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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문선희 『묻다』, 책공장더불어 2019

회복되지 않는 땅을 돌아본 뒤에야

 

 

노고운

문화인류학자 nohgowoo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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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은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살처분한 동물들이 매몰된 땅을 담은 사진첩이자 기록이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쓴 문선희는 2010년 전국에 조성된 4,799곳의 살처분 매몰지 중 무작위로 100곳을 선정하여 그 땅들의 법적 사용이 허가된 매몰 3년 후 시점부터 2년 동안 사진을 찍었다. 이 책은 저자가 매몰지를 돌아보며 찍은 사진들, 농장 동물들에게 발생하는 전염병과 그에 대한 예방책으로 선택된 살처분의 역사, 사진 전시회에서 만나게 된 다양한 관객들과의 소통을 담고 있다. 중의적 의미를 지닌 이 책의 제목 ‘묻다’를 통해 저자는 2010년에만 살처분으로 약 천만마리의 동물이 묻혔음을 밝힌다. 2010년 11월 구제역에 대한 조치로 총 347만 9,962마리의 소와 돼지가, 같은 해 12월 조류독감(AI) 발생으로 약 648만마리의 가금류가 생매장당했다. 그중 99.99%는 병에 감염되지 않은 건강한 개체였다. 그리고 묻는다. 살처분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그로 인해 환경과 인간 및 비인간 생물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경제적 논리로 생명을 계산하는 방식이 올바른지(실제로 경제적이지도 않다는 지적과 함께), 그리고 살처분이 아니라면 대안은 무엇일지.

저자는 『묻다』를 통해 촉각까지 자극하는 시각자료(예를 들어 땅의 물컹거림이 느껴지는 사진들)를 보여줌으로써 ‘전염병 해결=살처분’이라는 등식을 당연하고 과학적인 결정이라고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땅이 앓는 몸살을 함께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언론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숫자들(생매장된 동물의 수)도 이 사진들의 제목이 되는 순간 객관적인 통계수치에 머물지 않고 죽어간 생명의 고통의 정도를 체감하게 하는, 숫자 이상의 정동(affect)을 형성한다. 책의 첫 부분에는 그의 사진 작품 24점이 다음과 같은 제목들로 실려 있다. 2312_01, 11800, 15000, 84879_06, 8975…… 흰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는 땅, 동물 뼈로 덮여 있는 땅, 손 모양 잎의 덩굴식물(훼손된 들에 자라는 환삼덩굴)에 덮인 땅, 회색으로 삭아버린 풀들이 해초처럼 흐느적거리는 땅을 담은 사진들 옆에는 숫자가 있다. 사진이 끝난 후 다음의 설명이 등장한다. “이 사진들은 구제역과 조류독감 매몰지 3년 후를 촬영한 것이며, 제목으로 쓰인 숫자들은 그 땅에 묻힌 동물들의 수입니다.”(54~55면) 매몰지 한곳에 생매장당한 동물들의 엄청난 수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전혀 건강해 보이지 않는 땅의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살처분이 그 동물들을 죽임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살처분으로 병든 땅이 된 매몰지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농작물 및 야생식물을 까맣게 그을리는 독을 내뿜고 있음을, 그리고 사람들은 그 땅에서 키운 농작물을 먹고 그 지하수를 마시며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부 땅이 병들게 되더라도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농장동물의 전염병에 경제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살처분이 필요악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살처분 방식이 필수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간결하게 설명한다. 먼저 구제역은 전염은 잘 되지만 2주 내에 자연 치유되는 경미한 질병이다.(88~89면) 치사율이 낮고 치료가 가능한 질병에 아직 걸리지도 않은 약 천만마리의 동물들을 죽이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 이유가 주로 경제적 이윤을 위해서라면 더욱 그러하다. 한국정부는 백신이 아닌 살처분을 구제역 예방책으로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여 육류 수출을 공백기 없이 지속하고 경제손실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저자는 살처분이 육류 수출 공백보다 더 큰 경제손실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밝힌다. 2010년 기준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24개월간 수출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손실액은 약 44억원인데 2010년 구제역 살처분 정책으로 집행된 예산은 2조 7, 383억원이었다.(96면)

