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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기호 李起昊
1972년 강원 원주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김 박사는 누구인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장편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등이 있음.
antigiho@hanmail.net
장편연재 4
싸이먼 그레이
· 싸이먼 그레이의 일생을 추적했던 최영근 교수는 후에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말하자면 그의 젠더적 한계와 무지를 지적한 것이다.1
· 동명의 소설 「싸이먼 그레이」를 쓴 소설가 이기호 또한 같은 젠더적 비판을 피할 순 없었는데2 이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소설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서 이런저런 주석을 달지 않는 법이죠. 언제나 소설로 말할 뿐입니다.3
· 싸이먼의 동료이자, 광주외국어대학교 기초교양학부 초빙교수인 서환희는 김주희의 블로그를 다 둘러보고 난 후 ‘싸이먼은 어땠는지 몰라도 김주희는 싸이먼을 연인으로서 사랑한 것은 아닌 것 같다’라는 의견을 냈다. 그로 인해 소설가 이기호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4
· 실제로 김주희의 블로그엔 직접적으로 싸이먼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문장은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 김주희는 싸이먼의 스튜디오에서 이틀 밤낮을 꼬박 누워만 있다가 사흘째 되는 날 알리아와 함께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로 돌아갔는데, 그때도 그녀는 짧게 ‘앓았다’라고만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해놓았다고 한다.
· 하지만 싸이먼의 글을 살펴보면 그날 이후 두사람은 분명 이전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눴고, 더 잦은 만남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4월이 되면서부터 어학원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매주 월요일마다 새로운 신입생이 꼬박꼬박 두세명씩 도착했고, 금요일엔 과정을 모두 끝낸 수강생들의 간이 졸업식이 열렸다. 학생들은 계속 들어오고 또 떠나갔지만, 어학원은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워졌다. 커튼 틈 사이로 이상한 열기 같은 것이 계속 밀려들어 왔다. 강의실 유리창들이 마치 긴 줄에 연결된 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4월이니까, 아무래도 날씨 탓이 크겠지. 몇몇 태풍이 더 다가올 테고, 찬바람과 이슬비도 여전했지만, 공기 자체가 확연히 달라졌다. 그늘에 있다가 양지로 나오면 목덜미가 간지러워지는 계절. 수강생들은 처음 만난 신입생들을 보고도 자주 웃었고, 졸업식을 끝낸 친구들과는 우르르 오코넬 펍으로 몰려가 밤늦도록 기네스를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쏠트힐 비치에 있는 다이빙대에 올라가 차례차례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들 사이에서도 줄리는 언제나 혼자였다. 감청색 파카를 입은 채 강의실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멀거니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만 했다. 월요일 오전에 있었던 어학원 강사 미팅에서도 줄리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줄리는 요즘 어때요?” 원장이 묻자 마이클 맥거번이 짧게 대답했다. “그래도 빠지진 않고 있어요.” “다른 문제는 없구요?” “테스트에서 자꾸 떨어지는 거 빼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그 말에 마이클 맥거번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줄리는 매일 밤 코리브강에 나오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어느 땐 나와 또도르보다 먼저 와서 기다릴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녀 주변엔 담배꽁초가 여러개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낚시의자에 앉아 내가 싸온 샌드위치로 저녁을 먹었다. 주로 양상추와 치즈, 계란과 햄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줄리는 아주 천천히 맥주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엔 내 스튜디오에서 감자튀김과 냉동피자, 수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내가 음식을 만들 동안 줄리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탁자에 놓여 있던 예이츠나 히니의 시집을 뒤적거렸고, 또도르는 노트북으로 불가리아 뉴스를 검색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평안했던 한때였을 것이다.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됐고, 무엇을 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으니까. 대신 내 마음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튀겨지는 감자처럼, 피자의 도우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머지 세계는 잠시 멈춰 섰다.
줄리는 나와 함께 설거지를 하다가 말고 짧게 물었다.
“그쪽이 대신 낸 거 맞죠?”
나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척 말없이 줄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유서 말이에요. 어학원에 낸.”
또도르가 슬쩍 우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게 다른 사람이 대신 낼 수도 있는 서류더라구요.”
나는 프라이팬을 닦으며 말했다.
“그냥 형식적인 거예요.”
내가 셰인 더피에게 줄리의 사유서를 건네자,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곤 서류를 쓱 책상 서랍에 넣어버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럼 난 이제 쫓겨나지 않는 거예요?”
“누구도 함부로 쫓겨나진 않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럼 왜 사유서를 낸 거예요?”
“걱정할까봐요.”
줄리는 손에 들고 있던 스펀지를 거칠게 개수대에 집어 던졌다.
