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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사랑

1984년 서울 출생. 201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소설집 『스크류바』, 장편소설 『우주를 담아줘』 등이 있음.

giparang-1@hanmail.net

 

 

 

서울의 바깥

 

 

T팰리스에 들어서며 나는 무슨 지령이라도 수행하듯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공동 현관을 지나칠 때 시간을 체크했다. 10시 36분. 아직 여유가 있었다. 현관 안의 자동 유리문은 자동으로 열리지 않았다. 카드키로만 열리는 문이었다. 어떻게 통과해야 할지 몰라 기웃거리는데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 틈에 무사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경비실에서 방문증을 받으라고 했었지. 경비실 앞에 놓여 있는 방명록에 이름과 방문 호수, 방문 목적 등을 작성하자 직원이 신분증이나 차키 중 하나를 요구했다. 그리고 매끄러운 동작으로 내가 건넨 운전면허증을 받아서 넣고 임시 카드키를 내주었다.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있죠? 하는 내 물음에 직원은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 다시 왼쪽으로 꺾어진 곳에서 타시면 됩니다, 하고 대답했다. 왼쪽 코너를 돌자 양쪽으로 갈라진 길이 나왔다. 왼쪽은 저층(1~ 30층) 전용, 오른쪽은 고층(31~ 60층) 전용이었다. 나는 왼쪽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29층 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멈춰 있었다. 아, 카드키! 카드키를 어디에 대야 하는 건지. 더듬거리며 카드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에 맞춰보았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당황해서 여기저기 대보는 사이, 딩동 소리가 나며 인증이 이뤄졌고 그제야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2909호 앞, 다시 한번 시계를 확인했다. 10시 43분. 약속한 시간까지 2분이 남았다. 나는 몇시간 전 전화 통화로 들었던 말을 상기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럼 10시 50분에 시작하는 걸로 하죠. 선생님은 수업 5분 전에 도착해주세요. 빨리 오시지도 늦게 오시지도 말고요, 꼭 10시 45분에 벨 눌러주세요. 제가 이명이 있어서 벨소리를 못 듣거든요. 이명하고 벨소리가 똑같지 뭐예요. 그러니까 화면 보고 있다가 딱 45분에 문 열게요. 2분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휴대폰 시계만 노려보다 45분이 되는 순간 벨을 눌렀다. 귀에 익었지만 제목을 알 수 없는 클래식 벨소리가 울려퍼졌고 잠시 뒤 틱,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풀렸다.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구두를 반쯤 벗은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 어둑한 거실에 불이 켜지며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작고 마른 몸이 눈에 띄었다. 여자는 화장기 없는 얼굴을 문지르며 피곤한 듯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마주 서서 고개를 숙이며 나도 인사했다. 네, 어머님, 안녕하세요.

카드키는 저 상자에 넣으시고요, 들어오셔서 선생님이라고 쓰여 있는 파란색 슬리퍼 있죠. 그걸 신으세요. 그리고 손 소독제 한번 쓰시고요.

나는 지령에 따라 카드키를 넣고 슬리퍼를 신고 알코올 향이 나는 손 소독제로 손을 닦았다. 그러자 어머님은 베란다 문을 열고 책과 시험지가 쌓여 있는 베란다를 지나 중문을 열고 또 닫고, 마지막으로 방문을 열었다. 분명 거실 입구에 방문이 있었는데 이렇게 돌아 돌아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방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침대가 보였다. 높은 침대에 누워 있던 거구의 학생이 몸을 돌려 누웠다.

넌 5분만 쉬어. 엄마가 선생님이랑 잠시 얘기 좀 할 테니까.

반쯤 몸을 일으키던 학생과 잠시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안녕이라는 말을 건넬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학생은 다시 누웠고 나는 어머님을 따라 좁은 공간으로 들어섰다. 방은 침대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책장과 책상이 놓인 구조였다. 책상은 앞이 막혀 있는 것으로 두개가 이어져 있었다. 책상에 앉으면 방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공부할 책들만 보였다. 의자 뒤로는 남은 공간이 별로 없었다. 비좁아서 몸집이 큰 학생이 자유롭게 드나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어머님은 두개의 의자 중 왼쪽 것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말했다. 나는 가방을 잠시 책상에 올려두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어머님은 가방은 책상 밑에 두세요, 하고 말한 뒤 휴지에 세정제를 묻혀 가방이 있던 자리를 닦았다. 펜은 따로 꺼내지 마시고 여기 있는 거 쓰세요. 나는 네, 하고 말했다. 네,밖에는 더이상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었다.

