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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몰리 미셸모어 『미국은 왜 복지국가 만들기에 실패했나』, 페이퍼로드 2020

리버럴의 실패와 저조세 복지국가 미국

 

 

김영순 金榮順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isola@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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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복지국가 만들기에 실패했나』(Tax and Spend, 2012, 강병익 옮김)는 미국 민주당의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분투가 왜 실패로 귀결되었는가를 조세정치의 렌즈를 통해 분석한 역사학자 몰리 미셸모어(Molly Michelmore)의 역작이다.

미국은 ‘작은’ 복지국가로 알려져 있다. 2016년을 기준으로 할 때 미국의 복지지출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19.3%였다. 같은 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국 평균은 21.0%로, 독일은 25.3%, 프랑스는 31.5%였다. 과연 미국의 복지지출은 낮다. 그러나 이 수치들은 복지국가의 ‘앞면’에 불과할 뿐이다. 정부의 각종 세금공제 조치를 의미하는 ‘조세지출’은 현금급여에 버금가는 소득보장 수단으로 복지국가의 ‘뒷면’을 구성한다. 감면받은 세금으로 시민들은 보육서비스를 사고 집을 장만하며, 기업주는 의료보험과 연금 등 기업복지를 제공한다.

이 조세지출 국제비교에서 미국은 늘 수위를 기록해왔다. 미국의 2016년 조세지출 총액은 GDP의 6.7%나 되었다. 이게 얼마나 큰돈인가? 위의 2016년 미국의 복지지출(19.3%)에 조세지출(6.7%)을 합치면 독일의 복지지출보다 많아진다. 즉 숨겨진 지출까지 감안하면 미국의 복지지출은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미국을 ‘은폐된 복지국가’(hidden welfare state)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은폐된 복지국가나 유럽의 ‘대놓고 복지국가’나 결국 그 기능은 비슷한가? 그렇지 않다. 은폐된 복지국가는 역진적이다. 미국의 ‘예산·정책 우선순위 연구센터’(Center on Budget and Policy Priorities)에 의하면 2016년 조세지출의 무려 17%가 상위 1%에게 갔다.

