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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황학주 黃學周
1954년 광주 출생. 1987년 시집 『사람』으로 등단. 시집으로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갈 수 없는 쓸쓸함』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루시』 『저녁의 연인들』 『노랑꼬리 연』 『某月某日의 별자리』가 있음. hakjooh@daum.net
그렇게 협소한 세상이 커튼 안에 있었다
그 순간 숨을 쉴 수 없는 안녕,
행복하게 외로웠던 순간을 중얼거리다보면
점점 운명이 생각하는 시간에 대해
한번은 내기를 하고 싶어진다
오래 말린 곶감 속에 네가 울고 있을 것 같았고
가시나무에 여윈 등을 치대고 있는
내 기다란 그림자— 보풀이 인 채 휘청이는 것도 같았다
사막의 바깥을 보았으면 해서
우리가 커튼 안으로 들어간 것을 인생이라고 할 수 있나
시큰시큰한 불빛을 올려놓은 책상에
많이 닦아낸 마음의 낙하
마른 나무 열매 한알처럼 또르륵 굴러간 것이지만
커튼 뒤에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
누군가 부를 수 있다 한 사람은 밖으로 나가야 하는
많은 잠깐들
혼자 있을 시간이 되니
누군가 왔다 간 나무가 서 있다
그 밑에서 가동거리던 계절은 물방울 화석처럼
놀랍고 좋은 질문이다
긴 휘파람이 끝나고 다른 휘파람이 시작되는
낙엽은 지고
쓰러지는 어느 병사의 눈에 핀
코스모스가 맨땅에 부딪히듯
울린다
떠난다는 것
나무는 물의 음계를 모는 나그네였지 광폭의 말발굽 소리
아득히 펼쳐 잡은 큰길 위는 아니었지만
가벼운 것도 아니었지 그 많은 잠깐들
맑은 피 번지고서
흩어졌네
지금은 침례받기 직전처럼 떨린다 할 수 있다
마당에서 누군가 줍게 될
쓰러지는 이파리들의 시간이여
힘주어, 물이었다 해도
그런데, 꿈이었다 해도
기억을 앞세워 찾아오지는 말아야 한다
돌이 구르는 시여
지저귀던 새와 우울한 벤치의 오전과 오후는
이제 다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질 좋은 행간을 사들고 방문하고 싶은 우주를 며칠 가진 적 있다
혼자 선 나무는
오후 두시만 되면 벌써 한산해지는
장날 같은 마음 밑바닥에
울울창창, 수없이 많은 잠깐들을 펼치고 있다
둥근 잠깐들 사이로 잠깐씩 빛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