히 여기는지 안다면 언짢아할 터였다. 재언은 그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했고 무리한 부탁이라도 들어주려고 애썼다. 고객들은 그 헌신을 당연하다고 착각했다.
그 헌신이 끝내 재언을 자개장과 함께 운반용 리프트에서 낙하하게 만들었다. 이삿짐을 포장하고 나르는 건 그의 소관이 아니었다. 업무상 과실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자개장은 리프트에 실어도 되지만 사람은 안 된다. 분명한 위법이지만 짐과 사람이 같이 타는 건 일종의 관행이었다. 관행이란 귀찮고 오래 걸릴 일을 빠르고 깔끔하게 끝내는 방법이었고 거절하는 건 불가능했다. 남자 직원 중 젊은 축에 속하는 재언이 리프트에 타는 것이나 25층 정도의 높이가 아니면 괜찮다고 여기는 것도 관행이었다. 누군가는 바람 때문에 리프트를 지지하는 붐대와 자개장과 재언이 탄 턴테이블이 눈에 보일 만큼 흔들렸다고 말했다. 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언은 매사에 철저한 사람이라 바퀴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임목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재언의 부모님은 이삿짐센터 계장이라는 사람의 설명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연주도 같이 그 정황을 들었다.
연주는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얼마나 재언을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최대한 빠른 포장과 신속한 운반을 미덕으로 삼았다. 이사 도중 어떤 물건이 사라지거나 파손되더라도 그건 다 미리 조심하지 않은 고객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재언은 쓸데없이 고객들에게 사과했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융통성이 없다면 아무리 운전 실력이 좋다 한들 부적격이었다.
당장이라도 그 사실을 폭로하고 싶었지만 연주는 간신히 입을 다물었다. 괜히 상가를 들쑤시고 싶지 않았다. 재언의 부모님은 지친 낯빛으로 이삿짐센터 계장이 건네는 위로금을 수락했다. 그들은 십년도 넘게 보지 못한 자식의 불운을 어떤 저항도 없이 받아들였다. 계장은 함께 온 직원들과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훌쩍 가버렸다. 계장이나 직원들은 재언과 함께 이삿짐을 나르고 포장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중 그 누구도 유감이나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 연주는 군말 없이 남은 음식을 치운 후 상에 덮인 비닐 끄트머리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어차피 그녀에게는 소송을 걸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도 없었다.
최선생은 회의실에 먼저 와 있었다. 연주는 오늘 점심시간에 간 음식점을 묻거나 사무실에서 종종 이용하는 커피 전문점의 급작스러운 폐점을 이야기하며 최선생의 안색을 살폈다. 최선생은 두어번 고개를 끄덕거리며 호응했지만 그 와중에도 몇번씩 시계를 확인했다. 연주도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잡담은 물에 뛰어들기 전 준비운동과 같았다. 그녀는 최선생에게 가벼운 어조로 메일을 확인했는지 물었다. 이미 수신 여부를 확인하고 온 후였다. 최선생은 석연찮은 표정만 지을 뿐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최선생님, 아시다시피 종종 그런 항의가 발생해요. 워낙 예민한 시기잖아요? 물론 선생님 잘못은 아니에요, 너무 스트레스 받으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이 일을 얼른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연주를 휘감았다. 연구소 소장은 종종 연구원들의 높은 지능이야말로 이 연구소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들이 없다면 문제도 없으니 문제집도 출간할 수 없거니와 아래층 사무실 직원들 역시 일자리를 잃는다는 논리였다. 연주 역시 내로라하는 대학에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너무 대단하기 때문에 종종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다. 가령 사사로운 이익보다 학문적 가치를 중시하거나 논문을 써야 한다는 이유로 문제집에 실릴 문제의 마감을 늦추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연주는 바싹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제가 듣기로는 최선생님께서 미적분 챕터를 맡으셨잖아요.”
“윤선생님이랑 같이 했어요.”
윤선생은 연구소 최고참이었다. 최선생은 그에 비하면 반년도 채 안 된 신출내기였다. 윤선생은 이런 사고가 생기면 실수했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대처할 만큼 능숙했다. 한편 최선생은 꼿꼿이 날을 세운 채 시시비비를 가리려 들었다. 연주는 애써 말을 돌렸다.
“제 친구 중에 출판사 다니는 애가 있어요. 소설도 내고 경영서도 내는데 어떤 책은 몇번씩 교정을 봐도 출간하고 나서 꼭 오탈자나 띄어쓰기가 틀린 부분이 눈에 띄더래요. 그런데 그 책이 나중에 정말 히트를 친대요. 그래서 이제는 액땜으로 친다고.”
“그런데요, 연주씨. 제가 낸 문제가 틀린 건 아니잖아요, 사과해야 하나요?”