“젠장!”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아랫입술을 깨문 채 잠시 서 있었다. 나도 멈춰 서 있었다. 또도르 또한 노트북 앞에 허리를 편 채 가만히 멈춰 있었다. 이윽고 다시 그녀가 스펀지를 들고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줄리의 표정은 이전보다 훨씬 더 나아 보였다.5
· 그해 5월 17일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아일랜드를 국빈 방문했다. 메리 매컬리스(Mary McAleese) 대통령과 함께 아일랜드 독립추모공원(Garden of Remembrance)에 헌화한 여왕은, 그러나 더블린성에서 열린 만찬에서는 ‘험난했던 과거의 결과로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감회와 깊은 연민을 보낸다’라는 도대체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언뜻 들으면 사과 같기도 한,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더러워지는, 아직도 자기가 아일랜드를 다스리는 여왕인 줄 아는, 모호한 표현을 써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반발을 샀다. 실제로 여왕의 방문 보름 전부터 6천여명의 경찰이 주요 도로에 배치돼 검문검색을 강화했고, 골웨이에서 더블린으로 향하던 버스에선 사제폭탄이 발견되기도 했다. 아일랜드 정부의 승인 아래 영국의 무장경찰들이 대거 더블린으로 들어온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 싸이먼과 또도르, 김주희가 낚시를 하는 코리브강 인근에도 새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무장경찰들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경찰들은 싸이먼 일행의 낚시를 막진 않았지만, 두명씩 짝을 지어, 개도 한마리 데리고, 가끔씩 플래시를 비춰가며, 계속 그들 뒤편을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들 세명을 몹시 수상하게 여겼는데,6 낚시하러 나올 때마다 그들 세사람의 소지품 검사를 했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한명은 뚱뚱하고 또 한명은 과묵하고 또 한명은 한손에 맥주병을 들고 있었으니, 낚시도 제대로 하지 않고 멀거니 앉아 있기만 했으니… 싸이먼과 또도르, 김주희는 사흘 연속 검문을 받고 나서 여왕이 다녀갈 때까지 낚시를 하러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싸이먼의 스튜디오에 앉아 노트북으로 다운받은 영화를 보거나 각자 책을 보면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 여왕이 다녀간 바로 그 주 주말에 싸이먼과 김주희, 또도르는 골웨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던귀에어성(Dunguaire Castle) 근처로 1박 2일 캠핑을 떠났다고 한다. 골웨이에서 버스로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 그곳은 낮은 구릉과 강이 맞닿아 있는 초원지대였다고 한다. 군데군데 염소똥만 많이 쌓여 있고, 나무 한그루, 사람 한명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텐트를 쳐놓고 낚시를 했다고 한다. 그때의 일에 대해서 싸이먼은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았다.
—점심을 먹고 각자의 낚시의자에 앉았을 때부터 줄리는 조금씩 조금씩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날씨는 좋았다. 강물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찌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또도르는 이년 전 이곳에 혼자 낚시를 왔다가 민물장어 두마리를 잡은 적 있다고 말했다. 바다와 맞닿은 강이니까, 수풀 또한 적당한 곳이니까. 하지만 나는 계속 줄리에게만 시선이 갔다. 나는 비니를 쓰고 있었고, 또도르는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줄리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조금 큰 썬글라스만 썼을 뿐이었다. 그녀의 이마가 붉게 변해가는 게 보였다. 아무것도 잡지 못한 채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었다. 또도르가 모닥불에 불가리아식 치킨스테이크와 호박을 구워주었는데, 줄리는 아주 조금만 먹었다. 그녀는 이미 취한 상태였지만, 위스키가 떨어지자 이번엔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줄리는 취하면 영어를 잘했다. 평상시보다 더 잘 듣고 말도 더 잘했다. 발음은 또 어찌나 좋던지.
밤 열시쯤이던가, 줄리가 낚시의자에서 일어나 성벽 쪽으로 휘청휘청 걸어갔다. 나도 조용히 그녀 뒤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또도르는 계속 낚싯대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줄리와 나는 성벽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커다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별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밤이었다. 별들 사이를 지나는 구름마저 선명하게 보이던 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우리 두사람만 멸망한 세계에 남겨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싸이먼.”
그녀가 턱을 괸 채 먼저 말을 걸었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강물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해준 거 없어요.”
나는 신발 옆에 나 있는 작은 풀들을 만지면서 말했다.
“여기, 좋아요. 나를 여기 데려왔잖아요.”
“나도 좋으니까 온 거예요.”
그녀는 담배를 한개비 꺼내 물었다.
“싸이먼은 좋겠어요. 마음만 먹으면 이런 데도 금방 올 수 있고.”
“한국은 이런 곳이 없나요?”
“모르겠어요. 이런 데가 있나? 있을 수도 있겠죠.”