시강을 위한 프린트 자료가 가방에 들어 있었다. 가방으로 몰래 손을 뻗치고 있을 때 어머님이 수능특강 책을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수능특강으로 강의하시죠? 네, 그럼요. 나는 뻗던 손을 다시 책상 위로 가져왔다. 분명히 시중에서 파는 수능특강 책이 맞았는데 스프링 제본이 되어 있었다. 뭘 굳이 이렇게까지, 하고 고개를 드는데 책장에 꽂힌 모든 책이 스프링으로 제본되어 있었다. 어머님은 내게 준 수능특강 책 위에 숫자 2가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2라고 적힌 건 선생님이 보시고요, 1이라고 된 건 아이가 볼 거예요.

어머님은 바쁜 손길로 페이지를 펼치며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 애가 비문학은 나쁘지 않은데 문학이 좀 부족한 것 같아서 선생님 모셨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말뜻을 잘 못 알아듣는 편이니까 최대한 천천히 수업해주세요. 오늘은 「회색 눈사람」 있죠. 그걸 하는 게 좋겠어요. 아까 풀라고 시켰더니 두 문제나 틀렸지 뭐예요. 제가 읽어봐도 좀 난해한 부분이 많은 것 같고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인물의 관계라든지 대화의 이유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시면 좋겠어요. 지인아, 들어와. 벌써 1분 지났어.

어머님이 나간 좁은 틈으로 학생이 나타났다. 학생은 몸을 모로 틀어 겨우 의자에 앉았다.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며 나는 처음으로 학생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봤다. 한올도 빠짐없이 단정하게 묶은 머리 밑으로 둥근 이마가 보였다. 이마와 볼, 턱 주변은 모두 여드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눈은 작지 않은데 두꺼운 안경 때문에 축소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안경 너머로 학생과 잠시 눈을 마주쳤다.

학생과 나는 각자 교재로 눈을 돌렸다. 선생님이 천천히 읽을 테니까 눈으로 따라 읽어. 모르거나 이해 안 가는 내용 있으면 질문하고. 그 말 뒤에 나는 평소처럼 앞부분 줄거리부터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학생이 잘 모를 만한 단어가 있으면 부연 설명을 했고 인물의 행동 이유도 간간이 덧붙였다. 아주 매끄럽지는 않아도 썩 나쁘지 않은 수업 분위기였다. 나는 두 페이지 가득한 본문을 다 읽고 나서 학생에게 물었다. 이해했어? 학생이 손가락으로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부분이 이해가 안 가요.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평소 같으면 한 사람에 대한 결정적인 평가 절하로 연결될 이런 진부한 말이 고개를 돌린 그의 어두운 표정 때문인지 의도적인 모욕으로 들렸다.’ 이런 진부한 말이 가리키는 게 뭐지? 앞 문장에서 찾아봐. 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 이 말이잖아. 안정된 직장도 가지고 시집도 가야 할 거라는 말, 그게 진부한 말이지. 진부하다는 건 표현이나 행동이 낡았다는 뜻이야.

그게 왜 평가 절하로 이어지죠?

여자니까 시집이나 가야 한다는 말이 좋게 들리지 않겠지. 게다가 이 주인공은 대학생이고 자신의 의지로 여기 와 있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는 선배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을 거야.

그럼 의도적인 모욕은 또 뭐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고, 그런 말을 꺼냈다고 생각하는 거야.

왜요?

나는 지친 티를 내지 않고 했던 말을 이렇게 바꾸기도 저렇게 바꾸기도 하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간신히 학생을 이해시켰다고 생각할 무렵 책상 뒤에서 목소리 하나가 날아왔다.

“둘이 무슨 일을 하기에 남자가 일부러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거죠?”

나는 대답을 학생에게 해야 할지 아니면 저 책상 뒤편 보이지 않는 어머님에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학생을 향해 입을 뗐다. 이 당시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때고 두 인물이 하는 일도 그와 관련된 것이라 짐작할 수 있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면 인물들의 말을 파악하기 쉬워. 그런 식으로 문장을 하나하나 짚어가다보니 그 지문 하나를 끝마쳤을 때 약속된 시강 한시간이 다 가버린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한숨을 삼키고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하고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좁은 틈으로 어머님이 나타나 학생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넌 빨리 가서 5분 쉬어. 그래야 수학 숙제도 하지. 23분까지만 쉬고 그다음엔 화장실에 가고 32분에 꺼내놓은 약 먹어. 학생은 몸을 빼며 아이처럼 어머님에게 매달렸다. 엄마, 나 선생님 너무 좋아. 문학 말고 비문학도 하고 싶어. 너무 하고 싶어. 어머님은 부드럽게 딸의 몸을 토닥이며 내보냈다. 그러고는 표정 없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저쪽 문으로 돌아 나오시고요, 거실에서 잠시만 얘기해요.