걷어야 할 세금을 제대로 걷지 않고 돌려주기 때문에 미국은 결과적으로 매우 낮은 세금을 걷는 국가이다. 2016년 미국의 조세부담률은 GDP 대비 25.9%로 한국(18.7%)보다는 높지만, 프랑스(45.5%), 독일(37.4%)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그러면 미국은 왜 이렇게 세금을 적게 걷는 나라가 되었을까? 미셸모어의 책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는 미국 복지국가를 특징짓는 저조세, 저복지, 고조세지출 구조가 리버럴들에게 ‘좋았던 그 시절’로 기억되는 뉴딜 시기, 로즈벨트의 민주당 시절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본다. 복지국가의 초석이 된 1935년 사회보장법 제정 시기 미국 자유주의자들은 직접적 복지지출보다는 간접적 급여, 즉 세금감면에 주력했다. 그리고 연금 및 실업급여라는 핵심적 소득보장제도는 기여-급여를 철저히 연계하는 임금소득자 기반의 사회보험을 통해 해결하도록 했다. 반면, 기여금과 세금을 제대로 내기 어려운 빈민들에게는 일반조세에 기반한 공적부조를 제공하기로 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사회계약의 정치적 표현양식이었다. 뉴딜 이후 복지국가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미국 민주당에 의해 중간계급에게 제안되었던 복지국가의 실질적 내용은 ‘사회보장’(즉 노년연금과 실업보험)과 메디케어(의료서비스) 및 다양한 형태의 조세감면(주택모기지 공제 등)을 받는 대신, 국민보험세와 연방소득세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와의 사회계약은 이런 방식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국민보험세라는 기여금은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를 받기 위해 내는 것으로, 그리고 연방소득세는 정부의 일반 지출 및 ‘복지’(welfare)라는 이름의 빈자를 위한 지출, 즉 부양아동가족부조와 기타 빈곤완화프로그램을 위한 것으로 제시되었다(유럽에서와 달리 미국에서 통상 ‘복지’는 이런 빈곤층만을 위한 지출을 의미한다). 즉 중간계급은 스스로를 위해 국민보험세를 납부하는 한편, 자신과 무관한 빈곤층을 위해 연방소득세를 납부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던 것이다. 그토록 많은 세금이 중간층을 위한 세금감면에 쓰인다는 사실은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이런 프레임을 통해 중간계급은 자신을 세금의 수혜자가 아니라 희생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같은 인식은 연방소득세로 조달되는 ‘복지’, 즉 공적부조의 주된 수혜자들이 흑인 비혼모였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미셸모어에 따르면 뉴딜 이후에도 미국의 리버럴들은 이런 저조세와 역진적 복지국가체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대신 그것을 추인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리버럴들은 1950~60년대에는 연방세를 경제 안정화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케네디 정부와 존슨 정부 하에서 리버럴들은 감세가 소비여력을 증가시킬 것이고 결국 경제를 성장시켜 모두에게 이익이 되리라는 ‘상업적 케인즈주의’의 가정을 근거로 감세에 앞장섰다. 1960년대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과 베트남 전비 지출로 인플레이션이 야기되고 존슨이 증세를 시도하자, 민주당 다수의 의회는 이에 반대했다. 세금을 올리기 전에 ‘복지’예산부터 삭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권운동의 고조로 미국의 복지국가화가 절호의 기회를 맞았을 때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흑인을 위한 복지지출 확대는 결국 백인 중간층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은 공적부조 수혜자들을 게으르고 부도덕하며 의존적인 ‘세금 먹는 하마’(tax-eater)로 공격하면서 감세와 복지삭감에 나서게 된다. 곧이어 중간층의 지지 속에 1980년대 레이건 혁명이 도래하고 민주당은 레이건의 감세국가를 다시는 되돌리지 못했다.

이 책의 미덕은 이 실패 과정을 촘촘한 역사적 디테일들로 풍부하게 재조명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의 건조한 분석들과 달리 사건의 경과들이 훨씬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편 미셸모어의 큰 그림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지만, 조세정치의 역동성과 그 결과로 나타났던 진보적 대안의 부침들을 지나치게 간과한 점은 아쉽다. 뉴딜 이후 부유층의 세금은 급증했고, 1950년대 중반엔 소득세 상한이 91%에 달했다. 기업 이익에 대한 평균 연방세는 1929년에 14%였으나, 1955년에는 45%에 달했다. 미국 리버럴들이 원래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분석 대신, 기회가 없지 않았건만 왜 그것들이 유실되었는지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실천적 미덕은 미국 리버럴의 실패 이유가 그들의 부정직과 기회주의에 있다고 에두르지 않고 지적한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리버럴들은 중간층에게 조세와 복지의 상쇄관계를 솔직하게 얘기하고, 재분배적 복지국가가 장기적으로는 중간층에게도 이익이 됨을 설파하지 않았다. 그 대신 중요한 역사 국면마다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그것이 결국 레이건 시기의 대반격을 허용했다.

코로나 이후를 고민해야 할 한국 정부여당이 제발 새겨들었으면 하는 지적이다. 대선 공약에서 집권 5년간 추진할 증세 규모를 31조 5천억원으로 제시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후 제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선 비과세·감면 정비 등으로 11조 4천억원을 마련한다는 데 그쳤다. 또 대통령은 증세 대상이 초대기업·초고소득자에 한정될 것이고 중산층·서민·중소기업에 대한 증세는 집권 기간 내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증세를 모색하던 재정개혁특위는 기재부의 견제 속에 별 성과 없이 끝났고, 민주당은 지난 4·15총선에선 강남 유권자들에게 종부세 완화를 언급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