멀리 우리 두사람 낚싯대의 케미라이트가 보였다. 또도르가 텐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줄리, 줄리는 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영어를 배우러?”
나는 용기를 내어 그렇게 물었다. 줄리는 말없이 담배를 피우다가 잠시 후 말했다.
“돈이 생겼으니까요.”
“미국을 가도 되고, 호주를 갈 수도 있잖아요? 근데 왜 하필 아일랜드였어요?”
“여기가 제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작게 웃었다.
“줄리는 한국이 그렇게 싫어요?”
“아니요… 거기 있는 사람들이 싫어요.”
“가족도?”
“가족도.”
줄리와 나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나는 괜한 걸 물어본 것만 같아 후회됐다.
줄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오기 얼마 전에 엄마가 죽었어요.”
“저런… 미안해요.”
나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아니요. 그래서 여기 올 수 있었는데요, 뭘.”
“엄마가 죽어서요?”
“보험금이 나왔으니까.”
“아…”
줄리는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싸이먼, 나한테 잘해주지 마요.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했다. 줄리의 어깨가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렸다.
“줄리는 나한텐 좋은 사람이에요.”
내 말에 줄리가 슬쩍 웃었다.
“싸이먼은요? 싸이먼의 엄마는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줄리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멀거니 하늘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잠깐 눈을 감았다. 웬일인지 마음이 계속 아팠다. 줄리는 마음을 많이 다쳤구나. 어쩌면 그 다친 마음 때문에 우리는 서로 만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생각을 하니 나는 무슨 말인가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눈을 뜨고 천천히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7
· 캠핑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6월 초, 또도르가 예상보다 빠르게 불가리아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8 소피아 국립대학교 영문과에서 다음 학기 강사 자리를 제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싸이먼과 김주희는 또도르를 배웅하기 위해 더블린까지 따라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이틀을 같이 지내며 오코넬 스트리트의 스파이어 첨탑과 더블린성, 작가박물관 등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공항에서 헤어질 때 싸이먼과 또도르는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포옹했다고 한다. 김주희와는 악수만 했다고 한다. 또도르는 싸이먼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는 낚싯대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 또도르는 최영근 교수에게 싸이먼과의 이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문: 당신이 본 싸이먼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나요?
답: 싸이먼은 눈물을 참고 있는 거 같았습니다.
문: 당신은 그 뒤로 싸이먼과 이메일이나 전화를 한 적이 있었나요?
답: 우리는 서로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문: 당신은 싸이먼의 사고 소식을 언제 처음 들었습니까?
답: 당신에게 처음 들었습니다.
문: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답: 나는 싸이먼이 몹시 보고 싶습니다.
문: 그게 전부입니까?
답: 그게 전부입니다.
· 소설가 이기호가 쓴 동명의 소설 「싸이먼 그레이」에 따르면 싸이먼은 더블린에서 다시 골웨이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처음으로 김주희와의 이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고 한다.9 그 때문에 싸이먼은 줄곧 우울한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 최영근 교수가 찾아본 자료에 따르면 김주희는 일년짜리 학생비자로 아일랜드에 입국했다고 한다. 어학원은 25주 코스. 보통의 경우 수강생들은 어학원 과정이 모두 끝나면 보름이나 한달 정도 더 아일랜드에 머문 뒤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일자리를 잡은 학생들만 일년을 모두 채운 뒤 떠났다고 한다. 어학원 코스를 마치고 아일랜드 대학으로 진학해 비자 연장을 받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 그해 5월 말부터 9월 초순까지 싸이먼과 김주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한 골웨이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우선 스테파니 로체(Stephanie Roche). 그녀는 2011년 당시 골웨이 탄탄극단(TanTan theatre) 소속 배우로 낮에는 에비게이트 스트리트에 있는 아시안푸드 마켓에서 파트타이머로 근무했었다고 한다.10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마켓에서 종종 싸이먼과 마주쳤고, 김주희 역시 몇번 봤다고 진술했다.11
· 싸이먼의 대학원 선배인 믹 매카시 또한 골웨이 국립대학교 인근 까페에서 김주희와 나란히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12
· GLS어학원의 홍보 매니저인 셰인 더피는 김주희가 혼자 싸이먼의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우연이었을까? 그리고 두시간쯤 후, 싸이먼과 김주희가 나란히 그곳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고 한다.13 아아, 그러니까 이 친구는 두시간 동안 그 앞에서 혼자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간 이런 할 일 없는 친구들 또한 세계 어느 나라나 꼭 한명씩 있는 법이다.
· GLS어학원 원장인 토빈 히스가 따로 싸이먼을 부른 것은 그해 6월 중순의 일이었다고 한다. 토빈 히스는 그 만남에 대해서 이렇게 전했다고 한다.