어머님은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법, 올해 시험 경향, 앞으로 봐야 할 교재, 현재 학생의 건강 상태, 먹고 있는 약들을 쭉 읊었다. 나는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잠시 시계를 봤다. 곧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었다. 내가 사정을 말하자 어머님은 놀라며 차 안 가지고 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차를 가진 적도 없었고 가까운 미래에도 살 계획이 없으며 주차를 말도 안 되게 못해서 외제차가 수시로 드나드는 이런 곳에 끌고 올 수 없다는 말을 모두 머릿속에만 담아둔 채 웃으며 말했다. 네, 대중교통이 시간 맞추기가 더 좋아서요. 워낙 시간 약속이 중요한 일이잖아요. 어머님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아슬아슬하게 지하철 막차를 놓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자리에 앉자마자 음악을 들었을 텐데 오늘은 그럴 기운도 없었다. 수업은 내가 했는데 왜 너무 많은 말을 들은 기분인지. 역시 거절을 했어야 맞나. 이미 지난주에 한번 거절한 수업이었다. 여름방학이라 수업이 많이 잡혀 있는 상태였고 굳이 더 할 필요는 없었다. 통상적인 수업료의 1.5배 높은 페이를 제시하기에 혹했지만 그뿐이었다. 이 바닥에서 오랜 시간 일하면서 배운 건 높은 페이에는 지나친 피곤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나는 돈도 좋지만 나를 아끼고 싶었기에 아쉬워도 연결업체에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어젯밤 어머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저희 아이가 사실 많이 아파요. 강박증 치료 때문에 몇년 동안 병원에 다녔고요, 학교도 중간에 그만뒀어요. 재작년에 검정고시 보고 작년에 수능을 봤는데 그때까지는 병이 심해서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어요. 올해는 증세도 많이 호전되고 아이도 잘해보겠다고 해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저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전화 통화만으로도 사람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잘해주실 것 같아요. 업체에서 다른 선생님들 몇분 더 소개해주셨는데 마음에 안 차더라고요. 선생님이 와주시면 좋겠어요.

그렇게 반은 페이에 반은 칭찬에 넘어가서 늦은 시간의 시강까지 약속했다. 피곤하다, 안 갔어야 했는데. 하지만 걸려오는 전화에 나는 또다시 네네,만 반복했고 일주일에 1회였던 수업은 2회로 늘어났다. 그래, 돈 버는 게 나를 아끼는 거지 뭐. 집에 도착할 때까지 어머님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저는 선생님이 딱 들어오는 순간 겉모습부터 다 마음에 들었어요. 저희 아이도 너무 좋아하고요. 그런데 선생님,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한데요. 아니다, 안 해야지. 아니 그게 아니고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선생님 수업 좋은데, 중간에 ‘어어’ 하시는 습관 있죠. 그것만 고쳐주시면, 아니 줄여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게 의식하지 않고 나온 습관이겠지만 말이죠.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 저희 아이가 그럴 때마다 흐름이 끊기는 것 같아서요. 너무 죄송해요, 이런 말씀 드려서. 당연히 그 말에 따라붙은 내 대답은 네,였다.

 

집에 도착해 화장도 지우지 않고 입은 옷 그대로 드러누웠다. 휴대폰의 시간표 앱을 켜서 다음 주 수업 일정을 정리했다. 일주일에 두번은 꼭 쉬기로 마음먹었는데 벌써 어긋나버렸다. 사실 쉬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무늬만 공시생으로 3년을 버텨왔다. 처음 회사를 그만둘 때는 꽤 뻔뻔했다. 지금까지 내내 일만 해왔으니 일단 좀 쉬자는 생각이었다. 쉬어도 곧 다음 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도 한몫했다. 쉬기 시작한 지 두달 정도 되었을 때 부모님이 먼저 공무원시험을 제안했다. 나는 거절도 승낙도 아닌 애매한 대답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공무원이라. 요즘에는 대기업보다 낫지. 승진 잘돼, 호봉 쌓여, 잘릴 일 없어. 그만한 직장이 없지. 그렇기 때문에 경쟁률이 어마어마했고 그만큼 공부 시간도 길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공무원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말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떨어질까봐. 다른 건 몰라도 공부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서울 시내 유명 대학에 어렵지 않게 입학했고 토익과 토플, 외국어 시험점수도 나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시험은 내 특기에 가까웠다. 그랬기에 실패가 더욱 두려웠다.