이에 더하여 산 채로 떼죽음당하는 건강한 동물들이 경험하는 공포와 고통, 막대한 살처분 비용, 회복하기 어려운 2차 환경오염, 되풀이되는 전염병의 위협, 끔찍한 동물 살상에 따른 사람들의 정신적 피해는 육류 생산 비용에 포함되지 않지만 육식인과 비육식인 모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며 농장 동물들이 견뎌내고 있는 목숨값이다. 이 모든 비용을 포함한다면 공장식 축산에서 생산되는 고기는 절대 값싸지 않다. 이러한 외부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 손익을 따지는 방식은 비단 육류 생산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현대 시장경제의 일반적인 맹점이다. 경제 용어인 ‘외부효과’는 산업을 통해 발생한 간접적 외부비용(환경, 의료, 복지 등)을 산업의 주체인 기업이 책임지지 않고 시민과 같은 제3자에게 동의 없이 부과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핵에너지는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인 방사능 유출의 위험과 수십만년 동안 존재하는 핵폐기물 처리 비용이 어마어마함에도 불구하고 태양열과 같은 재생에너지에 비해 생산가가 조금 낮다는 이유만으로 값싼 에너지로 여겨진다. 체르노빌이나 후꾸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는 그것을 직접 당한 사람들과 생물들에게 육체적·정신적 훼손의 외부비용이 전가되면 그만이고 핵폐기물 처리 비용은 세금으로 시민들이 부담하면 된다는 논리이다.

『묻다』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한다. 구제역과 조류독감 확산의 직접적인 원인이 철새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생물 및 상품 이동의 세계화, 육류의 유통구조, 그리고 공장식 축산 방식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특히 햇빛이 전혀 들지 않고 수개월간 축적된 동물의 오물이 쌓여 있는 비위생적 환경에서 많은 수의 동물들을 움직일 수 없는 좁은 공간에 쌓아놓고 키우는 공장식 축산은 전염병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진 동물들은 전염병에 빠르게 감염된다. 저자는 더 나은 백신을 개발하여 체계적으로 제공하면서 비위생적인 대규모 축사에서의 밀집사육 방식을 버리고 위생적이고 자연적인 환경에서 소수의 농장동물을 키우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전염병의 잦은 발생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제역을 살처분 없이 자연스럽게 치유한 19세기 유럽(89면)과 20세기 초 조선(94면)의 역사적 사례들을 근거로 제시한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이러한 고발은 또한 농장동물이 받는 학대와 고통에 대한 독자들의 적극적인 사고의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살처분 매몰지 사진을 찍으면서 현대사회에서 육식의 의미가 농장동물들이 “불필요하게 겪는 고통, 괴로움, 학살”(105면)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되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국가와 기업은 농장동물 사육과 도살을 의도적으로 감춤으로써 고기 소비자들에게 육식이 농장동물 학대에 대한 동참임을 숨긴다. 따라서 종차별화에 대항하는 동물권 운동은 농장동물이 처한 현실의 가시화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최근 일부 동물권 단체들은 비질(vigil, 도살장 등을 방문하여 사회에서 감추는 동물 사육과 도축의 현장을 목격·기록·공유하는 동물해방운동의 한가지 방식)을 통해 농장동물들이 어떻게 지옥 같은 환경에서 살다가 죽는지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동물권 운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조적 폭력을 고발하는 것으로 인권 운동과 역사적·철학적 맥락을 같이한다. 이 책이 보여주듯이 농장동물 살처분은 인간, 농장 및 야생 동식물, 생태계, 한국 및 전세계와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경제, 환경, 인권, 동물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사회와 자연, 인간과 동식물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존재하지 않고, 경쟁이 아닌 상생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