최선생이 날카롭게 반문했다. 연주는 한차례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최선생 탓을 하는 것처럼 들리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당연히 선생님께서 잘못하신 건 없죠. 사과문을 쓰시라는 건 아니에요. 문제를 정정하는 거죠. 저희가 그 리뷰를 쓴 학생이랑 신청자들에게 미적분 챕터 책자만 출력해서 보내준다고 공지할 예정이거든요. 아마 늦어도 다음주까지는 보내야 할 거예요. 그래서 이전보다 난이도는 좀 낮추고, 지난해 문제를 참고하셔도 되는데……”
“제가 풀이를 다시 쓰면 되잖아요. 틀린 문제가 아니니까.”
연주는 최선생보다 항의 리뷰를 쓴 고등학생이 세상물정에 더 밝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무실 게시판에서 본 일정표를 떠올렸다. 연초부터 빽빽했지만 결국 일정한 패턴의 반복에 불과했다. 문제집이 무사히 나오면 그다음 문제집을 준비한다. 그뿐이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여러 연구자들이 몇백편에 달하는 논문을 쓴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문제집의 목적은 수학의 신비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집의 역할은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과정에서 나오는 특정 공식을 외우고 연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일정한 가능 수에 따라 공이 나오는 피칭 머신과 비슷했다. 최선생처럼 듣도 보도 못한 문제를 내느니 차라리 이전에 출간된 문제를 베끼는 편이 훨씬 더 나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공이 날아온다면 그 피칭 머신은 대단하다기보다 고장이 났다는 평을 듣기 마련이었다.
“선생님, 당연히 공부 잘하는 애들이야 이런 항의를 안 하죠. 못하는 애들도 그렇고. 그런데 어중간한 애들이 꼭 기분 나빠 하거든요. 고작 연습문제인데 틀렸다고 남 탓을 하는 거예요. 평가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러는데 제일 항의가 많이 들어오는 때가 3월이래요. 아직 주제를 모르는 거죠.”
연주는 말하는 내내 최선생의 반응을 살폈다. 최선생은 잠자코 손끝으로 테이블 가장자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연주가 항의 리뷰 전문을 출력한 페이지를 찾아서 내밀어도 받지 않았다. 차장은 직원들에게 되도록 연구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주지했다. 하지만 연주의 연차만큼 대처도 늦어진 상황이었다. 더는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저도 예전에 이 까페에 올라온 리뷰 보고 문제집 골랐거든요. 여기서 사지 말라고 하면 안 샀어요. 종교였다니까요. 선생님, 아니면……” 연주는 말하면서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회의가 열리는 네시까지는 십오분가량 남았다. 최선생이 문제를 내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본인이 조장한 사태를 수습하지 않는 만큼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평이 추가될 뿐이었다. 연주는 최선생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다른 선생님께 부탁드릴게요.”
최선생은 결국 본인이 하겠다고 말했다. 연주의 감사인사를 듣고 나서도 그녀는 탐탁잖다는 눈빛으로 자신이 낸 문제와 풀이를 살폈다. 최선생의 말은 맞았다. 그녀가 만든 수학문제는 틀리지 않았다. 연주는 최선생이 끝내 자신의 실수를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는 틀린 문제나 다름없었다. 최선생은 약속한 대로 제시간에 문제를 만들어 메일로 보내왔다. 연주는 고맙다고 짤막하게 답장했다. 반응은 기대하지 않았다. 수습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까페 댓글로 출판사의 대처에 어느 정도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어디서든 진정성이 문제였다.
연주는 차장의 회식 권유를 거절했다. 그녀는 집 근처 버스 정류장보다 두 정거장은 더 지나서 내려 마트에 들렀다. 바싹 마른 빈 상자들을 챙겨 오는 길에 노끈과 도시락도 샀다.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 만큼 집 안은 싸늘했다. 연주는 상자를 척척 조립한 후 보이는 대로 짐을 던지고 쑤셔 넣었다. 행동 패턴이 이미 입력된 로봇처럼 주저하지 않고 그 모든 행동들을 해냈다. 가져온 상자들을 다 채웠을 즈음에야 그녀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었다. 생각보다 재언의 짐이 많았다. 아직 할부기간이 남은 게임기도 있었다. 누가 남은 할부금을 내게 될까. 그게 누구든 간에 재언이 열심히 키우던 캐릭터의 세이브 데이터는 지워질 것이다. 이제 게임기의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연주 혼자였다. 그녀는 재언이 죽은 줄도 모르는 게임 캐릭터가 태평하게 모험을 계속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연주는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데우는 내내 다시 마트에 가서 상자를 몇개나 더 가져와야 할지 가늠했다. 오늘 내로 재언의 짐을 다 정리할 작정이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는 잘못된 문제였다. 그런 문제들은 답이 되어야 할 공식을 도중에 망각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거나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는 동안 재언에게 가능했을 수많은 미래들을 떠올리곤 했다. 그 미래들은 순식간에 꺼질 물거품일 뿐이었다. 연주가 아는 한 재언은 매 순간 최선을 선택했다. 대학 전공에 맞는 구직활동을 그만두고 운전면허를 따면서 안정된 수입을 선택했고 냉동 탑차 기사로 경력을 쌓기 위해 무려 일년간 그 괴롭힘을 견뎌냈다. 그래도 어떤 선택의 문제로 이런 결말에 다다랐을 것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연주는 답지가 없어 확인할 수조차 없는 문제에 매달리는 셈이었다. 그녀는 학생이 괜한 엄살을 부리는 것일 뿐이라던 최선생의 말을 기억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 학생은 앞으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수학 문제들을 풀어야 했다. 설령 그 문제들을 다 풀어낸다 해도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에게 풀리지 않은 문제는 풀지 못한 문제가 될 것이고, 끝내 그 문제를 포기했다는 사실만큼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연주는 상자에서 삐져나온 재언의 티셔츠 소매를 잡아당겼다. 티셔츠 가슴팍에는 브랜드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다.