나는 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질 만한 일은 요령 좋게 피하며 살아왔다. 열심히 하다 실패하는 건 정말 싫었다.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뭐랄까, 좀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서 준비는 하되 열심히는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것도 부끄러워서 숨겼다. 그냥 어느날 갑자기 공무원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고, 떨어지더라도 내 탈락을 아는 사람이 없으면 그럭저럭 견딜 만할 것이었다.

비밀 공부를 시작했으니 부모의 도움은 바랄 수 없었다. 첫해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도 하며 제법 공시생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다음 해부터는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음식점이나 편의점은 시간 대비 페이가 적었고 독서실 총무는 페이도 적은 데다 자리는 더더욱 나지 않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결국 할 수 있는 건 입시 과외뿐이었다. 그게 그나마 삼십대 미혼 여성인 나의 경력과 학력과 스펙을 인정해주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최소한의 수업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공부에 쏟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이 한번에 무너진 건 아니었다. 그저 수업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는 사이에 서서히 내 공부 시간은 떠밀려갔다.

새해가 되면 으레 세우는 계획에 올해는 꼭 시험에 붙어 공시생 생활을 때려치우자고 써 붙였다. 그 계획은 작심삼일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작심삼개월을 넘지 못했다. 3월이 되고 수업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일단 받았다. 당장 월세를 해결하고 관리비를 내야 했으니까.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했으니까. 옷을 사고 구두를 신어야 했으니까. 때때로 한우를 먹고 라텍스 침대를 써야 했으니까. 유행하는 신상을 사고 디자이너 컬렉션을 신어야 했으니까. 처음부터 누리지 않았으면 몰라도 이미 누리고 있던 것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속물적인 욕망에 지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수업은 큰 차질 없이 이어졌다. 나는 T팰리스 단지 내에서 더이상 헤매지 않았고 카드키를 제때 태그하지 못해 당황하는 일도 없었다. 먼저 도착하는 날에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단지 2층 라운지 공간을 산책하기도 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주민들과 간간이 목례를 나누기도 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이런 공간에서 살 일이 없겠지만 내 행동은 누구보다 매끄럽고 거침이 없었다. 밖에서 보던 T팰리스는 철옹성같이 단단하고 높게만 느껴졌지만 막상 안에 들어오자 허점이 많이 보였다. 보안이 엄청나다더니 별것도 없네. 구조도 별로고 채광도 별로야. 물론 내 코웃음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몇번의 수업을 거치며 어머님의 인생 여정을 알게 되었다.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꿈을 향해 달리는 주인공의 에피소드가 나오면 엄마도 예전에 예원학교 다닐 때 첼로 메고 다니면서도 하나도 힘든 줄 몰랐잖아, 하고 말했고 언덕길에서 인물이 넘어지는 장면을 보면 엄마도 이대 음대 오르는 그 언덕길에서 넘어져서 한달이나 고생했잖아, 하고 말했다. 법정 장면이 나오면 학생에게 아빠 일하는 거 봤지? 하고 물었고 취조 장면에서는 할아버지 생각나지? 하고 물었다. 그리고 본인이 현재 이명이 심한데 그게 삐 소리나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클래식 음악 소리로 와서 벨을 눌러도 잘 알지 못한다는 우아한 에피소드도 아주 여러번 되풀이했다. 어머님의 투 머치 인포메이션은 나의 수업 사이사이 수시로 파고들었고 나는 그때마다 적절하고도 넘치지 않는 리액션을 구사했다.

오늘은 뭐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아무래도 집중력이 좋은 앞 시간에 고전시가를 먼저 하는 게 낫겠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말들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구두를 슬리퍼로 갈아 신고 손 소독제로 손을 닦고 베란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학생이 비타민과 홍삼을 먹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나는 앉아서 교재를 펼쳤다.

오늘 수업 시작은 이황의 「도산십이곡」이었다. 이 작품은 이황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머물며 쓴 것이다. 주제는 자연에 살고 싶은 소망과 학문에 대한 의지. 첫줄부터 읽을 테니까 따라와, 하는 내 말에 학생은 네, 하고 대답했다. ‘천운대 도라드러 완락재 소쇄ᄒᆞᆫ듸’, 여기서 소쇄하다는 말은 맑고 깨끗하다는 거야. 이번에는 학생의 대답 대신 어머님의 말이 끼어들었다. 소쇄하다는 게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래, 어떻게 외울 거야? 소쇄하다니까 소가 풀 뜯는 장면 상상할까?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로. 그러면서 어머님은 학생의 입에 투 플러스 한우를 잘게 다져 만든 비빔밥 한숟갈을 넣어주었다.