—싸이먼은 그 문제에 대해선 철저하게 부인하더라구요. 그런 거 아니다, 동거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줄리와 친해졌고, 함께 공부하는 것뿐이다, 그게 문제가 되는가… 저는 문제가 된다고 정확하게 말해줬습니다. 다른 수강생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강사는 수강생들을 테스트하는 주체가 아닌가? 그러면 수강생들이 어떻게 어학원을 신뢰하겠는가? 그래도 싸이먼은 완강하더라구요. 그냥 자신의 사생활일 뿐이라고, 자신은 줄리를 테스트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실 저는 좀 배신감이 들더라구요. 제가 그동안 싸이먼을 많이 감싸줬거든요. 다른 강사들이 불만을 제기할 때도 못 들은 척했고, 재계약을 할 때도 싸이먼만은 평가에서 빼주고 그랬어요. 저는 정말 싸이먼을 우리 어학원의 대표 강사로 키워볼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더 화가 나기도 했죠. 한데… 더이상 일을 키우진 않았어요. 싸이먼이 그렇게 강하게 부인하는데 우리가 따로 확인할 방법도 없고… 물론 셰인 더피는 자기가 좀더 확실한 물증을 찾아오겠다고 했지만… 제가 말렸어요. 어학원을 운영하다보면요, 때론 조용히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이거든요. 괜히 일을 키워봤자 어학원의 이미지만 더 안 좋아지고… 그게 제 판단이었죠. 그리고 그 판단 그대로 이후엔 조용히 넘어갔어요. 줄리도 7월부터는 거의 어학원에 나오지 않았고, 싸이먼도 9월 중순부터는 아예 출근하지 않았으니까요. 네, 아무런 연락도 없이요… 무책임한 거죠.14
· 실제로 그즈음 싸이먼과 김주희는 아이엘츠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도 김주희는, 물론 싸이먼의 권유로, 어학원 과정을 모두 마친 후 골웨이나 코크 소재의 대학교에 진학할 결심을 했던 것 같다. 그 뒤 비자 연장을 알아볼 생각을 한 듯하다. 아일랜드 소재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선 아이엘츠 종합점수(overall score) 6.0 이상을 받아야만 된다고 한다. 싸이먼은 주로 그녀의 스피킹 테스트와 글쓰기 테스트를 도왔다고 한다.
· 그러나 또 한편, 그 과정이 그리 순탄하진 않았던 듯하다. 스테파니 로체에 따르면 김주희는 그 기간 중에도 자주 술을 사러 왔다고 한다.15
· 싸이먼도 그 부분에 대해선 숨기지 않고 진술했다.
—줄리는 전에 없이 무언가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또 그만큼 자주 멀거니 앉아 있는 시간도 길었다. 마치 아일랜드 날씨처럼 하루에도 여러번 표정이 바뀌었는데, 그걸 말로 표현하진 않았다.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멈칫하고, 또 어떤 손짓을 하려다가 그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가만히 줄리를 기다려주었다. 줄리는 때때로 나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녀는 술을 마시고도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펼쳤는데, 그때마다 볼펜을 자주 의자 옆으로 떨어뜨렸다. 나는 낚시도 나가지 않고 그녀 옆에 앉아 있었다. 마음은 아팠지만, 밑에서 뭐가 올라올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뭐라도 해봐야 한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쳤다.16
· 두 사람은 실제 아이엘츠 스피킹 테스트처럼 파트1, 파트2, 파트3 순서로 시험 대비 공부를 했다고 한다. 싸이먼이 카드에 예시 문제를 적어 김주희에게 건네면, 그 질문을 읽고 김주희가 영어로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한번은 내가 ‘당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장소는 어디였나요? 왜 그 장소가 당신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나요?’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질문은 아이엘츠 공식 홈페이지에서 뽑아온 기출문제이기도 했다. 줄리는 내가 건넨 카드를 일이분 정도 바라보다가 천천히 답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도시 근처에 화순이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 터미널에서 또 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면 능주면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어린 시절, 거기에서 봤던 작은 강과 나무와 돌다리가 잊히지 않아요.”
“줄리, 끊지 말고 이분을 꽉 채워서 말해야 해요. 오랫동안 생각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좋지 않구요.”
“아마 다섯살 때였던 거 같아요. 엄마랑 나랑… 단둘이서 어디를 찾아가는 길이었는지,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다만 아주 뜨거운 여름날 오후였다는 거, 그늘도 하나 없는 강가였다는 거, 멀리 키 큰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는 거, 그런 게 기억이 나요…”
“줄리, 답변을 조금만 더 논리적으로…”
“나는 작은 돌멩이를 갖고 놀고 있었고, 엄마는 그 옆에 양산을 쓴 채 말없이 쪼그려 앉아 있었죠. 아마 길을 잃어버렸거나 약속이 취소되었거나, 뭐 그랬던 거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 어깨를 막 들썩거리면서 울었는데, 그러면서도 양산은 꼭 쥐고 있었던 게 기억나요. 퍼런 힘줄이 드러난 엄마의 손목과 녹이 슨 양산…”
“왜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던 거죠, 줄리?”
