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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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찬 宋鐘贊

1966년 전남 고흥 출생. 1993년 『시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가 있음. ssongchan@naver.com

 

 

 

블라디보스톡행

 

 

칸칸 기차들은 말없음표

저녁 여섯시 침묵하는 침목을 울리며

블라디행 기차가 시 외곽을 돌아나가네

어제는 열두량 객차가 지나더니

마흔개가 넘는 화차가 꼬리를 물고서

점점 아득해져가는 부호 속에는

고생대의 불빛을 간직한 석탄이 빛나고

도시를 떠나는 네 누이도 잠들어 있겠다

기차가 지난 뒤 설원 위에 울려퍼질

이깔나무 가는 잎의 짧은 서정시

기적을 울리며 외딴 벌을 지날 때마다

옛사랑도 잠결 속을 다녀가겠다

경사 깊은 통나무집에서 야생차가 끓고

우랄산맥 넘어 바이깔호 지나

동으로 가는 기차의 꽁무니를 따라가면

샤쁘까를 쓴 여인이 눈을 맞고 기다릴까

블라디보스톡행 밤기차가 떠나간 뒤

텅 빈 간이역처럼 남아

 

 

 

태양의 기억

 

 

시골서 보내온 묵은지에

라면을 끓여놓고 창밖을 내다본다

 

강 한가운데 낚시꾼 한 사람

점점 눈사람이 되어가고

국물에 피어나는 남해의 파도와 파래 줄기

 

해가 뜨지 않은 지 벌써 열흘

보드까로도 달랠 수 없는

이 긴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가

 

추운 날에는 새가 날지 않는다

이런 날에도 검은 망또를 걸친 수사는

성호를 그리며 맨발로 성당을 돌고 있겠지

 

고구마 한알을 꺼내놓고

멀리서 돌아온 탕아의 발을 씻어주듯

흙을 벗겨 접시물에 담가둔다

 

창밖은 영하 28

누구에게나 시베리아 유형의 길 같은

잊지 못할 발자국은 있겠지

 

구름이 낮게 깔리는 저기압지대

고구마 몸통에서 돋아날 새순을 바라보며

촛불 하나를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