죄송해요. 밥이 좀 남아가지고. 두숟갈만 더 먹자.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구절을 읽었다. ‘만권생애로 낙사 무궁ᄒᆞ얘라.’ 나는 시를 읽고 어머님은 밥을 먹이고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을 씹었다. 약속한 대로 두숟갈을 마저 더 먹이고는 어머님은 잠시 퇴장했다. 나는 「도산십이곡」을 마치고 바로 뒤에 이어지는 작품인 「고산구곡가」로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이 수업이 내 의도대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하는 건 분명한 착각이었다.

“끝나셨으면 『김원전』 해주세요. 저번에 보니까 동굴에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부분이 아주 헷갈리더라고요. 천천히, 알고 계시죠? 천천히 해주세요.”

『김원전』은 둥근 수박 모양으로 태어난 김원이 허물을 벗고 대장부로 변신한 뒤 영웅적 면모를 펼쳐 지하국 괴물에게서 세 공주를 구하고 부마가 되는 내용이었다. 수능완성 책에 나온 부분은 지하국에서 아귀를 물리치고 밖으로 나오는 대목이었다. ‘홍갑선을 들어 한번 부치니 아귀 몸을 움직여 일어나다가 도로 쓰러지는지라. 원수 이미 비수를 들어 바로 그놈의 가슴을 찌르니 피 흐르며 식경이나 뛰놀다가 거꾸러지거늘……’ 여기까지 읽었을 때 책상 뒤에서 어머님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제가 저번에 봤던 문제집에서는 분명히 공주가 칼을 주고 그 칼을 시험하고,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요. 여기는 왜 없죠?

고전소설은 이본이 워낙 많아서요. 전체 줄거리는 비슷하더라도 세부적인 내용은 다른 게 많습니다.

그 부분이 어려웠는데. 그걸 해야 하는데. 제가 얼른 가서 찾아올게요.

어머님이 돌아오기 전에 학생과 나는 풀어야 하는 문제를 다 푼 상태였다. 잠깐 틈이 생기자 학생은 내게 물었다. 2등급이라도 서울대 갈 수 있어요? 대부분은 1등급인데 2등급 과목이 섞이기도 한다더라. 그럼 이대는 가능한가요? 전체적으로 1, 2등급이고 3등급을 맞더라도 3초여야겠지. 학생은 1, 2등급도 아니고 서울대나 이대에 갈 만한 성적이 나온 적도 없지만 궁금증은 그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학생이 또다시 입을 떼려 할 때 어머님이 찾았어요, 하며 들어왔다.

김원이 수박으로 변해 아귀의 소굴로 들어가고 옆방에 숨어 있다가 공주의 도움을 받아 잠들어 있는 아귀를 공격하고 그 아귀가 저항하다 결국 거꾸러지는 동안 어머님은 계속 학생 옆에 서서 수업을 같이 들었다. 김원이 아귀를 해치운 뒤 동굴 입구로 가 부하들을 시켜 두레박을 내렸다. 두레박에 몇명씩 나누어 타고 동굴을 빠져나가려는 계획이었다. 공주들은 김원이 먼저 올라가길 바랐지만 김원은 자신이 제일 마지막에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불안해하는 공주들을 먼저 올려 보내고 마지막 두레박을 타려는 순간 김원의 부하가 공을 가로채려는 목적으로 줄을 끊고 입구를 막아버렸다.

줄을 동굴 밖으로 던지면 탈출할 수 있지 않아요?

줄은 휘어지는데 어떻게 동굴 밖으로 던질 수 있겠어. 동굴은 아주 깊어.

줄도 아주 길면요.

줄이 아무리 길어도 밖까지 던지기는 어렵고 던진다 해도 받아줄 사람이 없겠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나는 이해가 안 되는 학생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차분히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줄을 고정할 데가 없으면 밖으로 줄을 던지는 데 성공해도 힘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 왜요? 그 말에 내가 동굴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학생은 동굴 밖에서 나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왜요, 왜요? 같이 있던 어머님이 함께 설명하려 했지만 학생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이었다. 어머님은 밖에 나가 핸드백에서 뺀 듯한 가방끈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바닥에 앉아 책상 위를 향해 가방끈을 던지기 시작했다.

봐. 아무리 위로 던져도 잘 올라가지 않지. 설령 올라간다고 해도 잡아당기면, 이것 봐, 다시 떨어지잖아.