나는 펜을 내려놓고 물었다.
“모르겠어요. 언뜻언뜻 그 모습이 떠올라요. 나중엔… 그 풍경이 실제론 존재하지 않았는데, 내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내가 미안하고 우울하니까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가짜 풍경 같은 거요.”
때때로 줄리는 파트1 질문에서부터 막힐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너의 꿈은 무엇이니?’ 같은 간단한 질문들.
“줄리, 이건 부담 갖지 말고 단답형으로 말해도 상관없어요.”
“모르겠어요…”
“아니, 줄리. 그렇게 말하면 안 되고… 최대한 평범하게…”
“싸이먼, 나는 내 기분이 어떤지 모를 때가 더 많아요. 내 기분도 모르는데 꿈을 어떻게…”
“줄리, 이건 그냥 테스트일 뿐이에요.”
“테스트라서 싫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지 같은 테스트예요.”
줄리는 그렇게 말한 뒤에도 그러나 또 펜을 들고 문제집을 풀었다.17
· 소설가 이기호는 그 무렵 김주희의 마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가 한명 있었다. 사회학과 3학년에 다니고 있던 J. 매일 슬리퍼에 큼지막한 갈색 숄더백을 메고 다니던 J. 그때 나는 PC방 야간 알바를 하고 있었다.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주말엔 쉬었다. 알바가 끝나면 집에 들어가 잠깐 눈을 붙이고 나서 다시 오후 1시쯤 도서관으로 가곤 했다. 토플 공부를 했는데, 딱히 어떤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붙잡고 있었는데,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그냥 집에 있기 싫어서 그랬던 거 같다. J와는 도서관 뒤편 흡연구역에서 처음 만났다. J는 나보다 키가 한뼘 정도 더 컸는데, 그래서 그런지 늘 등이 굽은 듯한 자세였다. J가 나한테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쭈뼛쭈뼛 말을 걸었고, 그게 우리의 시작이 되었다. 나중에 J와 친해지고 나서 내가 ‘웬 할머니 한분이 담배를 저리 피우시나’ 생각했다고 말했더니, J도 웃으면서 ‘그러지 않아도 관절 마디마디가 다 쑤셔’라고 받아주었다. 자기는 어린 시절 영양부족으로 키만 컸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양부족인데 키가 어떻게 커? 내가 의아한 듯 묻자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그럴 수도 있대,라고 J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이 며칠 동안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J는 도서관에서 철학책이나 소설책 같은 걸 읽었고, 영어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딴 거 왜 하냐고, 졸지 말라고, 내 어깨를 퉁퉁 치면서 웃기도 했다. 우리는 종종 저녁을 같이 먹었고, 반주로 소주를 나눠 마셨다. 나는 알바 때문에 늘 급하게 마셨고, 그래서 일찍 취하고 일찍 깼다. 알바를 안 하는 J 대신 늘 내가 먼저 화장실에 가는 척 계산을 했다. 내가 그러고 싶었으니까, 취한 상태에서도 언제나 그 마음이 앞섰다. 나는 알바를 하면서도 J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대부분 ‘배고프다’ ‘이 세상에서 컵라면 같은 건 다 사라져버려야 해’ 같은 쓸데없는 내용들이었다. 나는 J와 그런 쓸데없는 말들을 주고받는 게 좋았다. J와 문자를 할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했다.
2학기 개강을 얼마 앞두고 J가 며칠 도서관에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라고 문자를 보내자, ‘응.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사흘쯤 지난 밤, J가 불쑥 문자를 보내왔다.
‘나, 내일 떠나.’
‘떠나? 어딜?’
‘보스턴. 1학기 때 교환학생 신청했거든.’
나는 그때 PC방 개수대에서 컵라면 용기들을 헹구고 있었다. 나는 젖은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왜 미리 말 안 했어? 내일이면…’
‘그냥. 내가 또 취할까봐 ㅋㅋㅋ’
나는 핸드폰을 들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보스턴이면 추운 곳 아닌가?’
‘괜찮아. 나 초등학교 때까지 거기서 살았거든. 우리 엄마 아빠가 그때 학생이어서.’
거기까지 읽었을 때 PC방 안으로 남자 손님 두명이 들어와 나는 또 일어나서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해야만 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연락할 테니까 울지 말고 기다려야 해!’
‘그래.’