“재언아, 나 이거 입어도 돼?”
연주는 허공에 대고 물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재언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티셔츠에서는 인공적인 꽃향기가 났다. 연주에게도 익숙한 섬유유연제 냄새였다. 연주의 옷에서도 똑같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재언의 윗옷 중 입을 만한 것들을 골랐다. 후리스 점퍼도 입을 만했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영수증과 사탕 껍질 등 자질구레한 것들은 보지도 않고 버렸다. 그렇게 추리고 나니 상자 속 짐들은 보기에도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다시 마트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연주는 서랍을 열어 재언이 접어놓은 쓰레기봉투를 꺼냈다. 아직 버려야 할 게 남았다. 그녀는 냉동고를 열어 줄줄이 서 있는 아이스크림 통들을 모조리 쓰레기봉투에 쓸어 넣었다. 그대로 묶어 수월하게 끝내는 대신 봉투를 싱크대까지 끌고 온 연주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아이스크림 통을 하나씩 열었다. 짓쑤시고 파낸 숟가락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표면과 가운데 당당하게 꽂힌 플라스틱 숟가락이 보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어 있었는지 숟가락은 좀처럼 뽑히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힘껏 숟가락을 잡아당겼다. 재언의 일부는 이제 그녀가 가본 적도 없는 산에 흩뿌려질 것이다. 변변찮은 묘비조차 없이. 고작 아이스크림 주제에 묘비라니. 조금만 힘주어 당기면 부러지고 말 플라스틱 숟가락에 지나지 않았다. 분수를 모르는 것 천지였다. 연주의 턱이 얼얼해질 즈음 아이스크림 통과 숟가락이 꽂힌 채 뽑힌 아이스크림들이 싱크대를 가득 채웠다. 그녀는 미지근한 물을 틀어 통에 남은 아이스크림을 닦아냈다. 아이스크림이 녹으면서 쓰러진 플라스틱 숟가락들이 개수대에서 나뒹굴었다. 그녀는 그 딱딱하고 조그만 묘비들을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연주는 기절하듯 순식간에 곯아떨어졌다. 그녀는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내내 팔과 다리는 무력하게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기절할 만큼 피곤해도 꿈을 꿀 수 있다니 놀라웠다. 이내 그녀의 몸은 바닥에 두차례 튕긴 후 떨어졌다. 짓뭉개진 볼과 가슴팍은 얼얼했고 팔과 다리는 부러진 모양인지 움직이지도 않았다. 연주는 눈앞을 가린 머리카락들을 귀 뒤로 넘기고 싶었다. 그녀는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된 눈을 깜박거렸다. 꿈속이라지만 아무도 사람이 떨어졌다고 비명을 지르거나 달려오지 않았다.
재언아.
연주는 찢어진 입술을 달싹이면서 간신히 재언의 이름을 불렀다.
재언아.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았다. 잠에서 깼을 때도 그 고통이 얼마나 생생한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연주는 욱신거리는 팔꿈치와 다리를 주무르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일어나기에 이른 시간이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쌀을 한 컵만 씻어 밥솥에 안치고 반찬을 꺼내 상을 차렸다.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최선생이 메시지를 보냈다는 알림이 떴다. 그만두겠다는 내용을 예상하면서 문자함을 열었지만 그 반대였다.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니 다행이라는 답장이었다. 다음 신입 연구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문제집은 별문제 없이 순조로이 간행될 것 같았다.
연주는 나가려다 천장의 전등에 이마를 부딪쳤다. 통증 때문인지 그녀는 한참 동안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 웅크리고 있었다. 이윽고 허리를 펴고 일어나면서 혼잣말을 했다. 정말로 전등이 좀 낮네. 혼잣말치고는 큰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