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장재연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 동아시아 2019

희뿌연 미세먼지의 과학을 어떻게 할까

 

 

강연실 姜姸實

가톨릭대 박사후연구원 fmlm66@gmail.com

 

 

185_453

많은 한국인에게 2019년 봄은 미세먼지로 고통스러웠던 계절로 기억될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 미세먼지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창밖 매캐한 공기를 마주한 사람들은 0.4㎛ 미세입자를 94%까지 걸러준다는 KF-94 마스크를 매일같이 착용했고,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켰다. 시시각각 휴대전화 앱과 휴대용 측정기로 자신이 있는 곳의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했다. 사람들이 각자의 숨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할수록 우리의 공기를 깨끗하게 하려는 정부의 대책은 무능해 보였다.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 상품이 된 공기, 공포가 된 공기, 미세먼지 프레임으로 읽는 각자도생 한국사회』는 대기오염이 점점 개인의 책임이 되어가는 한국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느끼는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우려가 합리적 수준을 넘어 살아가기 힘들 정도의 불안과 공포”로 작용하여 “각자도생의 길을 찾으며 오히려 건강과 환경에 악영향”을 주게 되었다는 것이 미세먼지로 오염된 한국사회에 대한 저자의 진단이다.(107~108면) 각자도생 사회에서는 각종 공기청정 제품들이 개발되고 판매되고 소비된다. 사람들은 상품이 된 공기에 의지한다.

“공기 파는 사회”는 중국발 미세먼지 프레임을 ‘파는’ 사회이기도 하다. 저자는 미세먼지 오염의 원인을 중국에서 찾는 행태에 특히 비판적이다. 2013년 10월 28일, 연합뉴스는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심각한 중국 베이징의 스모그가 한반도로 몰려온다고 보도한다. 이때부터 정부와 지자체의 주요 미세먼지 대책은 중국을 겨냥하게 되었고, 언론 역시 중국의 영향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국립환경과학원의 모델링 과학자들은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들을 수행했다. 중국발 미세먼지 프레임은 결국 언론과 정부,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것이다.

저자는 ‘팩트 체커’의 역할을 자처한다. 정확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과도한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전문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대부분은 미세먼지와 관련된 용어와 개념, 기준을 설명하고 미세먼지에 대한 각종 오해를 바로잡는 데 집중한다. 한국 미세먼지 오염의 심각성(1장), 중국의 영향(2장), 그리고 언론의 오보 사례들(3장)을 다루며 저자는 반복적으로 미세먼지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부풀려졌는지 보인다. 예를 들어 ‘1급 발암물질’이라는 용어는 절대적으로 발암성이 높은 위험물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또 받아들여짐으로써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를 높이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 분류를 만들어낸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위해성의 높음 정도에 따라 물질들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암을 일으킨다는 연구 증거가 충분한 정도에 따라 급수를 구분했다. 즉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 미세먼지는 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상관관계가 입증되긴 했으나 여러 다른 물질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더 유해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저자는 환경부와 언론, 그리고 일부 과학자를 강하게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공포를 키우고 중국발 미세먼지 프레임을 강화하며 그것을 이용해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각자의 이득을 취하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먼저 언론은 “미세먼지에 대한 수많은 가짜 뉴스를 생산하거나 전파”(208면)했다. 3장에서는 여러 사례를 통해 언론이 미세먼지에 대한 과학 연구 결과를 왜곡해 전달함으로써 “잘못된 정보가 과학으로”(214면) 여겨지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한편 과학자들은 신뢰할 수 없는 과학을 생산해냈다. 특히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중국발 미세먼지 절대 책임론’의 과학적 근거는 환경부와 그 주변 일부 학자들의 대기질 모델링 결과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126면)라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대기질 모델링 연구는 모델의 가정과 입력값의 정확도에 따라 결과값이 바뀌는 “고무줄 같은 것”(285면)임에도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고, 나아가 동료 심사를 거치는 국제 학술지에 게재되지도 않았으므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부가 세워온 “낭비성 단기 대책”(300면)을 비판한다. 저자는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거나, 차량 2부제를 실시하거나, 인공강우 실험을 하고 야외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는 등의 대책들로는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노후 화력발전소 폐쇄와 같이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오염원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는 정책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는 것만이 해답이라고 제시한다. 미세먼지 문제에 지름길은 없다.

미세먼지에 대한 우려와 관심 수준에 비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가치가 있다. “‘가장 운동성이 강한 전문가’이자 동시에 ‘가장 전문성이 높은 운동가’”(317면)로서 길을 걷고자 했다는 저자는 미세먼지의 과학을 풀어서 설명하면서도 비판적 시각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의 주장과 비판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몇몇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특히 ‘어떤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데 집중한 반면, 불확실한 미세먼지의 과학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려는 없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과학과 비과학, 진짜 과학과 가짜 과학, 사실과 신념을 명확히 나누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대기질 모델링 과학은 “사실이 아니고 단지 운영하는 사람의 가정에 맞춘 결과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163면)하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 또 미세먼지의 주원인이 중국임을 보이는 과학을 “미세먼지 천동설”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관찰되어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이 지지한 “가짜 과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7~8면) 비과학과 가짜 과학, 그리고 신념은 공포를 키우고 미세먼지 오염을 중국의 탓으로 돌리게 한 원인으로 여겨진다. “선동과 언론 조작”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를 쉽게 혼란에 빠뜨리고, 실제 해결책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319면) 하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미세먼지 같은 복잡한 환경 문제에는 근본적으로 모호한 속성이 있다. 런던 킹스칼리지 인구보건환경과학대학원의 에마 가넷(Emma Garnett)은 초미세먼지 문제를 비롯한 대기오염 문제에는 항상 측정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내재된 불확실성은 더 정교한 과학을 추구하는 동시에 대기오염 과학과 거버넌스의 사회적·정치적·윤리적 측면들을 활발히 논의함으로써 비로소 보완될 수 있다. 천동설에 대한 이해가 과학사적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미세먼지의 과학에 대한 이 책의 평가는, 불확실성이 그 자체로 ‘위험의 과학’이 내재하고 있는 속성이라는 점을 저자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가짜 뉴스 못지않게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미세먼지의 과학 그 자체가 지닌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감안하면서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일일 것이다. 공기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