‘외롭다고 혼자 술 처마시지 말고 ㅋㅋㅋ 담배도 작작 피우고 ㅋㅋㅋ’
‘응. 너도.’
J의 문자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어쩐지 내가 놀림거리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기껏 그런 말이나 하는 주제에… 나는 그후 J에게서 온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 그애의 전화번호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도 모두 지워버렸다. 그러고도 한동안 계속 그때의 일이 생각나 얼굴이 발갛게 변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그 말도 덩달아 떠올랐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또 그 말을 하고 살겠지… 그런 말만 하고 살겠지…18
· 클리프덴에 거주하고 있던 라이언 머피(Ryan Murphy)19는 그해 8월 말, 싸이먼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 전화에서 싸이먼은 혹 알고 있는 영국 쪽 수산물 가공회사가 있는지, 그중 외국인산업연수생 제도를 실시하는 곳이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20 라이언 머피는 그 사항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왜냐고, 더 묻지도 않았다고 한다.
· 더블린에 살고 있던 대학 동기인 대니얼 놀란 또한 그즈음 싸이먼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싸이먼은 대니얼이 강사로 근무하고 있던 그리피스대학의 입학 제도에 대해서 오랫동안 물었다고 한다. 또 난민 신청 절차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문의했다고 한다.21
· 싸이먼이 따로 기록해두진 않았지만 김주희는 아마도 그해 8월 중순 무렵 아이엘츠 시험 준비를 포기한 듯하다. 그때부터 싸이먼과 김주희는 다시 코리브강에 나가 밤낚시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싸이먼이 인터넷으로 런던 히스로우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의 비행 스케줄을 알아본 것은 8월 20일, 어학원에 휴가를 내고 클리프덴으로 가서 이틀 동안 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온 것은 8월 25일 전후라고 한다.
· 최영근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아마도 싸이먼은 김주희와 함께 아일랜드를 떠날 준비를 한 것 같다고 한다. 그 무렵 싸이먼은 자신의 스튜디오에 있던 일인용 소파를 클리프덴 할머니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 싸이먼도 자신의 생각을 김주희에게 전했다고 한다.
—“나도 줄리 따라서 한국에 갈까봐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때 낚시를 마치고 스튜디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처음 줄리와 함께 이 길을 걷던 때를 떠올렸다. 꽤 오래전 기억 같았는데, 따져보니 불과 오개월도 안 된 일이었다.
“싸이먼이 왜요?”
“나도 여기가 싫어질 거 같으니까요.”
“싸이먼은 여기 할머니도 있잖아요.”
나는 그 말엔 대답하지 않았다.
“나 때문이에요?”
줄리는 정말 궁금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 말에도 대꾸하지 못했다. 도로엔 계속 우리 발소리만 들렸다.
“나, 어디 안 가요. 쫓아낼 때까지 그냥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줄리는 명랑하게 말했다.
“그럼 나 없는 한국에 가서 어디 잘 살아봐요. 싸이먼 할머니는 내가 잘 돌봐드릴 테니까, 염려하지 말고.”
그 말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지나고 보니 줄리는 그때 이미 어떤 결심을 했던 것 같다. 그 결심을 위해서 애써 다른 말을 했을 뿐. 그 결심 속에 과연 나는 얼마나 포함되어 있었을까? 나는 그 결심을 얼마나 늦춘 존재였을까? 때때로 나는 그걸 생각해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마음 한편이 차갑게 식어버리곤 했다. 누군가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22
· 그해 9월 27일 오후 4시 무렵, 싸이먼은 숍 스트리트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김주희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그날 두사람은 함께 클리프덴으로 가기로 약속했었다고 한다. 거기에 가서 할머니도 만나고 키어런 선생님도 보기로 했다고 한다. 싸이먼은 골웨이 생활을 접고 아예 클리프덴으로 이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머피 씨의 일을 거들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줄리에게도 오히려 그곳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클리프덴에 가서 넌지시 김주희에게도 물어볼 계획이었다고 한다. 여기는 떠나는 사람만 있지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아무도 줄리를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그 말을 할 작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 오후 6시가 될 때까지 김주희는 버스정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싸이먼은 무언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그래서 더 버스정류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올 거다, 다 읽을 때까지도 안 오면 한번 더 읽으면 되지. 그 마음으로 계속 그 자리에서 버텼다고 한다. 어둠이 깔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취하는 시간까지 계속.