학생은 꺄르르 웃으며 알겠다고, 이제야 이해가 된다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갸웃거렸다. 이게 스무살 수험생의 입시 수업이란 말이지?

수업을 끝내고 나오자 어머님이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페이 드리는 날이죠? 하며 오만원권 지폐를 꺼내어 한장씩 세기 시작했다. 이번 주는 세번 했으니까 이거 맞으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폐를 가방에 넣었다. 봉투 준비 못해서 죄송해요. 그런데 드릴 때마다 봉투에 넣는 것도 낭비인 것 같아서. 이해하시죠? 요즘 종이도 플라스틱도 다 적게 쓰자고 하잖아요. 오늘 특히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이렇게 한번 해두면 아이가 기억을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 그리고 대치동 유명 강사 B선생님이 모의고사 문제집을 냈다고 해서 샀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연계 작품이 많이 들어 있는 거 같더라고요. 잠깐 들춰보는 것으로는 문제가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괜찮은 문제가 많은 것 같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공부할 책을 펼쳤다. 물론 눈에 들어오는 글자는 없었다. 나는 책을 그대로 두고 침대에 누웠다. 텔레비전도 켜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고 천장만 봤다. 내 원룸의 천장은 무척 낮았다. 키가 작은 나도 침대 위에 올라서면 머리가 거의 닿을 정도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층고가 높은 집을 골라야 실제보다 넓어 보인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 조언은 쓸데없었다. 내가 가진 돈으로는 층고가 높은 집을 고를 여력이 없었으니까. 수압이 세야 한다, 하수구 물 빠짐이 좋아야 한다, 볕이 잘 들어야 한다 등의 팁도 같은 이유로 소용없었다.

가방에서 오늘 치 페이를 꺼내어 서랍에 있는 지폐와 합쳤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지폐 뭉치는 꽤 도톰했다. 오늘의 나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쇼핑을 시작했다. 쇼핑하는 데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과 손가락뿐이었다. 제일 처음으로 내내 갖고 싶었던 줄 없는 이어폰을 검색했다. 해외배송, 공동구매, 구매대행 사이트들이 줄줄이 떴다. 조금 복잡한 루트를 이용하면 가격이 얼마쯤 싸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스마트한 소비라고 부른다는 것도. 그러나 오늘 나는 스마트할 힘이 없었다. 무언가를 비교하고 분석하고, 정품이 아닐까봐 염려하는 것도 비용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구매했다. 그렇게 고민과 염려를 돈으로 메꿨다.

다음으로 시폰원피스와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던 명품 가방을 질렀다. 물론 할부로. 지금의 나는 가난했으나 이번 달의 나와 다음 달의 나, 그리고 다다음 달의 내가 힘을 합치면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의 내가 지문 인식으로 결제를 하면 그 뒤는 6개월 후의 나나, 1년 후의 내가 맡았다. 그냥 그렇게 살아갔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별다르지 않을 거라고 위로했다. 이것마저 없으면 내일도 나가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하기보다는 존재하는 삶을 살라고 충고했지만 소유라도 없으면 하찮은 존재인 내가 이 땅에 발붙일 재간이 없었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공무를 집행하는 데 왜 이렇게 많은 국어와 영어와 한국사 능력이 필요할까. 그건 학생들이 내게 자주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왜 이런 걸 알아야 돼요? 나는 올바른 혹은 괜찮은, 그럴 듯한 답을 학생들에게 줄 수 없었다. 시험 점수가 인간을 판단할 기준이 되고 그것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정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거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몰랐다. 나는 그저 줄의 중상위권에는 서 있기 위해 무릎에 힘을 주고 버틸 뿐이니까.

 

가을이 되고 공기가 차가워지자 내가 할 일은 더 늘었다. 우선 손 소독제 사용이 추가되었다. 현관에서 한번, 그리고 방에 들어와 겉옷을 벗고서 또 한번. 베란다 문은 통풍이 되도록 2센티미터 열어두고, 중문은 소음을 막기 위해 닫고. 어머님은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미리 조심하는 거라고 몇번이나 이유를 댔지만 사실 나는 설명을 듣지 못했어도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한다고 바이러스가 이곳에 안 드나들까, 의심은 했으나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방문에는 세균 막이용 압축 문이 하나 더 늘었고 학생은 그 문을 통과할 때마다 엄마, 나 나가도 돼? 하고 물었다.

