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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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文仁洙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쉬!』 『배꼽』 『적막 소리』 등이 있음. insu3987@hanmail.net

 

 

 

뺀찌

 

 

불을 켤 때면 가끔 친구 여중환이 생각난다.

그의 청춘은 전공(電工)이었다.

지금도 친구의 손아귀 힘은 무지 세다. 그의 뺀찌가 굵은 전선을 탁, 탁, 끊을 때,

그걸 다시 여기저기 비틀어 이을 때, 그의 길이 되었다. 어김없이 불이 들어오고, 친구는 늘 밝고 씩씩했다.

그 힘은 물론 친구의 손아귀에서 나왔다. 아니다. 그 힘은

친구가 꽉, 꽉, 악무는 어금니, 그 표정에서 나왔다.

그리하여 평생 전기공사(電氣工社)를 운영해 잘 살았으나, 물렸다. 늘그막에 그만

사람에게 뺀찌가 물려 탈탈 턴 빈손이 되었다.

 

오래전, 어느 해 친구는

우리들의 본적지, 늙으신 내 어머니 홀로 사는 그 헌 집에 전기공사(電氣工事)를 해주었다. 엄청 굵은 용량으로 일습 새로 해주었다. 한사코, 한사코 일체 공짜로 해주었다. 내가 고맙다고 손을 내밀었을 때, 그가 덥석, 마주 잡았을 때, 아팠다. 손가락이 몽땅 분필 동강 나듯 몹시 아팠다. 그것은 내 불효를 잡죈, 악문 것이었을까. 나는 그때

“아프다! 씨팔놈아—” 했던 것 같다.

 

뺀찌는 요즘 뭘 잡아먹나.

 

여기는 고향 땅, 성주 성밖숲. 등 굽혀 게이트볼을 치는 친구의 악수를 받으니, 엉겁결에 또

욕 나올 뻔했다. 불빛, 불빛엔 악어가 산다.

 

 

 

흐미*

 

 

마음이 펴지면서 초원을 펴는구나.

독대(獨對), 그리하여 맨 처음 저 지평을 넘은 자여

그때 생겨난 흉금의 꼬리가 지금의 이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 긴 상처가 불러 바라보는 앞날이여

 

바람 불어도 늑대 울어도 아직 어떤 말도 아니듯이

사람에게도 먼저 소리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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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mi: 몽골의 전통 ‘목소리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