· 김주희가 아일랜드에서 사라진 것은 바로 그날 오후의 일이었다고 한다. 싸이먼이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은 또한 김주희의 서른한번째 생일날이었다고 한다. (1부 끝.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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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닷없이 등장한 한 동양 여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녀와 낚시 몇번 같이한 후 사랑에 빠져버린 이 남자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사랑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김주희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더군다나 그와 김주희 사이에는 언어적 한계마저 있지 않았는가… 싸이먼이 어떤 변명을 하고 항변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 사랑은 다분히 ‘남성 로맨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로맨스 아래에서 김주희는 연민의 존재, 자아를 탐색하기 위해 경유하는 낯선 지점,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대상으로 타자화된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이 사랑은 ‘위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맞다. 어쨌든 당시 싸이먼은 김주희가 다니고 있던 어학원의 선생이었고, 이방인이었던 김주희를 맞이한 자국민의 신분이었으니까… 문제는 싸이먼이 이러한 한계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것이다(이는 그가 습작한 소설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끝까지 진지하게 자신의 사랑을 믿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상태로 그는 죽었다. 이 지점이 그를 하나의 증상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최영근, 앞의 블로그 blog.naver.com/hamletchoi> 참조). ↩
- 주로 ‘전형적인 한국 남성 작가의 자기연민과 자아 동일시’ ‘기성세대의 후진적 감수성’ ‘이성애자, 40대 남성, 대학교수의 기득권으로 점철된 이야기’라는 평이었다. ↩
- ‘소설가 이기호와의 대화’(최영근, 앞의 블로그 참조).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불리할 땐 꼭 소설 핑계를 대는 것은 문학계의 오랜 전통이다. ↩
- 서환희는 2017년 10월 7일 광주외국어대학교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저는 처음부터 싸이먼 교수님이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었습니다. 그런 태도가 이번 일의 시작이었다고 믿고 있고요… 실제로 저는 우연한 계기로 싸이먼 교수님이 연인이라고 생각한 김주희씨의 블로그를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도무지 모르겠더라구요. 제 관점에선 그렇게 느낄 만한 부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쩌면 싸이먼 교수님이 우정과 이성애적 감정을 혼동한 게 아닐까,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오해가 더 커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네, 실제로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싸이먼 교수님에게 한글을 가르쳐준 사람이 소설가 이기호씨인데… 그분이 오해를 더 키운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기본적으로 남녀 사이를 그렇게 왜곡하고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종종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싸이먼 교수님 때문에 이기호씨와도 처음 만나게 된 건데… 저하곤 맞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의견 충돌도 잦았구요. 그분은 남녀가 같은 방에서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사랑하는 사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이니까요. 일종의 확증편향 같은 게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기호씨 또한 이번 일에 일정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양심의 가책 같은 거라도 말이죠.’ ↩
- 싸이먼 그레이, 앞의 블로그(siren2011.egloos.com) 참조. ↩
- 밤에, 그곳에 정기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그들뿐이었다고 한다. ↩
- 싸이먼 그레이 『민물장어낚시』, 서운출판사 2018, 89면. ↩
- 또도르는 그때 막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한 상태였다고 한다. ↩
- 이기호는 이 부분을 이렇게 묘사했다. “줄리도 곧 떠나가겠죠. 싸이먼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주희는 그런 싸이먼을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스에는 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 뉴스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구제금융 여파로 최저임금이 8.65유로에서 7.65유로로 삭감되었다는 이야기, 수도세가 새로 신설될 예정이라는 소식, 실업률이 13%까지 치솟았다는 이야기,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에 항의하여 파업에 돌입했다는 뉴스였다.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여기가 좋아요. 줄리가 유리창을 보며 말했다. 싸이먼은 그 순간 줄리의 손을 잡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어떤 실망과 좌절이 그의 몸에 새로 새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줄리는 창에 비스듬히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지금은 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줄리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이기호 「싸이먼 그레이」). ↩