오늘 수업할 작품은 수능완성 책에 실린 김원일의 『노을』이었다. 남로당 사건을 모티프로 이념갈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이념 대립은 많이 다뤄지는 소재라 학생에게도 몇번 가르친 적이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문장에 줄을 치면서 읽는데 어머님이 끼어들었다. 선생님, 그 펜 말고 다른 거 사용하세요. 전에 보니까 그림자가 져서 잘 안 보이더라고요. 아, 그것도 안 돼요. 그건 빛이 반사되니까 그거 말고 이거, 이걸로 하세요.

‘산 위에 걸린 쌘구름이 노을빛에 물들어 있었다. 노을은 산과 가까운 쪽일수록 찬란한 금빛을 띠고 차츰 거리가 멀어질수록 보라색 쪽으로 여리어져, 노을을 단순히 붉다고만 볼 수는 없었다. 자세히 보면 그 속에는 여러 가지의 색이 교묘히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노을을 붉다고만 말한다. 진노란색, 옅은 푸른색, 회색도 저 속에 섞여 있지 않는가.’

노을 색깔 알지? 사람들은 노을을 빨갛다고 말하지만 실제 노을은 빨갛기만 하지 않잖아.

노을은 그냥 빨간 거 아니에요?

붉은색 계통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가지 색이 섞여 있지.

노을에 푸른색, 회색도 있다고요?

여러 색이 그러데이션 되면서 그런 색도 섞인다는 거지. 그리고 꼭 푸른색, 회색이 있다는 게 아니야. 그건 중요하지 않고 여러 색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지체 없이 어머님이 등판했다.

지인아, 노을 본 거 기억 안 나? 우리 작년 겨울에 하와이에 가서 해변에 앉아 있을 때 노을 졌잖아. 태양 가까운 부분은 좀 빨갛고 바다에 가까운 부분은 좀 푸르스름하고. 해 질 때쯤에는 보라색 같은 걸로 변하고.

학생이 알겠다며 박수를 쳤고 그 뒤로 둘의 하와이 토크가 이어졌다. 나는 조금 전 어머님이 쥐여준 펜을 내려놓고 그 얘기를 들었다. 아니, 한 귀로 흘렸다. 시험지 찾는 1분도, 화장실 다녀오는 2분도 아까운 어머님은 가끔 이렇게 수다로 수업시간을 날리곤 했다. 처음에는 수업을 끊고 들어오는 토크 타임에 짜증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적응의 동물인 나는 그것을 극복해냈다. 이제는 끼어드는 토크 타임을 내 쉬는 시간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와이, 언제쯤 갈 수 있을까. 와이키키 해변은 사진보다 더 예쁠까.

소설 범위를 마치자 잠시 자리를 비웠던 어머님이 모의고사 시험지를 들고 들어왔다. 지난주에 대치동 유명 학원에서 치른 시험이었다. 선생님과 공부해서 문학이 많이 늘었고 고전에서는 틀린 게 적은데 이번에는 특히 시에서 많이 틀려서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끝에 시험지가 내 앞에 주어졌다. 지문으로 나온 것은 김혜순의 「별을 굽다」였다.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설명도 하기 전에 나는 길게 늘어선 줄과 표정 없는 사람들의 굳은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나 학생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얘가 지하철에 타본 적이 거의 없어서. 기억해봐. 엄마가 작년에 지하철 한번 태워줬잖아. 카드 찍고 계단 내려가서 압구정역까지 갔던 거 기억 안 나?

잠시 멍해진 나는 정신을 차리고 출근시간 지하철에 탄 사람들 모습을 묘사했다. 사당역은 환승역이야. 여기도 나오지?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다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치고 힘드니까 표정이 없지. 그 모습을 화자는 ‘붉은 흙 가면’ 같다고 표현한 거야. 얼굴이 굳어 있으니까. 학생은 지하철 풍경을 떠올리는 데 간신히 성공했고 나는 학생을 이해시키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수업을 끝내고 지하철에 오르며 나는 하와이와 사당역의 거리에 대해 오래 곱씹었다.

 

집에 돌아오자 나는 습관처럼 겉옷만 대충 벗어두고 침대에 누웠다. 공부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은 했지만 몸은 아주 간단하게 내 마음을 무시해버렸다. 다른 사람들 공부시키는 것보다 나 하나 공부시키는 게 더 어려울 줄이야. 나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의한 슬픈 자극을 받기 위해 SNS를 켰다. 켜자마자 메인에 대학 동기의 모바일 청첩장이 떴다. 몇년 동안 만나지 않은 동기의 얼굴은 낯설었다. 나는 웨딩사진을 몇장 넘겨보다가 동기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밑으로 이런 문구가 보였다. ‘출신지와 출신 대학을 밝히지 않습니다.’

