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창비 2019
아프리카와 월러스틴
우인희 禹仁熙
부산대 사학과 강사 eperons@naver.com
작년 8월 타계한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1930~2019)의 마지막 저서 『세계체제와 아프리카』(The World-System and Africa, 성백용 옮김)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아프리카를 주제로 발표한 열네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월러스틴의 개인적 경험에서나 세계체제론의 형성 과정에서 아프리카가 각별한 장소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1952년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첫발을 디딘 이래 20여년간 아프리카 지역의 독립과 탈식민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고, 1959년 박사학위논문을 비롯해 아프리카에 관한 여러 저술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책은 1986년 출간된 『아프리카와 근대세계』(Africa and the Modern World) 이후의 글을 모은 것이다.
월러스틴은 아프리카에 대한 자신의 관심이 서구의 지배를 극복하려는 비서구세계의 투쟁이야말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되었으며, 자신이 미국의 사회학적 전통에서 벗어나 세계체제 분석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아프리카 연구 덕분이라 술회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식민지적 상황’과 탈식민화의 연구에서 그간 당연시되어온 국가라는 분석 단위가 근대 세계의 변화를 분석하는 인식론적 단위로 부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 서문에서 그는 자신을 가리켜 “아프리카 사람은 아니지만, 70여년 동안 아프리카에 대한 글쓰기에 관여해왔고 이 지역에 대한 이같은 관여를 통해 자신이 안다고 주장하는 것의 대부분을 알게 된 어느 사람”(6~7면)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의 큰 줄기도 흔히 절망의 대륙으로 비쳐온 아프리카를 특이하고 예외적인 대상이 아니라 근대 세계의 구조적 성격과 모순이 잘 드러나는 역사적 산물로 이해하고 세계 주요 변화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읽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국가 건설 전후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되, 20세기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역사에 대한 거시적 해석이 논의의 중심을 이룬다. 1945~70년 사이 반체제운동들의 전지구적 성공과 실패, 68혁명과 1970년대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여파로 인한 미국 헤게모니의 균열,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맞이한 자본축적 위기에 대한 분석이 이어지는데, 우리가 이제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기에 들어섰다는 저자의 오랜 지론이 전체 방향키가 된다.
1부는 주로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의 전략적 실패와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 침체의 여파로 곤경이 가중된 아프리카의 딜레마를 조명한다. 1950~60년대에 아프리카 민족해방세력들은 세계 변혁을 위해 먼저 국가를 장악한다는 반체제운동의 전략을 따라 국가 주권을 쟁취했지만, 곧 ‘따라잡기’ 경쟁에서 실패했고 세계경제의 분업구조 속에서 중심부와의 격차도 더욱 벌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립 이후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들의 붕괴와 그로 인한 국가 기능의 쇠퇴, 물적 사회기반 시설의 붕괴와 역병 같은 딜레마들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지만, 결코 아프리카에 특유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118~23면) 탈농촌화, 환경 위기, 민주화 추세로 인한 자본축적의 한계 상황은 물론이거니와 “자본축적의 유일무이한 경로인 독점을 보증”(77면)해온 국가성의 약화 경향은 세계 전반이 공히 떠안게 된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다만 월러스틴은 아프리카의 독립운동과 아프리카통일기구(OAU, 1963~2002) 같은 정치적 투쟁이 세계정치적 힘의 관계에서 체제의 안정성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는 쪽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27면) 해방운동의 숱한 실패에도, 그 속에서 정치적 의식이 크게 성장했으며 공적 생활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체제운동의 전체적인 실패를 부인하기는 어려운데, 그는 이 실패가 향후 20~25년에 걸친 후속 체제로의 이행기에 희망적인 요인이 되어 아프리카가 여러 면에서 중요한 지역권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31, 73면) 아프리카인들이 단기적인 지역적 개선에 그치지 않고 중기적인 가치 및 구조의 변혁과 결합하는 길을 보여준다면 이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돕는 일이 될 것이라는 발상이나,(125면) “아프리카는 현 체제를 지탱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해온 계몽사상의 ‘보편주의’ 이데올로기”에 덜 침윤된 장소로서 “가장 창조적인”(32면) 통찰과 사고 전환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시선은 흥미를 더한다.
2부는 근래 정치적 투쟁의 주요 쟁점이 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문제에서 아프리카의 딜레마를 다룬다. 인종(유전적 연속성), 민족/국민(사회정치적 역사), 종족집단(‘전통적인’ 규범과 문화적 습성) 같은 특정한 인구집단 범주들은 원초적 실체가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현상이고, 무엇보다 끊임없는 불평등과 생산 및 노동의 주기적인 재배치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적 산물임이 강조된다.(150~51면) 인종/종족집단 문제 역시 아프리카의 문제만이 아닐진대, 이와 관련해 책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근대 세계의 인종적 적대를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했던 올리버 콕스(Oliver Cox, 1901~74)의 발견이다.
여러 아프리카 사상가들의 시각을 평가한 3부의 13장 「세계체제 분석가 올리버 콕스」에서, 트리니다드 출신으로 미국에 이주한 사회학자 콕스는 월러스틴보다 십여년 앞서 자본주의를 ‘하나의 세계체제’로 파악했지만 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잊힌 인물로 소개된다. 인용된 콕스의 첫 저서 『카스트, 계급, 인종』(Caste, Class, and Race, 1948)에서부터 『하나의 체제로서의 자본주의』(Capitalism as a System, 1964)에 이르는 저작들에서 우리가 월러스틴의 독특한 관점이라 알고 있었던 것들이 일찍이 표명되어 있었다는 것은 좀 놀라웠다. 자본주의는 국가별로 차례차례 성립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체제로서 단 한번 출현했다는 것, 끝없는 자본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체제라는 것, 지역 간 불평등한 분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등. 폴 스위지(Paul Sweezy)의 말대로, 콕스는 연대순으로 보나 논리적으로 보나 그의 사후 개척된 세계체제 분석의 ‘선구자이자 창시자’(330면)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로 보인다.
콕스의 세계체제론적 발상은 무엇보다 근대 세계의 인종주의를 전근대적 ‘카스트’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근대 자본주의의 특성으로 포착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조건으로 비자유노동을 확보하는 지리적 팽창과 반(反)시장적 독점, 국가권력을 강조하는 월러스틴의 논지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제국주의를 후기 자본주의의 한 단계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고유한 성격으로 보는 데서 의견을 같이한다. 제국주의는 19세기 말에 전개된 국면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할 때부터 필수적인 요소였다는 것이다.(346면) 월러스틴은 콕스의 연구가 자신이 원용했던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전체사와 라틴아메리카의 종속이론을 접하지 못한 데서 오는 한계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출현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분석에 다가가지는 못했음을 지적하면서도,(356~57면) 그의 주된 논지를 되새겨볼 것을 제안한다.
끝으로, 번역에서 한가지 짚고 싶은 점은 세계체제론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household’에 관해서이다. 이 용어를 옮긴이는 대부분 ‘가계’로 번역하면서도,(151, 161, 184, 226, 324면) ‘ household zone’에서처럼 ‘가계 구역’이 어색할 때는 ‘가정 구역’으로 번역하기도 한다.(212면) 하지만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서 이 개념은 국가, 계급, 민족 등과 같이 세계체제를 구성하는 하나의 제도적 구조로 이해되기 때문에 모두 ‘가구(家口)’로 번역하는 것이 적확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