- 싸이먼이 클리프덴 공립학교를 다녔을 때 잠깐 몸을 담았던 영화 소모임의 회장이 바로 그녀였다. ↩
- “반가웠죠. 몸이 좀 많이 불긴 했지만 대번에 싸이먼이라는 걸 알아봤으니까요. 걘 어릴 때도 늘 신부님 같은 표정이었는데, 커서도 마찬가지더라구요. 제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했죠. 와우, 싸이먼! 나야 나, 스테파니 로체! 왜 우리 영화 소모임도 같이 하고 그랬잖아? 그제야 싸이먼도 절 알아보더라구요. 아, 브래드 피트! 아직도 그 사람 그렇게 좋아해요? 싸이먼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걘, 농담도 항상 그렇게 재미없게 하거든요. 웬 라면하고 쌀하고 야채를 그렇게 많이 사냐고 제가 묻기도 했어요. 싸이먼은 아무 말 없이 씩 웃기만 했는데, 한달 후쯤이던가? 웬 동양 여자 한명과 함께 다시 우리 가게에 들렀더라구요. 그제야 의문이 좀 풀렸죠. 아, 그래도 사람은 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는구나, 뭐 그런 생각도 좀 들었구요. 싸이먼은 연인하고 잘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도 막 신부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진 않을까? 예전에 케이티하고 그런 농담을 하면서 킥킥 웃은 적도 있었는데… 동양 여자요? 글쎄요… 난 잘 모르겠더라구요. 동양인들은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거 같아서… 키도 작고 눈도 작고 그랬죠, 뭐. 그래도 싸이먼은 행복해 보이더라구요. 계속 그 여자랑 눈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고… 그래서 제가 싸이먼에게 우리 극단 티켓도 두장 따로 챙겨줬어요. 시간 날 때 꼭 둘이 같이 오라고. 아니요. 오진 않았어요. 대신… 이런 말 해도 되나? 그 동양 여자만 혼자 우리 마켓에 몇번 들른 적이 있었어요. 싸이먼 없이 혼자…” ‘스테파니 로체와의 인터뷰’(최영근, 앞의 블로그 참조). ↩
- “둘이 무슨 공부를 하고 있었던 거 같던데, 뭐 따로 알은척은 안 했습니다. 서로 친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저도 윌리엄 캐리 교수님한테 논문 지도를 받았는데… 솔직히 싸이먼에 대해선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무책임하고, 은혜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호의도 외면한 친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 친구 때문에 장학금도 받지 못하고, 대학원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한 친구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면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게 있어야죠. 그렇게 어학원 강사나 하고 낚시나 할 거면 뭐 하러 박사과정까지 밟았느냐, 이거죠. 제가 윌리엄 캐리 교수님께도 진지하게 말씀드린 적 있었어요. 한데도 교수님이 그 친구한테 책임연구원 자리도 주고, 강사 자리도 마련해주는 거 보면서 실망도 많이 했죠. 지금은 교수님도 아마 마음을 접었을 겁니다… 그건 모르죠. 뭐 낚시하다가 만난 친구인지, 어학원 친구인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싸이먼도 그때 분명 저를 알아본 눈치였는데, 알은척하지 않더라구요. 그게 전부죠, 뭐.” ‘믹 매카시와의 인터뷰’(최영근, 앞의 블로그 참조). ↩
- “줄리가 그곳으로 들어가는 걸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 하나를 그제야 찾은 듯한 기분도 들었구요. 당연히 큰 문제죠. 어학원은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한 사업체 중 하나입니다. 왜 어학원마다 돈을 들여가며 파티를 열고 액티비티 활동을 하고 문화행사 같은 걸 하겠어요? 그게 다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거든요. 실력이니, 점수니, 그런 거 다 필요 없어요. 어떤 평판을 만들어내는가, 그 어학원을 생각할 때 바로 떠오르는 시그니처가 있는가, 그게 핵심인 거죠. 한데, 어학원 강사하고 수강생이 서로 사귄다는 소문이 나기라도 해봐요. 아니, 제가 보기엔 둘이 동거를 하는 거 같았는데…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거든요. 그제야 왜 싸이먼이 줄리의 사유서를 대신 냈는지도 이해됐고… 물론이죠. 바로 토빈 히스에게도 보고했습니다. 그게 제 업무였으니까요.” ‘셰인 더피와의 인터뷰’(최영근, 앞의 블로그 참조). ↩
- ‘토빈 히스와의 인터뷰’(최영근, 앞의 블로그 참조). ↩
- “초저녁도 안 됐는데 벌써 술에 취한 거 같더라구요. 안주도 없이 술만 사길래 제가 알은척을 좀 했죠. 한데, 제 인사는 받지도 않더라구요.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중얼중얼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더라구요. 그래서 뭐 저도 조용히 계산만 해줬죠. 싸이먼이 참 고생이 많겠구나, 그녀 뒷모습을 보면서 한참 동안 그런 생각을 했어요.” ‘스테파니 로체와의 인터뷰’(최영근, 앞의 블로그 참조). ↩
- 싸이먼 그레이, 앞의 블로그 참조. ↩
- 싸이먼 그레이, 앞의 블로그 참조. ↩
- 이기호 「싸이먼 그레이」 중 일부. ↩
- 클리프덴에서 수산물 도매업을 하는 바로 그 ‘머피’ 아저씨다. 싸이먼의 할머니가 입원했을 때 병원비를 꿔주었던 고마운 사람. ↩
- 라이언 머피는 수산물 도매 관계로 한달에 한번 꼴로 영국에 들어가곤 했다. ↩
- 당시 아일랜드는 시리아에서 넘어온 난민 수용 문제로 여러 논쟁이 벌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막 RTE 방송국에서 객원작가 일을 시작했던 대니얼 놀란은, 싸이먼이 소설 자료를 수집하는 줄 알고 관련 뉴스를 이메일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
- 싸이먼 그레이, 앞의 블로그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