코로 웃음이 샜다. 동기는 현재 영화평론가이며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출강하고 있었다. 동기의 이름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당연히 출신 대학 정보가 떴다. 이 계정에도 동기가 평론한 글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출신 대학을 밝히지 않는다고? 학연, 지연에 얽매이는 사회에서 벗어나겠다고? 웃기네. 학력으로 먹고살면서 학력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고한 척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침을 뱉고 싶었다. 심지어 결혼식장도 동문회관이야? 나는 다시 한번 코웃음을 치고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제목의 링크가 떠서 클릭해보니 어느 정치인의 해묵은 슬로건이 새삼 소개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주겠다는 외침이었다. 이게 대체 언제 적 슬로건이야? 이번에도 내 코웃음은 자동적으로 새어나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지원한 회사에 운 좋게 간부 면접까지 올라간 일이 있었다. 사장은 면접 중에 이렇게 물었다. 우리 회사는 야근이 많은데 괜찮겠어요? 거의 매일 야근이라고 보면 돼요. 물론 면접 전부터 그 회사는 야근이 많고 그에 따른 수당도 잘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런 건 당연히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최종 합격자로 선발되지 못했다. 면접 때 내 앞 번호였던 사람이 붙었지만 1년 만에 그만두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그때 한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모른다. 분명히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그 회사에 붙었다면 다른 삶을 살게 되었으려나. 해봤자 소용없는 생각들 속에서 길을 잃었다. 아니, 애초에 찾아갈 곳이 없었으니 길을 잃었다고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모르는 길 어딘가에 멈춰 있었다.

 

수능 전날, 학생과 나는 비장하게 마지막 수업을 시작했다. 어머님은 몸도 마음도 바쁜지 방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가르친 것들을 정리하며 학생에게 개념을 묻고 학생이 답하면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잠시 쉬는 시간에 학생은 이번에 어떤 작품이 나올 것 같은지 물었다. 그 물음에 대답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대치동 학원가에서 출제 가능성이 높은 지문을 AA부터 C까지 등급을 매겨놓은 문서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참고하고 적당히 내 의견을 덧붙여 출제 예상작을 꼽았다. 사실 출제작을 맞히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맞힌다면 나 말고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맞히는 것이고 틀린다면 대치동 학원가에서도 틀리는 것이 되니까.

저 인서울 할 수 있을까요?

인서울, 우리나라에서 수험생을 가르치면 가장 많이 하게 되고 듣게 되는 말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나 못하는 학생이나 대부분 목표는 인서울이고 서울 안에서도 등급을 나누어 서연고, 서성한이, 중경외시 등으로 줄을 세웠다. 전체 수험생에서 서울 시내 4년제 대학에 입학하는 건 10퍼센트 남짓일 뿐이고 나머지는. 여기서 생각이 멈췄다. 나머지는 어디로 가는 거지?

나머지가 되지 않으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쳤는데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나머지의 공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센터가 아닌 것만은 분명한데, 어느 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건 확실한데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인서울 해도 별거 없어,라고 말할 수도 없었고 인서울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돌고 도는 생각 속에서 내가 잡은 말은 가장 포멀하고 베이직한 것이었다.

결과는 나와봐야 아는 거니까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눈앞에 있는 문제만 잘 풀도록 해. 그거면 돼.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오며 나는 어머님께 합격 기원 초콜릿을 건넸다. 어머님은 뭐 이런 걸 다 준비하셨어요, 하고 말하며 포장지를 뜯고 세정제로 박스를 깨끗이 닦았다. 선생님, 그동안 너무 수고하셨어요. 저희 애가 느려서 많이 힘드셨죠? 아시겠지만 그래도 애는 착하고 맑잖아요. 수업료는 제가 내일 수능 끝나고 꼭 보내드릴게요. 오늘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이해하시죠?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영어 선생님 오시기 전까지 애 머리를 감겨야 해서. 내일 연락드릴게요.

나는 현관으로 내려와 카드키를 반납하고 운전면허증을 돌려받았다. 퇴근 시간이 겹쳐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을 것이었고 버스는 앉아서 갈 수 있어도 길이 막힐 게 분명했다. 단지 안 벤치에 앉아 어플로 집까지의 소요시간을 검색했다. 지하철로는 58분, 버스로는 1시간 19분. 뭐든 오래 걸리네. 한숨을 머금고 도로를 바라봤다. 서울은 참 넓었다. 이렇게 넓은데도 모든 틈은 비좁았고. 나는 또다시 비좁은 틈새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