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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종석 외 『제재속의 북한경제, 밀어서 잠금해제』, 세종연구소 2019

북한경제의 변화와 미래, 평화와 공존의 돌파구는 어디에?

 

 

윤영상 尹永商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yzero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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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로켓맨’과 ‘늙다리 미치광이’의 설전 속에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에 뒤이은 정상외교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둘러싼 북미 간의 입장과 태도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회담 성사에 기여한 남한의 중재안은 미국이 거부했고, 중재 노력 자체만이 아니라 남한의 위상과 역할이 의심받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직 파국은 아니지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교착상태가 이어진다. 과연 해법은 없는 것인가?

여기서 북한의 내적 변화에 주목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북한의 주장과 태도를 맹목적으로 정당화하거나, 관성적인 낙인찍기로 철 지난 제재와 압박의 복원을 뱉어내는 식이 아니라 북한의 내재적 변화 과정을 실사구시하면서 공존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전 통일부장관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최은주,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영훈, KDB 미래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영희 등이 공동집필한 『제재속의 북한경제, 밀어서 잠금해제』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서두의 ‘책을 펴내며’에서 밝히듯이 현재 북한에서는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반이 되었던 기존의 인식을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변화”가 내부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해야겠다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고 할 수 있다. ‘Demystifying the North Korean Economy’라는 제목으로 영문책자를 먼저 발간한 것도 그런 맥락과 의도에서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북한사회의 변화를 실사구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접 방문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찍은 사진을 몇년에 걸쳐 비교하고, 위성사진을 판독하면서 변화를 추적한다. 또 접근 가능한 북한의 온라인사이트를 확인하고 검색하는 일을 종합했다.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을 체감하도록 보고서 양식의 개조식 문체로 집필자들의 주관을 최소화하면서 사진, 그림, 도표 등을 통해 정보 전달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 바로 알기’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1장은 국가전략 노선의 전환을 다룬다. 일단 불필요한 논란을 배제하기 위해 역사에 대한 서술보다는 현재의 변화에 초점을 둔다. 2013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이 2018년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으로 전환했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그것이 실제적인 변화인지를 추적한다. 언론, 군사시설과 군자원의 인민경제지원활동 등 다방면에서 이를 입증하는 사진과 자료를 제시한다. 2019년 헌법개정에서 선군정치 관련 내용을 본문에서 삭제한 것은 그러한 국가전략 변화를 최종적으로 선언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북한은 ‘군사중심국가’에서 ‘경제건설중심국가’로 전략 노선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2장에서는 김정은시대 북한의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을 살핀다. 먼저 김정은시대 경제개혁의 특징이 경쟁체제의 광범위한 도입과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경제발전 추구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와 농업에서의 포전담당책임제를 북한 경제개혁의 아이콘으로 부각한다. 2019년 개정된 헌법에서 1960년대 이래 북한사회주의 경제관리 방식의 상징이었던 ‘대안의 사업체계’를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로 대체했다는 사실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매우 놀라운 변화인데, 남한과 미국의 정책 담당자들이 그 실질적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정은시대의 대외경제 개방은 무엇보다 28개에 이르는 특수경제지대를 중심으로 국내경제 발전과의 선순환을 도모한 점이 특징적이다. 그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전국에 걸쳐 있다는 점으로 개방의 전면화, 전국화를 의미한다. 국내경제와 대외경제를 엄격히 분리하고, 통제된 범위 내에서만 경제특구를 활용하려 했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의 변화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그런 변화의 본질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한다. 여기서 북한의 핵개발과 대북제재를 둘러싼 논란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논란에 대한 세부적인 평가와 진단을 하기보다 대북제재가 지속될 경우 북한의 경제개방 의지를 좌절시킬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그리고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이후 나타나고 있는 북한의 과도한 자력갱생 강조 분위기가 자칫 북한을 과거의 ‘자폐경제’로 회귀시키지 않을까 우려한다.

오늘의 북한경제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3장은 이 책에서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다. 특히 과거 외국산 소비품이 중심이던 장마당이 다양한 종류의 북한제품으로 빠르게 대체되는 상황을 구체적인 수치로 입증하면서, 북한경제의 다양한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특히 사진으로 제시된 화장품과 LED TV 제품의 경쟁상황은 눈길을 끈다. 또한 전국적으로 500개가 넘는 종합시장이 존재하며, 부동산·노동 등 생산요소시장과 상업은행이 등장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인트라넷망으로 운영되는 북한 온라인공간의 서비스 상황이나 휴대폰 보급 실태 및 다양한 스마트폰도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북한경제가 세계사적 흐름과 완벽하게 동떨어진 ‘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계획경제의 핵심인 배급체계가 붕괴되고 일상적인 자원배분이 장마당경제(종합시장체제)로 대체되었다면 그것은 사실상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해석과 평가를 논외로 두고, 대신 지금 이 순간 북한 사람들의 실생활을 알려주려는, 마치 실용정보서 같은 방식의 접근을 고수한다.

결론에 해당되는 4장은, 대북제재와 북한경제의 상관관계를 다룬다. 북한은 2017년부터 대폭 강화된 대북제재로 대외무역이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무역총액의 감소, 특히 수입액이 급감하고 무역수지 적자폭도 커지고 있다. 그 결과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고강도 대북제재로 북한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는 일부 경제기관의 추정과는 달리, 가장 강력한 제재가 실시된 2017년 이후에도 북한의 시장물가와 환율, 그리고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제재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북한경제가 붕괴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자체동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이 책은 북한의 백절불굴 정신을 예찬하지도, 장밋빛 미래를 그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북한이 선택할 자력갱생의 경제발전 노선이 갖는 많은 한계와 부작용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북한의 경제개발중심국가노선이 좌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2020년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 대신 12월 28일부터 4일간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보고’를 발표했다. 이 보고에서 북한은 ‘조미 교착상태’의 ‘장기성’과 제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강력한 정치외교적・군사적 공세로 정면돌파전의 승리를 담보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도, 자력갱생에 바탕을 둔 경제전선을 기본 전선으로 규정했다. 경제중심국가노선을 포기할 수 없다는 고민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예측하는 기조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북한체제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공존의 길을 찾으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을 책이 다 채워줄 수는 없다. 남한정부, 남한사회가 바로 그 아쉬움을 채워냈으면 좋겠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가 바로 남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